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
마뗑킴, 마르디 메크르디, 아더에러, 코드그라피, 나이스고스트클럽, 시에(SIE), 쿠어…. 한 번이라도 들어봤거나 구입해본 브랜드가 있는가.
그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은 지난해 ‘패피(패션피플)’ 혹은 패션 트렌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브랜드는 지난해 매출액이 100억원 이상이며 전년 대비 두 자릿수 % 이상 급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부 브랜드는 100% 이상 성장한 데다 매출액이 500억원을 넘기기도 했다.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기도 하다.
‘마르디 메크르디’는 톱스타 김고은을 기용, 해외 고객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마르디 메크르디 제공)
K패션 체질이 바뀌었다
아크메드라비 해외 매출 더 많아
그동안 K패션 하면 ‘국내용’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또 토종 디자이너들이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해도 해외 굵직한 패션쇼에 단편적인 소개가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다.
최근 양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중소 K패션 브랜드의 약진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지난해 매출액 1200억원을 돌파한 아크메드라비 같은 브랜드는 코로나19 장기화, 한한령 여파에도 불구하고 해외, 특히 중국 매출이 전체 비중의 70%를 넘겼다. 일본에서는 디홀릭커머스가 일찌감치 진출, K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를 속속 소개하면서 매출 1000억원을 넘겼다. 아더에러, 마르디 메크르디, 널디 등도 일본에서 지난해 뜨는 브랜드로 점차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국내 패션 산업은 코로나19 여파에 가장 타격이 큰 시장으로 분류됐다. 외출 제한 여파가 컸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온라인, 모바일에 집중한 K패션 브랜드는 오히려 성장세를 지속하면서 코로나19가 불러온 글로벌 디지털 전환 시대의 수혜를 받았다.
패션 컨설팅 회사 디토앤디토의 정인기 대표는 “과거 세대와 달리 신생 디자이너 브랜드는 글로벌 소셜미디어(SNS)를 적극 활용해 ‘본투 글로벌(시작부터 해외 진출)’ 전략을 쓴 데다 양방향 소통을 통한 반응 생산, 온라인을 통한 한정판 마케팅 등 기발한 전략으로 빠른 시간 내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대기업 판도 역시 바뀌고 있다.
종전 패션 대기업 하면 삼성물산 패션 부문(삼성패션), LF, 신세계인터내셔날, 한섬, 코오롱인더스트리 FnC사업부를 ‘빅5’로 꼽았다. 삼성패션이 지난해 2조 클럽에 등극하며 대기업 계열에서는 업계 1위를 기록했다고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IB(투자은행) 시각은 다르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휠라홀딩스를 ‘원톱’으로 분류하는 시각이 다수다. 휠라, 타이틀리스트 글로벌 본사를 인수한 휠라홀딩스는 2022년 매출 4조2208억원, 영업이익 4309억원(잠정 실적 공시)을 기록, 4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디스커버리·MLB로 대박낸 F&F(연결 기준 매출액 1조8091억원, 영업이익 5224억원), 뉴발란스, 스파오가 선전한 이랜드월드(매출액 1조6000억원(전년 대비 30% 성장), 영업이익 2700억원(전년 대비 160% 성장)), SPA 브랜드 시장에서 유니클로코리아를 제친 ‘탑텐’의 신성통상, K2·아이더·와이드앵글 3각 편대로 매출액 1조원을 넘긴 케이투코리아그룹, 코웰패션·하이라이트브랜즈(코닥어패럴, 말본골프)·하고엘앤에프 등을 보유한 대명화학 등이 언제든 선두권으로 치고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패션 플랫폼의 약진도 무시 못한다. 특히 무신사는 연 거래액 3조원 돌파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종전 패션 업체를 위협한다. 에이블리, 브랜디 등도 거래액을 잇따라 늘리는 모양새다.
