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는 장면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끝내 나오지 않더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79년 전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가 만든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두 도시를 무참히 파괴시킨 일본에서 뒤늦게 29일 개봉됐다. 일본 원자폭탄 및 수소폭탄 피해자단체연합의 미마키 도시유키 회장은 시사회에서 관람한 뒤 이런 감상을 들려줬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전범 국가이긴 하지만 인류 최초로 핵폭탄 피해를 고스란히 당한 일본인들의 반응은 복잡미묘하고 감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마키 회장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 세 살 꼬마아이였다.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중에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 오펜하이머 박사 얘기에 매료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AP 통신과 전화로 인터뷰를 하면서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고, 결코 이기기를 바랄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한 일본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라고 되뇌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지상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묘사하지 않았다. 두 도시에서는 폭탄이 떨어지자 10만여명이 곧바로 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중에 수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대다수는 민간인들이었다. 영화는 대신 뛰어난 과학자 오펜하이머를 한 사람으로 묘사하며 그의 내적 갈등을 탐구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된 것보다 일본에서 여덟 달 늦게 개봉됐다. 피폭 경험이 있는 일본으로선 적잖이 긴장하고 전율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히로시마 시장을 지낸 히라오카 다카시는 시사를 마친 뒤 영화가 빠뜨린 것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히로시마의 관점으로는 원자폭탄의 공포가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다"며 "원자폭탄이 미국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용됐다는 점을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몇몇 영화팬들은 찬사를 내놓았다. 도쿄의 한 극장에서 만난 남성은 대단한 영화라며 주제의식이 일본인에게도 감정적으로 힘겨운 것이긴 했지만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다른 이는 오펜하이머의 내적 갈등을 묘사하는 장면들을 보며 숨막힐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두 사람 모두 AP 기자들에게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부탁했다.
지난해 워너브러더스 일본은 이 영화와 완전히 성격이 다른 영화 '바비'를 연결해 '바벤하이머'로 프로모션하면서 마텔 인형을 원자폭탄 폭발 사진으로 묘사한 것에 대해 사과한 일도 있었다. 소피아 대학에서 미국 정치학을 가르치는 마에시마 가즈히로 교수는 이 영화가 "미국인의 양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전 영화를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실망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오펜하이머 얘기를 다룬다는 것은 수십년 전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미국이 극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았다.
세계가 이 얘기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 '고질라 마이너스 원'을 연출한 야마자키 다카시는 핵재앙을 힘있게 풀어놓았다며 오스카 특수효과상을 받은 이 영화의 가치를 높이 샀다. 야마자키는 놀란 감독과 온라인 대화를 갖고 "일본이 오펜하이머에게 답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언젠가 내가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놀란 감독 역시 공감했다.
변호사 신주 히로유키는 핵위협이 전세계에서 급증하고 있지만 일본과 독일이 잔학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신주는 역사가들이 일본 역시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원자폭탄을 만들고 있었으며, 다른 나라들에게 이를 사용했을 것이 틀림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는 도쿄변호사협회가 발행한 영화평을 통해 "이 영화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사용한 것이 정당했는지 논의를 시작하고, 인류애와 일본, 원자폭탄과 전쟁을 되돌아보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놀란 감독과 그의 부인이자 제작자인 엠마 토머스는 영국 정부로부터 각각 기사 작위와 귀부인 칭호를 받게 됐다고 BBC가 이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