세계가 주목한 조선의 사립 교육기관 한국의 서원(2023.11.29.)
■ 한국의 서원 소개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된 대표적 사립 성리학(중국 송나라 때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 교육기관이다. 현재 한국에 있는 670여개 서원 가운데 대표적인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연속유산으로 구성된 9개 서원은 한국의 서원이 하나의 유형으로 정립되는 과정은 물론 성리학이 동아시아 전역에 확산되어 지역적 특생을 가진 사례로 큰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성리학자들은 강학과 성리학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였고, 정기적으로 제향(서원과 관련한 선현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의식)을 봉행해 학파의 결집을 도모하였으며, 교류와 유식(자연 속에서 수양하고 휴식하는 일로, 성리학을 배우는 과정의 하나)을 통해 성리학에 부합한 향촌 교화 활동을 주도하였다.
■ 서원의 공간구성
서원은 제향 인물의 연고가 있는 지역에 입지하였으며, 성리학자의 전인적 교육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선택하였다.
서원 내부는 제향을 올리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 위치한 제향 영역, 유생들의 공부와 숙식을 위해 지은 건축물이 들어선 강학 영역, 서원 관계자들 모임과 유생들 휴식을 위한 교류 및 유식 영역으로 나뉜다. 성리학자들은 지형과 자연경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하나의 서원 건축 전형을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탁월한 가치를 지닌다.
■ 세계유산 가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은 조선의 성리학 교육과 사회적 확산을 주도한 교육기관이자 무형적 역사적 독특성의 탁월한 증거다. 성리학자들은 교육에 필요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과 물리적 시설을 완성하였다. 그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지역의 인물을 제향함으로써 후세대에 본보기를 제시하고 강학을 통해 학문을 계승함으로써 학맥을 형성하였다.
또한 한국의 서원을 사회 교화와 정치 등 각종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하면서 성리학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서원의 주요기능: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이상적 지식인 양성/지역의 대표적 성리학자를 사표로 삼아 제향/지역사회 공론 형성)
■ 건축물의 조화와 위계
서원은 제향과 강학, 교류와 유식의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각각 사우, 강당, 누마루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였다. 이들 각 영역은 지형, 외부공간, 기단, 담장, 대문 등을 통해 건축물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조화를 이루었고, 각각의 건물이 가지는 기능을 중시하여 연속적인 위계(건물의 우선순위를 중시하여 위쪽에 두거나 중앙에 두는 등의 질서)를 부여하였다.
■ 한국의 서원 위치와 특징(건립년도/주향인물/역사적 가치/건립위치)
-돈암서원 1634년/김장생(1548-1631)/예학 연구 및 이론을 건축으로 구현/김장생의 거주 지역
-무성서원 1615년/최치원(857~?/향학을 통한 향촌 교화 장소, 의병 거점/최치원이 선정을 베풀던 지역
-필암서원 1590년 /김인후(1510-1560)/서원의 재산과 노비 등 운영 관련 문서 소장/김인후의 거주지역
-남계서원 1552년/정여창(1450-1504)/유림의 자발적 건립, 한국서원의 전형적 건물 배치/정여창의 거주 지역
-도동서원 1605년/김굉필(1454-1504)/전형적 경사지의 일렬 건축 배치/김굉필의 묘소 인근
-소수서원 1543년/안향(1243-1306)/한국 최초의 서원/고려 시대 유학자 안향의 거주지역
-도산서원 1574년/이황(151-1570)/학파중심 서원 건립의 대표 사례/이황의 강학처
-병산서원 1613년/류성룡(1542-1607)/교육기관에서 여론 수렴지로 역할 확대/류성룡의 거주지역
-옥산서원 1572년/이언적(1491-1563)/교육과정 기록 문서 및 풍부한 출판 활동 /이언적의 거주지역
■ 9개 서원의 특성
-영주 소수서원: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서원이다. 한국 서원의 강학, 제향과 관련된 규정을 최초로 제시하여 이후 건립되는 서원에 영향을 주었다. 이와 관련한 문헌 자료도 풍부하다. 소수서원은 서원이 교육기관으로서 강학, 제향, 교류와 유식 등의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함을 제시하였다.
-함양 남계서원: 한국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사례다, 건축적으로는 한국 서원 건축의 전형적인 배치 형식이 처음 등장했다. 각각의 주요 영역을 구분하여 하나의 축선상에 배치한 형식은 이후 건립하는 서원의 모범이 되었다.
-경주 옥산서원: 출판과 장서의 중심 기구로서 서원의 역할을 정립하였다. 건축적으로는 서원 영역 내에 교류와 유식 기능을 하는 누마루 형식의 무변루를 건립하였다. 옥산서원 이후 서원에 누마루를 건축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안동 도산서원: 이황의 도산서당을 기반으로 건립되어, 서원이 학문과 학파의 중심 기구로 발전하는 과정을 입증한다. 강당은 특이하게 4칸 구성이며, 대청 서쪽에만 방을 두어 비대칭을 이룬다. 자연경관이 뛰어나 일대 경관을 묘사한 다양한 작품이 남아 있다.
