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1/18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2011 - 대장경 속 '비밀암호' 석독구결 첫 선 [앵커멘트] 천 년 전 인쇄된 초조대장경 판본에는 비밀암호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경전을 우리말로 새겨 읽기 위해 옛날 스님들이 살짝 부호를 숨겨놓은 이른바 '석독구결'입니다. 초조대장경 속 석독구결이 처음으로 전시회에서 소개됐습니다. 이승은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천 년 전 인쇄된 초조대장경 판본입니다. LED 조명을 비추자 글자 사이에 날카로운 것으로 눌러 새긴 부호가 보입니다. 점 모양, 꺾쇠 모양, 간단한 한자처럼 생긴 것도 있습니다. 바로 '석독구결'입니다. 경전을 우리말로 새겨 읽기 위해 독법을 표시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유로울 여'와 '손 수' 글자 중간과 밑 부분에 점을 찍어놨습니다. '남은 손으로'라고 우리말로 새겨 읽으라는 뜻입니다. 신라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석독구결은 귀한 경전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나무나 뿔로 만든 '각필'이라는 날카로운 도구로 눌러 표시했습니다. [인터뷰:정재영, 한국기술교육대 교양학부 교수] "(8세기에) 일본의 훈점이나 가나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 하고도 역사적으로 연결이 됩니다. 동아시아 문자 교류사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자료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초조대장경 석독구결이 전시되는 것은 이번 문화재청 특별전이 처음입니다. 석독구결 외에도 경전 한 켠 경판을 새긴 각수 이름(智賢)에서도 천 년 전 조상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교 시집인 어제비장전 판본에서는 웅장한 자연미가 담긴 목판화를 통해 고려 불교미술의 화려함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노명구, 문화재청 학예연구관] "국보가 19점, 보물이 13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아마 올해 전시된 어느 대장경 전시보다도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대장경 수가 가장 많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해인사는 이번 전시 뒤에는 팔만대장경판을 가급적 일반에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어서 이번 전시는 가까이서 팔만대장경판을 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YTN 이승은입니다. /YTN 2011-11-19 05:34
2008 -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 “짧은 기간 민주화 성취 인상적… 5·18정신은 다른나라에 표상” ㆍ스티븐스 美대사 5·18민주묘지 방문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사진 왼쪽 두번째)가 18일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 민주열사들의 넋을 기렸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190132535&code=100100
2005 - 부산 APEC 정상회의 공식 개막(11.18~19) [APEC]1차 정상회의 공식 개막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제1차 부산 APEC 정상회의가 18일 오후 2시 벡스코(BEXCO.부산전시컨벤션센터) 2층 대회의실에서 공식으로 개막된다. 부산 APEC 회의는 지난 12일 사실상 막을 올려 일주일째를 맞고 있지만 말 그대로의 `정상들이 모이는 회의'는 이날 시작되는 것이다. 정상회의에는 의장인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등 21개국 정상 또는 대표가 참석한다. `무역자유화의 진전'을 주제로 통상.경제 분야에 집중되는 이날 회의에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각각 2010년과 2020년까지 무역투자 자유화를 이루기로 했던 `보고르 목표'의 달성을 촉진하기 위한 중기계획인 `부산로드맵'을 발표한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세계사 발전과 인류번영에 기여하는 APEC의 역할을 강조할 예정이다. 2시간의 정상회의 직후에는 ABAC(기업인자문회의)와의 대화를 통해 WTO(세계무역기구) DDA(도하개발어젠다) 협상의 타결을 위한 특별성명, 보고르 목표 달성, 무역원활화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상들은 벡스코 1층에 마련된 IT전시회를 관람한 뒤 자리를 옮겨 만찬 및 문화공연을 감상하게 된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양자회담을 갖고 양국간 관심사에 대해 논의한다. 특히 이날 회담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유감 표명이 있을 것으로 보여 고이즈미 총리의 반응이 주목된다. 그러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개인 차원의 참배일 뿐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보여 한일관계 경색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또 오전에는 부산 롯데호텔에서 사흘째 열리는 최고경영자회의(CEO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한편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 등이 정상회의 참석차 이날 부산에 도착한다. (부산=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2005-11-18 14:04 1132239871&cDateYear=2005&cDateMonth=11&cDateDay=18&
- 금강산 관광 기념 (1998.11.18. 발행) 한반도 분단 이후 한국에 거주하는 일반인들이 관광 목적으로 북한지역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해항을 떠난 금강호는 19일 새벽 3시쯤 북방어로한계선을 통과, 출항후 10여시간이 지난 오전 4시쯤 북한 장전항에 도착해 구룡폭포, 만물상, 해금강 등 3개 코스로 나누어 관광한 후 22일 새벽 무사히 동해항에 도착했다. 이번 관광은 남북간 경제협력과 인적교류를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됐다. /조선
한국은 1980년 4월 18일 짐바브웨 독립 축전을 보냄으로써 국가승인을 하였다. 양국은 1994년 11월 18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95년 10월 9일 주(駐)짐바브웨 대한민국대사관을 개설하였다. 짐바브웨는 북한과는 한국보다 먼저 수교하고 1995년 공관도 개설하였다. (짐바브웨 대한민국대사관) /naver
- Election of 1st President B. Yeltsin 1992 - 옐친 러시아 대통령 방한
후사크 [Husak, Gustav, 1913.1.10~1991.11.18]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가. 브라티슬라바 출생. 1933년 공산당에 입당하고, 1937년 코메니우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 점령하에서 저항운동에 참가, 1945년 4월 당 중앙위원이 되었고, 전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정부 요직에 취임하여 활약하였다.
