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장
암자의 비밀
[그 계집애는 전부터 낙응암(落鷹岩)에 용등지과가 자라고 있음을 알고 있었소이다. 그러다 어제 용등지과가 익을 때를 기다려 따러 갔는데 의외로 딴사람이 먼저 손을 썼다더군요.]
신평이 말을 이었다.
[마침 그 근처 석실에 한 명의 소녀가 있는 것을 보고 신분을 물은 결과 금사혈검 막고천의 막내딸임을 알아냈지요.]
그는 어두운 표정이 되어 다시 말했다.
[사실 나는 이십 년 전 막고천과 다툰 적이 있었소이다. 이를 아는 딸년은 그 소녀를 제압하여 잡아왔더군요. 하지만 내가 다시 심문한 결과 그 소녀 역시 막고천의 피해자 중 한 명임을 알았소이다. 만약 즉시 막 소저를 석실로 데려다 주었으면 아무 일이 없었을 텐데... 딸아이가 석실에 쪽지를 남겼으니 날이 밝으면 막 소협이 찾아올 거라고 말하기에 막 소저를 우리 집에 머물게 했지요.]
동정어은이 말한 대로 막영란을 납치하고 쪽지를 남긴 것은 신평의 딸 신소심이었다.
신평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헌데 오늘 새벽 오경 무렵 막 소저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에 당직 서던 수하가 문틈으로 살펴보니 창문이 활짝 열려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며...!]
막비강이 얼른 말을 가로챘다.
[제 누이는 무예를 조금 배우긴 했지만 이 정도의 높은 담은 뛰어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장주께서 예의를 지켜 대접하신 이상 작별인사 한마디 없이 떠날 아이가 아닙니다.]
막비강의 말에 신평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협의 말이 옳소이다. 당직 수하의 보고에 의하면 이상을 느끼고 서둘러 지붕 위로 올라가 살펴보았더니 하나의 흑영(黑影)이 서쪽으로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더군요. 그래서 나는 수하들을 이끌고 밤새 추격했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했소.]
동정어은이 말을 받았다.
[소심이도 밖에서 조사하고 있는가?]
[그 아이는 제 에미와 함께 적을 추격해 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막비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란 매는 강호에 나다니지도 않았는데 누가 무슨 이유로 납치해 갔을까? 그 아이를 납치하게 된 동기는 도대체 무엇일까?)
막비강은 생각을 굴리며 다시 신평에게 물었다.
[장주께선 막고천과 원한을 맺은 외에 혹시 다른 사람과도 충돌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까?]
[나는 한때 표물(鏢物)을 호송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적이 있긴 하나 늘 신중히 행동한 덕에 강호 친구들에게 특별히 미움을 산 적은 없소.]
막비강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야단났구나! 신 장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가장에 침입하여 란 매를 납치해 간 자는 필시 막고천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추측이 맞을 것 같은 막비강이다.
(자신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냉상영 아주머니 모녀가 도주한 것을 안 막고천이 분노하여 여기까지 사람을 보내 란 매를 잡아간 것일 것이다. 만일 란 매가 다른 사람의 손에 잡혔다면 괜찮겠지만 막고천에게 잡혔으면 살아 남지 못할 텐데...!)
막비강은 막영란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막영란은 여자인지라 죽임을 당해도 간단히 죽임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
온갖 능욕을 다 당한 뒤에 죽임을 당할 것이 자명하다.
그같은 생각에 막비강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초조해졌다.
그와 함께 어쩌면 호표낭낭을 암산한 범인 역시 막고천 일당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비강의 뇌리를 스쳐 갔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막비강은 급히 신평에게 물었다.
[귀장의 당직이 보았다는 자는 정말 서쪽으로 도주해 갔습니까?]
신평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흑영이 서쪽 방향으로 도주한 것은 확실하오. 하지만 나도 보고를 받고 백여 리를 추격해 갔지만 행적이 의심스러운 자는 한 명도 만나지 못했소.]
[소생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쐐액!
막비강은 신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라 전광석화같이 서쪽으로 날아갔다.
***
막비강은 팔보간섬을 극한까지 전개하여 서쪽으로 날아갔다.
쏘아진 화살같이 날아가면서도 그의 예리한 이목은 좌우를 샅샅이 살폈다.
이미 내공이 화신(化神)의 경지에 이른 막비강이다.
주변 십리 이내의 물체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그의 이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해가 서산으로 떨어질 무렵까지 쉬지 않고 달렸음에도 막비강의 눈에 띈 사람들은 농부와 상인들뿐, 무림인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어느덧 평탄한 길이 끝나고 막비강의 앞으로 험준한 산이 가로막아 섰다.
노산(盧山)이다.
노산의 험준하면서도 수려한 산세는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비류직하삼천장(飛流直下三千丈)이라고 폭포를 읊은 데서 잘 나타난다.
