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 장날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마누라 배 위에서 슬슬 눈치만 보는 양반,
아침에 눈을 떠도 하초가 적막강산인 양반네들 이리 와보시오.”
약장수가 구렁이 한마리를 목에 걸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자, 옹기 사가시오. 대자리·칠부·삼등·오개….”
옹기장수 목소리도 만만찮다.
한산 세모시, 안동 세포, 통영 갓, 안성 유기,
금산 곡삼, 울진 장곽….
장사꾼들이 저마다 난전을 펴놓고 호객을 해도
오가는 사람들은 시큰둥한데
호객도 하지 않는 좌판에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섰다.
야바위판이다.
야바위란 원래가 구경꾼들 눈에는 만만하게 보이는 법이다.
돈을 걸면 몇배 딸 것 같은 자신감이 있기 마련인데
판을 벌인 야바위꾼이 불과 열두어살밖에 되지 않은,
아주 순진하게 생긴 아이라
구경꾼들은 더더욱 구미가 당겼다.
도마만 한 널빤지는
석영가루로 광을 내 얼음처럼 매끄러운데,
그 위에 간장 종지 세개가 엎어져 있다.
그 종지 중 하나에 헝겊 골무 같은 게 들어 있다.
야바위꾼이 종지 세개를 이리저리 옮기다가 손을 뗐을 때
10전을 건 손님이 골무를 품고 있는 종지를 맞히면
걸었던 돈의 10배인 한냥을 받고
못 맞히면 10전을 날리는,
아주 흔한 야바위판이다.
이 당돌한 열두어살 야바위꾼은
종지에 골무를 넣지 않고
쨍그랑 소리가 들리는 엽전을 넣었다.
야바위꾼 아이의 손이 별로 빠르지도 않은 것 같은데
10전을 건 사람마다 종지를 헛짚고는 한숨만 토했다.
가끔 돈을 따는 사람은
야바위꾼과 짜고 하는 바람잡이뿐이다.
그때 열예닐곱쯤 되는,
날렵하게 생긴 총각이 야바위판 앞에 쪼그려 앉더니
판돈 10전이 아니라 아예 한냥을 거는 것이다.
야바위꾼 아이가 생긋이 웃었다.
“좋아요. 맞히면 열냥.”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판 위에 엽전을 ‘짱’ 하고 놓고는
그 위에 종지 하나를 엎었다.
이리저리 종지 세개를 옮기다가
두 손을 떼서 조끼 주머니에 꽂았다.
총각이 서슴없이 왼쪽 종지 위에 손바닥을 덮었다.
“아니야.” “어어.” “틀렸어.”
겹겹이 둘러선 구경꾼들이 탄식했다.
그러나 벌써 야바위꾼 아이 얼굴엔
낙담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총각이 천천히 종지를 들자
구경꾼들 입에서 “와” 탄성이 쏟아졌다.
연거푸 세번이나 열냥씩 챙긴 총각이 빙긋이 웃었다
. “아예 열냥을 걸까.”
돈주머니에 손을 넣자 공포에 질린 야바위꾼 아이가
깔고 앉았던 자루를 열고 판과 종지 세개를 넣더니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레가 지나 또 장이 섰다.
젖살도 안 빠진 열두어살 아이가
또다시 자루를 끼고 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번에는 감천가 국밥집 옆에 야바위판을 폈다.
사람들이 몰려와 병풍을 치듯이 둥그렇게 둘러싸서
10전씩 판돈을 걸고 한숨을 토하는데,
이럴 수가.
지난 장날 야바위판을 쓸어갔던 그 총각이
빙긋 웃으며 마주 앉아
판돈으로 단번에 한냥을 들이미는 것이다.
야바위꾼 아이는 이번에는 쨍그랑 소리가 나는 엽전 대신
골무를 넣고 번개처럼 두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총각은 망설임 없이 덥석 종지 하나를 잡았다
. 야바위꾼 아이는 사색이 됐다.
열냥을 총각에게 주고
아이는 야바위판을 쓸어 담은 뒤
흘끔 그 총각을 뒤돌아봤다.
그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다음 장날은 총각이 나타나자 그대로 줄행랑.
그 후로 야바위꾼 아이는 김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3년이 지났다.
김천 장터 동쪽 끝자락에
‘뚱땅뚱땅’ 대장간이 자리 잡았다.
주인 영감님은 화덕 위에서 벌겋게 달궈진 쇳조각을
집게로 집어 모루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작은 망치를 들고 땡땡 두드렸다.
팔뚝이 울퉁불퉁한 삼촌은
땀을 뻘뻘 흘리며 큰 망치를 꽝꽝 내려쳤다.
“오 도령아, 불이 약하다.”
풀무질을 하는 오 도령은 이제 열다섯살.
아직 골격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온몸을 과하게 쓰고 있다.
괭이 하나를 만들고 나서 모두가 일손을 놓고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 도령도 이마의 땀을 닦고 돌아섰다.
오 도령.
그는 3년 전 장날마다 야바위판을 벌이던 그 아이였다.
