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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가 풀리는 신호일까. 산둥성 여유국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엿새 동안의 여정을 시작하는 배 안에서 이 원고를 쓴다. 엔간한 곳은 대여섯 번씩 다녔는데, 이번에 다시 길을 나선 것은 사드 합의문 이후 변화를 좀 느껴보기 위해서다. 산둥은 우리랑 뗄래야 뗄 수 없는 지역 아닌가.
“백령도에서 첫 닭이 울면 청산토우(成山頭)에서 들린다”는 옛말이 있다. 사실일까. 청산토우는 산둥 반도의 가장 동쪽지역이다. 구글어스에서 백령도와의 거리를 재어보니 177킬로미터다. 짧은 거리도 아니지만 결코 먼 거리도 아니다. 닭 울음소리가 들리기는 힘들겠지만 맑은 날 빠른 배로 간다면 두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산둥과 한국을 잇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 중 하나가 쾌속선 사업을 하면 괜찮을 것이란 이야기다. 인천과 웨이하이의 직접 거리는 300킬로미터 남짓이다. 부산과 일본을 잇는 쾌속선은 200킬로미터 정도를 3시간 정도 운행하니, 인천과 웨이하이 간도 4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항공료에 버금가는 쾌속선의 가격을 고려하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사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하나는 한·중 간 터널 이야기다. 산둥성 옌타이에서 한·중·일 해저터널 이야기가 나왔고, 그전에도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한·중·일 터널에 대한 활발한 구상이 있었다. 이런 구상이 실현되면 434킬로미터의 서울-웨이하이간은 3시간 정도에 주파할 수 있게 된다. 터널은 다리에 비해서 건설비가 적게 든다는 점에서 실현성이 높다. 경기도 화성과 웨이하이 간을 연결하는 지하터널의 건설비는 117조8000억 원 정도지만 파급효과는 275조 원 정도의 생산유발 효과와 100조 원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은 이미 30킬로미터의 다리에 급전하는 다리를 3개나 건설했고, 산둥과 랴오닝 반도를 잇는 다리 공사도 기획하는 만큼 이런 이야기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산둥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가깝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라고 보낸 서복(徐福)은 이곳에서 가까운 옌타이(烟臺)가 고향이다. 그는 배를 타고 제주도로 건너간 것으로 전해진다. 한자는 다르지만 서귀포의 지명도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데서 유래됐다.
백령도와 청산토우의 거리는 이미 모든 면에서 실핏줄처럼 연결된 한·중 관계의 상징적인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서복 등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한국에서도 끊임없이 가장 가까운 땅인 산둥으로 끊임없는 이주의 역사가 진행됐다. 장보고가 해상의 길을 텄을 때 청산토우 아래 롱청(榮成)에는 신라방이 만들어졌고,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法華院)이 있었다.
이런 인연은 최근에도 재개됐다. 중국 공산화와 더불어 중국을 떠난 화교들은 지방에 따라 각기 다른 곳으로 이주했는데, 산둥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한국으로 이주했다. 따라서 한국 내 화교의 대부분이 산둥사람이고 특히 옌타이 지역 사람들이 많다. 정식 수교가 이뤄진 92년 이전에 인천과 청산토우가 속한 웨이하이(威海) 간 정기 여객선이 개통됐다. 이후 산둥반도에는 한국인들이 봇물처럼 들어갔다. 보따리 상인으로 대변되는 소상인을 비롯해 중소기업들이 들어와 중국 내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칭다오(靑島), 옌타이, 웨이하이나 주변도시에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산둥성이라면 우리나라의 전라남도나 경상북도처럼 한 도로 생각하는데 산둥의 면적은 15만3300평방킬로미터로 우리나라(한국) 면적의 1.5배에 달한다. 산둥성의 특징은 전통적인 농업지역이면서도 공업이 발달한 곳이다. 또 ‘하늘 아래 뫼’로 불리는 타이산(泰山), 공맹의 고향 취푸(曲阜), 중국 최고의 해양휴양도시인 칭다오, 옌타이, 웨이하이 등을 가진 천혜의 땅이다. 인구도 1억 명이나 된다.
기후도 우리나라와 닮았다. 장보고가 이곳에 신라방을 세운 이유 중에는 이런 기후도 한몫했을 것이다. 장보고의 후예들도 1990년 이후 급속히 중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산둥이 편한 것은 인천에서 출항하는 배로 10시간에서 14시간 전후면 중요한 곳에 다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운항하는 산둥반도행 배는 옌타이, 웨이하이, 롱청, 스다오(石島), 칭다오, 르자오(日照) 등으로 운행한다. 현재 산둥반도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은 약 2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절반 정도는 칭다오에 거주하고 웨이하이, 옌타이 순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향후에도 산둥반도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다.
중국 땅을 많이 다녀본 필자에게 어디가 가장 좋으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그러면, 여행지로 가장 좋은 곳은 윈난(雲南)이고, 그냥 훗날 살고 싶은 곳은 옌타이와 웨이하이 사이의 바닷마을이라고 답한다. 샹그릴라로도 불리는 윈난은 여행자원이 풍부해 여행에는 적격이지만 고산지역이라 장기 거주지로는 ‘별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산둥반도는 자연환경이 우리나라와 거의 유사한데다 땅이 넓어서 우리의 공장이자 농장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메이드인차이나’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항상 산동에 들렀다. ‘납김치 파동’이 났을 때도 김치공장 취재차 그곳에 들렀고, 이후 다양한 이유로 그곳에 들렀다. 그런데 현장에 가 보면 산동의 부족함도 있었지만 실력으로 정당하게 중국과 만나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족함이 눈에 더 띄었다. 김치파동 취재차 그곳의 공장을 방문했을 때 정작 문제가 된 곳은 영세한 자본으로 운영하는 우리 기업에서 만든 김치들이었다. 중국 회사에서 운영하는 김치공장은 일본과 유럽으로 수출할 만큼 완벽한 설비를 갖춘 곳이었고, 철저한 관리가 이뤄졌으며 최고의 원재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반면에 우리나라로 수출할 김치를 만드는 곳들은 위생상태도 나쁘고, 원재료도 그냥 값싼 도매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이어서 재배 상태를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나라 농가를 위협하는 과일들도 배부분 산둥에서 나온다. 치샤(栖霞)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의 주산지이고, 라이양(萊陽)은 배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다. 사과꽃이 피는 5월에 치샤의 길을 달리면 울긋불긋한 사과꽃길의 정취뿐만 아니라 향기에 취하게 된다. 이곳들은 땅이 마사토여서 과일 재배에 적격이다. 뿐만 아니라 강수량이 적당하고, 태풍도 없어서 과일 재배에 최적지다.
필자는 과거 이런 산둥 지역을 우리의 대륙 진출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협업을 강조했다. 현재 일부 그런 일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면 이번 사드 사태는 한국과 산둥이 서로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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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완
중국 전문 컨설턴트(투자유치, 방송, 관광객 유치 등)인 조창완은 중국 투자진출, 홍콩 우회수출, 베트남 투자진출 컨설팅 및 대행업체인 유니월드 한국지사장((www.uwstar.com 홍콩·중국 법인 설립 및 컨설팅, 회계 관리 전문 chocw@paran.com)을 맡고 있으며 문화산업상생포럼 수석부의장도 역임하고 있다. 또 중국을 읽는 창 <차이나리뷰>의 편집장과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잡지 <아띠>의 취재본부장, 알자여행(www.aljatour.com) 대표로도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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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중국여행지 5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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