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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5: 28. 네 믿음이 크도다. -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신 기적
6]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신 기적 (마 15: 21~28)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일으키신 23번째 기적은 두로 시돈 지방인 수로보니게에서 한 여인의 딸을 고치신 기적이다.
예수님께서 그 지방에 가셨을 때였다. 한 여인이 예수님에게 와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요청하였다.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시며 이방 사람의 병 고쳐 주기를 거절하셨다. 그러나 이 여자는 예수님에게 나와서 절하면서 "주여 도우소서"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자존심 상하는 말을 하셨다. 그 여자는 이 말을 듣고 "주여 옳소이다 만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다시 매달렸다. 예수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셨다. 이때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고 깨끗함을 받았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는 믿음과 소원성취의 관계성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부르짖는 맹인에게도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고 하셨더니 눈이 떠졌다(마 9: 27~34). 믿음을 보시고 소원을 성취시켜 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① 하나님이 우리를 늘 사랑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② 우리는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음을 믿어야 한다.
탕자가 방탕하고 회개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날 아들이라 여기지 마시고 품군 중에 하나로 여기소서"라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아난 내 아들이라고 하며 안아 주셨다. 우리는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다 하더라도 용서함을 받았다.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나폴레옹이 말에서 떨어지게 될 정도로 말이 뛰었다. 갑자기 무엇에 놀란 모양이다. 이 때 한 병사가 목숨을 걸고 뛰어 들었다. 그리고 뛰는 말을 진정시켰다. 나폴레옹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너는 대위다"라고 말했다. 그 후 그는 장교석에 가서 섰다. 장교들이 "너는 사병이니 저 쪽에 가 서라"라고 명령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장교다." "누가 그러더냐?" "황제가 그랬다."
그렇다. 황제가 대위라면 대위다. 누가 무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라고 인쳐 주셨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 바울 사도는 말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 33~39)
③ 무엇이든지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받을 줄 믿어야 한다.
④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이길 줄 믿어야 한다.
이 여인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기에 큰 믿음이라고 주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하시고 소원을 들어 주셨을까? 지금도 이 여인처럼만 믿으면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큰 믿음이라고 인정하여 주실 것이다. 꼭 믿음대로 이뤄진다.
(1) 예수를 찾는 믿음
본문은 예수님의 첫번 해외여행이었다. 또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유일한 해외여행이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예수를 찾아온 이 여인의 기회 포착 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우선 예수님에게 가지고 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다. 홍해의 문제가 생겼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였다. 문제 속에서 문제만 보았다. 그러나 모세는 그 문제를 하나님에게로 가지고 갔다. 기도하였다. 하나님께 맡겼다. 하나님은 모세의 그 기도를 들으시고 홍해를 갈라 주셨다.
문제를 예수께로 가지고 온 이 여인의 믿음을 주님은 크다고 인정하셨다.
(2) 부르짖은 믿음
"소리질러 이르되" (22) 많은 사람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여자다운 행동이 아니다. 정상적인 매너도 아니다. 체면을 차리는 것도 아니다. 소리를 계속 질렀다. 부르짖는 믿음이었다.
갓난아이에게 어머니가 젖을 주는 경우는 3가지가 있다.
① 울지 않아도 때가 된 경우다.
② 배고프다고 우니까 주는 경우다.
③ 갑자기 자즈러지게 우는 경우다.
하나님도 이와 같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신다. "너희 쓸 것을 미리 아시느니라"라는 말씀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달라고 하여야 주시는 경우가 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게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떼를 써야 주시는 경우가 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간절히 기도하니까 그 눈물과 열성을 보시고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다. 야곱도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기도하여 축복을 받았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렘 33: 3) 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3) 예수를 바로 아는 믿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내 딸을 불쌍히 여기소서" (22)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성경에 보면 67명의 사람들을 예수님은 만나 주셨다. 그들이 예수님을 부른 것을 보면 3가지다.
① 나사렛 예수여!
② 그리스도 예수여!
③ 다윗의 자손 예수여!