- 5.18 민주화운동 30주년 (2010.5.18 발행)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를 위한 광주특위 청문회가 1988년 11월 18일부터 열렸다. 광주특위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약칭으로 1988년 7월 13일 구성된 바 있다. 청문회에서는 5.17비상계엄 확대조치가 일부 정치 군인들에 의한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취해졌을 가능성이 드러났으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조작여부, 광주사태에서의 미국의 역할, 공수부대의 지휘책임 등이 중점적으로 추궁됐다. 핵심적인 발포문제는 피해자측과 계엄군측 증인들 간에 주장이 엇갈려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의 과잉진압이 실제로 있었고 이것이 사태악화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여러 증인들에 의해 드러나기도 했다. /조선
체신부에서는 1987년 11월 18일부터 24일까지 7일간을 제17회 우표취미주간으로 정하여 유익하고 건전한 취미생활 중의 하나인 우표수집을 장려하고 있으며 이 기간중 서울중앙우체국 내에 있는 우정박물관에서 전국우표전시회를 개최한다. 오늘날 우표는 우편요금의 납부를 위한 수단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 문화,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 걸쳐서 국내외에 널리 선전할 수 있는 외교관의 역할을 할 수가 있어 우표수집은 세계적으로 점점 각광을 받는 추세이고 우취인구 또한 날로 증가하고 있다. 체신부에서는 예년과 같이 올해도 우취주간을 설정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우표수집에 대한 관심과 우취인구의 저변확대를 바라며 이 특별우표를 발행한다. (우표발행안내) /k-stamp
- 닐스 보어 탄생 100주년 기념
- 보어의 수소원자구조 50주년, 원자구조
- Denmark, 500 Kroner (Banknote)
1962 -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Bohr, Niels) 사망 보어 [Bohr, Niels Henrik David, 1885.10.7~1962.11.18] 덴마크의 물리학자. 1885년 10월 7일 코펜하겐에서 출생하였다. 1903년 코펜하겐대학교에 들어가 물리학을 공부하고, 1911년 논문 〈금속의 전자론(電子論)〉으로 학위를 받았다.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J.J.톰슨, 맨체스터대학교의 E.러더퍼드 밑에서 연구하였다. 당시 러더퍼드의 연구실에서는 α선 산란(散亂) 실험이 행해졌고, 러더퍼드는 원자의 핵모형(核模型)을 제출하였다. 귀국 후 1912년 코펜하겐대학교 강사가 되어, 원자모형 연구에 착수, 러더퍼드의 모형에 플랑크의 양자가설(量子假說)을 적용함으로써 원자이론을 세우고, 수소의 스펙트럼계열 설명에 성공하였다(1913). 후에 이것은 정상상태(定常狀態)의 개념을 전제로, 양자조건 및 진동수 조건으로 규정된, 보다 일반적인 원자이론으로 정리되어 보어의 원자이론이 되었다. 이 이론으로 고전론(古典論)과 양자론이 결합되었고, 양자의 개념을 처음으로 복사(輻射) 이외의 경우에도 적용, 원자의 구조와 원자스펙트럼을 밝혀졌으며, 전기(前期)양자론 연구의 계기가 되어, 후에 양자역학으로 발전하였다. 1916년 코펜하겐대학 이론물리학 교수가 되었고, 강좌에 부속된 연구소 신설을 제의, 1921년 그 소장이 되었다. 이것이 코펜하겐대학 이론물리학연구소이며, 새로운 물리학 연구의 중심으로서, 많은 인재를 길러 물리학 발전에 공헌하였다. 이 연구소에서 양자론, 즉 양자역학의 개발을 추진했는데, 특히 대응원리(對應原理)와 상보성원리(相補性原理)를 제창했다. 1922년 원자구조론 연구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30년경부터 연구는 원자핵으로 기울어, 원자핵을 원자의 경우에 비해 보다 고전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지적, 핵반응을 설명하는 액적모형(液滴模型)을 제출, 증발이론으로서 핵반응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에 건너가 맨해튼계획에도 참가하였고, 전후에는 코펜하겐으로 돌아갔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원자무기의 발달에서 생긴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들 문제의 연구를 공개하도록 주장, 국제연합에 공개장을 보내는 등(1950) 정치적 행동도 취하였다. /naver
1959 - 영화 <벤허> 뉴욕 시에서 개봉 《벤허》(Ben-Hur)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9년 영화로, 미국의 작가 루 월리스의 1880년작 동명 소설 《벤허》(원제:Ben-Hur: A Tale of the Christ)을 원작으로 하여 제작되었다.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원작 소설에도 나오는 멧살라와 벤허의 치열한 전차 경기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하여 지금도 호평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유선방송 MBC Drama에서도 소개되었다. /위키백과 Ben-Hur (or Benhur) is a 1959 American epic film directed by William Wyler and starring Charlton Heston in the title role, the third film version of Lew Wallace's 1880 novel Ben-Hur: A Tale of the Christ. It was composed by Miklós Rózsa. It premiered at Loew's State Theatre in New York City on November 18, 1959. The film went on to win a record of eleven Academy Awards, including Best Picture, a feat equaled only by Titanic in 1997 and The Lord of the Rings: The Return of the King in 2003. Plot http://en.wikipedia.org/wiki/Ben-Hur_(1959_film)