노산의 산그늘에 도착한 막비강은 발길은 멈추고 이마에서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만일 란 매를 납치한 자가 이 길로 온 게 분명하다면 따라잡았어야 마땅한데...!)
막비강은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은 채 땀을 닦으며 검미를 찌푸렸다.
막영란이 납치당한 시간과 막비강이 추적한 시간 사이에 반나절 가량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막비강은 쉬지 않고 극한의 경신술을 펼쳐 여기까지 달려왔다.
막영란을 짊어진 납치범이 제아무리 절정고수라 해도 따라잡았어야 당연하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엉뚱한 곳으로 추적을 해왔다는 얘긴데...!)
막비강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흉수는 신가장 무사들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서쪽으로 가는 척하다 반대 방향으로 갔는지 모른다. 아니면 기회를 봐서 도주하기 위해 란 매를 신가장 부근에 감추어 두었을지도...!)
막비강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휘익!
멀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노산의 산자락으로 누군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 인영은 언뜻 막비강의 눈에 띄었으나 다음 순간 노산의 첩첩한 봉우리 사이로 사라졌다.
(혹시!)
막비강은 걸터앉았던 바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적이긴 하지만 그 인영의 어깨에 무언가 큼직한 꾸러미 같은 것이 짊어지어져 있었음을 발견했던 때문이다.
(란 매를 납치해 간 흉수일지도 모른다!)
쐐액!
다음 순간 막비강의 몸은 이미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그의 모습도 곧 어두워지는 노산의 산그늘로 사라졌다.
***
(여긴...!)
화라락!
막비강은 당혹한 표정으로 내려섰다.
그의 앞에는 제법 웅장한 암자가 한 채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문에는 용연암(龍淵庵)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비록 암자지만 산문이 세워져 있고 전각도 대웅전을 비롯하여 다섯 채나 되는 상당한 규모의 암자다.
(그 그림자가 분명 이곳으로 왔는데...!)
막비강은 산문 밖에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 뒤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여기저기 등롱이 내걸린 용연암 안에서는 저녁 예불을 드리는지 목탁 소리와 독경 소리가 은은하게 흘러 나온다.
(이 절의 누군가가 공양거리를 사오는 걸 착각한 것 같군!)
막비강은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서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는 흠칫하며 재빨리 아름드리 고목 뒤로 몸을 숨겼다.
닫혀 있던 대웅전의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중이 나오는 것을 발견한 때문이다.
중년의 나이인 그 중은 재빨리 주위를 살펴보았다.
헌데 그런 그 중의 눈빛이 출가한 불제자답지 않게 영활하여 막비강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이! 어떤가, 용수(龍鬚)?]
그때 대웅전 안에서 누군가 물었다.
그러자 용수라 불린 중년의 중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도 없네! 오늘도 중 노릇은 그만해도 되겠어!]
[낄낄! 하긴 날도 저물었는데 이 깊은 산중에 어떤 놈이 기웃거리겠나?]
누군가의 대답 소리와 함께 그때까지 들리던 독경과 목탁 치는 소리가 뚝 그쳤다.
그리고 용수라 불린 중년의 중도 대웅전 안으로 고개를 거둬들이며 문을 닫았다.
(뭔가 있다!)
막비강은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어 눈을 번득였다.
스윽!
그는 즉시 몸을 날려 대웅전의 처마로 날아가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발끝을 처마에 걸쳐 거꾸로 매달린 채 살그머니 지력(指力)을 발휘하여 대웅전의 문에 구멍을 냈다.
부르르!
이어 문에 난 그 구멍에 눈을 대고 안을 들여다보던 막비강의 몸에 경련이 스쳤다.
대웅전 안에서는 뜻밖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치장된 널찍한 대웅전에는 모두 여덟 명의 중이 있었다.
모두가 중년에 접어든 중들로서 한결같이 체격이 건장하여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여덟 명의 중은 막 예불을 보던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한쪽에는 묵직해 보이는 자루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낄낄! 그럼 오늘도 만찬을 시작해 보자구!]
[용수! 오늘 야참은 어떤 물건인가?]
자리를 정리하고 빙 둘러앉은 중들의 눈이 기대와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그러자 용수라 불린 자가 한쪽에 놓여 있던 자루를 들고 와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루에는 사람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란 매를 납치한 자들이 저자들인가?)
지켜보던 막비강의 눈에서 살기가 폭출하였다.
정황으로 보건대 자루 안에 든 것은 여자가 분명했다.
이 파계승들은 노산 근처에서 아녀자들을 잡아다가 매일 밤 음탕한 짓거리들을 하는 모양이다.
막비강은 당장 뛰쳐들어가 파계승들을 박살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아직 납치되어 온 사람이 막영란이라는 증거가 없고 또 왠지 자루 안에 든 사람의 체격이 막영란보다는 커 보였기 때문이다.
막비강이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용수라 불린 자가 자루를 풀어 안에 들어 있는 여자를 꺼냈다.
