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동안 집안일이 바쁘기도 하고 오래 사용하던 몽당 빗자루마저 어디론가 사라지는 바람에 큰 바람과 잦은 큰 비에
불려오고 휩쓸려온 각종 잎사귀 조각과 나뭇가지들이 어질러진 안마당을 여름 내내 방치하다가 지난토요일은 모처럼
큰 대빗자루를 마을 친구에게서 빌려와 쓸려하고 있을 때 대문간을 지키는 네눈박이 진강순이 바깥마당을 향해 서서
짖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가봤더니 윗집 할머니께서 깔끔한 옷차림으로 말을 걸어 오셨다. 읍내 나갈
일이 없냐고 물으셨다. 나갈 일은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무슨 일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3 킬로미터쯤
떨어진 읍내 병원에 가야하는데 나갈 일이 있으면 차를 좀 태워달라고 하셨다. 급한 일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하시면
차를 태워드리겠다고 전에 몇 차례 말씀드려도 늘 택시를 전화로 불러 타고 다니셨는데 당장 읍내 쪽으로 갈 일은 없었지
만 내 어머님 또래로 해맑은 마음씨를 지니시고 강화에 온지 몇 해 안되는 나를 늘 도와주시고 친근하게 대해주시는
할머니가 모처럼 하시는 부탁이어서 기꺼이 태워드렸다.
아들, 딸들을 다 출가시켜 내보내고 영감님마저 오래 전에 먼저 돌아가신 다음 도시에 사는 아들들이 함께 살자고 자꾸
오라는데도 불구하고 옛집에 혼자 남아 얼마 남지 않은 집 근처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시는 할머니로 평소 내가 집 옆
텃밭에 무엇을 심으면 관심 깊게 살펴보시고 초보 아마추어 농사군의 하는 일이 어설픈지 늘 들여다보고
조언해주시며 요청하지 않아도 비료와 농약 등을 알아서 쳐주시는 고마우신 분으로 평소에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오갈
때면 문안인사를 드리고 적은 금액의 먹을거리라도 선물로 드리곤 했다. 거의 혼자 다니며 농사체험을 하고 적은 수의
가축을 기르는 나에게 물론 할머니께서도 집에서 담근 고추장, 묵 가루, 김치 등을 자주 주셨다.
지난봄에는 하도 시간이 없어 해마다 즐겨 심고 풍성한 수확을 거둬온 내 농사목록 1 호 고추를 미처 심지 못하고 때를
놓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 할머니에게 찾아가 고추 모종 20 개만 우리 온실 한 쪽에 심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왜 직접
심지 않고 그러냐며 의아해하시길레 워낙 바빠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러냐며 잘 심어주시고 복합비료도 뒤에 쳐주셔서
다른 집보다 조금 늦었지만 고추나무가 쑥쑥 자라 올라 꽃을 피우고 수많은 열매를 맺어 두어달 동안 풋고추를 풍성하게
따서 이웃들에게 나눠주며 넘치게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낯선 마을에 들어가서 살 때 이런 이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흐뭇하고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이 마을로 이사 오기
몇 해 전 강화도 북쪽 송해면에 살 때도 바로 옆집에 이런 할머니가 계셔서 아무 연고도 없는 고장에 살아도 그 집이
마치 내 가까운 친척집인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지고 무슨 급한 일이 생기면 아무 주저 없이 부탁드리고 상의할 수
있었는데 읍내에서 가까운 남쪽 마을에서도 이런 열린 마음을 지닌 좋은 할머니를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 적지 않은
행운이고 축복이다.
나는 강화에서 만난 이 두 할머니들과 청년 한 사람으로부터 일생일대의 큰 교훈을 얻었다. 그 가르침은 대학원까지
이십 수년 동안의 학교생활과 이어진 수십년 사회생활에서도 직접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귀한 진실이었다. 사람
사이의 진실한 만남과 행복은 같이 배우고 같이 생활한다고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든 조건 없이 먼저
베풀고 손을 내밀어 나눌 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나이 들어 힘이 없고 지팡이에 의존해 걸어 다니는 주름살 많은 할머님들이 희고 매끈한 피부와 날씬한 몸매를 지니고
좋은 옷을 입고 크고 반듯한 집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훌륭해 보이고 그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빙그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하고 밝은 사람들로 여겨지는 것은 모두가 젊고 예쁘고 활기차고 편하고 빠른 것들을 지향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선 무척 생소하고 특이한 체험이었다.
