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한의학은 없다 7]
불행한 독학세대, 이 땅의 한의사들
한국에서 몇 사람의 대학교수를 만났지만 한결같이 하는 말이 우리가 중국에서 배울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피부병 환자를 두고 중국 교수와 한국 교수가 서로 대화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한국 교수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증세만 보고 비슷한 처방전을 골라서 쓰면 그게 한의학 처방이고 치료라고 생각하는 수준과 병의 근원을 찾아 치료하려고 하는 수준, 당연히 대화가 되지 않고 배울 수조차 없을 것이다. 배우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배울 수 있다. 동양의학을 아예 기초에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데 어떻게 배울 것인가.
중국에선 침을 놓을 때도 변증부터 한다. 정해진 자리에 단순히 침만 꽂는 게 침이 아니다. 침을 놓기 전에 반드시 진맥을 하고 사진합참으로 변증을 한 뒤 그에 따라 침을 놓는다(변증으로 침 놓는 것에 관하여는 졸저 『동양의학은 병을 어떻게 치료하는가』 참고). 무슨 병에 무슨 혈자리라고 정해진 곳에만 침을 놓는 게 침구학이라면 6년씩 배울 필요도 없고 한의사만 침을 놓을 필요도 없다. 대롱침으로 침을 놓는 건 위험할 것도 없으니 누구나 몇 개월만 공부하고 처방전과 처방혈을 정리한 책만 가지고 있으면 자가치료를 할 수 있다. “藏乎也”를 “藏平也”로 보는 것에서 시작해서 한방내과를 양방내과의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극히 일부만, 그것도 양한방 전 과정을 한 교수가 양방 일변도로 가르치는 부실한 한의대는 한의대라 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 한의과대학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유명한 한의사 김홍경 씨는 “서울대 좋지도 않은 과를 시험봐 떨어지고 경희대 한의학과 입학시험을 보았더니 발가락으로 써도 들어갈 정도”였다고 스스로 한탄했다. 그 말의 요지는 대학입학시험 성적이 한의사가 되는 조건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큼 수학능력은 되는 사람이 들어가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일 게다. 김홍경 씨 자신이 보아도 수학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들어가 졸업을 하고 박사를 따고 대학교수도 되고, 지금은 그들이 모두 한의학계를 이끌어가는 중진이 되어 있다.
1975년에 경희대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경희대에서 박사를 받고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는 최승훈 교수는 『내경병리학』[서울:통나무, 1999]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스스로를 ‘독학세대’라 부르곤 합니다. 물론 모든 학문이 개인의 창조적인 思考에 의해 진보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초적인 내용에서 발생하는 문제부터 심지어는 학문의 방향성조차 홀로 해결하고 설정해야 하는 난감함이 그러한 자조적인 표현을 하게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의대 교수 스스로 기초적인 내용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한의과대학에서 70년대까지 기초적인 것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이걸 안다면 다들 사기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기초적인 것도 제대로 못 배운 사람들이 졸업하여 의사 자격증을 따고 천하보다 귀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었으니 이런 황당한 일이 있는가? 이런 상황이니 급성 장염으로 인한 설사 하나를 제대로 못 고치고 엉터리 맥진기에 의존해서 보약이나 팔아먹지 않나, 혈압이 높아 간맥이 펄떡펄떡 뛰는 사람에게 녹용을 먹여 사람을 잘못되게 만들지 않나, 급성 간염에서 회복되어 안정기에 들어간 앞날이 창창한 친구를 죽이지 않나, 정말 상식 이하의 일들이 비일비재 일어나는 것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기초적인 것도 제대로 못 가르치는 대학 수준에서 어떻게 박사학위를 수여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70년대 후반까지 기초적인 것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대학에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유능한 교수들이 뚝 떨어졌는가 아니면 기존의 교수들이 별안간 도를 깨달았는가? 정말 우리나라 한의학계의 미스터리다.
