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3월17일 저녁. 박억조와 시즈요는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 맥심에 있었다. 해마다 10월과 3월은 미국에서 보낸다. 3월은 최수진이 태어난 달이고 10월은 아들 에디의 생일 달이다. 3월17일. 오늘이 최수진의 생일이다. 식사 마시고 칵테일을 마시고 있을 때 한 청년이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세진 박 회장님이시지요? 청년의 태도는 정중했다. 그렇습니다만 백인영이라고 합니다 백인영.......? 박억조는 백인영이라는 이름이 기억에 떠오르지 않았다. 제일물산의.... 그때야 박억조는 백인영이라는 이름이 기억났다. 백병진의 아들로 지난번 밀수사건 때 매스컴을 장식했던 이름이다. 이거 실례했소. 자.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백인영은 박억조의 앉으라는 말에 몇 걸음 뒤에 서 있는 여자를 향해 눈짓을 하며 여보 하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 여자가 다가 왔다. 제 처올시다 조유진입니다 여인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박억조는 젊은 여자가 조정래의 딸이라는 걸 알아 차렸다. 앉아요 백인영과 조유진이 조심스럽게 앉았다. 수지. 백 회장의 자제 분이요 수지 최예요. 조 회장의 영애이신 것 같은데 박억조의 말에 조유진이 머리를 약간 숙였다. 그렇다는 뜻이다. 인사를 드리고 싶어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랬군요 잠시 말이 없었다. 백인영이 무언가 결심을 하듯 입을 열었다. 회장님. 아버지를 용서해 주십시요 박억조로서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말이 백인영의 입에서 나왔다. 박억조는 멍한 표정으로 백인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 잘못을 잊어 달라거나 앞으로 도와 달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회장님의 노여움을 풀어 주십사는 부탁입니다 한 동안 백인영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던 박억조는 입을 열었다. 미스터 백 예 내 나이 겨우 마흔 다섯이요. 마흔 다섯이라는 나이는 남을 미워하고 남과 원수지고 살기에는 너무 젊다는 나이가 아니겠소? 이번에는 백인영이 할 말을 잊었다. 수지. 우리 에디가 열 여섯 살이던가? 그래요 미스터 백은 올해 몇이 시요? 겨우 스무 일곱입니다 수지. 11년 후의 에디가 저런 훌륭한 청년이 되어 있으면 좋겠소 찰리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기르도록 노력할게요 백인영은 최수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소? 아닙니다. 우리는 제일물산 회장 아들과 효광물산 회장 딸의 신분을 벗어나 우리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 뉴욕에 사시요? 그렇습니다 오늘이 수진의 생일이지요 생일 축하합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 수지의 생일 파티를 할거요. 두 분 초대하면 참석해 주시겠소? 초대 만해 주신다면 기꺼이 참석하고 싶습니다. 수지. 당신의 생일 파티는 최고의 자리가 될 것 같소 찰리.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한시간 후. 뉴욕 최수진의 집에서는 네 사람이 쌈팬 잔을 놓고 앉아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하시는 일을 물어도 되겠소? 부끄럽습니다만 일 자리를 못 찾아 놀고 있습니다 일 자리를 못 찾아서라는 말은 자리가 있다면 일을 해 보겠다는 뜻이요? 사람은 놀고먹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오해를 하실 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우리들 뉴욕 생활은 맥심 같은 고급 레스토랑에 함부로 출입할 형편이 아닙니다. 오늘이 이 사람 생일입니다 어마나. 이건 우연한 일치네요.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수지 부인 미스터 백은 미국서 유통부문을 전공했다는 말을 들었소 만 장사하는 집 장남이라 그 길을 택했습니다 미스 조는 전공이 무엇이지요? 응용 미술입니다 수지. 이제 당신이 말할 차례 같소 LA와 뉴욕에 기업을 가지고 있어요. 두 분께서 도와주시겠어요. 네?