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입맛
단 건 좋아해. 쓴 건 그리 좋아하질 않아. 동생이 만들어주는 푸딩이나 초콜릿은 정말 좋아하지만 가끔 이모께서 챙겨주시는 한약은 정말 싫어한다. 달달한 휘핑크림을 산처럼 얹은 초콜릿 라떼는 없어서 못 마실 정도지만 아메리카노는 조금도 입에 대지를 못 한다. 김밥은 항상 우엉과 당근을 빼고. 오이는 원래도 좋아하질 않지만 냉면에 들어간 오이는 정말 싫어한다. 가지처럼 입 속에서 미끄덩거리는 음식도, 생선이나 닭처럼 내 손으로 발라먹어야 하는 음식도, 익힌 해산물처럼 비린내가 나는 음식도 먹기 싫어한다. 좋아하는 건 깔끔하고 달콤한 음식. 가끔 마늘을 집어 먹으면 주변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애기 입맛인 나.
우리 집 우유는 초등학교에 나오는 밍밍한 우유. 우리 집 물은 쓰디 쓴 보리차. 나는 보리차를 굉장히 싫어했다. 첫 맛도 끝 맛도 모두 써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우유를 마셨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부모님 덕에 우리 집에는 항상 우유가 넘쳐났고, 학교용으로 나오는 우유는 밍밍한 게 달콤하고 맛있었으니까. 나는 여전히 우유를 좋아한다. 쓰디쓴 커피마저도 한 순간에 달콤하게 만들어주는 우유.
“마티니. 너는?”
“깔루아 밀크.”
“넌 항상 그거더라.”
“나, 칵테일은 우유 들어간 것만 마셔.”
애초에 몸이 술을 거부하는 걸. 코가 알코올 냄새를 너무 잘 맡아서 조금만 도수가 높아도 알코올 외의 맛과 냄새는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달콤한 거. 도수 낮고, 달콤한 것. 캔 디자인은 항상 분홍색으로 되어 있는 것들. 복숭아 향이 물씬 올라오는 그런 술. 이거 말이야, 커피 맛 아이스크림 녹인 것 같은 그런 맛이야. 그래서 좋아해. 나의 앞에 놓인 부드러운 갈색의 칵테일을 홀짝인다. 달콤함에 나는 포스스 웃었다.
술은 마셔도 여전히 애기 입맛이다. 쓴 것도, 알코올 향이 진한 것도 전혀 입에 못 대겠어. 기본으로 나오는 과자를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는다. 영 맛이 없는데, 짭짤해서 먹을 만해. 예쁜 잔에 나온 친구의 칵테일 속 올리브가 도로록, 구른다. 마스카라를 한껏 칠한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껌벅였다. 친구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잔을 들어올렸다. 한 번 마셔볼래? 새빨갛게 칠해진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나는 저걸 마시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잔을 코끝에 가까이 대고 코를 찡긋 거린다. 가벼운 잔을 넘겨받고, 나는 잔속에서 찰랑거리는 그것으로 살짝 입술을 적셨다.
“으엑!”
그래,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서둘러 잔을 내려놓고 내 몫의 칵테일로 입가심을 한다. 마셔보겠다고 한 것은 나인데 괜히 친구를 노려본다. 맛은 없지만 짭짤해서 먹을 만한 과자를 입에 쏙 집어넣었다. 그녀는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는 분홍색으로 칠해진 입술을 삐죽였다. 유리잔에 남은 분홍색 립스틱 자국을 엄지로 쓱 문질러 지운다.
“나중에 또 불러, 같이 밥이나 먹자.”
“케이크 먹으러 가자. 맛있는데 알고 있어.”
“그게 밥이냐.”
사람이 평생 달달한 것만 먹고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한 입만으로도 온 몸에 달콤함이 퍼져나가게 했던 그 완벽한 케이크 가게의 완벽한 케이크를 떠올린다. 거기 진짜 맛있어. 나는 몇 번이고 강조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건 디저트로 먹자. 그렇게 나를 달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