1958 - 국가보안법 신안 국회에 제출-보안법파동의 시작 이승만 정권은 1958년 들어 진보당사건(1.20)과 KNA여객기납북사건(2.16) 등이 잇달아 터지자 간첩 색출과 반공체제 강화를 명분으로 국가보안법을 대폭 강화하는 개정안을 8월 11일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11월 18일에는 이 개정안에 언론규제조항까지 추가 삽입하는 2차개정안을 다시 제출했다. 간첩개념 확대, 불고지죄 엄벌, 변호사 접견 금지, 2심제 폐지, 언론보도 규제 등을 골자로 한 보안법은 헌법이 정하는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 요소가 많아 논란이 많았다. 민주당 소속 81명, 무소속 10명 등 야당의원 91명은 `보안법개악반대투위`를 구성하고 공청회와 옥외집회를 준비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집회자체가 불가능했다. 신문편집인협회도 연일 모임을 갖고 반대성명을 발표했으나 자유당은 요지부동이었다. 자유당은 마침내 12월 19일 오후 3시 국회 법사위에서 자당 국회의원만으로 법안을 3분 만에 날치기로 가결시켰고, 12월 24일 한희석 국회 부의장은 전격적으로 경호권을 발동, 무술경위 3백여명을 국회 본회의장에 투입한 후 보안법 개정안과 1959년도 예산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조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10월 한 · 미 간에 상호 방위를 목적으로 체결한 동맹조약이다. /외교사료관 http://www.diplomaticarchives.go.kr
- Paul Eluard, drawing by Picasso 1952 -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Eluard, Paul) 사망 엘뤼아르 [Eluard, Paul, 1895.12.14~1952.11.18] [어제의 오늘]1952년 자유의 시인 엘뤼아르 타계 ㆍ과로·협심증 겹쳐 ‘하늘나라로’ “하늘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불을 만들었다/ 동지가 되기 위한 불/ 겨울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불을.”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 폴 엘뤼아르는 1895년 파리 북쪽 생드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외젠 에밀 폴 그랭델.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하고 스위스의 산골마을 다보스에서 요양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소년의 영혼에 시적 감수성이 새겨진 것은 1911~13년 요양소에서였다.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등 프랑스 시인들과 휘트먼을 비롯한 미국 시인들의 시에 자극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구정은기자 ttalgi21@kyunghyang.com /경향신문 2009-11-17 17:47:4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1171747475
1941 - 독일의 물리화학자 발터 네른스트(Nernst, Walther) 사망 네른스트 [Nernst, Walther (Hermann), 1864.6.25~1941.11.18] 독일의 물리화학자. 서(西)프로이센의 부리젠 출생. 취리히 ·베를린 ·그라츠 ·뷔르츠부르크 등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그라츠대학에서는 후에 금속전자론의 바탕이 되는 네른스트효과를 발견하였다(1886∼1887). 1887년 라이프치히대학 물리화학연구소에서 오스트발트의 조수로 일하면서 전지의 기전력 발생의 이론을 세웠으며, 용해도곱의 개념을 도입하였다(1888∼1889). 1894년 괴팅겐대학 물리화학 교수가 되었으며, 1905∼1933년까지 베를린대학 물리화학교수로 일하였다. 1906년 열역학 제3법칙(네른스트의 열정리:네른스트-플랑크의 정리라고도 한다)을 발표하고 “물질을 절대영도로 하는 열량계를 만들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그 밖에 저온에서 고체의 비열 측정(네른스트린데만 비열식), 액정(液晶) ·유전율 측정 등 열화학의 연구에 많은 공적을 이룩함으로써 1920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제1차세계대전 후에는 광화학연구로 방향을 돌려, 염소와 수소의 반응메커니즘에 처음으로 에너지양자를 도입하여 원자연쇄반응이론을 성립시켰다(1918). 또 전극전위차를 열역학적으로 구하는 네른스트방식의 도입과 적외선분광분석의 광원(光源)으로서 중요한 네른스트전구를 발명하였다. 주요저서에 《신(新)열이론에 의한 물리화학의 이론과 실험》이 있다. /네이버
- '증기선 윌리'(1928년)와 '환타지아'(1940년)