이는 각각 특징이 있다.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는 아들이다. 나를 여보라고 부르는 이는 아내 밖에 없다. 나를 목사님이라 부르는 이는 틀림없이 교인들이다.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는 것은 멸시하는 자세다. "촌사람 예수"라는 말이다. 나사렛은 조그만 촌이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이 말로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너희들이 깔보는 이름의 위력을 보라는 과시였다. 그래서 예수 이름을 깔보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위력을 나타내 보이고 싶을 때도 이런 부름이 상용되었다.
그리스도 예수는 죄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이 예수를 부를 때 사용하였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부를 때는 다른 경우다. 유대인들은 다윗은 못할 것이 없었던 능력 있는 왕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속에는 "못할 것이 없는 예수님!"이라는 믿음이 들어 있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여 달라고 부를 때는 이렇게 불렀다.
이 여인은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고백하였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은 큰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예) 대전의 한밭 순복음교회에 전상길 권사님이 계셨다. 그는 37년간 여기저기 절을 세우는 등 골수 불교신자였다. 그녀가 죽을 병에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믿음 좋은 교인 한 사람이 와서 "예수님은 못 고칠 병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병만 고칠 수 있다면 예수를 믿겠다고 교회에 나왔다가 병고침을 받았다. 그는 지금도 기도가 끝날 때는 "나무아불 타불 아멘"이라고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올 때가 있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못할 것이 없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확실하게 믿는 믿음은 큰 믿음이다.
(4) 십자가 믿음
십자가란 남의 죄를 담당한 자리다. 남의 문제를 끌어안고 죽은 자리가 십자가다. 이 여인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었나이다."라고 말했다.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었는데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이었다. "내 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간디는 "지구의 모든 이의 눈물은 내가 닦아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믿음이다. 이것이 중보기도다.
(5) 귀신의 역사를 아는 믿음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이 여인은 귀신의 역사를 아는 영안이 있었다. 귀신의 역사를 아는 것은 성숙한 믿음이다. 지금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어떤 일을 합니까? 바울은 다음과 같은 것은 마귀가 와서 우리에게 일으키는 형상이라고 말했다. "곧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 29~31) 귀신은 우리에게 와서 이런 일을 한다. 귀신의 역사를 알아야 귀신의 정체를 알고 이길 수 있다.
(6) 도와 달라는 믿음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서 왔기 때문에 고쳐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 이 여인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25)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낮잠 자는 이들을 쫓아 다니시며 문제를 해결시켜 주시는 분은 아니다. 열심히 일하며 강렬하게 매달리는 자의 문제를 돌보고 해결시켜 주시는 분이다. 열심히 일하면서 자기의 힘으로 처리하기 힘들어 쩔쩔매는 이에게 다가가서 처리하여 주시는 분이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이때 다가가셔서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가 잡히게 하는 기적을 주셨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듯이 도와 달라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도와주시는 주님이시다. 자기가 하겠다며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다가가지 아니하시는 주님이다.
(7) 혈기가 없는 믿음
딸을 고쳐달라는 요청에 예수님은 이렇게 쌀쌀스러운 말씀으로 대꾸하셨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리니"(26) 이 말을 듣고 이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했다. 신경질이나 화가 없었다. 혈기가 없었다. 화가 날 때 화를 부리는 것보다 화가 날 때 참는 것은 가장 큰 힘이다. 어느 정치가는 일생 화를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은 화가 나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는 "왜 나라고 화나는 소리를 듣는데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화가 나면 휘파람을 불면서 화를 날려 보내지요. 화를 다스릴 줄 모르는 것은 성숙한 인격이 아니랍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여인은 혈기가 없는 믿음이었다.
(8) 겸손의 믿음
그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하며 자기를 개의 신세로 말하고 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나사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불렸다. 예수님이 개라고 말하니까 개라고 대답하며 겸손함을 보였다. 예수님은 이방인은 개라고 비유하며 꼼짝못하게 만들려고 하였는데 이 여인은 자기가 개라고 인정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자기 딸에게로 끌어 드렸다. 겸손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같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은 다음과 같이 8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시며 소원을 성취시켜 주셨다.