한의학계에서는 독학으로 배운 사람들을 돌팔이니 불법의료 시술이니 하여 법으로 제재를 가한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 독학한 것과 학교 안에서 독학한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차라리 돈 받고 한의사 자격증을 파는 것이 훨씬 솔직하다.
한약분쟁 때 김용옥이 부르짖던 정의는 돈과 시간을 들여 자격증을 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한약분쟁의 근원에는 약사나 한의사나 증상에 따라 비슷한 처방을 골라 처방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한의사라고 해서 특별할 게 뭐냐는, 약사들의 경멸이 깔려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용옥의 주장은, 억울하면 나처럼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자격증을 사라는 이야기였다. 한의사가 약사들에게 내세울 건 그것밖에 없다. 나처럼 귀한 사람도 이렇게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으니 너희들도 투자해야 정의가 산다는 뜻이다. 이것이 철학하신 분의 정의이다.
제대로 배운 한의사라면 약사가 처방하겠다고 나선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론적 지식 없이 증세만 보고 비슷한 처방을 골라주기만 하는 약사가 뭐가 두렵겠는가. 제대로 배우지 못해 약사들과 똑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두렵고, 죽기살기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건 한국에서만 가능한 정말 치졸한 밥그릇 싸움이다. 약사들과는 실력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 인정받을 생각은 않고 머리깎고 데모하는 것으로 ‘실력’을 행사한다. 원래 한의학적으로는 상대도 될 수 없는 집단에게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학교 안에서 독학했던 사람들이 똑같은 수준의 사람들을 양성해낸다는 것이다. 단지 박사니 교수니 요란스럽게 치장만 덧대서. 요즘은 전문의라는 치장을 하나 더 만들어냈다. 세계 어느 나라 의학계에서 독학한 사람들끼리 자격증 주고 박사학위 수여해주는가. 5급끼리 평생 바둑 둬봤자 프로 되지 못한다. 5급에게 바둑 배워 프로 될 수 없다. 왕빙이 말했듯 동양의학은 기본적으로 독학이 불가능한 학문이다.
한의사 전문의 제도
얼마 전 우리나라 한의학계가 죽기살기로 이전투구를 벌였던 것이 이 전문의 제도 도입 때문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우선 동기가 불순하다. 현재 있는 박사도 민망한데 거기에 다시 전문의 타이틀을 붙이면 실력이 향상되나? 독학한 선후배들끼리 별의별 타이틀을 다 만들어낸다. 게다가 전문의 제도는 우리나라 서양의학에서 도입하여 세계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양의학에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성공한 제도를 그 이름 그대로 가져다가 이용해먹자는 발상이 불순하다. 서양의학은 기본적으로 외국 의사들의 엄격한 지도를 거치며 자격을 얻은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고 전문의 제도 또한 엄격한 자격을 갖춘 분들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저 그런 수준으로 임상만 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시험 보고 전문의 땄던 것이 아니란 말씀이다. 그런데 한의학계에서는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의사였던 사람이 시험만 보면 바로 전문의가 될 수 있다. 그럼 그 시험문제는 누가 내고 평가는 누가 하겠다는 말인가.
졸업한 후 임상경험이 10년 이상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격증을 받게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불이익을 당하게 될 9년차 이내의 사람들이 죽기살기로 덤벼들었다. 그래서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응시하게 하려니까 이제부터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전문의 수련과정 정원 때문에 엄격한 통제를 받게 되었다고 죽기살기로 달려들었다. 그리하여 한의대를 졸업했으면 거의 전문의 시험을 칠 수 있게 되었다. 일정한 교육시간을 채우면 모두 전문의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결국은 학생들의 반발 때문에 이것도 얼마 시행하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참고로, 치과학계에서는 전문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어느 해 졸업하는 학생들부터 엄격한 과정을 거쳐 수련의 생활을 해야 전문의 자격을 부여하고 이들은 개업은 못하고 종합병원에서만 근무할 수 있게 한다는 아주 합리적이고 명쾌한 결론을 냈다고 한다. 참으로 멋지고 양식 있는 행동이다.
