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와인쟁이들 사이엔 이런 말이 떠돌았습니다. "피노느와, 샴페인, 그리고 '진짜 스윗 와인'에 미치면 패가망신한다." 그때 그런 말이 돌았던 건, 거품이 꺼지기 전 한참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던 미국의 시장에선 위의 세 가지 카테고리의 와인이 엄청 높은 가격에 거래됐기 때문입니다.
피노느와 카테고리의 와인들, 그러니까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들은 저렴해도 수십달러, 비싼 건 병당 수백 달러를 호가했을 때이고, 샴페인은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다보니 노동력 생각하면 병에 쉽게 수십달러를 넘어가는 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었고, '진짜 스윗 와인'이란 건 이른바 '귀부 와인''으로 불리우는 것들이었습니다. 황금빛 나는 프랑스의 소테른, '왕의 와인'으로 불리웠던 헝가리의 토카이, 그리고 독일의 트록켄 베렌 아우스레제, 여기에 캐나다나 독일의 아이스와인 등이 이 카테고리에 들어갔지요.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한 잔만 나온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비쌀만도 했지요. 보통 반 병 사이즈라 할 수 있는 375ml 한 병에 수십 달러씩 나갔으니.
하긴, 포트 와인도 맛들리면 가산 탕진한다는 말이 나왔었죠. 물론 한때 와인이 아주 핫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이야 와인도 명성에 따른 양극화가 진행된 상태이고, 이름없는 와인들은 주인을 못 만난채 여기저기 떠돌다가 디스카운트 샵에 와서 선반에 놓여 있다가 저같은 짠돌이 와인 애호가를 만나 결국 오랜 여행(?) 끝에 제 손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와인 사 마실 돈이 있으면 아마 그 돈으로 위스키를 사던지, 맥주를 엄청 사 마시던지 할 겁니다. 아니면 와인 가격이 조금 떨어졌을수도 있죠. 그런데, 한국 같으면 조금 다른 선택지도 있지요. 북방에서 내려온 보드카나 중국산 백주들이라던지, 요즘 한참 인기 있는 크래프트 맥주라던지, 그리고 전통 수제 막걸리라던지. 한국도 지난번에 보니 술의 종류가 참 많아지던데, 그건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갔을 때 전통식 증류주들, 그러니까 화요라던지, 원 소주라던지 하는 걸 마셔보며 이제 우리 술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었으니까요.
그런데 무슨 이야길 하려고 이렇게 또 이야기가 늘어지는 걸까요.
아, 최근 코스트코 갔을 때 연어를 한 팩 샀습니다. 바다에 면해 있으면서도 해산물 가격이 만만치 않은 이곳 시애틀. 코스트코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연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대서양산입니다. 하긴 저같아도 이제 시애틀 근처에서 나는 태평양산 연어는 찜찜해서 안 먹을 거 같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때문에도. 어쨌든 대서양산 연어는 더 차가운 곳에서 나기 때문에 살이 더 탱탱하다고 하더군요. 저야 그냥 있으니까 사 먹는 거고.
연어는 이곳에서 횟감으로도 많이 쓰이죠. 일식당 가면 제일 흔한 회가 연어 아니면 참치회일 터이고. 그러나 저는 이걸 오븐에 부드럽게 구워 먹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냉동되어 있다면 이걸 녹여서 겉에 우선 올리브 기름을 약간 바르고, 여기에 레몬 페퍼 솔트와 후추를 뿌리고, 향초를 뿌려줍니다. 갈아 놓은 마늘도 조금 발라주고요,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신선한 레몬입니다. 얇게 썬 레몬을 연어에 올려주고, 오픈 불판에도 미리 올려둡니다. 그리고 질 좋은 버터를 툭툭 썰어 연어 위에 충분히 올려주는거죠.
그리고 나서 어느 정도 이 재료들이 연어에 배일 동안 냄비에 소금을 나름 충분히 넣고, 여기에 물을 받아 끓인 후 스파게티 국수를 삶습니다. 그리고 나서 소스를 마련해야지요. 버섯이 조금 맛이 가려고 하는 것 같아서 일단 큰 사이즈의 스윗 어니언 반 개를 잘게 썰어 소스팬에 넣고, 버섯도 씻어 툭툭 썰어 같이 넣습니다. 여기에 토마토 한 개, 페페론치노 조금, 이탈리안 향초 조금과 새우, 그리고 얼마전 구입한 냉동 미트볼을 넣고 볶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기에 미리 준비된 라구 소스 좀 넣고 끓이며 열심히 저어 주는 동안에 면은 충분히 익게 됩니다.
미리 화씨 325도로 예열해 놓은 오븐에 연어를 넣고 25분 정도 익힙니다. 그리고 나면 연어가 매우 부드럽게 익습니다. 딱딱하게 웰던으로 익은 연어를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원래 회로도 먹는 이 생선, 비린내도 별로 없는 연어야 부드럽게 익혀 먹기에 딱 좋은 생선이죠. 여기에 멕시코 음식인 타말레도 사이드로 놓고 먹습니다. 옥수수 반죽 안에 고기소나 다른 소를 넣고, 이 반죽을 말린 옥수수 잎, 혹은 바나나 잎에 싼 후 쪄낸 음식입니다. 우리네 입맛에 맞는 식감이 아니어서 처음엔 조금 이상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한번 맛들이면 이게 바로 멕시코 가정식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나는, 그런 음식이죠.
어쨌든 여기에 맞출 와인은 지지난해던가? 손님에게 선물받은 2017년산 도메인 드루앵의 오리건 던디 힐 산의 피노 느와입니다. 조셉 드루앵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메이커이자 네고시앙이죠. 140년이 넘도록 부르고뉴에서 나름 질 좋은 샤도네와 피노느와를 생산해 왔는데, 이들이 1979년 프랑스에서 열린 와인 올림픽 피노느와 카테고리에서 오리건의 아이리 Eyrie 와이너리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며 오리건주에 진출할 것을 결정합니다. 이후 1988년에 그들 이름의 포도원을 세웠고, 그 이후로 오리건 주 윌라멧 밸리 지역에서 피노느와와 샤도네를 생산해 왔습니다.
피노를 선택한 건 오늘의 주메뉴가 연어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는 어떤 레드 와인이라도 다 어울릴 겁니다. 사실 와인을 마시기엔 조금 더운 날(이런 날엔 맥주가...)이지만, 특별한 요리가 있다면 특별한 와인을 맞출 '이유'가 생기는거지요. 하긴 와인쟁이가 무슨 핑계를 못 만들까 싶긴 합니다만.
이렇게 먹고 마시며 좀 쉬는 것은 저에겐 특권이긴 하지요. 오늘도 바깥에 나갔다 오는데, 독립기념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의 명절은 아니더군요. 오늘 일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마땅한 댓가를 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오늘 가게 문을 연 자영업자들에겐 평소보다 더 많은 매출이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쉬는 날 당연히 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시애틀에서...
첫댓글 이번 요리를 보니 몇일 전부터 계획하고 계셨던 음식 같은 걸요~
물론 같이 즐길 와인도요~
역시 종상님은 다 계획이 있으셔요~^^
예... 뭐, 솔직히 무계획에 가깝습니다. 재료 물 좋으면 하는거죠. 와인에 따라 계획했던 음식이 바뀔 때가 있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