① 예수를 찾는 믿음 ② 부르짖은 믿음 ③ 예수를 바로 아는 믿음 ④ 십자가 믿음 ⑤ 귀신의 역사를 아는 믿음 ⑥ 도와 달라는 믿음 ⑦ 혈기가 없는 믿음 ⑧ 겸손의 믿음 이다.
7] 최선과 차선 (성경 : 마 15: 21-28) 설교 : 김영권 목사(행복한 교회)
오늘 우리는 한 여인의 최선의 인생, 최선의 신앙생활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 여인은 자기 자신의 인생을 최선으로 또 신앙을 최선으로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좋은 결과들을 얻게 됨을 볼 수 있다. 어머니의 최선을 보여주는 분이다라고 볼 수 있다. 어머니는 참으로 위대하다. 그의 딸을 살렸다. 어머니를 가르쳐서 어떤 분은 불이다. 또는 능력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는 신이라고 보는 분도 있다.
참으로 어머니의 최선이 병든 딸, 귀신 들린 딸을 병마에서 구원해 내는 엄청난 일을 했다. 어머니는 이방 여인으로서 최선의 인생과 신앙을 보여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본국인이 아닌 이방 사람으로서는 최선의 신앙 그것을 주님께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도 외국에 있으면서 이방인으로서 아주 이름을 날리고 지금 신문에 매일 대서특필되는 사람들이 있다.
야구 선수 가운데 미국의 박찬호 선수나 일본의 선동렬 선수가 있다. 경제계는 미국의 실리콘 벨리에 있는 이중문 회장 같은 분으로 클린턴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함께 동참할 정도로 그의 위상이 높다. 일본에서 지금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손정희 사장. 여러분 현재 우리나라에서 어제 이후로 컨택스 코리아가 끝이란 걸로 생각이 되는데 저도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본에서 재산가로서 랭킹 3위에 들 정도로 대단한 재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다. 유명한 빌게이츠 컴퓨터 황제. 그 스타는 지나가지만, 그 애들 오히려 스타는 지나갔지마는 감독을 맡겠다. 무대는 남으리라. 그런 정신으로 그는 일본에서 맹렬하게 뛰고 있다. 그가 지금 거느리고 있는 기업만도 50개가 넘는다. 정말 이방인으로서 외국에서 최선의 인생을 사는 분들이라 생각된다.
이 여인은 신앙적 최선을 보여주었다. 자기는 하나님이라는 존재, 예수라는 존재를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그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감동을 줬고, 마침내 자기 딸에게 엄청난 기적이 나타나서 딸이 귀신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났다.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최선의 신앙을 소유해서 그의 인생과 신앙이 커다란 열매를 얻었는데 우리들의 현대 교회의 문제는 뭡니까?
최선의 인생과 최선의 신앙이라는 차선적 신앙이 문제가 되었다. 왜 신앙생활을 차선을 못하고 최선을 했을까? 주일예배는 차선이고 자기 사업은 최선을 다하는 것 또 교회는 차선이고 가정은 최선이고 전도는 차선이고 자기 비즈니스는 최선이다. 사랑은 차선이고 갈등은 최선이고, 이웃은 차선이고 자기는 최선이고, 회개는 차선이고 범죄는 최선으로 되어 있는 이 안타까운 일들이 현재 우리들 교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꾸어야 하겠다. 차선 적인 인생이나 차선 적 신앙 태도를 최선 적인 인생으로 최선의 신앙생활로 바꾸면 여러분도 이 여인처럼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얻을 수 있고 또 우리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좋은 신앙가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차선의 신앙을 최선의 신앙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를 이제 생각해 보겠다.
우선 22절 말씀을 보자. 마태복음 15장 22절 말씀을 다 함께 읽겠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언제 이 여인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인은 예수를 정확하게 알았다.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예수가 메시야 라는 뜻이다.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잘 알면은 하나님의 최선이 얼마나 정열적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알면 우리 또한 인생의 최선 신앙생활을 차선으로 할 수 없고 최선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많은 분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얼마나 최선의 정열과 열심을 가지고 다가오시는지 이것을 잘 모르시는 분이 있는 것 같다. 천지창조 때 창세기 1장 말씀 보시오.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다 창조를 끝냈다. 매일 매일 창조를 끝낼 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wonderful 하나님이 보시기에 beautiful 하나님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 하나님은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신 분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하나도 쓰레기 공해가 없다.