이들 업체 선전은 국내 패션 시장을 한결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섬유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 패션 시장 규모는 45조7787억원으로 전년 43조5292억원 대비 5.2% 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선희 서울패션허브 창업뜰 센터장은 “유학파는 물론 국내 대학 교육 수준이 상향평준화되면서 한국 디자이너 역량이 한층 강화돼 국내외 브랜드를 잘 소화하게 됐고 여기에 더해 영원무역, 세아상역, 한세실업과 같은 글로벌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회사가 생산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주면서 국내 업체가 마음껏 대규모 발주를 할 수 있는 인프라까지 갖춰진 것이 최근 K패션 부활의 핵심”이라고 총평했다.
그렇다면 K패션은 어떻게 부활 또 진화하고 있을까. 지난해 업권별 트렌드를 보면 그 실마리를 가늠할 수 있다. 최근 K패션 시장에서는 비패션 라이선스가 패션 브랜드로 안착하는 사례가 다수 생겨났고, 스트리트·레트로를 콘셉트로 한 브랜드가 K패션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들이 급성장하는 데 맞서 전통 패션업계도 자사몰을 강화하고 있고, 탄탄한 생산력을 갖춘 굴지 패션 OEM 회사들은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며 업역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2015년 블로그 마켓으로 시작한 브랜드인 ‘마뗑킴’은 지난해 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좌). 콘크리트웍스의 유틸리티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코드그라피’는 최근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지하 2층에 스토어를 오픈하며 백화점 첫 정규 매장 진출을 알렸다(우). (마뗑킴, 코드그라피 제공)
잘나가는 브랜드엔 이유가 있다
라이선스·스트리트·레트로의 약진
가장 눈에 띄는 건 국내 패션 라이선스 시장의 약진이다.
미국 프로 야구 ‘MLB’,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디스커버리익스페디션(이하 디스커버리)’, 카메라·필름 브랜드 ‘코닥(Kodak)’, SUV 자동차 ‘지프(Jeep)’, 아이비리그대 ‘예일(Yale)’. 패션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들 해외 유명 브랜드는 모두 한국 기업이 지식재산권(IP)을 들여와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시킨 사례다. 이외에도 빌보드(음악 전문 잡지·차트), 폴라로이드(즉석카메라 브랜드), CNN(미국 뉴스 채널), NBA(미국 프로 농구) 등 수많은 해외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 패션 브랜드로 안착했다.
예를 들어 미국 브랜드이자 스포츠 DNA를 지닌 MLB와 디스커버리는 모두 우리나라의 F&F가 운영 중이다. MLB는 코로나19 확산에도 중국에서만 800여개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중국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홍콩·마카오·대만·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도 수출하고 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지난해 F&F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66.1%, 61.9%씩 급증한 1조8091억원, 5524억원을 기록했다.
라이선스 브랜드는 해외 유명 IP다 보니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지도 모르는 소비자가 많다. 대신 기업 입장에서는 라이선스 비용을 치르더라도 유명 브랜드 이름값에 기대 소비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멀티 브랜드 전략의 하고엘앤에프, 비케이브, 에이피알 등의 약진도 눈에 띈다. 이들은 지난해만 매출이 전년 대비 두세 배씩 증가하며 팬데믹 기간 1000억~2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온라인에서 500억원을 달성하고 오프라인으로 진출한 ‘마뗑킴’ ‘커버낫’ ‘마르디 메크르디’ 등의 사례가 이어지며 온라인 브랜드의 성장도 이어질 전망이다.
‘마뗑킴’은 2015년 블로그 마켓으로 시작한 브랜드로 지난해 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오픈 후 3일 만에 2억2000만원의 매출 기록을 세웠다. 마뗑킴을 운영하는 하고엘앤에프는 오프라인 편집숍 ‘하고하우스’를 연 후 1개월 만에 누적 합산 매출 14억원을 달성했다. 다양한 브랜드 라인업이 소비자를 끌어모은 것으로 분석된다.
널디, 메디큐브 등을 운영하는 에이피알은 지난해 4000억원 넘는 역대급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널디 매출만 1000억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이피알은 널디를 필두로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중이다. 중국, 일본에 이어 지난해는 베트남에도 매장을 열었다.
