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가시가 되는 동안
전형철
꿈속에 선생을 만났다
담배를 물었다
반가운 나는
선생이 실체인가 다가갔지만
뒷걸음치며 같은 곳을 맴돌았다
몽자와 몽유의 밤을 굴리며
잎이 가시가 되는 동안
잘라 보지 않고는 물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나무선인장처럼
후려갈기는 비바람에
쉽게 멍들고 자주 물렀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쩌면 내가 피하고 피하다 남은 마지막 세상
최선과 집착 사이 한 끗의 줄타기
나는 옆구리에 생긴 푸른 옹이에
주먹을 꼭 쥐어 붙인다
내가 아는 신화의 장자는
모두 죽거나 제구실을 못 했는데
담벼락에 피어 있는 불의 미소를,
장미의 주먹 ⃰을 바라본다
시간의 명세를 감춘 주머니
수없이 구겨진 마른 지화紙花 속에 나는 염한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수난
그것을 태우려는
모든 심지에 불을 붙여
물을 담은 가시와
꽃을 피운 가시 사이
잎이 되지 못할 가시를 위해
하루 종일······
* 장미의 주먹: 조정권, 「장미의 주먹」에서
-『계간 파란』 2023-여름(29)호 <poem>에서
“담벼락에 피어 있는 불의 미소라니!” “몽자와 몽유” 이 와중에…. 나도 가끔 ‘염’할 때가 있다. 아침이면 창을 타고 오른 바싹 말라버린 덩굴 가운데 아직 피어 있는 한 송이 어린 나팔꽃의 가녀린 미소를 확인하고, “잎이 되지 못할 가시”, 그 고귀한 미소에 오체투지는 못 할지언정. “어쩌면 내가 피하고 피하다 남은 마지막 세상”에서 “준비되지 않은 수난”이 닥쳐올지라도 주먹을 옆구리에 꼭 쥐어 붙이고 “집착”보다 “최선”으로 줄타기하며 앞으로 성큼 기어가리라 결기를 다져보는 것이다. (배성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