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가 국제공용어?
심의섭(명지대 명예교수)
국제공용어의 현황과 K문화 신드럼
한글은 소리글, 표음문자이고 우수한 문자라는 것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한글은 창제자와 창제일이 명확한 것도 특징이다. 그런데 한글보다 400년 후에 만들어졌지만 국제공용어로 훨씬 많이 알려진 것은 인공국제어인 에스페란토와 인공언어와 유사한 모스부호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인공어인 에스페란토(Esperanto)는 1887년에 폴란드 안과 의사 자멘호프가 만든 국제 공용어이자 가장 대표적인 인공어이다. 28자의 글자(모음 5, 자음 23)로 만들어 졌다. 현재 120개 이상의 국가들이 에스페란토 공용어로 포함하고 있으며 사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유사인공언어인 모스 부호(Morse code)는 1836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새뮤엘 F. B. 모스와 그의 조수 알프레드 베일이 발명가로 알려졌다. 모스부호는 음(音), 광(光)과 같은 신호의 장단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모스부호는 전 세계에서 전신, 전보와 같은 전기통신분야, 특히 군대나 경찰 같은 보안이 필요한 곳에서는 암호로 많이 사용하였다. 모스부호 역시 모든 음이나 빛의 장단으로 전달하고 현지에서 사용하는 문자로 바꿀 수 있으므로 국제적으로 통용되지만 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대화는 구성원에 한정된다.
유엔의 공식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6개이다. 그런데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의 언어는 모두 유엔 공식 언어이다. 국제적으로 유엔에서 실질적인 강제력을 갖고 있는 안전보장 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의 언어인 러시아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4개과 스페인어와 아랍어가 들어있다. 언뜻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쓰이는 언어인 것 같은데, 사용 인구로 따지면 힌디어가 아랍어보다 많다. 초기에는 아랍어를 제외한 나머지 5개 언어만 공용어였다가 1973년에 아랍어가 추가되었다.
국제공용어의 기준은 다양하다. UN공용어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기준이 맨 처음 도입하였던 것을 인정하더라도 사용 인구를 기준으로 하자는 제안이 끊이지 않는다. 사용 인구의 기준도 여러 가지이다. 모국어로 사용하는 것이 기준도 있고, 원어민과 비원어민이 사용하는 생활언어 기준도 있고, 사용하는 국가수도 될 수 있고,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대적 기준도 있다. 모국어 사용을 기준으로하면 힌디어(4위), 벵골어(6위)가 UN 공식 언어인 러시아어(19위), 프랑스어(16위)를 앞선다. UN 공식 언어의 국가수 순위는 영어(137국), 아랍어(59국), 프랑스어(54국), 중국어(39국), 스페인어(31국), 러시아어(19국)으로 UN 공식 언어가 다 포함되지만, 생활 인구 순위는 힌디어(3위)가 러시아어(8위)를 앞선다.
시대를 기준으로하면 앞으로 100년 후 살아남을 10대 주요 언어로는 6개 UN 공용어(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프랑스어) 외에 독일어, 일본어, 히브리어, 그리고 한국어가 될 것이다. 게다가 사용 인구 면에서 한국어는 2050년까지 5대 언어에 속할 전망이다.
또 다른 기준으로 언어 사용 증가 속도가 있다. 언어가 쓰이는 지역의 인구 증가, 인터넷의 확산, 이민,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언어 이용자 속도가 증가하고 있는 언어이다. 실제 언어 구사자의 인구 수 기준이 아닌, 구사자 증가가 빠른 속도에 따른 순위와 이유는 아래와 같다. 1위는 프랑스어로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2.7억 명이 사용한다. 2위는 아랍어로 현재 인터넷 언어 사용속도 가장 빠르고, 3.2억 명이 모국어로 사용한다. 3위는 스페인어로 현재 5.5억명이 사용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제2외국어 선택하고 있다. 4위는 중국어(북경어)로 13억 명의 중국계 모국어이고, 인터넷 사용자는 전 세계 최대이다. 5위는 우루드어로 현 2.3억 명이 사용하고 있다.
언어별 서적 출판 비율을 보면(한겨레 2009.11.26.) 유엔 공용어가 아닌 독일어(11.8%), 일본어(4.7%), 포르투갈어(4.5%), 한국어(4.4%)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다. 그럼에도 1973년 아랍어가 유엔 공용어에 더해진 뒤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경제력에 견줘서도 유엔 공용어로 듦직한 언어들과 주요 20개국의 차례는 대체로 일치한다. 한국어가 LA에서 영어와 스페인어 외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 1위에 올랐다. 주별로는 조지아주와 버지니아주에서 한국어가 스페인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외국어로 나타났다.
