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 1888년 (92x73 cm, 내셔널갤러리, 영국 런던)
방어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대량살상무기(WMD) 불법 확산 차단을 위한 확산방지 구상(PSI) 아시아태평양지역 연례훈련’이 오늘 부산에서 끝납니다.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이 참여했습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 관련 시나리오를 놓고 도상(圖上)연습 위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가장 핵심인 군함을 동원해 대량살상무기 운반 선박을 해상에서 차단하는 실제 훈련은 하지 않았습니다. 을지 프리덤 가디언 훈련, 키리졸브 훈련, 독수리 훈련 등 중요한 훈련은 의미가 변화됐고, 실제 훈련을 축소했고, 연합군이 아니라 우리 군 단독으로 합니다.
북한은 기회가 엿보이기만 하면 중국, 러시아, 모든 기구와 조직, 선전 매체, 사람을 통해 꾸준히 우리 군이 하는 ‘방어훈련’에 제동을 걸고자 광분합니다. 미군과 합동으로 하는 훈련은 온갖 험한 말로 서슴없이 비난합니다. ‘민족’, ‘주권’이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을 동원합니다. “훈련을 하면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잃게 된다.”는 등 독설을 늘어놓는 것이 갈수록 태산입니다. 일본의 미사일 요격강화 계획에는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악성종양”이라고 악다구니를 쳤습니다. ‘감정팔이’지요.
북한 매체는 적반하장(賊反荷杖)입니다. 북한군의 공격용(어디를 지향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인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은 함구한 채, 그를 방어할 우리 군의 훈련을 두고 “대화와 전쟁 연습, 평화와 긴장 격화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고 몽니를 부립니다.
방어훈련은 ‘상대편의 공격을 막는 기본자세나 동작 따위를 반복하여, 정기적으로 익히는 지극히 수동적인 되풀이 익힘’입니다. 완벽하지 못하다면, 실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왕좌왕하다가 큰 낭패를 당합니다. 좋은 예로 지난 달 30일 판문점에서 한국과 미국, 북한의 정상들이 만났을 때 미국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밀려 부상을 입었습니다. 서로 연습을 하지 못한 결과 발생한, 정상 외교에서 절대 볼 수 없는 불미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속초항 목선 귀순 때도 육·해·공·해경 등이 강도 높은 방어훈련을 꾸준히 해왔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1951년 군사(軍史) 기록에 의하면 “적(북한군과 중공군)의 춘계공세 때 적은 한국군 정면에 주공을 집중”해 우리가 대패했습니다. 한국군의 한 군단이 괴멸 수준이었습니다. 요즘 거론되는 현리전투입니다. 당시 한국군은 제대로 훈련받은 적이 없습니다. 소집되었거나, 자원한 병력은 1주일가량 기초군사 훈련이 끝나면 곧장 전장에 배치됐습니다. 적은 이들만을 집요하게 공략했습니다.
장진호 전투와 피의 능선 전투도 좋은 사례입니다. 장진호 전투에서 훈련이 안 된 한국군 부대가 서부에서 적에게 무너졌습니다. 적은 곧장 남하해 동부의 미군을 측면에서 공격했습니다. 전선이 무너지자 미군이 고립 상태에 빠졌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잘 훈련된 미군이었기에 알려진 만큼의 피해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피의능선 전투(자유칼럼 2019년 6월 14일 참조)는 “한국군에게 자력으로 전투할 수 있는 전투력 개발과 필승의 신념을 갖게 하기 위하여, 전승(戰勝)을 경험케 할 목적”으로 한국군만을 공격부대로 기용해 이겨낸 의미 있는 것이었습니다. 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대장이 이런 결심을 한 데는 “적이 얕잡아 보고 있는 한국군의 전투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어서였습니다. 한국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 전선을 38선 이북으로 크게 밀어 올렸습니다. 휴전선 동쪽이 북으로 올라가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를 위해 미군은 한국군에게 최고의 지원을 했습니다. 아군은 보름 동안 각종 야포 36만 발, 81㎜ 박격포 탄 트럭 32대분, 60㎜ 박격포 탄 트럭 18대분, 기관총알은 1백만 발, 소총 총알은 78만 발, 수류탄은 21,940 발을 사용했습니다. 기총소사를 얼마나 해댔던지 전투가 끝나자마자 모든 기관총의 총열을 다 교체해야 했습니다.
북한군이 준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북한 동포를 위험에 빠뜨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군은 그러나 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해 왔고, 지금도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훈련이 마이스터를 만든다’(Uebung macht den Meister)는 독일 속담의 깊은 뜻을 새겨볼 때입니다.