이 지구촌 전체를 공기와 태양 빛으로 채우고 물로 채우고 땅에 얼마나 신비로움이 있습니까? 물, 공기, 빛, 땅 그 어느 것 하나도 곰곰 생각해 보면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다. 먼저 흙을 생각할 때마다 도대체 이 흙 속에 무엇이 들어있길래 어떤 씨앗이든지 떨어지기만 하면 어떤 씨앗이라도 발아시켜서 잎을 내고 가지를 내고 꽃을 내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까? 콩을 심으면 콩 나오고, 팥을 심으로 팥 나오고, 토마토 심으면 토마토 나오고 수박 심으면 수박 나오는... 하나님의 세계는 하나로 불완전한게 없다. 쓰레기가 없다. 무엇이든지 활용해서 다시 재활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은 인생이 타락한 이후에 우리 인생을 위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자기 몸이 부끄러워서 무화과나무 잎을 따 가지고 하체를 가렸는데 햇빛이 내리쬐니까 다 말라 전부 부스러져서 없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다시 가죽옷을 지어서 입혔다. 그의 부끄러움을 가죽옷으로 덮어 주시는 최선을 보여주시고 있다. 또한 에덴에서 범죄 한 다음에 하나님이 그를 에덴에서 내쫓았다.
왜? 죄를 범한 채로 생명 과일의 열매를 따먹으면 죄악 중의 영생 바로 지옥으로 직행해서 구원받을 기회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부득불 인간을 에덴 밖으로 생명 나무는 손댈 수 없는 다른 곳으로 내쫓아야 했다. 이것을 가르쳐서 그 뜻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은 우리 하나님이 좀 매정하시다 왜 사람들을 저렇게 추방해 낼까? 이렇게 오해했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에덴에서 추방이 생명 나무를 손대지 못하게 하심이 하나님이 사랑해서 하나님의 최선의 인생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구속하시는 이 구속의 사랑은 얼마나 최선에 최선을 다하십니까?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돈 몇 푼 헌금 몇 푼 드리면서도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또 인색함이 많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물질 잘 주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내어 주시도록 그 아들을 내어 주는 최선의 사랑을 보시라.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내보내신 하나님의 최선이 선물임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가 세상에 사시면서 또한 얼마나 최선의 삶을 살았던가! 그는 인생의 모든 문제 죄와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시험을 한 몸에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고통 당하시고 고통받고 저주를 받아서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기까지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최선의 최선이 노력을 다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이 아들, 이러한 복음과 받기만 하면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시고 죄에 대해서 자유케 하시고 질병에서 은총. 이런 모든 것들을 은혜로 주신 이후에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하면 손을 내밀어서 Welcome 하고 환영하고 모든 시련에서 자유케 하시고 모든 가난과 저주에서 자유케 하시는 이 놀라운 은총을 주신 우리 하나님의 최선의 열정을 안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디 하나님의 참사랑의 최선을 잘 이해하시고 차선 적인 신앙생활 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온 정성을 다해서 우리 하나님께 나아가셔서 여러분의 삶 속에 놀라우신 하나님이 은총이 바로 이 여인처럼 체험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음 23절부터 27절까지 보자. 특별히 26, 27절을 잘 보시기 바란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 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예 27절까지다.
