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한 번은 마음을 함께하는 산 친구님(백우인)들과 깊은 산으로 든다.
숲이 짙어가는 유월에 드는 산은 전북 진안의 연석산과 운장산의 서봉과 동봉.
오늘은 끝없이 이어지는 구름 위에 마음을 실어볼까.
산으로 가는 긴 차를 타기 위해 매 달 달려가는 시지중학교 앞.
그 곳에 가면 교문 옆에 선 게시판에서 매 달 詩 한 편을 만나는 기쁨이 솔솔하다.
이 달에 만나는 詩는 김남조 님의 "6월의 詩" 이다.
어쩌면 미소 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그런 물줄기 되어/마음에 빗발쳐 온다...
매 달 길을 떠나며 아침에 만나는 한 편의 詩.
오늘은 길 위에서 가슴을 여울지게 하는 보리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으리라.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가 훈훈한 초하初夏의 바람에
미소 지으며 스러지는 그들의 노래를.
대구를 벗어난 긴 차가 운장산으로 가는 길.
흐리던 하늘이 개이며 청청한 하늘을 드러낸다.
차 안 티비에서 기록영상 "산"이 방영되어
가슴을 뜨겁게 하는 산 할머니를 만난다.
일흔 네 살이나 된 산 여인. 할머니라고 하기엔 감히 어울리지 않는다.
열정을 지니신 분이다. 에베레스트 준봉을 오르는 그녀의 가슴이 뜨겁다.
눈 쌓인 고산의 바람에 맞서며 눈물이 난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깊이 빠지고 너무 가슴이 벅차면 눈물이 난다는 말.
나도 동감한다.
운장산으로 들기 전에 벌써 가슴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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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초록 숲, 연석산으로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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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물 속에 담긴 하늘과 나무>
연석사 입구,
산과 맞닿은 하늘이 유월의 햇살을 쏟아 붓고
지나가던 하얀 구름이 모내기를 하는 논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노란 애기똥풀이 미소 짓고 작약이 핀 연석사 마당을 지나 산으로 든다.
산 속 개울물에 떨어져 내린 때죽나무 꽃이 떠가고
나무의 그림자와 하얀 구름이 내려와 물 속에 잠겼다.
유월의 숲이 토하는 싱그러움. 초여름 숲은 싱그러움으로 넘실댄다.
봄이 꽃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나무의 계절이다. 여름 숲에도 꽃이 핀다,
초록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나무들 속에 묻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초여름 숲에서 피는 여름 꽃들은 대부분 하얗게 피어난다.
모든 나무들이 꽃을 피운다는 걸 모르고 사는 우리에게 어떤 꽃들이 다가올까.
산으로 드니 가슴에 온통 초록물이 든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묵묵히 땅만 보고 걸을 뿐 모두가 침묵을 한다.
새소리, 바람소리, 산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숨소리가 숲의 침묵을 깨운다.
유월의 숲에는 두드러지게 피는 꽃이 없다. 초록 숲 하나라도 족하리니.
작은 초목들은 큰 초목들의 품에 안기고 큰 초목들은 작은 초목들을 고이 품어서
어느 하나도 숲의 일부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유월의 숲은 짙지도 않은 그윽한 녹음을 이루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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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
키 작은 초목들이 낮은 바람에 부드럽게 눕는다.
발 아래 길섶 여기저기서 둘글레가 눈에 띤다.
수줍은 듯 잎 새 뒤에 피어난 둥글레 꽃은 가늘고
긴 가지에 여러 개의 꽃이 조롱조롱 매달렸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잎 뒤에 숨은 꽃 때문일까.
둥글레 꽃을 담기가 여간 쉽지 않다.
키 작은 그의 키에 맞추어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 담아보지만 흔들릴 뿐이다.
수없이 담은 사진 중에 겨우 그를 담은 사진은 한두 장 뿐.
머지않아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미세한 파장이 음악이 되어 그들의 개화를 도울 것이다.
연석산 정상이 가까워지자 숲이 드리운 그늘이 사라지고 시야가 확 트인다.