20세기 만화영화와 캐릭터 산업을 이끌어온 ‘미키 마우스’가 탄생한 곳은 기차 속이었다. 1928년 아내 릴리와 함께 기차여행 중이었던 월트 디즈니는 문득 창고 속에서 궁핍하게 생활하던 시절, 그가 주는 빵부스러기를 받아먹어 친구처럼 지내던 쥐 ‘몰티마’를 떠올렸다. 몰티마의 모습에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채플린의 이미지를 덧씌우면 어떨까. 디즈니는 쥐의 이름을 ‘몰티마 마우스’로 지었다. 그러나 아내는 몰티마 대신 ‘미키’를 제안했고 그 순간 ‘미키 마우스’는 20세기 최고의 스타 자리를 예약했다. 그림은 동료 만화가 어브 아이워크가 형상화했다. 눈이 왕방울만하고 손에 장갑을 끼지 않은 미키 마우스는 먼저 단편영화 ‘미친 비행기’와 ‘갤러핀 가우초’에 등장했으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 해 전 성공을 거둔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를 떠올린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에게 제 목소리를 찾아 주기로 하고 자신이 직접 미키의 목소리를 맡았다. 1928년 11월 18일, 미키 마우스가 등장한 최초의 유성 만화영화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가 뉴욕 콜로니 극장에서 개봉됐다. 영화는 개봉되자마자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 몰아닥친 세계대공황에도 미키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파산 직전에 있던 한 회사는 미키를 그려넣은 시계를 2년간 250만개나 팔아 디즈니에게 사례금을 지급했다. 캐릭터가 돈이 된다는 최초의 사례였다. /조선
셰퍼드 [Shepard, Jr., Alan B(artlett), 1923.11.18~1998.7.21]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1961년 5월 5일 프리덤(Freedom) 7호를 타고 185㎞ 높이에서 15분 동안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채 비행을 했다. 이 비행은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처음으로 지구 주위를 궤도 비행한 지 23일 후였다. 1944년 메릴랜드 아나폴리스의 미국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태평양에서 복무했다. 해군 시험비행사가 되었고, 1958년 로드아일랜드 뉴포트의 해군대학을 졸업했다. 1959년에는 미국 머큐리 계획에 참여한 7명의 초기 우주비행사 가운데 한사람이 되었다. 1971년 1월 31일부터 2월 9일까지 실시된 아폴로 14호 비행(S. A.루사와 E. D.미첼과 함께 탑승)을 지휘했는데, 이 비행계획에는 달 고지대에 처음으로 착륙하도록 되어 있었다. 1971~75년 행정직으로 일했으며, 그뒤 해군과 우주계획에서 은퇴하여 텍사스에서 개인 운수업을 했다. /브리태니커
프루스트 [Proust, Marcel, 1871.7.10~1922.11.18] [책갈피 속의 오늘] 1922년 佛작가 프루스트 사망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입에서 녹아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 sec&sid1=103&oid=020&aid=0000322902
1916 - 1차 세계 대전 중 60,000명 이상의 전사자를 낸 솜므 전투가 종결됨 솜므 전투(솜전투) [Battle of the Somme] ① 제1차(1916년 7월 1일∼11월 18일):7월 1일 영국 보병이 돌격전을 감행하였는데 영국군은 역사상 최고 수에 달하는 하루 1만 9000명의 전사자와 4만 1000명의 부상자를 냈다. 13일 영국 기병부대가 유럽 역사 최후의 대규모 돌격을 감행했으나 기관총 사격을 받고 큰 손실을 입었다. 9월 15일에 영국군이 세계 최초로 탱크를 출동시켰으나 독일군 전선을 돌파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4개월간의 전투에서 연합군은 영국군 42만, 프랑스군 19만 5000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약 10km밖에 전진하지 못했다. 독일군의 사상자는 65만에 달하였다.
머서 [Mercer, Johnny, 1909.11.18~1976.6.25] 본명은 John H. Mercer. 미국의 작사가·가수·작곡가. 캐피털레코드회사(Capitol Records)를 설립했으며 여러 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에도 기여했다. 1,000여 편 이상의 가사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머서는 작곡가 호기 카마이클, 해리 워런, 헨리 맨시니, 리처드 화이팅, 해럴드 앨런, 제롬 컨, 지미 맥휴, 지미 밴 휴센 등의 작곡가들과 함께 지속적인 인기를 누린 수많은 대중가요를 만들었다. 그런 노래들 가운데는 〈Lazy bones〉·〈I'm an Old Cowhand〉·〈구디 구디 Goody Goody〉·〈지퍼스 크리퍼스 Jeepers Creepers〉·〈Hooray for Hollywood〉·〈You Must Have Been a Beautiful Baby〉·〈밤의 블루스 Blues in the Night〉·〈저 늙은 흑인 마술사 That Old Black Magic〉·〈로라 Laura〉·〈Ac-cent-tchu-ate the Positive〉·〈Come Rain or Come Shine〉·〈On the Atchison, Topeka and the Santa Fe〉·〈낙엽 Autumn Leaves〉·〈Moon River〉·〈셔레이드 Charade〉·〈장미와 포도주의 나날들 Days of Wine and Roses〉 등이 있다. 버지니아에서 교육받고 그곳 극장들에서 활동했던 머서는 1920년대 후반 뉴욕 시로 가서 얼마 동안 단역배우로 활동했으나 주목을 끌지는 못하다가 에버렛 밀러와 함께 만든 〈Out of Breath and Scared to Death of You〉가 시사희극 〈Garrick Gaieties〉(1930)에 포함되었다. 이 작품에 출연했던 무용수 진저 미핸과 결혼했고 작곡가 버넌 듀크와 작사가 E. Y. 하버그를 만나 이들로부터 다른 작곡가들을 소개받기도 했다. 머서는 기지가 넘치는 자신의 성격이 남부의 자연과 어우러져 활기차고 낭만적이면서 남부의 정취를 풍기는 재치있는 가사를 썼다. 음악 출판업자를 통해 작업을 하다가, 1934년부터는 폴 화이트먼 오케스트라에 사회자와 가수로 참여하는 한편 뮤지컬 영화를 위한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다. 