[퍼온 글] 출처; 2019.07.12 06:59에 자유칼럼그룹에서 받은 e메일 / 필자소개; 신현덕(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쥐오줌풀꽃
아열대성 기후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나온 건 온대성 기후였다. 위도상 한반도는 사계절 변화가 뚜렷한 중위도 지역으로 전형적인 온대성 기후라는 것이다. 고위도나 저위도에 비해 지나치게 춥지도 덥지도 않다. 사람들이 살기 좋아하는 세계 유명 도시처럼 우리나라 전 지역이 온대성 기후에 해당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한반도가 더 이상 온대성 기후에 속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아열대성(subtropic) 기후로 변하고 있다. 부산 기장군 연안에서 발견된 파란선문어는 아열대성 어류로, 그동안 제주도 주변에서만 보였으나 서식지가 북상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사는 동식물을 보면 생태계 변화를 확실하게 읽을 수 있다. 남해안 홍도엔 열대-아열대 식물이 넓게 분포하고 홍도 앞바다 어류 가운데 아열대성 어종 비중이 55%로 절반을 넘는다.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었다는 확증은 지난해 여름 사상 초유의 폭염 때 확인했다. 서울 기온이 39.8도를 기록했던 날엔 아열대가 아니라 열대성 기후로 변한 거라는 투정도 부렸다. 올해에는 5월에 벌써 여름으로 진입했다는 징후가 보였다. 기상학적으로 일평균 기온이 20도 이상으로 올라간 뒤 다시 떨어지지 않으면 여름으로 분류한다는데 5월 13일 기록했다. 빠른 여름이 찾아오고 초열대야가 며칠씩 이어지는 모습에서 대한민국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었다고 단정해도 될 듯하다. 지구온난화로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건 2100년께라고 예상됐는데 80여 년 앞당겨진 걸까.
장맛비가 지나면 폭염이 다시 오겠지만 최근 이어진 날씨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상큼하고 쾌적한 여름이어서 좋았다. 가을처럼 맑고 푸른 하늘, 솜사탕같이 펼쳐진 뭉게구름, 싹 자취를 감춘 미세먼지, 따갑고 강해도 그렇게 싫지 않은 햇살, 그늘에 들어가면 금세 느껴지는 시원함에 낮은 습도까지. 혹자는 아열대성 기후가 아니라 지중해성 기후로 변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호주 남부의 여름 날씨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기상학자들은 지구상에 기존의 지중해성 기후 지역이 오히려 줄고 있다고 걱정한다. 기후 변화가 한반도를 아열대성 기후가 아니라 지중해성 기후로 바꿔놓았으면 좋겠다.
[퍼온 글] 출처; 매일경제신문 / 2019.07.12 00:03:01 / 윤경호(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바다속세상
요긴할 요(要) 거느릴 령(領)
중요한 요소를 놓치고 엉뚱하게 일을 풀어가는 사람은 “요령이 없다”는 끌탕을 듣는다. 문제를 푸는 열쇠, 사안의 핵심을 일컫는 말이 요령(要領)이다.
글자 要(요)의 초기 꼴은 잘록한 허리를 가리킨다. 허리는 몸의 위와 아래를 잇는 곳이다. 따라서 매우 중요하다. 그를 강조하다 결국 ‘핵심’에 가까운 의미도 얻었다고 본다.
다음 글자 領(령)은 흔히 ‘옷깃’의 새김이 강하다. 그러나 본래는 목의 지칭이다. 허리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목이다. 몸과 머리를 잇는 곳이기 때문에 중요성은 허리를 넘어선다.
따라서 요령(要領)의 본래 새김은 ‘허리와 목’으로 푸는 게 맞다.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에 ‘허리와 목을 보전하다(全要領)’는 표현이 나오는 점으로 봐도 그렇다.
나중에 사람 신체와 관련있는 부수를 붙여 腰(요)라는 글자로 분화하지만, 要(요)는 ‘중요하다’의 새김을 확실히 얻었다. 우선 重要(중요)라는 단어 자체가 그렇고, 緊要(긴요) 要綱(요강) 要因(요인) 要人(요인) 要員(요원) 要衝(요충) 등의 단어도 있다.
領(령)은 원래 새김인 ‘목’에서 ‘머리’, 한 걸음 더 나아가 목 아래를 가리는 옷깃의 의미를 얻었다. 남의 눈에 먼저 띄는 곳이다. 그로부터 이끌어낸 뜻이 ‘이끌다’ ‘대표하다’ 등이다.
따라서 ‘요령’은 사안의 핵심, 더 나아가 국면을 좌지우지할 대표적인 요소 등을 일컫는 말로 자리잡았다. 이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제대로 세워 중심을 잘 잡으려는 한자 세계 특유의 사고를 담고 있다.