산자락 멀리 마이산의 암수 봉우리가 보인다.
산자락을 하얗게 덮은 저 꽃은 무슨 나무의 꽃일까.
국수를 닮아 매끈한 국수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유월의 숲이 만든 나무 그늘 터널을 지나
주린 배를 채우고 가파른 서봉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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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 멀리 마이산이 보인다>
또 한 번 산사람들의 가슴은 뜨거워진다.
앞서가는 산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가뿐 숨을 내쉰다.
누구나 힘든 순간이다. 힘을 내자며 격려하는 산사람이 아름답다.
뜻을 함께해서 좋은 길. 함께해서 동지이다.
힘은 들지만 예전같지 않은 체력이다.
앞서가던 낯선 분들이 한 마디 던진다.
"힘든 오르막 길에서도 연신 웃으시네요!"
내가 그랬던가. 놀랍다.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들면
그런 나를 찾을 수 있으니 이 또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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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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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을 내려다 보는 소나무>
그렇게 웃으며 운장산 서봉에 서니 산자락이 모두 내 아래에 있다.
오늘은 운해에 마음을 맡기고 싶었는데 기대했던 구름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치마자락을 펼친 산들이 길게 이어지고
정상 아래 숲 속에서 나를 유혹하는 나무를 발견한다.
분명 산목련인 함박꽃이다.
오늘 길을 나서며 그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확인하고 싶어 산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숲을 헤치고 내려가니
산목련나무에 함박꽃이 피어있다.
곁에 갈 수 없어 먼 발치에서 카메라 눈으로 그를 담는다.
숲을 헤치고 내려와 준 선한 산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가끔 겁을 내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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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장산 서봉에서 내려다 본 산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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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목련, 함박나무 꽃>
운장산 동봉으로 가는 길. 긴 산죽 길이 이어진다.
유월의 따가운 햇살을 나무 그늘이 막아주니 고맙다.
동봉으로 가는 길 가에서 함박꽃을 만난다.
보기 귀할 것 같아 서봉 아래 숲을 헤치고 내려갔었는데
이렇게 쉽게 산목련꽃들을 만날 수 있다니.
높게 핀 산목련을 담으라며 나뭇가지를 산사람이 붙잡아 주신다.
북한의 국화國花 인 함박꽃.
정일花라고도 부르는 이 꽃은 귀한 꽃이다.
순백의 하얀 꽃송이가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함박웃음을 던지며 은은한 향기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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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틈에 핀 양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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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나무>
동봉 정상 석 아래 바위틈에 노란 양지꽃이
터를 잡고 피어나 오후의 햇살에 반짝인다.
하늘에서 구름이 만든 검은 그림자가 산자락을 덮는다.
특별한 풍광을 만들어 주지 않은 운장산이지만 초록 숲이 싱그럽다.
산길을 걸어온 만큼이나 하산 길도 길게 이어진다.
간간이 밧줄이 있는 가파른 산언덕에서 자신감을 얻고
이름모를 나무들의 꽃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산을 하던 산사람들이 소나무 아래에 쉼터를 만들고 잠시 배낭을 푼다.
산에서 맛보는 언 황도黃桃 맛. 입 안에서 살살 녹는 황도 얼음과자이다.
반에 반 조각이라도 나눠먹는 정이 더 황도를 달게 하고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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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그늘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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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산에서 내려서니 포장된 길이다.
흙 위를 걷는 길이 더 좋지만 어찌 할 수 없다.
산목련, 아카시아, 찔레, 때죽나무, 산사나무...
꽃은 보지 않아도 하산 길 위에는 꽃향기가 가득하다.
여름으로 가는 숲.
무성해져 가는 유월의 초록 공간에 꽃등을 밝히듯 하얀 꽃들로 가득하다.
실개천이 흐르는 마을 야산에 늘어지게 핀 찔레꽃.
긴 하산 길에 지쳐 한길에 퍼져 앉았더니
개울을 건너온 찔레꽃 향기가 코를 찌르고
길섶에 핀 개망초가 작은 바람에 흔들리며 환하게 웃는다.