직접 출연한 영화로는 〈Old Man Rhythm〉(1935)·〈Beat the Band〉(1935)가 있다. 1939년 베니 굿맨의 라디오 쇼 〈낙타 대상 Camel Caravan〉에 출연했으며 밥 크로즈비의 여름 라디오 쇼에서도 일했다. 브로드웨이 무대를 위해 해럴드 앨런과 공동으로 〈세인트루이스 여자 St. Louis Woman〉(1946)·〈새러토가 Saratoga〉(1959)를 만들었으며 진 드폴의 곡에 가사를 붙여 〈Li'l Abner〉(1956)를, 로버트 에밋 돌런의 곡에 가사를 붙여 〈Texas, Li'l Darlin'〉(1949)·〈Foxy〉(1964)를 내놓았다. 1942년 2명의 동업자와 함께 캐피털레코드회사를 설립해 스카웃 담당과 사장직을 맡았고, 가수로서 그는 잭 티가든과 빙 크로즈비, 냇 킹 콜과 함께 듀엣으로 음반을 취입했다. 1950, 1960년대 텔레비전 진행을 맡았고 그 자신의 노래들을 부르기도 했다. 〈On the Atchison, Topeka and the Santa Fe〉(1946, 워런 작곡)·〈In the Cool, Cool, Cool of the Evening〉(1951, 카마이클 작곡)·〈Moon River〉(1961, 맨시니 작곡)·〈Days of Wine and Roses〉(1962, 맨시니 작곡)에 붙인 가사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그의 가사는 〈셔레이드〉(1963)·〈The Great Race〉(1965)·〈맨발의 공원 Barefoot in the Park〉(1967)·〈내 사랑 릴리 Darling Lili〉(1970) 등의 영화에서도 나타났다. 가요작곡가 명예협회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브리태니커
1903년 11월 18일 워싱턴에서 파나마 대표 필리프 뷔노 바리야와 미국 국무장관 존 M. 헤이는 파나마 지협의 운하 건설 부지를 미국에 영구적으로 양도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미국이 신생공화국 파나마에 금전적 보상과 보호 보장을 하고, 파나마는 그 대가로 미국에 파나마 지협을 가로지르는 운하의 독점적 건설권을 부여할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은 1903년 1월 22일 당시 파나마를 통치하던 콜롬비아에게 비슷한 조건을 제시했다가 거부당했다. 파나마는 미국의 도움으로 그해 11월 3일 콜롬비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했고, 3일 후 미국은 독립을 승인했다. 미국은 이 운하지역을 통치하고 요새화할 수 있게 되었으며, 파나마는 그 대가로 독립을 보장받았다. 또한 파나마는 미국으로부터 일시불로 1,000만 달러를 지급받고 9년 후부터는 연간 25만 달러를 지급받게 되었다. 이 조약은 1904년 비준되었고, 1914년 운하가 완공되었다. 조약의 해석문제나 미국의 해당지역 파나마인에 대한 차별 등으로 인해 간헐적인 분쟁이 발생했으며, 1978년에는 미국이 해당지역에 대한 통제권과 2000년 이후 운하에 대한 통제권을 파나마에 이양한다는 내용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브리태니커
오르만디 [Ormandy, Eugene, 1899.11.18~1985.3.12] 본명은 Jenö Ormandy Blau. 헝가리 태생 미국의 지휘자. 후기 낭만주의 음악과 20세기 초반 음악에서 역량을 발휘했다. 부다페스트 왕립음악원을 졸업했으며 14세 때 그곳에서 예뇌 후보이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17세의 어린 나이로 바이올린 교수가 되어 중부 유럽으로 연주여행을 가기도 했다. 미국을 여행하면서 뉴욕 시에 매혹된 그는 의사당 극장 관현악단에서 바이올린 연주 대신 무성영화를 반주했다. 1924년 상임지휘자를 대신하여 지휘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지휘에 전념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는 라디오 방송을 위한 가벼운 클래식 음악을 지휘하기 시작했고 여름 음악회에도 모습을 보였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주요음악회 시즌 동안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보조하는 부지휘자의 지위에 올랐다. 미니애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계약이 체결되어 1931~36년 그곳에 머무르게 되고 일련의 음반 취입으로 미국 내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36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로 다시 돌아와서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와 지휘를 분담했다. 1938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가 되었으며 1980년 은퇴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오르만디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특색이 된 상큼하고 부드러운 현악기 음색을 개발했다. /브리태니커
1886 - 미국의 제21대 대통령 체스터 아서(Arthur, Chester) 사망 아서 [Arthur, Chester Alan, 1829.10.5~1886.11.18] 체스터 엘렌 아서(Chester Alan Arthur, 1829년 10월 5일 - 1886년 11월 18일)는 미국의 제 21대(1881년-1885년) 대통령이다. 아서는 제 20대 대통령 제임스 A. 가필드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되기 전까지 공화당 소속 변호사였다. 그러나 1881년 7월 2일, 가필드가 찰스 기토에게 저격되어 그해 9월 19일에 사망함으로써 대통령 직위를 승계하게 되었다.
1884 - 국내 최초 우표 발행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개화파 홍영식과 생사를 같이 했다. 홍영식은 첫 우정총감에 올라 첫 우표를 발행하는 공을 세웠지만 갑신정변 실패로 그가 참살되면서 우정총국도 폐지됐기 때문이다.