여러분 이 여인은 예수님이 축복을 받을 만한 최선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원래 유태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데 항상 제2선 3선 4선이었다. 그래서 예수님,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내 딸을 구원해 줍소서. 할 때 아니다 나는 너 같은 이방인 차선 자에게는 은혜 베풀기를 원치 않아 내가 은혜 베풀 대상은 유태인이야. 이때 이 여인은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 같은 이방인이라도 부스러기 은혜를 주시면은 난 달게 받겠습니다. 네 바로 이 여인은 자기는 최선이 아닌 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이 은총을 구하고 또 구하는 아름다운 자세. 그래서 우리 옛말 가운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다. 지극 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 그랬는데 우리 예수님이 감동을 안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비록 이방 여자이지만 이방 여자 속에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기에게 다가오고 자기에게 은총을 구하는 여인이 없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보통 하나님께 나아갈 때 왜 최선의 방법으로 나아가지 않고 차선 적 신앙생활을 하는가? 대체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 생각하기로는 신앙적인 열등감 때문에 그렇다. 혹시 하나님께 나아가다가도 나 같은 사람 기도를 들어주실까? 나같이 믿음 약한 사람도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가? 신학 지식이 많이 아는가? 내가 누구보다 충성을 많이 했는가? 헌금을 많이 했는가? 내가 전도를 많이 했는가? 난 부족함 투성인데 나 같은 사람 과연 하나님이 받아주실까? 이런 어떤 우리들의 영적인 열등감이 때로 우리 하나님께 나아가는 적극적 신앙 자세를 소극적 자세로 최선의 신앙 생활을 못하고 차선으로 밀려버리는 그런 신앙 자세가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 여인에게서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비록 차선이지만 그러나 이 차선을 최선을 향해서 달려가면 차선도 최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여인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비록 부족하지만 비록 연약하지만 비록 자랑할 것이 없고 비록 신앙이 모자라고 비록 전문지식이 모자라고 비록 신학 지식이 모자라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최선을 다하면은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자기를 구원해 주시리라 굳게 믿었던 이 자세를 본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헤겔이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역사의 완성은 정열, 최선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그랬다. 니체라는 사람도 '이 사람을 보라'는 책에서 그는 아주 당돌하게 말했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그럼 자기는 뭔가?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네 비록 우리와 신앙 노선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그의 당돌한 모습을 보시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이 말은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에요. 후에 또 하는 말이 누가 백 년 후에 내 말을 알아들을까? 말까? 한다고 그랬다. 얼마나 오만방자하고 얼마나 건방진 말을 했건만 그러나 그의 최선 그의 정열은 알아줄 만하다
여러분 이방인이지만 비록 하나님 앞에서 잘한 것도 없고 내놓을 만한 것도 없지만 이제부터라도 나는 최선을 다하겠다. 최선의 뜻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겠다. 이런 자세로 나가시면 오늘 이 아침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기적이 여러분에게 임하시는 줄 믿기 바란다. 차선에서 돌아서시오. 최선으로 돌아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내 사업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을 내 모든 가정보다도 먼저 교회일을 내 사적인 일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일을 여기에 최선으로 몰고 오시면 비록 우리는 차선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더 좋은 신앙의 결과로 인도해 주신다는 이 소중하고 값진 진리를 우리는 이 성경에서 배워야 되겠다. 부디 여러분의 신앙과 인생 가운데 차선에서 최선의 인생으로 돌아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열심히 사십시오. 누가 뭐라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모든 조건이 문제가 안 되는 겁니다. 지식 정도? 전문적인 힘? 아니다. 최선을 다하면은 전문적인 지식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차선 적인 신앙에서 적극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그런 정열 그런 노력 이 시간부터라도 가진다면 과거를 묻지 않고 오늘 이 순간부터 여러분에게 크게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또 우리 하나님께서 크게 감동하셔서 우리에게 크게 축복을 내리실 줄로 믿기 바란다. 그러므로 돌아오기 바란다. 모든 범죄에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모든 타락에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불신앙에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최선의 신앙으로 최선의 정열로 다시 돌아오시면 하나님 받으시고 꼭 축복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마지막 28절입니다. 15장 28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네 우리 기독교에서는 믿음을 최선의 방법으로 알고 있다. 다른 종교와는 다르다. 다른 종교에서는 구원받으려면은 율법을 지켜라. 인격을 완성하고 네 교양이 모자란다. 더 수양하고 더 공로를 쌓아라. 이렇게 요구한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그런 것 다 뒤로해라. 율법도 고행도 선행도 다 뒤로해라.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을 구원 조건으로 믿음을 최선으로 여기시고 있다.