아, 벌써 민초들의 눈물 같은 망초 꽃 피는 계절이 돌아왔구나.
계절은 어느 새 여름으로 향한다.
첫댓글 늘 수고 하시는 분들 덕분에 이 번에도 좋은 산행하고 가슴 훈훈하게 데워왔습니다. 낮에 일하며 A4 용지에 산행기 대충 정리해서 밤늦게 마무리를 합니다. 이번에는 사진이 영 아닙니다. 망초 꽃 흐드러지게 피는 유월. 모두모두 행복하세요! ^^
산에 들면서 늘 행복해 하시는 "꿈꾸는나무"를 보면서 '참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빨리 끝내고 조용한 산행을 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짙어가는 초록의 싱그러운 숲속에 들면 어느새 머리는 텅 비어지고 가슴은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어느 계절이나 산에 오르며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산이 참 좋다라는 느낌을 준 초록이 짙어가는 신록의 산을 진정 좋아하고 그 속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게 소년으로 돌아간다... 꿈많은 소년이 되어 달콤하게 하루종일 신나게 보낼수 있게해 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언제나 감동을 주는 꿈꾸는나무님의 글을 읽으며 이 아침 행복감에 푹 빠져 봅니다... 감사합니다!!!
신록의 계절에 만나는 자연의 푸르름 속에 우리는 하나가 되어가는 같습니다~~ 수필같은 산행기 감상 잘 했습니다.~``
언니글을 읽노라면, 마치 내가 주인공인양 행복한착각속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그러는데... 언니는 아실라나요?? 오늘은 더 가슴이 뛰는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아마도 이글을 읽는분들은 같은감정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언니, 밥대신 다른거 드시지예? 밥만 먹고는 이런글이 어떻게 나오겠노!! 꿈과 사랑과 좋은생각을 후식으로 드시나...!! 암튼 수련회때는 장편을 기대할께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셔야되요 꼬-옥요^,~
언제 읽어봐도 아름다운 산행기네요. 청명한 날씨속에 넉한 백우님들과 함께한 산행 그것만으로도 행복인데 이리 가슴 짜~안한 글이라니..^.^..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솔향씨의 멘트 (깊이 공감하며...) 항상 힘을 주는 백우님들... 항상 건강하시고 날마다 좋은날 되세요...
글이 아름다우니 댓글도 절로 아름다워 지는것 같습니다..분명히 보는산은 같을 진대 풀어내는 재주는 다 각양각색이니 ..항상 생각 하지만 같은 산을 보아도 나무누님이 보는것의 반도 못보고 오지 싶습니다..잘 보고 읽고 갑니다..
기억나세요? 첨에 버스에서 드뎌 시작하십니까?하고 여쭈었을때요...ㅎㅎ 항상 마지막은 아름다운 작품이 완성되네요 밤새 낚시하고 와서 자려니 저의 발목을 붙잡네요....편안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마음안고 고이 잠을 청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님을 볼때면 늘 느낍니다,때묻지 않은 소녀같은 느낌 알죠!! 산행기 잘 봤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구요,,늘 저희 부부 이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산행기에 나도같이 같이 걸을수 있었던 영광이 있군요 가물가물 마이산이 찍혔네요 글과사진 훌륭하다고 간단히 표현하는 문장실력이 부끄럽습니다
꿈나무님의 산행기는 마치 6월의 신록마냥 싱그러움 그 자체입니다....감탄!!!!! 감탄!!! 일흔네살에 에베레스트에 오를수 있는 열정을 갖고 싶고 닮고싶어요. 같이 30년 산행하기로 한 약속~~ 소중한 인연 계속 이어가요....
네, 언니...언니의 따스한 미소 속에 함깨 하는 산행. 얼마나 행복한지 아십니까...산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늘 산행 함께하며 이어가요! ^^
산행일기 감상 잘하였습니다.... 항상 정성을 다하여 백우산악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슨 말씀을요...회장님, 느낌표(!)가 너무 많습니다. 금강산 잘 다녀오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