[어제의 오늘]1884년 한국 최초의 우표 발행 ㆍ구한말 우정국 개국기념 ‘문위 우표’ 첫선 1881년 조선이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할 때 주요 시찰 대상은 군사제도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구한말 개화파인 홍영식의 관심은 유독 우표로 쏠렸다. 그는 일본의 역체국(현 우체국)에 찾아가서 우편업무를 적극적으로 조사했다. 직접 비싼 돈을 내고 사람을 고용하지 않아도 주소를 적은 봉투에 일정한 값의 우표만 붙이면 전국 방방곡곡으로 배달되는 시스템에 크게 매료됐던 것이다. ‘일본 우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에지마 히소카는 자서전 <우편창업담>에서 당시 그와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조선에도 빨리 우편을 개설하라고 권고했다고 적었다. 홍영식은 귀국 후 고종황제에게 우편제도가 국가의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상소문을 올렸다. 정보의 흐름이 많아지고 빨라지는 것, 또 모두가 공평하게 그 정보의 연결망을 이용하는 것은 오늘날의 인터넷 혁명과도 같은 커다란 변혁일 터였다. 홍영식은 1883년에는 미국 뉴욕의 우체국과 전신국을 돌아본 뒤 귀국해 고종에게 또다시 국가 차원의 우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렇게 해서 1884년 음력 3월27일(양력 4월22일), 옛 체신부(현 정보통신부)의 전신인 우정총국이 만들어졌고, 홍영식이 장관격인 초대 우정총판에 임명됐다. 건물은 당시 궁중의 약방인 전의감 건물을 고쳐 썼는데, 현재 체신기념관인 이곳을 요람으로 우편 제도의 골격이 형성됐다.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경향신문 2010-11-17 21:42:5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 201011172142595&code=100100&s_code=ap005 1884 - 우정총국, 우정업무 개시 조선 후기인 1884년(고종 21년) 11월 18일, 우리나라도 역참제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통신제도로 우체업무를 관장하는 관청인 우정총국을 개국했다. 이에앞서 개화기 선각자 홍영식은 일본과 미국 등을 둘러본 후 근대 우정제도 도입이 절실함을 느끼고 고종에게 건의하여 1884년 4월 22일 우정총국직제를 공포했다. 우정총국 청사는 견평방(堅平坊)에 있던 전의감(典醫監)을 고쳐 사용하였고, 병조참판 홍영식을 우정총판으로 임명했고, 박영효 등 15명이 사사(司事)가 되어 사무를 분담했다. 우정총국과 인천분국이 먼저 개국하여, 최초의 근대우표 5문, 10문의 2종이 발행됨으로써 한국최초의 근대식 우편업무가 시작되었다. 이는 비록 일본보다는 10년 뒤쳐졌지만 청국보다는 앞선 것이었다. 조선정부는 일본, 영국, 홍콩 등과 우편물교환약정을 맺고 우정업무를 개시했으나 12월 4일 우정총국 청사개업 축하연날 갑신정변이 발발하여 12월 9일 문을 닫았다. 1895년 우체사가 개국할때까지 조선은 역참제를 다시 이용했어야 했다. /조선
- The Defenders and the - 'Statue of Justica(Justice), Breaking of the Sword Supreme Court of Canada, Ottawa
- Unveilling of the Canadian War Memorial at Vimy Ridge, July 26, 1936
1876 - 캐나다의 기념비 조각가 월터 올워드(Allward, Walter) 출생 올워드 [Allward, Walter Seymour, 1876.11.18~1955.4.24] Walter Allward is one of Canada's most esteemed sculptors of the late 19th and early 20 centuries and is responsible for creating some of Canada's finest sculptures, and monuments. His most famous work is the Canadian War Memorial at Vimy, in France, winning a competition of some 160 submissions. It commemorates the capture of Vimy Ridge by Canadians in April 1917, during a four day battle in which some 3,600 Canadians died. http://www.findagrave.com/cgi-bin/fg.cgi?page=gr&GRid=62697116
1860 -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작곡가·정치가 파데레프스키(Paderewski, Ignacy) 출생 파데레프스키 [Paderewski, Ignacy Jan, 1860.11.18(6)~1941.6.29(27)]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작곡가. 어려서부터 음악의 기초교육을 받고 1872년 바르샤바음악원에 들어가 피아노를 전공하였다. 졸업 후 잠시 모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다가 1883년 독일에서 키르와 우르반에게 대위법 ·관현악법 등을 배웠다. 스트라스부르음악원 교수로 있으면서 다시 거장 레셰티츠키에게 사사한 뒤 1887년 빈에서 정식으로 데뷔, 이름을 떨쳤다. 1909년 바르샤바음악원의 원장이 되고, 1913년 도미하여 연주생활을 하다가 1919년 폴란드공화국이 탄생하자 초대 총리가 되기도 하였다. 피아니스트로서는 쇼팽 ·베토벤 ·바흐 연주에 뛰어났으며, 작곡가로서는 오페라 《만루 Manru》(1901)를 비롯하여 《교향곡 b단조》(1909), 피아노곡 ·미뉴에트, 그리고 6곡의 유머레스크 등의 작품을 남겼다. /naver
길버트 [Gilbert, William Schwenck, 1836.11.18~1911.5.29] 영국의 극작가. 소설가의 아들로 태어나 런던대학교를 졸업하고 연극평론가로 활약하였다. 1871년 작곡가 A.S.설리번과 한 쌍이 되어 많은 코믹오페라 대본을 써서 길버트-설리번 오페라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주로 사보이극장에서 상연하였기 때문에, '사보이 오페라'라는 별명이 붙었다.