사물의 근간을 형성하는 綱(강)과 紀(기), 經(경)과 緯(위) 등이 다 같은 흐름에 속한다. 뿌리와 가지를 일컫는 본말(本末), 중심과 주변을 지칭하는 강목(綱目) 등 조어(造語) 행렬 역시 그런 사고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 위축에 일본과의 마찰이 가세했다. 우리의 위기 국면이 깊어지는 추세다. 무엇이 뿌리이자 핵심인지 그리고 어디가 곁가지며 주변인지 그 경중(輕重)을 잘 헤아려 대응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
[퍼온 글] / 출처; 한국경제신문 / 2019.07.12 00:13 / 유광종(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현대 중국인의 民生苦 셋
2000년대 들어 도시의 중국인에게 유행했던 '세 마리 뱀' 이야기가 있다. 검은 뱀인 흑사(黑蛇), 하얀 뱀 백사(白蛇), 안경을 걸친 듯한 안경사(眼鏡蛇)다. 도시의 중국인을 괴롭히는 세 존재다. 검은 뱀은 제복을 입은 공무원이다. 경찰을 비롯해 철거 및 단속을 집행하는 도시 관리 공무원이다. 거리에서 상업 행위 등을 하는 일반인에게 가장 무섭다. 돈을 상납받는 관행이 있어서 '뱀'으로 꼽혔다. 하얀 뱀은 흰 가운을 걸친 의사나 간호사다. 입원, 진료, 수술 등을 할 때 '촌지'를 밝혔던 의료 종사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안경사'는 실제 코브라의 지칭인데 눈 주위의 무늬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중국 민간이 가리켰던 대상은 학교 선생님이다. 역시 촌지를 탐해서 뱀 취급 받았다.
요즘 중국 민생을 괴롭히는 세 주제가 있다. 이를 보통은 '세 개의 큰 산(三座大山)'이라고 부른다. 본래는 사회주의 건국 직후 청산 대상이었던 '제국주의(帝國主義)' '봉건주의(封建主義)' '관료자본주의(官僚資本主義)' 등 셋을 가리켰다. 그러나 지금은 의료(醫療)와 주택(住宅), 교육(敎育) 등 서민의 세 가지 어려움을 지칭한다. 너무 높은 의료비용, 언감생심인 도시 주택 구입, 2세 교육에 들어가는 엄청난 돈 등을 가리킨다. 이 셋을 '산'에 견주는 것은 중국의 언어 습성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길을 가는 행위, 행로(行路)의 과정을 인생과 연결 짓는 경우가 많다. 평지(平地)를 가다가 어려움에 봉착하는 때를 험한 산길로 설명한다.
가기 힘든 산길 기구(崎嶇), 좁고 좁아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길 애로(隘路)가 있다. 방향을 놓치기 쉬운 길은 기로(岐路), 앞과 뒤가 막힌 곤경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그런 험한 길에 뱀까지 들끓으면 큰일이다. 중국만의 얘기는 아닐 테다. 그러나 이런 지경에 빠지는 서민이 적을수록 바람직한 사회다.
[퍼온 글] / 출처; 조선일보 / 2019.07.12 03:11 / 유광종(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독버섯
콘 아이스크림 담기의 매직
아이스크림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아이스크림은 항상 콘 또는 컵 위에 수북이 담아 준다. 좀 더 큰 용기나 콘을 사용할 수 있는데도 굳이 작은 용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려 손에 묻는 일이 많다. 이렇게 아이스크림을 넘칠 정도로 담아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인지적 편향성을 고려한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다.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 아이스크림을 가득 담아주는 이유를 규명한 실험이 있다. 아이스크림 용량에 따라 우리가 어떤 편향성을 갖게 되는지를 확인해준 실험이다. 연구팀은 소비자에게 아이스크림을 두 가지 형태로 제시했다. 하나는 5온스 용량 컵에 7온스가량의 아이스크림을 담아 판매했고, 다른 하나는 10온스의 커다란 컵에 아이스크림을 8온스 정도만 채워 판매했다.
분명 10온스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이 5온스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보다 1온스가량 많다. 따라서 10온스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에 더 많은 값을 치러야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 두 아이스크림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보여줄 때 소비자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 실험 참가자는 실제 양은 더 적지만 외관상으로 더 많아 보이는 5온스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에 더 많은 가격을 지급하겠다고 답했다. 5온스 컵 아이스크림은 2달러26센트를, 10온스 컵 아이스크림은 1달러66센트를 내겠다고 답변한 것.
많은 행동경제학자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차이에 기인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아이스크림을 하나만 제시하고 지급 의사를 묻는 것은 절대평가 방식이고, 두 가지 아이스크림을 함께 제시하고 지급 의사를 묻는 것은 상대평가 방식이다.