그는 새로운 일을 꾸미고 있었다.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열두살 간 큰 녀석이 경북 김천 장날마다
야바위판을 벌여
어리숙한 촌사람들의 쌈짓돈을 훔쳐 먹다가
고수를 만나 딴 돈을 다 털리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3년이 지나 그 녀석은 열다섯이 됐고
감천변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돼 나타났다.
오 도령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평소엔 대장간에서 일하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장날만 되면 목간을 말끔하게 하고
양반집 도련님처럼 금박을 입힌 곤색 복건에 전복을 입고
금사 허리띠를 졸라맨 채
달덩이 같은 얼굴로 장터를 누비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천석꾼집 막냇손자,
서당의 학동이다.
대장간 영감님과 삼촌은
장날이 되면 대장간 문을 닫고
, 만든 철물연장을 장에 지고 나와
멍석 위에 펼쳐놓았다.
하지만 오 도령은 장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새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튿날부터 대장간은
또 벌건 석탄 백탄이 들어간 화덕에 파란 불꽃이 솟고
꽝꽝 땡땡 망치질이 오갔다.
오 도령은 걸레 같은 옷을 걸치고 풀무질에 매달렸다.
대장장이들이 막걸리 새참을 하거나
저녁나절 일을 마치고 화덕이 빌 때면
오 도령은 집게로 조그만 쇳조각을 달궈 쇠망치로 두드리다가
담금질을 하고 다시 달구길 반복했다.
어떤 때는 쇳조각을 숫돌에 갈았다
. “오 도령님, 무엇을 그리 골똘히 연마하십니까요?”
삼촌이 농을 걸어오면
오 도령은 얼른 손톱만 한 쇳조각을 감춰버렸다.
닷새 만에 또 장날이 돌아왔다
. 오 도령은 어김없이 양반집 손자처럼
복건을 쓰고 전복을 입은 채 장터를 헤매는 것이다.
장옷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부잣집 안방마님이 틀림없는 어느 귀부인 곁에
오 도령이 바짝 붙어 가고 있는데
오 도령의 허리띠를 누군가 뒤에서 당겼다.
뒤돌아본 오 도령은 사색이 돼
손아귀 속 참새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허리띠를 당긴 사람은 3년 전 야바위판을 압도한
바로 그 젊은이였다.
허리띠를 잡은 그에게 이끌려 인파 속을 나오다가
허리띠를 풀어버리고 도망쳤지만
열걸음도 못 가 다시 뒷덜미를 잡혔다.
오 도령은 “으악” 소리쳤다.
그 젊은이는 머리를 박박 밀고 염주를 걸고 승복을 입었다.
그런데 소매 밖으로 나온 두 손이 쇠갈고리인 것이다.
오 도령은 그에게 이끌려 아무도 없는 물레방앗간 뒤
느티나무 아래에 갔다.
오 도령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여기로 끌고 온 거예요?”
젊은 중이 빙긋이 웃더니
오 도령의 전복을 확 벗기고
조끼주머니에서 호박노리개,
작은 돈주머니, 옥단추, 엽전 등을 끄집어냈다.
그러고 소매 끝에 감춰둔 손톱만 한 칼을 뽑아냈다.
“네놈은 소매치기야.
이 호박노리개도 방금 그 귀부인한테서 훔쳤잖아!”
오 도령은 벌벌 떨었다
. “대장간에서 좋은 쇳조각을 구해
작은 칼을 만들어 소매 속에 감춰 다니면서
남의 옷과 주머니를 감쪽같이 잘라
돈과 귀중품을 훔쳐내는 쓰리꾼!”
오 도령은 젊은 스님 앞에 꿇어앉았다.
“네놈이 복건에 전복을 입은 것은 위장이지.
설마 양반집 손자가 쓰리꾼일 리가!”
“스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오 도령은 눈물을 쏟으며 두 손 모아 싹싹 빌었다.
“3년 전 네놈이 야바위를 할 때도 그랬지.
이 세상에서 네 놈 손이 가장 빠른 것 같지만
, 아니야.”
젊은 중은 두 팔을 쳐들었다.
두 손은 손목에서 잘려나가고
양손엔 모두 쇠갈퀴가 귀신 팔처럼 흉물스레 이어져 있었다
. “내가 네 사업을 계속 막은 것은
나처럼 되지 말라는 뜻에서야
. 나는 신출귀몰한 도둑이었다.
네가 야바위판을 벌였을 때만 해도
평생 잡히지 않을 것 같더니 결국 잡혀서 한쪽 손이 잘렸고
, 그 버릇을 못 고쳐 또 도둑질을 하다가 두 손을 잃게 됐어.”
두사람은 조실부모하고
어린 나이에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온 게
판에 박은 듯이 비슷했다.
오 도령은 쇠갈고리 손 젊은 중을 따라
직지사로 들어가 사미승이 됐다.
사월초파일,
일주문 옆 돗자리 위에 분실물들이 펼쳐졌다.
신도들이 절을 떠날 때 제 물건을 찾아가며 깜짝깜짝 놀랐다.
쇠갈고리 스님은 알고 있었다.
사미승 오 도령이 손재주를 부렸다는 걸.
첫댓글 새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지요 ?
버릇은 고치기가 쉽지않아서 생긴 속담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