한편, 최근 4050세대가 보면 ‘이게 왜 다시 유행할까’ 싶은 패션 아이템이 여럿 있다. 로우 라이즈, 레그 워머, 어그 부츠, 카고 바지 등 통칭 ‘Y2K’라고 불리는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를 강타한 패션이다. 지난해 방영한 예능 프로그램 ‘지구오락실’에서는 2002년생 이영지가 Y2K 패션을 표방하며 벨벳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온 바 있다. 이름하여 ‘뉴트로(new+retro)’.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옛것이던 아이템이 젊은 층에는 오히려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가는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리(LEE)’ ‘노티카’ 등 한물간 것 같은 브랜드들이 다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는 2021년 리브랜딩을 단행한 지 약 10개월 만에 100억원대에 이르는 연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는 전년 대비 250% 급증한 매출 350억원을 달성했다. 리 역시 ‘커버낫’의 비케이브가 재론칭한 이후, 일 년 만에 매출 200억원, 지난해는 전년 대비 150% 신장한 500억원을 기록했다.
또 하나. 코로나 시기 골프와 테니스가 인기를 끌며 스포츠 의류 브랜드 역시 특수를 누렸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포츠 의류 시장의 규모는 7조1305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0.48% 상승했다. 약 45조원에 달하는 전체 패션 시장에서 스포츠 의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커지고 있다. 더욱이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등의 문화가 유행하면서 스포츠웨어 인기는 쉬이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인기에 힘입어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 7층 본관에 총 300여평 규모의 프리미엄 골프 전문관을 열었다. PXG, 지포어, 말본골프 등 총 28개 브랜드가 입점했다. 신세계의 골프웨어 매출은 2020년 15%, 2021년 56%, 2022년 34%로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포어와 왁 등을 전개하는 코오롱FnC는 골프웨어의 호실적을 바탕으로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이 20.7% 증가한 1조2286억원, 영업이익은 67.3% 상승한 644억원을 기록했다. 더불어 코오롱FnC는 지난해 프리미엄 낚시웨어 브랜드 ‘웨더몬스터’를 론칭한 것에 이어 올해는 테니스 라켓 시장의 3대 브랜드 ‘헤드(HEAD)’를 3년 만에 재정비해 선보인다.
플랫폼에 눈뜬 K패션
삼성 SSF, 신세계 ‘시마을’…‘효자’ 된 온라인몰
그간 패션은 소비자가 눈으로 직접 살핀 후 입어보고 구매하려는 경향이 큰, 그래서 온라인 전환이 어려운 업종으로 여겨지고는 했다. 하지만 무신사, 지그재그 등 온라인 패션 플랫폼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무섭게 성장세를 탔다. 무신사스토어, 29CM, 스타일쉐어, 솔드아웃 등 무신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의 거래액은 2021년 2조원을 훌쩍 넘어섰고 지난해는 3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4500억원) 이후 4년 만에 6~7배 성장한 셈이다. 카카오스타일의 지그재그도 지난해 처음으로 거래액 1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패션 플랫폼 영향력이 막강해지자 전통 패션 업체들도 뒤질세라 플랫폼 키우기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었던 패션 업체들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D2C(소비자 직접 거래)’ 전략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자사몰 매출 비중을 늘리면 오픈마켓 등 다른 플랫폼에 지불하던 판매 수수료 비용은 줄고 수익성 개선 효과가 나타난다”며 “자체 이벤트나 차별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 빅데이터 수집도 가능해 충성 고객 확보도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SSF샵, 신세계인터내셔날은 SI빌리지, LF는 LF몰, 한섬은 더한섬닷컴, 코오롱FnC는 코오롱몰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이들은 자사 브랜드뿐 아니라 다양한 제품군과 카테고리를 선보이면서 종합몰로 도약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자사몰 SS샵 카테고리를 개편하고 트렌디한 브랜드와 상품으로 구성된 ‘전문관’을 202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최근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타깃으로 아미, 메종키츠네, 르메르 등 신명품 브랜드와 글로벌 디자이너 브랜드 준지, 편집숍 10꼬르소꼬모 서울과 비이커, 개성 있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모아놓은 어나더샵 등을 통해 트렌디한 패션 브랜드를 제안한다.
