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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남은 이야기 스크랩 와인으로 바라본 경제공황
권종상 추천 0 조회 71 08.12.18 01:07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저는 와인을 좋아하는 시애틀의 우체부입니다.

 

손에 우편물을 들고 길을 가다가, 매거진 스탠드 옆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얼핏 와인 스펙테이터 지 표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렴한 다이닝' 이라는 것만 눈에 띕니다. 뒤적거리고 볼까 하다가, 일하는 중이어서 그냥 지나칩니다. 일 끝나고 집에 오니 푸드 앤 와인 잡지가 배달되어 있습니다. 흠, 맛있는 돼지 어깨살 스튜. 그리고 거기엔 조그맣게 사족이 붙어 있습니다. "돼지 어깨살은 값싸면서도 맛있는 부위이다." 세상이 갑자기 모두 절약모드로 들어선 듯 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위아래도 없습니다.

 

최고급 와인값들이 떨어지는 게 눈으로 보입니다. 과거 엄청난 바람이 들어갔던 와인들이, 지난해 대비해 거의 절반까지 떨어지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와인들을 코스트코 가서 사둘 생각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살아남는 것'이 문제이지, '무얼 폼재며 마실 것인가' 라는 것은 부차도 아닌, 그저 사치에 불과합니다.

 

주위에 한참때 잘 나가던 친구들이 쓰러지는 것을 봤습니다. 은행에 다니며 은행 고문 변호사를 맡았던 친구 하나가 엊그제 해준 말입니다. 이 친구 역시 와인을 배운 후 오대샤토를 들락거리며 워싱턴주 동부에 포도밭을 사네 마네 하던 친구입니다. 그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났습니다.

"휴우... 엊그제 잡페어 갔다 왔는데, 이거 생각보다 더 심하네."

그 친구가 잡페어 다녀 왔을 정도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로 내몰린건지 안 봐도 대략 알 만 합니다. 하긴, 워싱턴 뮤추얼에서만 4천명이 넘는 감원을 했으니, 보이지 않는 다른 분야 및 관련 분야에서의 추가 감원이란 게 어떤 형식으로 나타날지는 안 봐도 뻔한 문제입니다.

 

여기에, 이곳에서 와인을 배우던 유학생이나 혹은 지상사 직원들, 와인 매출에 상당히 도움을 주며, 혹여 이곳에서 와인 모임을 열겠다 하면 이메일로 열심히 물어보며 참석을 외치던 이 사람들도, 이제는 참석 못합니다. 한국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경우, 와인 값이 조금 떨어졌다 해도 이미 환율폭탄의 덕에 그들이 옛날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와인조차 살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와인, 특히 좋다고 소문난 와인들은 정치적인 술임과 동시에 경제 지표의 반향이 될 것입니다. 오대샤토에 끼인 거품들은 지금부터 빠질 것입니다. 그들의 가격과 품위를 동시에 유지시켜주던 월스트릿의 잘나간다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길가로 내몰린 상황입니다. 돈냄새 나는 곳이면 진동했던 오대샤토의 향기와 코히바 시가의 냄새 따위는 이미 과거의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트레이더 조에서 그들의 OMR로 나오는 와인들이, 월마트의 와인들이, 코스트코의 와인들이 매출량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가격 대비 맛있는 와인.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이런 주제들이 와인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와인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문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제가 일하는 캐피털 힐 지역에서 최근 와인샵을 연 데이브. 제가 최근 종종 찾아가는 와인샵 'Vino Verite'의 주인인 그는 "추수감사절 이후 본격적으로 와인이 안 팔린다"고 말합니다. 크리스마스 경기는 이미 실종입니다. 시애틀의 경우 더 합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황금 성수기에 폭설이 퍼부어버려 사람들은 더욱 집에 꽁꽁 묶여 있는 형편입니다. 거기에 8년만에 찾아온 한파로 와이너리들조차도 생존의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문 닫은 와이너리들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한달이면 서너 개의 새로운 와이너리가 생긴다고 할 정도로 와인 바람이 불던 워싱턴주입니다. 이제 그 거품들이 빠지면서, 이 불황의 한파는 워싱턴주 와인산업 전체에 큰 타격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결국 지금까지 거품으로 살아왔던 미국 와인 업계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와인 가격은 하락세를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미국의 경우, 와인 주소비자층이라 할 수 있었던 미국 중산층의 명약관화한 붕괴는 결국 와인업계의 재편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아마 브롱코나 갤로 등 저가와인을 주 품목으로 해 왔던 대형와이너리들은 상대적으로 덜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파나 소노마의 부티크 와이너리들? 아마 이번에 대략 정리가 될 것입니다.

 

이미 제 주위에서 '스택스 립'이나 '그리크 힐' 같은 와이너리산의 샤도네로 연말파티를 해 오던 친구들이 프란시스칸 오크빌을 사들고 모임에 나가는 모습들도 봅니다. 올해 워싱턴주에 찾아온 한파는, 날씨 뿐 아니라 개개인의 현실에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게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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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12.19 13:24

    첫댓글 미국의 현지 상황을 성세히 들려주셔사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하시길...

  • 08.12.19 22:15

    이거.. 웃어야될찌.. 울어야될찌.. 좋은 와인 싸게 즐길수있게 되니 좋긴 좋은데 말이죠. 제가 있는 아르헨에선 아직까진.. 와인 가격파괴 조짐은 없군요. 하긴 여기서야 고급 와인보다는 생활의 일부로서 즐기는 와인이 대부분이다보니.. 그래도 일부 수퍼마켓에선 슬슬..세일들을 하긴 하네요.

  • 09.02.19 19:05

    어쩌나... 이제 시작이라니...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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