자루 안에서 나온 것은 역시 여자였다.
하지만 막영란은 아니었다.
[뭐냐, 용수? 또 나이 든 계집을 잡아왔냐?]
[하여간 취향도 독특하단 말이야! 젊은 계집을 두고 번번이 홍시처럼 익어 터진 중년의 계집들만 잡아오니...!]
자루에서 나온 여인을 본 파계승들 몇이 구시렁거렸다.
잡혀 온 여인이 젊은 여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젊기는커녕 사십대에 접어든 중년의 여인인데 얼굴은 평범하지만 피부가 눈같이 희고 투실투실 살이 오른 풍만한 몸매를 지니고 있다.
(저... 저분은!)
그리고 지켜보고 있던 막비강의 눈도 부릅떠졌다.
자루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살찐 중년여인은 막비강도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아! 헛소리 말고 잘 봐! 이 정도면 상품 중의 상품이잖아!]
용수가 의기양양하여 여인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보였다.
중년여인은 약물에 취했는지 몽롱한 표정으로 늘어져 그자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얼굴은 별로 볼 게 없지만 몸뚱이에는 어떤 젊은 계집보다 음기(陰氣)가 충실히 쌓였잖은가!]
용수의 말에 다른 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처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사내를 접하지 않아서 음기가 엄청 축적되었군!]
[아마 젊어 청상(靑裳)이 된 후 독수공방을 해온 모양이네. 한창 뜨거울 나이에 오랫동안 운우지락을 참아 왔으니 어떤 계집보다 취할 게 많겠어!]
중년여인의 투실투실한 몸뚱이를 보며 파계승들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목전에 둔 듯한 표정들이다.
[낄낄! 그럼 오늘은 이 계집으로 우리 형제간의 우의를 돈독히 해보세!]
용수가 소매에서 작은 약병을 하나 꺼내며 음험하게 웃었다.
[수고한 게 나니까 내가 먼저 이 계집의 늪에 보물을 담가야겠다. 불만 없지?]
용수의 말에 다른 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순서는 지켜야지!]
[대신 다음 사람을 생각해서 너무 거칠게 담그지는 말게나!]
[우리 형제들이 골고루 나눠 먹어야 하니까 계집의 늪에 고여 있는 음기도 혼자 다 흡취(吸取)하면 안 돼!]
파계승들이 낄낄대는 중에 용수가 약병의 뚜껑을 열어 여인의 코에 대었다.
[콜록!]
그러자 여인은 세찬 재채기를 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당... 당신들은...!]
정신을 차린 여인은 자신을 빙 둘러싼 채 내려다보는 중들을 발견하고는 기겁했다.
사십 년 넘게 살아오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인지라 중들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번들거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여인은 질겁하며 일어나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파계승들이 달려들어 그녀의 팔다리를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놔, 놔라! 놔!]
여인은 다급히 몸부림을 쳐 봤다.
하지만 파계승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여인도 상당한 수준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혈도가 제압당해 그저 평범한 아낙처럼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여인의 팔다리를 누르고 있는 사이에 용수는 여인의 옷을 움켜잡아 거칠게 찢어내렸다.
찍! 찌직!
천이 찢기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여인은 단번에 알몸이 되었다.
[오오! 죽이는데!]
[흐흐흐! 살진 암퇘지가 따로 없군!]
[돼지도 그냥 돼지가 아니라 백돼지야!]
발가벗겨진 여인을 둘러싼 채 파계승들은 눈을 희번덕이며 음담패설을 쏟아냈다.
그자들의 말대로다. 발가벗겨진 여인의 몸은 비만하다 싶을 정도로 살이 많이 올라 있다.
게다가 유달리 살결이 희고 고와서 마치 갓 쪄낸 백설기를 연상하게 한다.
만지면 묻어날 정도로 새하얀 여인의 알몸에서 유일하게 색조를 띠고 있는 것은 몸의 중심부뿐이다.
[이 천벌을 받을 놈들! 놔라!]
여인은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자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사력을 다해 몸부림을 치며 악을 썼다.
하지만 그녀의 입은 곧 벗겨진 자신의 속옷으로 틀어막혀 버렸다.
[킬킬! 암 퇘지가 이제야 조용해졌군!]
[너무 시끄러우면 잡아먹는데 방해가 되지!]
여인의 입을 틀어막은 파계승들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벌이기 시작했다.
[읍! 읍!]
여인은 치욕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사지가 짓눌려진데다 입까지 막혀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첫댓글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요 ~~~감사~~~
감사 즐독~~~~~~
감사합니다
순화시켰다고 했는데 너무 순화시켰으면 읽는 재미가 없을텐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 재미있고게 잘보있습니다 항상 고맙고 감사드림니다👮♂️👮♂️👮♀️
중년 부인 누굴까>
즐독..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ㅈㄷ
즐독 감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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