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에 이런 효능이?...비만 개선 효과 / YTN 사이언스
https://youtu.be/4BMkoy9hcnk
나라꽃 무궁화...몸에도 좋아 / YTN
https://youtu.be/cddkKD3-iDU
사람 사는 집은 곳곳이 무궁화 울타리로구나 人家處處槿花籬
이제현(李齊賢)의 《익재난고(益齋亂藁)》의 〈고정산(高亭山)〉중에서
http://www.indica.or.kr/xe/flower_story/7688683
무궁화, 품종 '선덕'
우리나라의 나라꽃은 '무궁화'입니다. 국기와 국가에 대해서는 확실한 규정과 근거가 있으나 나라꽃에 대해서는 뚜렷한 법령 규정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궁화는 오래전부터 겨레의 민족성을 표상하는 나라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무궁화가 나라꽃이 되었나?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지금 우리 주변에서 무궁화를 잘 보기 어려운 것만 보더라도 무궁화에 대한 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희박해진 것도 사실입니다.(무궁화가 주변에 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기록을 보면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거쳐 우리나라는 근화향이라고 하고 무궁화 동산이라 할 정도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었으니 지금은 거의 없음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라꽃으로서의 무궁화의 자격 시비가 더욱더 잦아지는 것 같습니다. 무궁화의 자격 시비는 벌써 구한말에도 있었는데, '황성신문'은 복숭아꽃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고, 식물학자 이민재는 무궁화가 국화로 지정된 일도 없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일도 없으니, 차라리 우리 주변에서 흔히 피어나는 진달래를 나라꽃으로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조동화, 주요한 같은 이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무궁화의 자격 시비론을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하는 이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나라꽃 후보는 무엇일까요? 제가 얼핏 찾아본 바로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가장 많습니다. 가장 흔하고 볼 수 있고, 우리 민족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들이 주장하는 그 이유를 읽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비가 옳고 그르든 아직 우리의 나라꽃은 무궁화입니다. 이젠 누구나도 관심이 없어져서 찾지도 않고, 화단이나 길가에서 사라져가는 나라꽃, 그 무궁화가 안타까워 저는 무궁화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야생화 무궁화속 식물 '황근'
식물학적으로 무궁화는 아욱과 무궁화 속에 속하며 우리나라에 자라는 이 속의 식물로는 무궁화와 닥풀, 부용, 수박풀, 황근, 오크라, 하와이무궁화가 있습니다. 꽃모습이 모두 유사하여 꽃만 보아도 같은 속의 사촌 간 식물임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무궁화 자격 시비론의 한 이유로는 무궁화가 인도에서 전래된 외래식물이란 점도 큰데, 최근에는 인도, 중국, 한국이 원산지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무궁화는 오래된 기록을 살펴볼 때 2천여 년 이상 우리 땅에 자생해온 식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의 여지고(與地考)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수광에 따르면, 산해경에 '해동에 군자국이 있는데, 의관을 정제하고 칼을 차며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으며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
이수광이 언급한 산해경은 기원전 2세기 경에 쓰인 중국의 신화집인데, 그 내용은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기록이 많기는 합니다만, 기원전 훨씬 전에 이런 기록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무궁화가 우리 땅에 많이 피고 지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산해경 진본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중국 河海大学文天学院 사이트에 게재된 '韩国国花—无穷花' 글에 아래와 같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自古以来韩国无穷花多,因此称为“槿花乡”,即“无穷花之乡”。约在2世纪前编撰的中国古代地里志《山海经》是对无穷花的最早纪录:“君子国有薰花草,朝生暮死”。君子国是指韩国,薰花草则是指无穷花。 这种纪录后来不仅在中国,在韩国各文献中也经常出现。
(번역:고대로부터 한국에는 무궁화가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 '근화지향', 또는 '근화향', 즉 '무궁화의 나라'라고 불렀다. 기원전 2세기때, 고대 지리서인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는 "군자국에는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國 有薰花草 朝生暮死)"는 대목이 있다. 군자국이란 한국, 훈화초는 무궁화를 지칭한다. 이런 기록은 이후 중국은 물론 한국의 여러 문헌에 자주 나타난다.)
무궁화가 어떻게 나라꽃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의 답은 아마 이것으로 답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독재자가 좋아해서 나라꽃이 된 것도 아니고 임금이 지정해서 나라꽃이 된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스스로가 오래도록 근화향이라고 불렀고 주변에서도 그리 인정하였기에 그리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많았던 무궁화가 지금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저도 나름 야생화를 찾아 산과 들을 뒤적였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고백컨대 아직 야생에서 무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명나라 사람, 이서진의 본초강목에는 무궁화는 관목으로도, 씨로도, 꺾꽂이로도 번식한다고 되어 있으니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었다는 것이고, 그 외에도 동이총기에, ' ...... 고려 때 표사(表詞)에 본국을 일컬어 근화향이라 일컬었음이 이것이다 ......',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 ...... 조선(朝鮮)ㆍ삼한(三韓)ㆍ해동(海東)ㆍ좌해(左海)ㆍ대동(大東)ㆍ청구(靑丘)ㆍ접역ㆍ진단(震檀)ㆍ근화향(槿花鄕)이라 한다', 해유록에는 '...... 무궁화 핀 청구(靑丘)를 가리키며 신라의 가을 빛 바라보네'란 기록들을 볼 때, 과거 우리나라에서 무궁화를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꽃 무궁화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간 것일까요?