사람들은 절대평가에서 직관적으로 쉽게 가늠할 수 있는 부분에 의존해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이스크림의 경우 컵 위에 수북이 담겨 있는 모습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비교 대상이 함께 주어지는 상대평가에선 평가 대상에 대한 좀 더 면밀하고 세심한 비교 작업이 수행된다. 이 때문에 절대평가와는 다른 선택과 행동이 유발되는 사례가 많다.
사람들은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과정에서 다른 기준을 사용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정 대상을 평가할 때는 평가하기 용이한 부분이 있고 상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런데 절대평가에선 상대적으로 비교하기 쉬운 부분에 의존해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더 크다. 이에 비해 상대평가에서는 비교군을 통해 좀처럼 비교하기 어려운 여러 측면을 비교 관찰하게 된다.
[퍼온 글] / 출처; 한국경제신문 / 2019.07.12 00:12 / 박정호(KDI 전문연구원)
인체 내 39조 마리 미생물, 또 하나의 장기
인간의 세포는 모두 30조 개 정도지만 인체에 사는 미생물은 39조 마리에 이른다. 이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박테리아, 즉 세균이다. 대부분 대장에 살고 있으며 종류는 약 1000종, 무게는 1.5㎏ 남짓이다. 대변에서 수분을 제외한 고형물 중 60%를 차지한다. 인간의 유전자가 2만 1000개에 불과한 반면 체내 세균의 유전자는 최대 300만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생물은 인체에 기생한다기보다는 하나의 통합된 초유기체로서 함께 살아간다.
장내 세균은 사람의 생존과 건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 못하다. 미생물이 단백질·지질·탄수화물 중 많은 부분을 분해한 다음에야 인체는 이들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다. 우리가 섬유질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또한 미생물은 일부 비타민B, 비타민K와 장내 염증을 억제하는 화합물 등 인간이 생산하지 못하는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 낸다. ‘제2의 장기’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그뿐만 아니라 중추신경계, 면역계, 자율신경계 등을 통해 뇌의 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장은 이미 ‘제2의 뇌’로 불렸는데 이제는 ‘장-장내세균-뇌 축’(gut-microbiome-brain axis)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세균의 역할이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장내 세균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인체 능력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최근 연구가 있다.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가 ‘셀 보고서’에 발표한 논문에서 건강한 장내 박테리아를 보유한 생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80%가 살아남았다. 하지만 사전에 항생제를 투여해 박테리아를 제거한 생쥐의 생존율은 3분의1에 불과했다.
조사 결과 장내 박테리아는 폐의 표면을 구성하는 상피세포에 경계태세를 유지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제1형 인터페론이 계속 생성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물질은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유전자를 자극한다. 폐의 상피세포가 바이러스의 1차 방어막으로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밝혀졌다.
2차 방어막인 면역세포가 바이러스 감염에 대응을 시작하는 데는 이틀 걸린다. 그동안 바이러스는 상피세포에서 증식한다. 감염 후 이틀이 지나자 항생제를 투여한 생쥐의 폐 바이러스 숫자는 그렇지 않은 생쥐의 5배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항생제를 투여한 생쥐에게 건강한 생쥐의 대변을 이식하는 실험도 수행했다. 그 결과 인터페론 신호가 회복되고 바이러스 저항력도 다시 살아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장내 박테리아가 신체의 비면역 세포로 하여금 대비태세를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우리의 실험은 보여 준다”고 밝혔다.
장내 세균은 식품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데도 희망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미국의 브리검 여성병원과 보스턴 어린이병원 연구팀이 ‘네이처 의학’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이들은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2세 이하 유아 56명에게서 4~6개월 간격으로 대변 표본을 계속 채취했다. 이를 건강한 유아 98명의 대변과 비교한 결과 세균의 종류에 차이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표본들을 달걀에 알레르기를 쉽게 일으키도록 민감하게 만든 생쥐들의 장에 이식했다. 건강한 유아의 대변을 이식한 생쥐들은 알레르기 유아의 것을 받은 생쥐들보다 달걀에 알레르기를 덜 일으켰다. 이어 컴퓨터 모델을 통해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의 장내 세균 차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식품 알레르기를 억제할 수 있는 두 종류의 세균 군집을 조합해 낼 수 있었다. 각각 클로스트리디움균이나 박테로이데테스균에 속하는 5, 6종의 박테리아로 구성됐다. 이들 군집을 투여한 생쥐는 달걀 알레르기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는 효과가 없었다.
조사 결과 치료용 박테리아 군집은 두 종류의 중요한 면역학적 경로에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역계를 조절하는 특정한 T세포를 자극한다. 이런 효과는 생쥐와 유아에게서 모두 발견됐다. 공저자 대부분은 청소년 식품 알레르기에 대한 임상시험을 준비 중인 회사(ConsortiaTX)의 창업자다.
[퍼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2019-07-08 01:32 / 조현욱(과학과 소통 대표)
Abstract Painting People Face and E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