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상식을 벗어난 제안이겠지요. 하지만 여기는 미국예요. 우리는 일해 줄 사람이 필요하고 두 분은 일자리가 필요하잖아요. 우리는 지금 유통전문가와 디자인과 디스플레이 전문 아티스트가 필요해요. 근무는 뉴욕도 좋고 LA도 놓아요. 어때요?. 두 분만 좋다면 채용하고 싶은데? 시켜 주시면 힘껏 해 보겠습니다 백인영이 아내 조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훌륭한 젊은이들이요 박억조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2 백인영은 뉴욕에서 박억조를 만난 한달 후에 최수진과 시즈요의 공동 출자로 설립한 수지 상사 총지배인으로 LA로 취임했다. 한국 5대 재벌의 하나인 제일물산 백병진의 장남과 백인영과 조정래의 딸 조유진 부부의 현지 취업은 교포 사회의 화제가 되었다. 그 소식은 제일물산 지사의 보고로 백병진의 귀에도 들어 왔다. 뭐야?. 그 애들이 LA 박억조 회사에서 일을 해? 정확히는 박 회장 부인이 LA에 세운 현지 법인 총지배인이라 합니다 오건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친 놈!. 회사 규모가 큰데 놀랐습니다 무슨 소리야? LA지사 보고에 따르면 수지 상사는 무역업에다 의류 유통과 리틀도쿄에 호텔과 레스토랑 체인까지 가진 대형 기업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말하는 총지배인은 경영을 이임 받은 사실상의 사장을 뜻한다고 합니다 사장이건 회장이건 백병진의 장남이 박억조 계열 회사 월급쟁이 한다는 그 자체가 아비 얼굴에 흙칠을 하는 일이야 백병진이 소리를 빽 지른다. 국내 언론을 막는 게 급할 것같습니다. 주간지 기자들이라고 알게 되면 흥미 위주의 기사를 쓸게 틀림없습니다 오 실장. 내일 LA로 가서 끌고 와 여름에 준공되는 전자 회사를 맡기시면 어떨까합니다만 오건진은 회사를 하나 때어 주는 조건으로 회유하자는 뜻이다. 전자는 그룹 주도적 사업이야. 둘째에게 맡기기로 했어 오건진은 전사업체를 둘째에게 맡기겠다는 백병진의 말에 놀랐다. 제일 그룹은 전자산업분야를 그룹의 미래 주력사업으로 중점 투자를 한다는 내부 결정을 해 놓은 상태였다. 전자를 차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그룹 후계 구도가 장남에서 차남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차남 백인식은 스무 네 살이다. 올해 일본에서 대학 나와 지금은 계열회사 과당으로 근무한다.. 회장은 둘 째가 그룹을 끌고 나갈 능력이 있다고 보는 걸까? 오건진은 백병진의 둘 때 아들 인식을 싫어한다.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거나 이해 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건진이 백인식을 싫어하는 건 교활성이다. 백인식은 철저히 자기를 위장할 줄 아는 젊은이다. 백병진은 한 달이면 반 이상 집을 비운다. 전국 주요 도시에 여자를 두고 있었다. 일본에까지 여자를 두고 있다. 장남 백인영은 철이 들면서 그런 아버지의 사생활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장남과는 달리 둘 째 백인식은 어쩌다 백병진이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구미를 맞출 줄 아는 아이였다. 오건진은 둘째의 그런 교활성을 오래 전부터 뚫어보고 있었다. 백인식도 오건진이 자신의 이중성을 뚫어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도 이제 떠 날 때가 되었구나 그룹 후계자가 백인식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오건진의 머리에 제일 먼저 떠 오른 것은 자신이 그룹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오건진이 제일물산에 입사한지 20년째 되는 해였고 오건진의 나이 마흔 네살이였다. 이번 일은 좀 더 유연하게 처리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백병진이 오건진을 힐긋 쳐다보았다. 의견을 물을 때의 버릇이다 젊은 시절 남의 회사에서 일하면서 세상을 배우라고 허락하신 걸 해 두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만 오 실장도 이제 여우가 다 됐군. 그래 알아서 해 백병진이 오건진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첫댓글 ㅈㄱ~~~~~~~~~~~``````````````````````````
감사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