-장성 필암서원: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한국의 서원 건립이 호남 지역까지 확산되는 과정을 입증한다. 기록물을 통해 서원의 경제적 운영방식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이전의 서원들이 경사지형을 이용하던 것과 달리, 이곳은 평탄한 지형에 적합한 건축물 배치 형식을 적용하였다.
-달성 도동서원: 서원 교육 방식의 구체적인 양상을 입증한다. 경사지를 활용한 서원의 건축 배치를 탁월하게 구현하였다. 건축물별로 여러 개의 단을 조성하여 외부의 자연경관을 시각적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활용해 서원의 경사지 조성 기법을 잘 보여준다.
-안동 병산서원: 서원을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만이 아나리 만인소 등 사림의 공론장으로 확대해 사림 활동 중심지로서 기능을 입증한다. 많은 학자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의 누마루인 만대루는 자연경관과의 조화가 탁월하다,
-정읍 무성서원: 한국 서원의 발전 과정에서 지역 단위의 지식인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성리학 이념이 확대된 서원의 양상을 보여준다. 성리학적 사회 질서를 교육을 통해 향촌에 뿌리내리고자 한 흥학처에 설립되었다.
-논산 돈암서원: 성리학의 실천 이론인 예학을 논하던 서원으로, 응도당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학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관련 저술이 출판되었다. 응도당은 동아시아 건축 이론을 예학 이념과 결합하여 완성한 건물로 한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
■ 자발적 노력으로 완성한 남계서원
-역사적 가치: 남계서원은 1542년 강익을 비롯하여 지역의 유학자들이 일두 정여창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성리학 교육시설이다. 1566년(명종 21)에 왕이 남계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남계는 서원 앞을 흐르는 하천 이름이다. 남계서원은 임진왜란 때 경남 지역의 의병 활동을 주도했으며, 5년 뒤 정유재란 때 함양을 급습한 왜군에 의해 불탔다. 전쟁이 끝난 뒤 인근 나촌으로 옮겨졌다가 1612년 옛터인 현재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주요 특징: 서원은 경사지에 남서향으로 자리해 앞으로 흐르는 강과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정문인 풍영루를 지나면 좌우에 작은 연못이 있고, 이어서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양정재와 서재 보인재가 자리한다. 양정재와 보인재보다 한 단 높은 곳에 강당인 명성당이 있고, 그 뒤 경사지에 사당이 있다. 남계서원은 전학후묘, 즉 강당을 앞에, 사당을 뒤에 배치하는 한국 서원 건축의 전형적인 배치 형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또 정문에서 사당까지 중요한 건물을 거의 좌우대치으로 배치한 형식은 이후 경사지에 건립한 서원 건축의 모범이 되었다.
-제향 인물 및 의미: 사당에는 정여창의 위패를 가운데에 모시고, 좌우에 각각 정온과 강익의 위패를 모셨다. 정여창은 남계서원의 북서쪽 수동면 개평리에서 태어나 김종직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세자 시절 연산군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유교의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정치인들의 도덕적 실천을 강조했다.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한국의 뛰어난 유학자 다섯 분을 일컫는 동방오현으로 성균관 문묘에 모셔졌다.
-주요 문화재: 함양 남계서원(사적 제499호), 일두문집 목판(경남 유형문화재 제166호), 개암문집 목판(경남 유형문화재 제167호)
-제향공간: 사당(제향 인물의 위패를 봉안한 곳6으로 정기 비정기 제향의례를 시행하고 있다.) 전사청(제향에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고 있으며, 제향을 준비하는 건물이다)
-강학공간: 명성당(서원 강학 활동을 위한 핵심 건축물이다) 양정재 보인재(유생들이 기숙과 개인 학습을 하던 건물로, 한국 서원 최초로 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재사를 배치했다) 장판각(서원의 강학과 관련한 서적과 목판 등을 보관하던 곳이다. 이곳의 장서와 목판은 현재 함양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교류와 유식 공간: 풍영루(서원 관계자들의 회합과 유생들의 유식을 목적으로 건립한 누마루다) 애련헌 영매헌(유생들의 유식을 위한 공간으로 서원 재사 앞쪽에 조성했다) 연지(애련헌과 영매헌에서 바깥쪽을 바라봤을 때 바로 앞에 위치하며, 유생들의 유식을 위해 조성한 연못이다.)
-기타 시설: 고직사(서원 운영의 보조 업무를 담당한 사람들이 기거하던 건물이다) 묘정비각(조선 정조 때 세워졌으며, 비문은 당시 문관 김종후가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