SI빌리지(일명 시마을)를 운영 중인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최근 명품 구매 트렌드가 온라인으로 옮겨 오는 것에 주목해 패션, 뷰티뿐 아니라 미술품, 프리미엄 테크, 럭셔리 홈 브랜드 등 다양한 럭셔리 카테고리를 입점시키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인수한 W컨셉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LF는 패션몰이던 ‘LF몰’을 리빙·뷰티·명품 등 의식주 8000여개 브랜드를 판매하는 종합 쇼핑몰로 탈바꿈시켰다.
온라인몰 확대를 위해 투자도 대폭 늘리는 모습이다. 한섬은 지난해 6월 500억원을 투자해 경기도 이천에 온라인 의류만 전담 처리하는 전용 물류센터를 열었다. 주문 뒤 배송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기존 평균 41시간에서 32시간으로 줄이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형지I&C는 올 4월 자사몰인 ‘매그넘몰’을 열 예정이다. 패션그룹형지 계열사가 자사몰을 론칭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스마트경영학과 교수는 “패션 기업들이 온라인 자사몰을 확대하면서 소비자 접근성이 한층 개선됐다”며 “그간 내수 시장 중심이던 K패션이 앞으로는 글로벌 시장으로 더욱 빠르게 확장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제조 업체 “이젠 우리 브랜드 키우자”
한세·세아·영원·시몬느도 자체 브랜드
그런가 하면 세아상역, 영원무역, 시몬느 등 탄탄한 생산력을 갖춘 굴지 패션 OEM 회사들도 자체 브랜드를 보유하며 패션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기술력에 걸맞은 가격을 받고 회사 규모를 키우려면 자체 브랜드가 필수 요소기 때문이다.
글로벌세아는 2007년 일찌감치 세아상역을 통해 인디에프(옛 나산)를 인수하면서 패션 브랜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디에프는 조이너스, 꼼빠니아, 트루젠, 테이트, 바인드, 모스바니, 아위 등 패션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글로벌세아의 또 다른 계열사인 에스앤에이(S&A)는 골프웨어 브랜드 ‘톨비스트(TORBIST)’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에스앤에이의 주력은 임대 사업이었다. 세아상역, 앤디에프를 대상으로 한 동탄물류센터 임대료가 주 수입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2018년 야심 차게 톨비스트를 론칭하면서 패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어 지난해는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손을 잡고 하이엔드 여성복 브랜드 ‘존스’, 젠더리스 컨템포러리 브랜드 ‘컴젠’,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 ‘티-리버럴’을 대거 선보였다. 특히 존스의 경우 고급 수입 원단을 고객에 맞춰 테일러링해주는 서비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아웃도어·스포츠웨어 OEM 기업 영원무역과 ‘노스페이스’를 판매하는 영원아웃도어를 자회사로 둔 영원무역홀딩스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통한 유망 패션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이다. 미국의 친환경 소재와 신사업 유망 브랜드 2개 등 3곳에 직접 투자한 바 있는 영원무역홀딩스는 지난해 7월 850억원 규모의 ‘YOH CVC 1호 펀드’를 설립한 이후 미주·유럽·아시아 대륙별 유력 벤처캐피털이 운영하는 펀드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친환경 소재나 성장 가능성 높은 브랜드에 투자하는 식으로 차별화하고 있다.
세계 명품 가방 생산의 10%를 맡고 있는 시몬느 역시 2015년부터 자체 브랜드를 키워왔다. 시몬느는 원래 버버리, 마크제이콥스, DKNY 등에서 나오는 가방을 함께 개발 생산하는 OEM 회사였지만 40여년간 쌓아온 업력을 바탕으로 자체 브랜드 ‘0914’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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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랑 한배 타자” 버티컬 빌더 등장
무신사·대명화학 스타트업 두고 경쟁
‘무신사나 대명화학에서 투자 제안을 안 받았으면 아직 뜬 게 아니다.’
