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오니 집사람이 김춘수 시인이 오늘 타계했다고 하더군요.
집사람이 현대문학을 전공했는지라 그러려니 했는데 씻으면서 시인의 죽음과 더불어
서정시대도 종말을 고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김춘수 시인이 60년대 한국 시문학에 왕성하게 활동한 작가였고 한국문단에서
명성있는 작가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 '꽃'이라는 시를
친구들과 패러디해서 읊었던 기억외엔 시인의 시집을 소상하게 읽어보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샤걀의 마을에 내리는 눈' 같은 시들은 아마 여러분들도
한번쯤 접해보지 않았을까 싶네요.
혹시나 해서 시집을 들춰보니 여러 시인들이 시를 한데 묶은 시집 한권에 김춘수 시인의 시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오늘 시인의 죽음과 더불어 매우 의미있게 다가오더군요.
가을 저녁의 시
누가 죽어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 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수 없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시인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60~70년대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누구나 서정(抒情)
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나 책들에 등장하는 그 시절을 풍미하는 코드들은
대개 인간미와 낭만성을 가미한 아날로그적 요소들이 다분했다는 생각이 들고요.
90년대를 넘어오면서 우리사회는 많이 변했고 사람들은 낭만이니 서정이니 하는것보다는
풍요속에서 좀더 물질적으로 변했고 즉각적이고 감각적이 되었습니다.
시대적 감성들은 디지털화 되어 냉혹하리만치 차가와지는 것 같습니다.
마치 누구나 사랑을 꿈꾸고 대화를 원하지만 옆집과 한번 인사 나누지 않는 이중성과
무관심의 철문 같다고나 할까요? (이게 뭔말이여~)
더불어 시인도 늙어갔고 시인의 시대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이젠 시집이 많이 팔리는 시대도 지났고 시라는 요소가 예전만큼의 매력적 장르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집 한권의 훈훈함보다는 재테크 서적이나 인터넷소설같은 실용성과 재미를
더 추구하는 시대이니까요.
차갑고 각진 이 시대에 시인을 기억하는 젊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가 남기고 간 '가을저녁의 시'
온누리에 죽음을 고하는 가을을 슬픈 눈에 비유하면서
가을의 죽음을 홀로 슬퍼하던 시인은 오늘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길수 없는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듯이
시인의 정한 목숨도 이 가을 홀연히 어디론가 흘러가겠지요.
시인은 죽고
시인이 활동하고 사랑했던 서정시대(抒情時代) 도
어느덧 슬픈 가을의 눈빛으로 종말을 고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오늘은
가슴이 따듯한 사람이 그리운 계절,
진실한 대화가 아쉬운 시대입니다.
첫댓글 흘러나오는 음악은 요요마와 엔니오모리코네의 신작앨범인데 '가브리엘의 오브에'를 편곡했더군요. 음악이 인상깊어 요 몇일간 계속 듣게 되네요. 시인의 죽음을 접하면서 갑자기 이 음악이 생각나더군요.
깊은밤 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슴이 따듯한 사람이 그리운 계절!! 참~ 가슴에 와닿는 말이네요. 대전.충남 문화교양학과의까페에울리는 이.. 음악에 진실과 함께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고인의 명복과 함께 좀 더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