저는 그 답을 일제 때, 발생한 '무궁화 동산 사건'에서 찾아 보려 합니다. 무궁화 동산 사건이란 무궁화를 보급하여 민족정기를 살리려던 남궁억에 의해 전국적인 무궁화 심기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를 알게 된 일제가 되려, 무궁화 나무를 전부 없애도록 한 사건입니다.
무궁화 동산 사건의 전모(全貌)는 다음과 같다. 1933년 11월 2일 홍천 경찰서 사법 주임인 신현규(申鉉奎)가 시조사원(時兆社員)을 가칭 (假稱)하여 남궁 억을 방문하였다. 남궁 억은 시조 잡지를 팔며 무궁화 묘목을 사러 왔다는 신현규를 무궁화 묘포로 데리고 가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라는 것을 설명하며 무궁화시(詩)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사쿠라는 활짝 피었다가 곧 지지만 무궁화는 면연(綿延)히 피어나는 것처럼 한국 역사가 면연할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 사랑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국가문화상징 무궁화), 2006.,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사전'에는 아래와 같은 글도 있습니다.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 꽃으로서 2천여 년 전 중국에서 인정된 문헌이 있다. 고려조 시대에는 온 국민으로부터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상, 의학상에 진중 (珍重)한 대우를 받았는데, 영국의 장미처럼 국화로 되어 있다가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서서 이화(李花)가 왕실화로 되면서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 민족으로부터 차차 소원해진 것이다.
20세기의 신문명이 조선에 들어오면서부터 유지(有志)들은 민족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통일 진작을 위하여, 글과 말로, 천자만홍(千紫萬紅)의 모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으로 그 수명이 잠깐이지만 무궁화만은 여름에서 가을에 거쳐서 3∼4개월을 연속 필 뿐 아니라 그 고결함은 위인 (偉人)의 풍모라고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궁화 강산' 운운하는 것은 자존 (自尊)된 조선의 별칭인데, 대정(大正) 8년 기미운동(3.1운동을 말함) 이래 일반에게
널리 호용(呼用) 되었으며, 주로 불온(不穩)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근화(槿花), 무궁화, 근역(槿域)등은 모두 불온한 문구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제는 일찍이 무궁화를 불온한 식물로 규정하고 우리 땅에서 무궁화를 말살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그 결과 지금 우리 땅에서 무궁화가 보기 어려워진 것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자연에서 무궁화가 보기 어려워진 이유가 이것만은 아니겠지만, 분명히 그 시절 우리 땅에서 무궁화를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부단히 노력한 것은 여러 문헌으로 보아 사실입니다.
해방 이후, 우리는 다시 우리 주변에 무궁화를 많이 심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릴 적 학교 교정에는 늘 무궁화가 있어고 동네 길가에도 무궁화는 많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무궁화입니다. 심지어 부용이나 접시꽃을 무궁화로 알고 있는 경우도 흔하고, 실제로 무궁화 그런 식물들이 주변에 더 많기도 합니다. 왜 해방 이후 한동안 흥하던 무궁화가 다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일까요?
진딧물 때문이라는 핑계로 아파트나 민가에서는 더 이상 무궁화를 심지 않습니다. 그리고 꽃가루를 만지다 눈을 만지면 장님이 된다든가 하는 과거 일제에 의한 악의적 선전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거듭된 무궁화 육종 개발로 품종이 300종이 넘고(150종이 우리나라에서 개발) 그중에는 진딧물이 없는 품종도 개발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방제도 어렵지 않으며 여름이 되면 무당벌레에 의해 자연적으로 퇴치되기도 합니다. 더구나 무궁화는 백일 동안 피고 지고 무궁 무궁 오래가니 주변에 심어 해될 것이 없는 꽃나무입니다. 유럽에서는 가로수로도 볼 수 있고 정원수로도 많이 심는다는데, 정작 나라꽃인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관공서나, 수목원, 독립 기념공원 같은 특별한 곳 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진달래, 개나리에 밀려 이제, 무궁화는 나라꽃의 지위마저 빼앗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저는 무궁화가 꼭 나라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특산종에 가까운 개나리가 나라꽃이 되어도 좋고, 산과 들에 흔히 피어나는 진달래는 참꽃이라고 불릴 정도이니, 그 꽃이 나라꽃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무궁화 역시 오래도록 이 땅에서 자리하고 있으며, 그동안 겨레의 사랑을 받아온 꽃이고,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의 꽃으로 고초를 함께 겪은 만큼 나라꽃이라 하여 전혀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이 글에서 무궁화 나라꽃의 적합론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무궁화에 대한 사실을 알리고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보자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이후로 제 손으로 무궁화 한그루 심지 않았으니 저도 목소리 높일 처지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이 글을 통해 무궁화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만듭니다. 다행히 개정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17년부터 무궁화 진흥계획을 수립·시행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참고 자료]
다음과 같은 법규정이 신설되어 2017년 6월 3일부터 시행된다.
국가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 공공기관의 장, 각급 학교의 장은 무궁화에 대한 애호 정신과 국민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하여 그 소관에 속하는 토지에 무궁화를 확대 식재하고 이를 관리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개정법 제35조의5 제1항).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무궁화를 식재하는 경우에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품종 또는 계통을 우선적으로 식재하여야 한다(같은 조 제2항).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무궁화의 보급·관리·연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법인 또는 단체에 대하여 그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개정법 제35조의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