패션 스타트업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이다. 두 회사는 공격적으로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초창기부터 접촉해 지분을 획득하고 스타트업에 부족한 경영, 회계, 생산, 마케팅을 지원하며 육성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들을 업계 용어로 특정 분야 스타트업을 키운다 해서 ‘버티컬 빌더’ 혹은 ‘컴퍼니 빌더’라 칭한다.
예를 들면 무신사, 대명화학 등이 투자 가치가 있는 브랜드를 선별해 인수·투자를 이어가는 식이다. ‘커버낫’ ‘디스이즈네버댓’ 등을 매출 1000억원 이상으로 키운 배경에는 무신사의 지분 투자와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 업계 정설이다. 대명화학 역시 매출액 1조원이 넘는 코웰패션, 지난해 말본골프, 코닥어패럴로 급성장한 ‘하이라이트브랜즈’ 외에도 마뗑킴을 일찌감치 발굴, 육성한 플랫폼 ‘하고엘앤에프’ 등을 초기에 찾아내 대주주 지분을 확보한 후 다시 이들 회사가 스타트업을 투자, 육성하는 전략으로 사세를 급격히 늘려나가고 있다.
K패션 약점은 없나
해외 시장서 아쉬운 브랜드 파워
다만 해외 패션 강국인 영미, 프랑스, 이탈리아에 비해 아직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가 없다는 점은 K패션의 가장 큰 약점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브랜드 인지도가 현저히 뒤처지는 이유로 패션 산업이 국내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고급화된 해외 국가와 비교하면 국내 마케팅 인력과 시스템으로는 브랜드 파워를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가 문화 콘텐츠 사업과 연계해 수출 주요 산업으로 K패션을 육성,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과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업계 요청이 빗발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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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업체와 플랫폼 중심의 유통망 확장 전략도 시급하다.
후발 주자인 K패션은 해외 브랜드에 비해 인지도가 낮아 라이선싱을 통한 해외 진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성장으로 해외 진출 판로가 확대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장 규모는 작다. 조춘한 교수는 “유통 기업과 플랫폼 중심으로 판매망을 확보한 뒤 안정적 제품 개발, 디자인 개선, 마케팅 전략 구축 등을 통해 국내 브랜드의 경쟁력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K패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은 더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패션 브랜드가 늘어나면서 패션 시장 경쟁이 심화한 것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한다. 패션업계 내수 시장 경쟁은 이미 포화 상태라는 것. 고가 수입 브랜드가 대거 나타나면서 국내 브랜드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독창적 디자인을 갖춘 자체 브랜드 육성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혜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부 대기업은 해외 신명품 발굴로 볼륨을 키웠지만 이런 전략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국내 브랜드의 해외 진출이 필수다. 이때 중요한 것은 현지화 전략을 갖췄느냐다.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법률자문위원인 이재경 변호사(건국대 교수)는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해 유럽, 미국 등 패션 강국에서 현지화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면서 “국내 마케팅 인력·시스템보다는 현지 전문가의 도움을 더 많이 받아야 하고, 수익 위주가 아닌 모험적인 브랜딩으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를 육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수 경기 침체도 위협 요인이다. 엔데믹으로 방문객이 증가한 패션업계는 지난해 두 자릿수 성장률로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성장세가 한풀 꺾일 전망이다. 지난해는 보복 소비가 패션이나 명품 쇼핑으로 쏠렸지만 올해는 해외여행 등으로 소비 선택지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금리 기조로 인해 전반적인 소비 경향이 둔화해 오픈런을 이끌었던 젊은 명품족도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세계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트렌드에 발맞추는 것도 중요 과제로 꼽힌다. 패션업계는 유행을 즉각 반영해 대량으로 유통하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패션 산업이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이제는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앞세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일부 패션 기업들은 식물성·비건 등 친환경 소재로 의류를 제작하거나 재고 상품을 활용한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등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 문구로 튼튼한 옷을 오래 입어 버리는 옷을 줄이자는 의미를 소비자에게 전달, 친환경 기업의 선구자적인 브랜드로 떠오르기도 했다.
출처 매경이코노미 제2199호 (2023.03.08~2023.03.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