강화는 1945 년 해방 이후에도 꽤 오랜 동안 육지와는 급한 물살이 흐르는 강 아닌 강 염하로 격리된 섬이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나고 자라고 그 안 사람들끼리 결혼해 사는 독자적인 생활권역이었다. 농업과 어업 이외에 별다른 산업이
없이 오래 지내온 만큼 농경시대의 오랜 미풍양속 즉, 상부상조하고 이웃을 귀하게 여기며 부지런히 땅 파고 일해서
먹을거리를 생산해 사는 정직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육지와 연륙교로 이어지기 전까지 그곳에 오래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80 전후의 할머니들은 그곳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고 그곳에서 자녀를 기르며 살아 허리가 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토박이들이다.
지금 50 대부터 손자, 손녀들까지 그들의 후손 대부분은 도시로 나가 교육 받고 돈벌이를 해서 본질적으로 도시사람들과
다를 바 없지만 그들을 낳아 키웠고 현지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할머니들은 우리나라 옛 시골마을 아녀자들의
순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특징중 대표적인 한 가지를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어머님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모든 것을 다 주고 자신의 일부로 여기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거의 모두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될 잠재적인 경쟁자나 적, 또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로 여기는 사회의 관행과는
달리 이웃과 다른 사람들도 나와 함께 더불어 살고 서로 도우며 살아야할 동지이자 친구로 여기고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먼저 베풀며 사는 것이다.
나는 이 귀한 깨달음을 말이 아닌 생활 속에서 전해준 강화의 할머님들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며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거나 말로 가르쳐줄지라도 실질적인 깨달음을 주지 못하는 현대 학교교육의 문제점이 크다고
보고 나름대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이 중요한 진실이 삶을 성공적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댓글 강화 순무김치와 인삼이 생각납니다,,,
무슨 까닭에 이름을 변덕쟁이라 하셨는지 알고싶네요.
반갑습니다. 순무김치와 인삼 외에도 산과 들,바다도 아름답습니다.
언제 잘 다듬어진 해안도로로 드라이브 한번 하시지요.
간강하세요!
좋은 이웃을 두셨네요 ~~~
함께 정을 느끼면서 산다는것 ~~
그것이 이웃이겠죠 ??~~^&^**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행복하세요!
도시에선 느끼기 힘든 사람과의 정을 나누며
산다는거 커다란 행복입니다.
강화에대해 많이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잡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삶의 체험, 인생의 체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인생을 먼저 경험하고 순수하신 분들과 오랜동안 정겨운 생활을 생각합니다.
대가족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제가 느끼고 체험한 작은 단면을 써보았습니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아직은
받기에 급급하니 아직 멀었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삶에서 묻어나는 연륜은 돈으로는 살수가 없는 귀한 가치입니다,,,글쓴님께서는 참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 이시네요,,,
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할머니와 님은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근 20년전쯤부터 이담에 귀촌한다면 꼭 "강화도"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답니다.
지인영님! 반갑습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강화는 자연 풍광이 거의 북미 수준이고 농산품과 해산물이 풍부하며 서울에서 1 시간 남짓 거리라
귀촌지로는 아주 좋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경치 좋은 데 땅 사고 집 지어 사는데 주위와 고립된
성을 만들지 않고 마을 사람들과 오가며 농사일 정도까지 거들 수준으로 다가가면
정말 살맛 날 것 같습니다. 좋은 꿈 꼭 이루시길 빕니다. 행복하세요!
웃음 머금게 하는 참 훈훈한 얘기입니다.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지요.
저도 모처럼 맛난 죽방 멸치가 생겼길래 동네 언니한테 갖다 주었더니
오늘 무화과 몇 개 주겠노라고 부르는 거예요.
어느 적엔 저절로 물물교환을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맘 흐뭇하답니다.
이것이 사람 사는 재미라는 걸
우리도 몸소 보여줄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도 나이 더 들거든 인심좋은 할머니 할랍니다~~~~~~`랄라라~~~^^*
이쁜 님! 화이팅입니다!
주거니 받거니, 이웃의 일을 내 일처럼 오가다 보면 행복이 절로 다가올 것입니다.
녜! 부드럽고 강한 우리 아주머니들의 힘이 이쁜 님 속에서
꽃피우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