한국 한의학의 미래를 위하여
요즘 논의가 분분한 양한방 결합 문제에 참고가 될 만한 중국 특유의 중서의(中西醫) 결합제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겠다. 양의와 한의, 의사와 약사, 거기에 내부적으로도 분쟁이 그칠 날 없는 우리나라 의료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배울 점
중국 정부 수립 후 한국전쟁을 치르고 난 1954년, 수도 베이징에서 가까운 스쟈좡(石家庄)이라는 곳에서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도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 정부가 양의사로 구성된 방역진을 급파하여 진단한 결과 유행성 뇌염이라는 것이 판명되었으나 양의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직후였기에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라 이러한 병을 치료할 만한 제대로 된 제약산업도 성립되지 못해 치료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약이 없는데 무슨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겠는가? 이 유행성 뇌염은 이후 3년에 걸쳐 크게 유행하는데 이를 치료한 것이 중국의 중의사들 중에 온병학자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성공적인 치료를 해냈다.
일찍이 전통의학을 멸시하여 폐지하려 했던 장졔스의 정책에 반대한 마오쩌둥 공산정권이 간신히 보존하고만 있었을 뿐 당시 중국의 전통의학은 기세등등한 서양의학에 밀려 거의 인정을 받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런 형편에서 3년에 걸쳐 유행성 뇌염을 치료한 온병학자들의 활약은 중국 정부 지도자들로부터 일반 국민들과 양의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저 골동품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았던 전통의학이 당시 의료계 상황으로는 양의사들도 두려워하는 유행성 뇌염을 전혀 어려움 없이 치료한 것이다.
이에 마오쩌둥 주석도 크게 충격을 받고 나이나 직급, 직책과 상관없이 모든 양의사들에게 1년간 중의학 강의를 듣게 한다. 이것으로 중국 중서의 결합제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많은 양의사들이 이때 중국의 전통의학을 이해하고 상호협력하기 시작했다. 머리깎고 데모해서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하는 것과는 전혀 질이 다른 것이다. 이후 양의사들의 이해와 협력하에 중국의 온병학은 급성 전염병에서부터 확대 발전하여 고열을 동반한 급성 감염성 질병의 치료에서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양의학에서 지금도 속수무책인 유행성 출혈열이나 급성 간염, 급성 비뇨계통 감염 등 많은 질병에 대해 그 치료효과가 입증되고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인류의 생활환경이 개선되면서 한사로 인한 상한보다는 고열을 동반한 급성 감염성 질환이 상대적으로 대폭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앞으로 그 적용범위가 급속적으로 확대될 학문으로 여겨 매우 중시하고 있다.
한의학계의 현실을 인정하자
세계 최고의 동양의학 교육기관으로 평가되는 베이징중의약대학은 교수와 직원만 천 명이 넘는다. 그래도 이 온병학 박사과정은 국가로부터 허가가 나지 않는다. 온병학은 기본적으로 상하이나 광저우를 중심으로 한 남방에서 발전한 학문이라 북방에서는 연구의 축적이 부족하여 안 된다는 이유로 베이징에는 석사과정까지만 설치되어 있다. 이 석사과정을 지도하는 교수들만 우리나라에 와도 명강의가 이루어질 정도다. 그러니 남방의 온병학 전문과정의 수준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용옥이 한의대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온병학을 몰랐고, 현재까지도 온병학 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독학해서 강의를 준비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독학에 이골이 난 한의학계다. 온병학은 동양의학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 중 하나다. 기존의 동양의학 이론을 모두 섭렵한 기반이 있어야만 가능한 학문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동양의학의 기초라곤 어느 분야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온병학을 독학하여 강의한다면 더욱 해괴한 일이 일어날 게 뻔하다.
이 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현재 한국의 한의학계다. 이 책에 다 밝혀놓을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나는 한의사들을 비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우리 한의학계의 정확한 현주소를 밝히고 그에 대한 국가적 대안을 검토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