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 계약과 예언자
2사무 7,1-16; 루카 1,67-79 / 성탄 전날; 2022.12.24.; 이기우 신부
다윗의 궁전이 있던 시온 언덕에서 예언자 나탄을 통해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내리신 말씀은, 다윗과 그가 속한 유다 왕실이 책임지고 다스리고 있는 나라를 보호해 주시겠다는 축복의 계약이었습니다(2사무 7,16). 그런데 이 시온 계약에 전제된 조건은 시나이 계약의 정신을 다윗과 그 왕실이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조항이었습니다. 그리고 본시 시나이 계약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섬기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 보호해 주시겠다는 내용으로서 시온 계약의 모계약입니다. 그러므로 시나이 계약의 부속 계약인 시온 계약의 핵심은 다윗을 비롯한 유다 왕실의 후대 임금들이 이스라엘을 하느님께 충실한 백성이 되도록 다스리라는 데 있었습니다. 백성의 신앙이 하느님께 충실하고 그 결과로 백성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봉사하라는 것이 시온 계약에서 내려진 축복의 전제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 이후 솔로몬과 그 후대의 임금들은 불행히도 이 조건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의 신앙을 우상숭배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불공정과 불의한 통치로 백성의 삶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그 벌로 왕조와 나라는 멸망했고 백성은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서 두 세대 기간 동안이나 종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 종살이였습니다.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 4백 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에도 신흥 강대국들의 간섭과 지배도 잇따랐거니와 지도자들 역시 백성의 각성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백성의 신앙도, 백성의 삶도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통한의 역사를 잘 알고 있던 즈카르야 사제는 아나빔으로서 줄곧 열심히 기도해 왔으나 막상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기도의 응답으로 약속을 실현해 주신 데 대해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의 찬송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루카 1,68). 그러니까 이 찬송의 초점은 자신에게 태어난 아들 요한이 아니라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실 메시아에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메시아께서는 일찍이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오신 분이셨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숭배에 물들게 만들어온 나라 밖의 원수들과 그 백성을 미워해온 나라 안의 모든 자들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분이셨습니다(루카 1,70-71). 이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약속을 그분이 자비로이 기억해 주신 덕분입니다(루카 1,72). 그 덕분에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도 애초에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해 드린 대로, 거룩하고 의롭게 살겠다는 다짐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루카 1,73-74). 그래서 약속을 실현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로 바쳐야 할 약속은 성덕과 의덕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백성에게 오실 메시아가 오실 길을 닦을 예언자로서 늘그막에 얻게 된 자신의 아들이 선택된 데 대하여(루카 1,76), 즈카르야는 그저 감사드리는 마음뿐이었고 그래서 아들에게 진작부터 그의 중차대한 역사적 소명을 일러줄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입니다(루카 1,77). 높은 데에서 별이 찾아오셨음을 알려주고, 그 별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따뜻하게 비추어 줄 것이며 백성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끄실 미래까지도 알려주는 일입니다(루카 1,78-79).
우리 한민족도 예로부터 진리의 빛이신 하느님을 숭상하던 민족으로서 제천의식을 중시해 왔으며 이 제천의식에서 계시받은 뜻에 따라서 홍익인간의 이념을 온 누리에 구현하라는 천손의식을 간직하고 살아왔었습니다. 이 기간이 고조선 시대 2천3백여 년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섬기지도 않는 우상숭배적 종교와 이념이 중국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하느님 신앙이 약화되면서 제천의식도 중지되고 천손의식도 희미해져 온 세월이 삼국시대와 고려와 조선시대 후기까지 천5백여 년입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오묘한 섭리로 이 땅에 들어온 천주교 신앙으로 제천의식이 미사로 회복되었고 천손의식은 선교사명으로 회복되기는 했습니다. 지금은 온 겨레에게 하느님을 알리고 그 나라를 구현해야 할 역사적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런데 제천의식과 천손의식으로 형성되었던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우리 민족을 이끄셨던 하느님의 영이 민족의 혼과 소통할 때라야 비로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 겨레의 민족혼은 외래 종교와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자주적인 나라를 회복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민족혼을 제천의식과 천손의식으로 우리 민족역사의 시초부터 이끄셨던 하느님의 영을 알아보고 섬기는 데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묘한 섭리로 이 신앙이 회복될 수 있는 전기를 가져온 천주교와 이에 속한 천주교 그리스도인들은 즈카르야가 찬미한 대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우리 겨레에게 하느님 신앙을 일깨워주고, 그에 따른 공동선을 증진시키며, 그 결과로 갈라진 겨레의 화해와 일치까지도 도모하여 평화의 길로 이끌어야 할 중차대한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성덕과 의덕으로” 주님을 섬기는 아나빔들이 되어야 합니다.
민족을 위한 예언자로 부르심 받은 교우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을 찾아오십니다.
첫댓글 고정 댓글: 가브리엘 천사를 시켜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을 즈카르야가 믿지 않고 의심했다가 그 말씀이 아기 요한의 탄생으로 실현되고 아기 이름을 성령께서 시키신 대로 짓고 나서야 비로소 즈카르야의 혀가 풀리고 입이 열렸던 고사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카페의 강론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굳은 혀와 닫힌 입, 막힌 귀를 열어 주고자 원하십니다.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킬 때 주시기로 한 하느님의 선물. 즈카르야의 노래를 통해 약속을 지키시는 하느님의 모습과 즈카르야의 감격, 그리고 다짐을 떠올려 봅니다. 냉담과도 같이 하느님을 잊고 살았던 우리 민족이 신앙을 회복하고 하느님과의 계약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탄 축하의 마음을 나눕니다. 그 동안 꼬박꼬박 성실하게 댓글로 소감을 나누어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기우 저도 신부님께 성탄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좋은 글과 묵상꺼리를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