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마시러 오게 !
우연찮은 인연으로 선우 사 주지스님으로부터 동곡일타(東谷一陀)라 낙관이 찍힌 끽다래(喫茶來)란 휘호 한 점을 얻었다. 아직 젊은 나이인 스님은 이화여대 출신의 재원으로 사람의 마음을 꾀 뚫어보는 통찰력과, 진심을 파고드는 호소력, 그리고 본심을 내어 보이는 신선함 때문에 종교와 연륜 그리고 성별의 벽을 넘어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어느 날 “저는 물건을 금전적 가치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라며 내밀던 낡은 화선지에 쓰인 휘호 한 장을 그저 기념될 만한 것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받아놓고 수년 동안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불교신행연구원이 발행하는 <법공양>에 연재된 “일타 큰스님 일대기”를 읽다가 문득 그 생각이 떠올라 잃어버린 보물이라도 찾으려는 듯 이곳저곳을 뒤적이다 책상서랍 밑바닥에 짓눌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펴봤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서예와 서도는 서로 다르다는데, 이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어찌 고승의 휘호를 평가할 수 있으랴만 새삼스럽게 살펴보는 이 휘호는 명필중의 명필이요, 달필중의 달필이다. 어찌 보면 박사 고깔에 얼굴을 가리고 흰 장삼 긴 소맷자락을 날리며 사뿐사뿐 휘감아 도는 승무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탄력 있는 매끈한 팔다리를 뻗쳐 허공으로 비상하려는 발랄하고 힘찬 발레리나의 모습 같기도 하다.
일타스님은 친 외가 41명이 출가하여 불교사에 진기록을 세운 가문에서 태어나 불교와 기연을 맺으신 분이다. 스님은 대한조계종 전계대화상을 역임한 대율사요, 스스로 수선정진하여 깨달아 10여권의 저술을 남기신 대선사이며, 진리의 말씀으로 듣는 이의 마음에 감화를 주는 대법사로 평가되고 있다. 스님이 선찰의 대본산인 범어사 강원에 계실 때, 학인들이 서첩에 기념휘호를 남겨주기를 원하자 중곡, 구하, 몽초, 경봉스님 등 고승들이 모두 이에 응했으나 일타스님만은 후에 이를 비교하여 누가 더 잘 썼고 누가 잘못 썼다는 등 시비를 남기는 것은 옳지 않다하여 거절하셨다는 일화는 그 유필을 소장하고 있는 내게 있어는 더 없이 귀한 이야기이다.
나는 차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하루에 아침과 점심을 먹은 다음에 그냥 편한 데로 앉아서 커피 한 잔씩을 마시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다고 다성 초의선사께서 동다송이나 다신 전에서 밝히신 다도(茶道)를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끽다송이나 전다도 등의 낭만을 무시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공사 간 바삐 살다보니 한가롭게 격식과 예절을 갖추어 차를 마실 시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고 핑계라면 핑계라 하겠다. 커피라 하여 마시는 예절이 어찌 없을까만 나는 목마른 자 물마시듯, 애주가 술 마시듯 하는 습성에 나도 모르게 젖어있다.
나는 요즘 등산을 하지 않을 때는 아침부터 PC앞에 앉아 밀린 원고를 정리하는데, 이때 설거지를 마친 아내가 커피 잔과 비스킷 두어 개를 받쳐 들고 들어와 조용히 책상위에 올려놓고 나간다. 나는 “여보! 두 잔을 가져와 함께 마시면 어때요?”라고 말하는데 아내는 “바쁘게 일하시지 않아요!”하며 물러선다. 이 말에는 내 일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조심성이 스며있을 테지만 내마음속엔 어쩐지 아쉬움이 그늘처럼 깔린다.
중국 당대(唐代)의 선사 조주화상은 새로 온 두 납자에게 “여기 와본 일이 있는가.”물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없습니다.”고 답하니 “그러면 차 한 잔 마시게(喫茶去)”라고 하였는데, 또 다른 사람이 “저는 와 본적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또 “차 한 잔 마시게”라 말하는지라 이를 보고 있던 원주(院主)가 “스님께서 와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차를 마시라 하신 것은 그만 두고라도 왔던 사람에게도 어찌 차를 마시라 하십니까?”여쭙자 스님은 “원주야! 너도 차를 마셔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는 다도 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선승의 깊은 뜻을 범부인 내가 어찌 알랴만 나는 끽다거(喫茶去)와 끽다래(喫茶來)가 어떻게 다른지도 알지 못한다. 만일 내 짐작대로 끽다거를 “차 한 잔 마시고 가게”로 풀이할 수 있다면 이는 무엇인가 소박한 것이라도 대접해 보내고 싶은 따뜻한 인정이 마음속에 흐른다 볼 것이며, 끽다래를 “차 한 잔 마시러 오게”로 새김 할 수 있다면 이는 간절한 인간적인 그리움에서 진심을 나누고 싶은 소망과 고독이 드리워 있다고 보아야 할 것 아니랴. 일생 경문만을 독송하여 번뇌를 극복하고 진리에 정진하시던 일타 스님께서도 차 한 잔 같이하고 싶었던 분이 계셨는지 모를 일이다.
지나온 70 여 평생, 정붙여 살아온 세상,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아니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 그들이, 청하여 차 한 잔 마시고 싶은 사람들 아니랴. 나는 그 휘호를 들고 표구점으로 향했다.
<이 아침 문득 옛 글이 생각나 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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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가벼운 차 한잔 이란? 말속에 따뜻하고 여유로움 함께 하고픈 마음이 담겨져 있겠지요
차 잘 마시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