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산동에 있는 LG전자 R&D(연구개발) 캠퍼스. |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이면 에어컨 생각이 간절하다. 단, 두 가지 걱정거리만 덜어줬으면 좋겠다. 바로 전기료와 냉방병이다. 이번 여름에는 수십만원이 찍혀 있는 고지서, 밤새 에어컨을 켜고 자다 입이 돌아간 사람 이야기를 듣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에어컨 제조업체들의 노력이 치열한 가운데 LG전자 에어컨 사업본부의 성과가 주목된다. LG전자 에어컨 사업본부는 2013년 매출 100억 달러 달성, 글로벌 톱 수준 총합 공조 에너지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주연(39) LG전자 책임연구원은 전기료와 냉방병을 잡기 위해 에어컨만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는 기계가 아닌 인체에서 답을 찾고 있다. 이 연구원을 만난 곳은 서울 가산동에 있는 LG전자 R&D(연구개발) 캠퍼스. 실험실에는 방 모형의 작은 실험실이 있고 여기에 한 실험자가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며 드러누워 있었다. 온도 변화에 따른 신체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번 실험자 순서가 벌써 2000번째를 넘어선다. LG전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체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이다.
5년 동안 2000명 실험해 ‘최적 냉방’ 연구
이 연구원은 5년 동안 약 2000명의 인체실험을 통해 올해 휴먼케어(인체감지 로봇) 기능을 개발했다. 업계 최초로 바람의 방향, 세기, 냉방온도까지 자동 조절해주는 기능이다.
“에어컨 바람을 잘못 쏘이면 냉방병에 걸린다고요? 우리 몸이 원하는 쾌적한 정도를 유지하면 그럴 걱정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으니 전기료도 절약될 수밖에 없죠.”
‘휴먼케어 인버터’ 기술을 적용하니 전기료가 최대 72% 절감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 연구원은 일본 나라여대에서 환경·인체생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환경·인체생리란 아직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일본·미국·유럽에서는 이미 30~40년 전에 시작된 연구분야다. 환경의 온도, 습도, 기류 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다.
인간이 언제 쾌적함을 느끼는지 실험을 통해 수치화하는 연구로 인간이 더욱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학문이다. 10년 전 미국의 한 학회에서 LG전자 관계자와의 만남을 계기로 이 연구원은 2000년 LG전자에 입사하게 됐다. 그리고 LG에어컨 ‘쾌적연구’팀이 생겨났다.
그 뒤로 10년간 이 연구원을 주축으로 LG전자는 인체에 쾌적한 에어컨을 주제로 상품을 개발해 왔다. 인체쾌적 기능과 쾌적절전 제습, 에어샤워, 쾌적 REM 수면 기능, 그리고 지난해 세계 최초로 출시된 LED 조명 에어컨 또한 이 연구원의 작품이다. REM 수면 상태란 뇌활동이 활발한 수면 상태로 기억력을 높여주고 스트레스는 줄여준다.
아이들의 성장호르몬도 이때 보다 활성화된다. 기능이 많아 다소 헷갈린다면 이 모든 기능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 몸이 원하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주는 에어컨’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 연구원이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는 연구 분야는 숙면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이다.
쾌적연구팀은 자는 동안의 인체 변화를 살피는 수면다원검사를 3여 년간 실시해 왔다. 뇌파는 어떤 곡선을 그리는지, 수면 깊이에 따라 호흡은 어떻게 바뀌는지, 팔다리의 떨림은 없는지, 피부 표면 온도는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점검하는 작업이다. 이 연구원은 주저 없이 에어컨의 기술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수면 기능을 꼽는다.
다음은 이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수면 연구가 에어컨 개발에 있어 왜 중요한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사람이 에어컨 기능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고객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기계가 알아서 조절하는 똑똑한 기능이 필요하다. 최근엔 기후 변화가 더욱 가속화되면서 열대야 일수도 늘어나 잠든 동안에도 에어컨을 가동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2~3년 전부터 에어컨 기능의 하나로 열대야·수면 기능이 추가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연구원은 “수면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쾌적한 수면은 학습 능력과 업무 능률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고객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고 에어컨 구매 시 주의 깊게 살펴보는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웬만한 에어컨에는 열대야·수면 기능이 있는데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의학적으로 검증되었는가 안 되었는가의 차이다. 우리는 올해 6월 샌안토니오 미국 수면학회에서 REM 수면 결과를 발표했다. 의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수면다원검사가 제품에 적용된 경우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LG전자의 실험 결과를 의학저널에 게재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지난해에도 보스턴 ICEE(인간공학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Environmental Ergonomic) 국제학회에서 휴먼케어 기능을 발표한 바 있다. 세계 권위 있는 각종 학회에 우리의 결과가 실리고 있다.”
국내 최초로 수면장애 치료원인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과 2년간 공동 연구개발한 네 번의 꿈 숙면 기능은 수면 상태의 체온 변화에 맞춰 최적의 온도를 유지해 건강한 수면을 돕는다.
-온도가 숙면을 취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나.
“잠들 때 온도가 숙면을 좌우한다. 『아침형 인간을 위한 4시간 숙면법』을 지은 일본의 숙면연구가 고바야시 도시노리 박사는 열대야 속에 숙면을 취하기 위해 잠자기 30분 전 침실 에어컨을 틀어놓는다. 거실이나 밖에 있다가 잠자리 들기 직전 침실로 들어가 찬 공기를 맞으면 편히 잠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특히 수면 초기 온도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잠들려는 순간의 기온이 숙면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올여름 이 연구원이 추천하는 잘 자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잠자기 10분 전쯤 침실에 미리 에어컨을 틀어 온도를 25도로 낮춘 뒤 1시간 정도 취침 예약을 하라.”
-그래도 경쟁업체의 빠른 추격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텐데.
“우리의 경쟁력은 의학적으로 검증된 기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검증된 데이터를 한발 빨리 만들어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경쟁자보다 빨리 공급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고객의 니즈를 먼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왜 2000명의 데이터가 중요한가. 2~3년 전부터 예비 실험을 끝내놓았기 때문에 트렌드를 리드할 수 있다. 인체실험의 특성상 여름철 연구는 여름철에 진행해야 정확한 결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2~3년 앞서지 않으면 개발을 진행하기 힘들다.”
-어떻게 2~3년 후의 기능까지 예측하나.
“고객이 어떤 기능을 원한다고 의견을 드러냈을 때 개발하면 그때는 늦은 것이다. 고객의 니즈가 취합됐을 때는 이미 기능이 나와있어야 한다. 우리는 에어컨이 아닌 ‘쾌적함’을 연구한다. 여기에 답이 있다.”
-에어컨 시장에서 앞으로 어떤 기술이 각광 받을 것인가.
“고객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더워 죽겠는데 한 침대에서 자는 부인이 춥다고 하는데 이를 에어컨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개인차를 반영하는 기술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또한 헬스케어 기능이 좀 더 발전해야 한다.”
-엔지니어로서 가장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무리 좋은 기능을 개발해도 이를 고객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고객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 마케팅 팀의 일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마케팅 팀에 설명할 때 이미 고객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이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