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서 발행하는 서울스포츠4월호에 소개된 화곡기사를 옮겨본다.
팜플랫에 싣기위해 미리 PDF를 받아서 올렸다.
아래 기사 내용
여성 아마추어 테니스클럽의 살아 있는 전설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
글 이명아 • 사진 현일수
매주 화요일 아침이면 목동테니스코트가 시끌벅적해진다. 여성 아마추어 테니스동호회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어느 동호회보다 활기찬 에너지를 자랑하는 화곡어머니테니스동호회의 정기 모임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클럽 창단 40년, 젊었던 어머니의 머리엔 하얀 서리가 앉고, 병아리 같던 소녀는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러나 테니스를 향한 열정과 사랑은 세대를 이어 계속되는 중이다.
1975년, 떠올려보면 참 까마득하다. 여의도의 상징과 같은 국회의사당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고, ‘세시봉’의 청춘스타 송창식, 이장희, 김정호 등은 통기타로 대중문화를 이끌었으며, 어머니들은 명절선물로 설탕과 조미료, 인스턴트 커피세트를 사러 백화점으로 향하던 때였다. 그때 ‘화곡국민학교’ 어머니들 몇몇이 모여 테니스 동호회를 시작했다.
“어머니회에서 테니스를 배우자고 했어요. 마침 제가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해 선수활동까지 했었거든요. 7명의 어머니가 주축이 돼서 테니스클럽을 만들고 제가 초대 회장을 맡았죠.”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의 김춘자 고문은 테니스의 이해도 없었던 당시 이 클럽의 창단이 획기적인 사건이자 역사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창단 이후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은 40년 동안 여성 아마추어 테니스클럽을 선도하며 지역 테니스클럽에서 전국 규모의 테니스클럽으로 성장했다. 창단 다음 해부터 개최한 테니스대회도 1994년부터 대회 규모가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1997년부터 스포츠 전문브랜드 비트로가 대회를 후원하면서 대표적 아마추어 테니스대회로 자리 잡았다.
송선순 회장은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이 40년을 이어온 힘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생각해요. 창단 멤버였던 분들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어요. 젊은 회원들에게는 거의 할머니뻘이죠. 그래도 그분들은 어린 친구들의 의견을 항상 존중하고, 젊은 회원들은 또 그분들의 지혜와 조언에 귀 기울여요”라고 자랑한다. 후배들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에 귀 기울이는 선배와, 선배들이 40년 동안 쌓아온 전통에서 지혜를 배우는 후배들의 마음이 클럽을 이끌어가는 힘이라는 것이다.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의 저력은 1976년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개최한 대회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전국화곡어머니테니스대회는 전국테니스연합회 최고 등급인 GS그룹이다. 통상 대회가 개나리부, 국화부, 베테랑부, 헤드부 경기 등으로 개최되는 것과 달리 개나리·국화부로 진행되지만 참가규모는 해마다 900여 명에 이른다.
클럽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2003년 연말 전국 클럽 랭킹 1위 4연패, 2007년 연말 전국 어머니 클럽 랭킹 1위 수상 등 명실상부 명문 클럽의 면모를 내내 자랑해왔다. 그와 더불어 테니스 꿈나무 장학금 지급, 테니스 무료 강습 등 다양한 봉사활동도 지속적으로 해왔다. ‘한국 여성 아마추어 테니스를 키운 건 8할이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구나 싶다.
국내 여성 아마추어 테니스클럽들의 맨 앞에서 어머니의 이름과 마음으로 클럽들을 이끌고, 전국대회를 주최하며 봉사활동까지 펼치는 화곡어머니테니스클럽. 이들의 에너지는 지금도 여성 아마추어 클럽을 이끄는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만 하면 아마추어 테니스클럽계의 팔방미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아마도 이들이없었다면 한국 여성 아마추어 테니스클럽의 활성화는 한참 늦어지지 않았을까?
첫댓글 한마디로 너무나뿌듯합니다ᆞ 우리자신들이 지켜 이어온 살아있는 테니스 역사를보는듯 대견스럽습니다ᆞ화곡어머니 테니스회 영원 하리라ᆞ홧팅ᆢ팅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