그럼 왜 우리 하나님이 다른 것은 다 미루고 믿음 하나를 그 믿음 하나를 보고 구원을 주시는가? 그 믿음을 최선 조건으로 여기시는가? 우리가 일반적인 문제하고 대입을 시켜서 한 번 생각 해보자. 여러분 한 가정에 부부간에 최선의 최선이 뭡니까? 부부지간의 최선이 뭡니까? 결혼할 때 약속? 호적등본? 반지입니까? 여러분 자녀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자녀가 있어도 호적등본에 서로 결혼 등재가 되있어서 혹은 약혼 반지를 끼었어도 여러분 하루아침에 모든 법적인 제도적인 조건을 다 파기해서 이혼 재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부간의 최선은 법적조건이 아니다. 약속 반지가 아니다. 뭡니까? 서로간의 믿음이다. 서로간의 사랑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믿고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해야만 부부 사이에 최선이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는다. 여러분 노사 간의 이유가 뭡니까? 임금 때문입니까? 자존심 때문입니까? 아니에요. 노사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뭡니까? 노와 사가 서로 신뢰하고 서로 섬기고 서로 사랑하면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랑을 주는데 한편에서는 거드름 떨고 교만하면 사랑은 깨지고 만다. 그러므로 노사 간의 문제는 임금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믿음이다. 노와 사가 서로 믿어야 노사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회사가 잘 된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 가치. 눈에 보이지 않는 서로 신뢰 가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가치가 이 세상의 어떤 조건보다도 가장 최우선적인 최선 적인 조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 하나다. 지난 과거가 어떻고 뭐 법이 어떻고 제도가 어떻고 지난 행실이 어떻고 지난 과거의 모든 수치가 어떻고 과거가 어떻고 일절 묻지 않는다. 지금 네가 나를 믿느냐? 이 믿음 하나를 요구하고 있다. 너와 나 사이에 믿음이 회복되면은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이 회복되면은 너와 나 사이에 신뢰가 회복되면은 그 나머지는 다 저절로 회복되게 되어 있다.
기본적인 이 믿음 그것이 부족하면은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조건 가운데 그 어떤 것보다도 믿음하나, 신뢰하는 것 그것을 최선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아시고 여러분에게 무엇이 부족하다. 나는 무엇이 모자라다. 나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기 어렵다. 율법 때문이다. 제도 때문이다. 십일조를 떼먹기 때문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 현재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 무슨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단 한가지 나와 하나님 사이에 신뢰.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이 조건 이 최선의 조건 하나만 가지고 우리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너그러이 받으시고 좋아 좋다 이제부터다 너 나하고 굳게 믿자 굳게 약속하자 이런 약속 관계에서 비로소 나와 하나님 사이는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질 줄로 믿는다. 새로운 밀월 관계가 이루어질 줄로 믿는다. 그런고로 그 무엇보다도 신뢰 믿음하나 꼭 회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범죄 했을지라도 믿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과오가 있을지라도 믿기를 바란다. 옛날에 무슨 수치와 허물이 있어도 지금 믿기를 바란다. 지금 믿는 사람 지금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법률 그 어떤 차원 높은 가치관이 아니라 믿음 하나 그것을 보시고 소자야. 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귀신에게서 놓임받아서 나음을 얻었다. 자유를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할렐루야! 아멘. 믿음 하나 오늘 이 시간에도 아무런 조건도 묻지 않고 믿음 하나를 원하시는 주님 앞에 여러분 나오셔서 기도하고 지난 과거를 다 고백하면 지난 과거를 다 사하실 줄 믿는다. 병을 치료하실 줄로 믿는다. 모든 수치를 다 떨쳐주실 줄로 믿는다. 모든 시험에서 풀어주실 줄로 믿는다. 믿음의 조건 하나만 가지고 나아 오실 때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말씀했다. 부디 믿음 하나만 가지고 최선의 인생을 살고 최선의 신앙의 열매를 맺혔던 가나안 여인처럼 우리들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 은총을 간구하는 우리가 되어야겠기에 아침에 이 말씀으로 축복을 드린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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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늘 사랑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늘 사랑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설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늘 사랑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