1836 - 쿠바의 혁명군 사령관 고메스 이 바에스(Gomez y Baez, Maximo) 출생 고메스 이 바에스(Gómez y Báez, Máximo, 1836.11.18~1905.6.17] 쿠바의 혁명군 사령관. 쿠바가 독립을 얻기 위해 스페인과 싸운 10년 전쟁(1868~78)과 약 20년 뒤 다시 스페인과 싸워 마침내 독립을 얻은 전쟁(1895~99)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성직자가 되라는 어머니의 요구를 뿌리치고 16살에 아이티 군대와 싸운 뒤 쿠바군을 이끌고 스페인 군대와 싸웠으나 실패하자 쿠바로 가서 농사를 지었다. 1868년 쿠바 혁명이 일어나자 중사로 입대해 곧 부사령관이 되었고 1870년에는 총사령관이 되었다. 뛰어난 전략가로서 게릴라군을 조직·지도해 무장이 잘된 스페인군과 싸웠으나 10년 전쟁은 실패로 끝나고 쿠바인은 스페인에게서 일반사면과 제한된 양보만 얻어냈다. 고메스를 비롯한 혁명지도자들은 스페인과 타협하지 않고 망명길에 올랐다. 1895년 쿠바에서 다시 혁명이 일어나자 쿠바로 돌아와 혁명군을 지휘했다. 그는 게릴라 활동을 통해 미국이 자국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하자 그를 비롯한 쿠바 애국자들의 공적은 완전히 헛수고로 돌아갔다. 1902년 마침내 쿠바에 부분적인 자유가 보장되어 원한다면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었으나 공직을 바라지 않았다. /브리태니커
노르덴시욀드 [Nordenskiöld, (Nils) Adolf Erik, 1832.11.18~1901.8.12] 스웨덴의 지리학자, 탐험가. 핀란드의 헬싱키 출생. 1857년 헬싱키대학을 졸업하였다. 1858년 스웨덴으로 이주, 그 해 최초의 북극탐험을 시도하여 스피츠베르겐에 도달하였다. 스웨덴 국립과학박물관 광물부 주임교수로서, 1861∼1873년 4회에 걸쳐 스피츠베르겐을 탐험하여 이 지역 지질학 연구에 큰 공헌을 하였다. 1870년 서(西)그린란드를 탐험하여 북위 81 °42 '지점까지 탐험하여 내륙의 빙하를 연구하였다. 1878년 6월 메가호를 타고 칼스크로너를 출발하여 베링해협 부근의 빙해에서 겨울을 보내고 1879년 9월 일본 요코하마에 기착, 수에즈운하를 거쳐 1880년 유럽에 귀착, 3세기 이상 탐험가들의 꿈이었던 ‘북동항로(北東航路)’를 개척했다. 1880년 남작 작위를 수여받고, 1883년 다시 그린란드를 탐험, 1893년 스웨덴 과학아카데미회원이 되었다. 지질학 ·광물학 ·지리학을 연구하고 만년에는 옛날 지도를 수집 ·연구하여 지리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naver
1810 - 미국의 식물학자 아사 그레이(Gray, Asa) 출생 그레이 [Gray, Asa, 1810.11.18~1888.1.30] 미국의 식물학자. 뉴욕주(州) 소코이트 출생. 1831년 페어필드의과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식물연구로 전공을 바꾸어 J.토리의 조수가 되었으며(1833), 북아메리카의 식물분포 연구에 종사하였다. 뉴욕의 자연사박물관 관장을 거쳐 1842년 하버드대학 식물학 교수가 되어 1872년까지 재직하였다. 그 동안 북아메리카와 유럽, 북아메리카와 일본의 식물상(植物相)을 비교하여 식물의 구조와 지리적 관계를 고찰하였다. C.R.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였으며, 이에 관하여 J.L.R.아가시와 논쟁하였다. /네이버
- J. N. Niepce and Daguerre
1787 - 프랑스의 화가, 사진 발명가 루이 다게르(Daguerre, Louis) 출생 다게르 [Daguerre, Louis Jacques Mandé, 1787.11.18~1851.7.10] 프랑스의 화가, 사진발명가. 파리에서 디오라마(반투명상의 캔버스에 풍경화를 그리고, 이에 반사광선이나 투명광선을 써서 변화시키면서 보여주는 것)의 원화(原畵) 화가로서, 카메라 암상자(暗箱子)를 쓰던 때에, 그 화상을 기계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의도에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1829년 같은 의도로 연구에 착수한 프랑스의 J.N.니에프스와 공동으로 연구하기로 10년의 계약을 맺어 니에프스가 발명한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를 다시 발전시켜 1837년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는 독자적인 사진현상 방법을 발명하였다. 이것은 식염의 포화용액에 의한 현상법이며 니에프스가 죽은 뒤에 발명된 것이었다. 이 발명으로 프랑스 정부는 다게르에게는 6,000프랑, 니에프스의 아들에게는 4,000프랑의 연금을 주었고, 더욱이 파리 천문대장 D.아라고를 통하여 1839년 8월 19일 프랑스 학사원의 과학 ·미술 아카데미합동회에서 정식 발명의 승인 강연을 하게 하였다. 근대 사진술의 시조이다. /naver
베버 [Weber, Carl Maria von, 1786.11.18~1826.6.5] 독일의 작곡가. 홀슈타인주(州)의 오이틴 출생. 어려서 부친에게 초보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다음, 미하엘 하이든(요제프의 동생)에게 사사하였다. 18세 때 브레슬라우오페라극장의 악장이 되었으나 2년 후 사직하고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으며 방랑생활 중에도 그는 오페라를 비롯하여 각종 작품을 썼다. 1813년 프라하의 오페라극장 지휘자가 되어 겨우 방랑생활은 끝났지만 1817년 또다시 드레스덴으로 옮겼다. 이 무렵부터 낭만파음악가로서 그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으며, 유명한 《마탄의 사수 Der Freischutz》의 작곡에 착수하여 1820년에 완성, 이듬해 6월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다. 그는 이 오페라의 대성공에 힘입어 다시 《오이리안테 Euryanthe》(1832)를 작곡하였으나, 이 무렵부터 결핵이 심해지고 생계도 어려워졌다. 그러나 런던의 유명한 코벤트 가든극장으로부터 신작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아 《오베론 Oberon》을 작곡하였으며, 런던으로 가서 이 오페라를 초연(1826)한 후,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 베버에게는 기악곡도 많지만 그의 천분은 역시 오페라였으며,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전통을 계승하여, 독일오페라의 새로운 낭만파적인 단계를 개척하였다. 작품으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콘체르트슈튀크 Konzertstuck》 이외에도 대중적인 것으로 《무도에의 권유 Aufforderung zum Tanz》가 특히 유명하다. /naver
