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의 결제시스템인 즈푸바오(支付宝)의 실명 회원은 4억5000만 명이나 된다. 중국 전체인구의 3분의 1가량을 고객으로 확보한 셈이다. 일인당 5000위안(약 85만원)만 이용해도 2조 위안의 실적을 올리는 구조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얼마 전 ‘마이화베이’라는 소액대출서비스 한도를 1만 위안에서 2만 위안으로 올린다.
신용카드조차 만들기 어려운 학생들이나 사회초년생 점원 경비원 등 서민 입장에서는 1만 위안을 공짜로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톈마오 광쿤제’를 겨냥한 그의 전략은 맞아 떨어진다. 11월 11일 광쿤제 매출은 28조원으로 지난해 보다 30%나 늘어난다. 늘어난 대출 한도를 이용해 사고 싶은 물건을 산 결과다.
자오상(招商)은행도 비슷한 시기에 ‘아이폰X’ 마케팅을 펼친다. 자오상 은행 카드로 아이폰X를 사면 이자와 수수료를 면제하겠다고 하자 신용카드 사용액이 2시간33분만에 20억 위안을 돌파한다.
중국에서 170만원 하는 ‘아이폰X’가 불티나게 팔리고 월급 3000위안을 받는 사람도 루이비통가방을 메고 BMW를 몰고 다니게 만드는 마케팅이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들도 금융기관에서 최대한 빚을 내 투기를 한다. 물가가 오르니 화폐를 들고 있는 것보다 실물을 가진 게 낫다는 논리에서다.
은행 대출금의 최종 종착지는 기업이 아니라 부동산과 명품 등 소비시장이다. 고가의 명품을 사모으고 저택을 장만하는 것만 놓고 보면 이미 선진국 수준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분위기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잘나가던 국유기업이 잇달아 부도를 내자 중앙은행까지 나서 거품 붕괴를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발단은 신의주와 마주한 단동항(丹东港)이 돌연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부터다. 단둥항은 10월 30일자 공시를 통해 “14단동항MTN001 채무 10억 위안을 못 갚아 죄송하다”고 밝힌다.
대형 국유기업인 단둥항은 6월 말 기준으로 371억 위안의 부채를 가지고 있다. 1년 이하 단기부채는 170억위안 정도다. 채권 은행은 공상은행 농업은행 중국은행 교통은행 민생은행 평안은행 등 19개 은행을 망라한다.
단둥항의 부도가 심각하게 다가온 것은 앞서 동베이터강(东北特钢)과 다롄지창(大连机床)이 연쇄적으로 파산했기 때문이다. 랴오닝(辽宁) ‘동베이터강’의 첫 부도는 지난 3월25일 발생한다.
이후 만기 도래한 7개의 채권 40억 위안을 갚지 못해 부도를 맞는다. 신용등급은 AA에서 정크본드인 C로 급전직하 한다. 사건이 터저야 급락하는 중국의 기업 신용평가 구조 탓이다.
우주선이나 항모에 들어가는 특수강을 만드는 바람에 ‘동북왕’이니 ‘공화국의 장자’니 하는 칭호도 받았던 잘나가던 기업이다. 이 회사 회장은 채권 만기 도래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후 부채 70%를 주식으로 전환하며 회생을 노렸으나 주주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끝내 도산한 케이스다.
지난 11월 10일 부도를 맞은 ‘다렌지창’도 잘 나갈 당시에는 조 단위 매출로 한 때 세계 500대 선반기업 중 8위까지 올랐던 국유기업이다.
이 회사의 채무 위기는 작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월 말 첫 부도가 난 뒤 위기가 겹치면서 8종의 채권에 대한 지급 불능으로 38억 위안의 부도를 낸다.
좀비기업 신청으로 하고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이 회사의 지주회사는 다렌가오진커지(大连高金科技)다. 등기부에 따르면 가오진커지는 대련지창의 65% 지분 등 모두 4개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주인은 천융카이(陈永开) 다롄지창회장이다.
다롄 국자위 100% 자회사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 한 뒤 천 회장이 주식 77%를 보유하고 나머지는 공동 주주 41명 몫이다.
이 회사는 1999년 말 기업의 채무를 주식으로 전환시키면서 부채를 3분의 1로 줄여주고 민영화하는 바람에 호시절을 누린다. 2006년까지만 해도 40여개의 계열사를 둔 잘나가는 업체였다.
한국 등 8개국과 합작사를 만들고 영국과 독일의 잘나가는 회사 3개도 매입하면서 자동차 군수 항공 농기계 광산 지질 탐사를 벌이던 기업이다. 그러나 최근 거시경제 부진과 자금난 등으로 지난해 3분기에 부채총액이 180억 위안으로 늘며 부도 위기에 처한다.
마지막 재무제표에 따르면 3분기 매출은 93억 위안인데 영업비용이 90억 위안 이다. 영업이익은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부도가 난 것이다.
거시경제 사정도 영향을 주고 있지만 자금이 부족하다보니 제때 물건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수금도 안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된 결과다.8월24일에는 은행간 거래상 협회로부터 경고를 받는다.
중국의 기업 부도는 연쇄적인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국가 금융 계통으로 분류되는 은행 증권 신탁회사에는 한가지 불문율이 있는데 바로 신탁상품에 대한 원금보장이다.
법률 조항에는 없지만 누구나 국가 기관에서 원금을 보장해 줄 것을 믿는다. 기업부도가 나건 말건 금융기관은 투자자들에게 만기가 되면 투자금과 이익을 나눠 줘야 한다.
원금지급 보장을 안 하면 아예 돈을 안 맡기는 관습이 만든 풍속도다. 부도나 파산을 겪으면서 금융 경쟁력을 구비해 나가는 방식과는 다르다.
이에 따라 최근 기업의 채무불이행이 중국경제에 낀 거품을 터뜨리는 촉매제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탁이나 채권 인터넷금융 소비금융 국유기업 중앙기업 지방정부 민영기업에서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기업의 실적이나 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12월 예고된 미국 금리인상은 뇌관이나 다름없다. 급기야 중국인민은행은 지난 4일 저우샤오촨(周小川)행장 명의로 “구조적 금융위기 발생을 막아야한다”는 글을 공시한다.
공시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으로 중국 기업 부채율은 165%에 달한다. 국제적인 경계선을 훨씬 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채무불이행 상황에 처한 국유기업들에게 지방정부가 대출한도를 올려주는 것을 경고한다. 지난해 증시파동과 함께 일선 도시의 부동산 거품 붕괴에 이어 최근 국유기업 자금난은 모두 연계된 사건이라는 게 중앙은행의 시각이다.
마윈이 주도하는 소비자 대출 확대나 지방정부의 대출 연명으로 결국 파산에 이른 국유기업사태나 중앙은행의 경고를 사건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중국 경제에 잔뜩 끼어 있는 거품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검소하게 살다가 사치하기는 쉬워도 사치부리다 허리띠 졸라매기는 힘들다(从简入奢易,从奢入俭难)”는 중국 격언을 되새겨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