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자란 손녀 보며 놀라운 스마트폰시대 느껴!
{img1}
지금은 스마트폰시대다. 차 안에서나 길을 걸을 때나 젊은 사람들은 너나없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눈을 떼지 못한다. 자칫 교통사고라도 불러올 것만 같아 보는 사람으로서는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 속 깊이 파고 들어와 만사를 좌지우지하며 바꿔놓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며 내가 얼마나 아날로그시대에 멈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요일 고향에 행사가 있어서 우리 내외는 기차를 타고 다녀오려고 했었지만 아들이 차를 갖고 와 함께 타고 가게 되었다. 그때 아들은 출발하기 전 스마트폰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길 안내를 받았다. 소위 ‘내비게이션’이라는 것이었다. 예쁜 목소리의 아가씨는 어찌나 똑똑하던지 도착 예정시간부터 위험방지 턱, 과속단속카메라, 몇 미터 전방에서 우회전과 좌회전하라는 등 소소한 것까지 정확하게 집어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천안논산간고속도로 ‘이인휴게소’에서부터 차가 정체 현상을 보이며 ‘정안휴게소’근방에서는 아예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차가 막히거나 말거나 뒷좌석에서는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 손녀가 우정의 무대를 펼치며 왁자지껄하다. 끝말잇기놀이를 하자며 손녀가 문제를 내면 아내가 대답하느라 애를 쓴다. 나도 가끔씩 거들어보지만 말솜씨나 발음 등 뭐 하나 빈틈이 없는 손녀가 보통이 아니다. 발음이 정확하고 목소리가 좋다며 나중에 커서 아나운서 되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동안 미처 알지 못한 것들까지 엿볼 수가 있는 자리였다.
{img2}
초등학교 3학년이 저럴 수가 있을까싶었다. 항상 어리게만 보았는데 중학생도 저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한 번씩 집에 오면 낯선 탓인지 부끄러워하며 제 아빠와만 얘기하고 말도 잘 하지 않았었다. 그때마다 제 아빠의 휴대폰을 들고 살며, 게임인가 뭔가를 즐겨했다. 그러다보니 스마트폰 만지는 솜씨도 여간 능숙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에 틀어놓은 라디오방송을 꺼버리고 제 맘대로 음악을 틀어놓는 것이다. 그것도 유트브 인가하는 것을 통해 걸 그룹의 노래만 나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스피커가 앞과 뒤에 있어 스테레오 음악으로 그리 멋지게 들리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박자를 맞추며 이제는 손벽까지 치는 것 아닌가. 나오는 노래마다 따라 부르는 실력이 음정박자 목소리까지 어쩌면 똑 같이 들려왔다. 그러면서 저는 걸 그룹노래만 좋아한다며, 보이그룹노래는 싫다고 안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발라드’가 어쩠고, ‘랩’이 어떻다고 하여 이건 뭐냐고 했더니 그냥 ‘가요’란다.
{img3}
하도 기특하여 어디서 배웠는가 물었더니 아빠 차에서 듣고 배웠다고, 또 스마트폰의 유트브에서 배울 수 있단다. 학교에서 친구들과도 부르냐고 했더니 아니라며, 저 혼자 하는데 무슨 곡이나 여러 번 따라서 부르면 배워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가사를 줄줄 잘 외는지, 제 할미가 “나는 기억력이 없어서 못하는데 너는 머리가 영리해서 잘한다.”고 칭찬을 하자 그 대답이 걸작이다. “아니야요! 할머니 닮아서 제가 잘해요, 할머니는 이제 기억력이 없어서 그렇고, 저는 어리니까 기억력이 좋아서 그래요”하는 것이다.
차는 더딘 가운데 어디에 사고가 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천안논산간고속도로’요금소를 통과하여 나오고 있을 때 우회전하여 들어선다. 왜 이리 가는가? 물었더니 아들은 “나는 몰라요! 시키는 대로 가니까요.”하는 것이다. 마치 남쪽으로 다시 내려가는 줄만 알았던 그 길은 ‘평택-화성’고속도로이며, 시원하게 잘 달렸다. 그런 해방된 기분을 만끽하듯 손녀는 걸 구릅의 한 멤버라도 되는 듯 몸짓 손짓까지 해가며 잘도 따라 부른다.
차는 서산만 방조제를 지나 평택, 봉담을 거쳐 수원의 ‘매송고색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내는 우리 예준이가 기쁨조를 잘해줘서 재밌게 왔다며 출연료는 당신이 내시오! 하였다. 나는 손녀가 알고 있는 걸 구릅의 노래를 제목만 적어보라며 수첩을 내밀었더니 가수 이름까지 또박 또박 잘도 적어놓는 것이었다.
{img4}
그러면서 제 할머니에게 열심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또 끼어들며 무슨 이야기인지 다시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유트브에서 ‘리아주아’라는 유트버가 있는데 이벤트를 한대요. 근데 그게 참여하는 방법이 ‘리아루아’구독 누르고 댓글로 4행시를 하라는데 ‘리아루아’로 하래요. 그래서 했는데 전혀 창의적이지가 않아요.”하면서 ‘리: 리아 언니의/아: 아둥이가 되어서 재밌게 영상 보고 있습니다./루: 루아 언니의/ 아: 아둥이도 되었습니다./리아루아 화이팅!“ 이렇게 댓글로 4행시를 올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둥이‘가 뭐냐고 물었더니 구독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창의적이지가 않아요!” 하는 말에 더 놀라며 ‘화이팅!’하는 것이 창의적이라고, 아주 잘 썼다며 추겨 세웠다. 그리고 10년 후 스무 살 때 가수가 되겠다는 손녀에게 공연료 일만 냥을 내놓으며 박수를 쳤다. 아날로그 잣대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손녀의 훌쩍 자란 모습이 마치 스마트폰 같았다고 할까, 어느덧 아파트정문에 들어서자 목적지 안내를 종료한다는 스마트폰의 고별 멘트가 또 한 번 미소를 짓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