성베드로 대성당[ 聖 ―― 大聖堂, San Pietro Basilica ] 가톨릭교회의 중심을 이루는 그리스도교 세계최대의 성당. 바티칸시국(市國)에 있다. 옛 성당 건물은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 베드로의 묘 위에 지은 것인데, 이것이 황폐해지자 교황 니콜라오 5세(재위 1447∼55)가 B. 로셀리노에게 개축을 명령하였다. 1452년 로셀리노는 우선 제실(祭室)의 증개축(增改築)에 착수하였지만 1455년 교황의 죽음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 뒤 약 50년이 지나서 다시 시작하려하자 교황 율리오 2세(재위 1503∼13)가 옛 성당을 모두 부수고 새 성당을 짓기로 하여, 당시 건축가들의 여러 제안 중에서 D. 브라만테의 안을 받아들여 1506년 공사를 시작하였다. 브라만테의 구상은 그리스십자형 평면설계에 로마의 판테온을 보고 착상한 돔을 얹으며, 주주(周柱)를 두르고 정탑(頂塔)을 그 위에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1514년 중앙돔을 받칠 네 기둥을 세우는 중에 죽었다. 후계자로 지명된 S. 라파엘로는 G. 상갈로와 F. 조콘도의 도움을 받아 브라만테의 고안은 전례(典禮)에 적당하지 않다고 하여 라틴십자형으로 고쳐서 공사를 진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1520년 라파엘로도 죽자 상갈로의 조카 안토니오 다 상갈로가 공사를 이어받았는데, 그 동안 교회의 재정적 압박과 유명한 <로마의 약탈>로 인해 공사가 진전되지 못했다. 1546년 안토니오가 죽자 미켈란젤로는 독자적 구상을 가지고 공사를 맡게 되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70을 넘었다. 그는 다시 라틴십자형에서 그리스십자형으로 바꾸고 돔을 지탱하는 원통형부분의 외관효과를 강조하고, 성당 안의 앱스와 예배실의 설계를 바꾸었다. 지금 볼 수 있는 건축적 특징의 많은 부분이 그의 구상에 의한 것이다. 1564년 미켈란젤로가 죽은 후 그가 남긴 목재의 모형을 보고 G. 포르타가 돔을 완성하였다. 그 후 17세기에 파울로 5세(재위 1605∼21)의 뜻을 받아 C. 마데르노가 신랑(身廊)을 서쪽 전방으로 연장하고, 나르텍스[前廊(전랑)]를 만들어 라틴십자형 방식으로 고쳐 1614년에는 웅대하고 화려한 정면(파사드)을 구축하였다. 이렇게 하여 공사를 시작한 뒤 120년이 지난 1626년 11월 18일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새 성당의 헌당식이 이루어졌다. 이 날은 기이하게도 옛 성당이 헌당되고 나서 1300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공사는 그 후에도 계속되어 1656∼1667년 G.L. 베르니니가 커다란 주랑(柱廊)을 둘러싼 성당 앞광장을 정비하고 이 주랑에서 교황청으로 통하는 계단인 스칼라레지아를 1666년에 완성하였다. 동서로는 186.36m, 남북으로 137.5m이고 돔의 높이 132.5m, 지름 42m의 규모인 이 거대한 성당에는 르네상스 및 바로크 조각이 많이 있다. A. 캄비오의 작품이라 전해지는 《성 베드로상》, 미켈란젤로 초기의 《피에타》, A. 카노바의 《클레멘스 8세의 묘비》, 베르니니의 《성 베드로주교좌》와 《우르바노 8세의 묘비》 등이 유명하다. 특히 돔 바로 아래, 즉 베드로의 무덤 바로 위에 베르니니가 세운 청동상 《대천개(大天蓋)》는 세계 최대의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yahoo
1307 - 스위스의 전설 '빌헬름 텔의 사과' [역사 속의 인물] 스위스 자유 투쟁의 상징, 빌헬름 텔의 사과 서구 문명을 낳은 유명한 사과들이 있다. 아담과 이브가 맛본 금단의 사과, 트로이 전쟁을 불러일으킨 파리스의 황금사과, 뉴튼의 만유인력 사과가 그것들이다. 이 사과들은 순서대로 그리스도교, 헬레니즘, 과학을 낳았다. 현대 들어서는 스티브 잡스의 '한 입 베어문 사과'(애플사 로고)가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나가 빠졌다. '빌헬름 텔의 사과'다. 14세기 초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오스트리아 고위관리 게슬러는 자신의 명령을 거역한 빌헬름 텔에게 아들 머리에 올린 사과를 활로 맞히라는 명령을 내린다. 잔인한 명령이었지만 명궁수 텔은 보란 듯이 사과를 명중시킨다. 그러나 텔은 게슬러를 사살하기 위해 화살 하나를 감추고 있다가 발각된다. 분노한 게슬러는 텔을 배로 호송해 죽이려 했으나 도리어 텔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텔이 명중시킨 사과는 자유를 향한 스위스 국민들의 저항과 투쟁의 시작을 상징한다. 이 스토리는 희곡과 오페라로 재각색돼 유명해졌지만 텔이 실존인물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전설에 따르면 텔이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활로 쏘아 맞힌 날이 1307년 오늘이다. 김해용 편집부국장 /매일신문 2011년 11월 18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6350&yy=2011 --------------------------------------------------------
- 화상이 창안하여 2004년 4월부터 매일 연재하고 있는 [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는 세계최초의 <우표를 이용한 매일역사연재물>입니다. 수집한 우표를 이용하여 오로지 취미와 교육적 목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자료의 충실을 기하느라 본의 아니게 저작권에 저촉되는 일이 생길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미리 알려주셔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