한류와 K문화 신드롬은 세계 어디서나, 어느 분야에서나 증폭되고 있어서 한민족 중흥의 도약이 다가오는 것 같다. 한글 뿐 만이 아니라 한국어까지, 더 나아가 한국어의 국제공용어 역할론까지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 요즈음 이 분야에서 엄청난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인사들 중에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교수가 있다. 그는 유투브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돼야 하는 이유”에서 열변으로 한국인들의 앞날의 기대를 부풀리게 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우물 밖의 개구리’라고 자칭하면서 ‘우물 밖의 개구리가 보는 한국사’라는 책으로 우리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또한 한국은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고 세계적 석학들이 나서서 강변한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CL) 국제관계학 교수 라몬 파체코 파르도 (Ramon Pacheco Pardo)는 그가 쓴 책 “새우에서 고래로: 잊힌 전쟁에서 K팝까지의 한국”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지난 1000년 동안 열강들 사이에서 숨죽이고 살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고래 싸움에서 등 터지고 사는 새우가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선박, 배터리, 휴대폰 등을 발판으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고, 지난 10년 동안 방탄소년단(BTS)을 앞세운 K팝 음악과 ‘기생충’을 필두로 한 오징어게임, 드라마 등의 문화 콘텐츠로 세계를 지배하였고, 소프터 파워, 군사력을 키워 어느 나라도 건드릴 수 없는 강대국 고래가 되었다. 한국에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타고 한국어를 제2국어로 삼는 나라가 늘고 있으며, 조만간에 UN에서 한국어가 공용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사실 한국어의 공용화에 대해서 한국은 설익은 경험을 한 바 있다. 한국이 중동 진출에서 기세를 올리던 1970~‘80년 대에는 중동 건설시장에서는 흔히 있었던 일이다. 한국의 건설인력이 어느 해인가 무려 130만 명이 현장에 있었으므로 그들과 함께 일하는 다국적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알아듣고 말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의 위상은 공용어(?)와 다름 없었다. 또 다른 사례로 원양어선에 진출한 선원들이다. 한국의 개발연대의 절정기간인 1970~‘80년대에 5대양을 누비는 한국인 원양선원의 누계가 무려 130만 명에 이르던 상황이었다. 거기서도 한국어는 당연히 다국적 외항선원들 간 통화나 통신에서 공용어 역할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시 그러한 한국어 수요에 부응하여 미국 텍사스 어느 대학에 개설되었고, 지금은 텍사스 주립대학을 비롯하여 여러 대학에서 경쟁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용어’ 가짜뉴스와 세종학당
한류 영향으로 UN 공식 통용어에 한국어가 포함됐다는 가짜뉴스가 SNS와 커뮤니티,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2022년 1월 29일 설 연휴 시작부터 SNS를 통해 ‘한국어가 UN 공식 언어로 채택됐다’는 것이다. UN은 규정에 따라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6개 언어만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한류 열풍으로 공식적 한국어 사용자가 7700만 명에 육박해서 기존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보다 사용자가 많아져서 UN에서 만장일치로 한국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 됐다는 내용이다. 엄연한 가짜뉴스이지만 한국어를 사랑하는 마음과 간절한 소망으로 나타난 것이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한국 문화콘텐츠의 엄청난 파급력이 한글의 세계화의 일각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그래도 미국과 유럽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인구가 일본어와 중국어를 앞섰다는 뉴스를 들으면 국제 질서가 다극 체제로 전환되는 시기에 문화 주도권은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온 느낌이다.
K팝, K드라마와 같은 K문화를 중심으로 한글과 한국어의 세계적인 붐은 조성되고 있다. 이제 한글과 한국어는 글로벌 시대이므로 한반도를 넘어섰다. 한글을 쓰고 있는 곳은 남한과 북한, 재일동포, 재미동포, 연변을 중심으로 재중동포 사회가 있고, 러시아와 중앙아 여러 나라에도 고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모두가 한글과 한국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인구가 1억 명 가까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K문화가 한국어 붐에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이 한국어의 국제화 흐름에 독점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조선어를 중국의 5대 소수 민족어로서 공용어로 사용한다. 중국의 저돌적 문화공략을 예상하면 한국이 한글의 전산 입력 방식의 국제표준화에 등한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김치의 국제표준화 과정에서 일본의 기무치(キムチ)와 중국의 파오차이(泡菜)가 끼어들던 과정에서, 그리고 세계태권도연맹(한국, WT/IOC)과 국제태권도연맹(북한, ITF)이란 양립의 역사적 경험이 충분하므로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찌아찌아어의 한글표기화 같은 사업에서도 해당지역과의 문화적인 공조가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에서 한글과 한국어, 한국문화의 전파 역할을 위해 세종학당이 설립되었다. 또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는 재외동포재단도 있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도 있고, 한국 문화원도 있다. 모두 한국어와 한국 문화협력을 위한 기관들이다. 따라서 동일하거나 비슷한 역할을 추진하는 사업에는 기관들 간에 긴밀한 협조와 연대가 이루어진다. 한국의 대외 문화협력의 기본사업은 한국어 교육이고 세종학당재단이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언어교육은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언어 소통이 잘 되어야 자연스레 그 나라의 문화를 알게 되어 국력도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든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알리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소위 문화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각국은 현지에서 작전 본부를 두어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1983년 설립),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1995년 설립), 중국의 공자학원·공자학당(2004년 설립), 일본의 재팬하우스(1964년 설립), 이탈리아 문화원, 터키 이스탄불문화원을 비롯하여 각국은 자국어 보급기관을 열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종학당재단이 있다. 2012년 10월 24일 출범하였으며 현재 전 세계 85개국에 248개소가 운영 중이다(2023년 6월 기준). 세종학당재단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교육하는 세종학당을 지정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세계화와 표준화에 공헌하고 있으며, 제2언어로서 한국어 보급을 통해 세계 속에 한국어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