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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추억이나 경험담 (살며 생각하며) 6070 남기고 싶은 동년의 기록들
하얀여우 추천 5 조회 749 16.05.23 00:23 댓글 2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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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5.23 00:35

    첫댓글 동년의 기록... 바로 맞습니다.^^ 올리신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추억의 책가방에 소중히 담아 둔 것들을 이리도 펼쳐 주시니 오랫만에 옛 생각에 젖어 즐거운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쪽지 보냅니다...

  • 16.05.23 01:00

    저에게도 낯익은 기록들이 많군요
    저는 그냥 다방구 다방구 하며 놀았는데 담방구인가 봅니다
    겨울이면 쥐불놀이도 많이 하고 놀은 기억인데
    그넘의 깡통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세째 동생녀석 벼락 맞아서 그 흉터가 아직도 있습니다...ㅋ

    옛날 생각 많이 나네요...ㅎ

  • 작성자 16.05.23 10:54

    ㅎㅎ쥐불놀이를 빠트렸네요, 깡통에 구멍을 송송 뚫어 전깃줄로 묶어 나무를 태우며 빙빙 돌렸지요, 그시절에는 나무로 된 담장의 집도 적지 않아 연료(?)가 떨어지면 주인 몰래 담벼락의 나무를 뜯다가 들켜 혼나기도 하고~동심의 시절이 마냥 그립군요~보잘것 없는 글, 읽어주시고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16.05.23 03:12

    저와 아주 가까운곳에서 사셨군요,
    하얀여우님의 글에 제 모교도,
    어릴때는 손야구도 많이하고 놀았고요,
    제 모교에는 연못이 둘씩이나 있어서요,
    몰래 낚시하는 재미도 쏠쏠,
    제 모교에는 아버지의 직업이 군인이거나,
    군속이 많았어요.
    제 형님께서도 CIC에서 일하시면서 야간학교를 다니셨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네요.

  • 작성자 16.05.23 11:04

    분도님은 서대전국교 출신이군요, 저보다 몇년 청년(?)이신것 같으신데, 서대전국교 출신으로 과거 고교야구전성기시 중앙고의 윤몽룡투수나 충암고의 정순명투수를 기억하실지요? 서대전 성보극장자리는 모두 재개발되어 고급아파트 단지로 변신했네요, 지금의 서대전공원과 문화마을 아파트자리는 서대전미군부대로 불리었고 미군들의 야구하는 모습도 종종 구경하곤 했지요,마음의 기억세포에 남아만 있는 어린시절의 편린들~그래서 잊히지 않나 봅니다. 건강하세요^^

  • 16.05.23 13:25

    @하얀여우 성보극장 바로 아래,
    아이스케키공장이 있었지요,
    지금의 비비빅,
    1원에 2개,
    그 아래 첫번째 골목길로 들어서서 내려오다보면 미나리깡이 있었고요,
    거기서 충열탑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쯤에,
    국수공장이 있었지요,
    미나리깡앞에는 두부공장과 콩나물공장,
    지금의 용두2동은 전부 논이었고요.
    지금도 대전에 사시나요?
    특별한 일없으면 내년 3월중순~4월 중순사이
    방문예정,
    그때 만나서 옛날 얘기하지요.

  • 작성자 16.05.23 15:28

    @분도 환영합니다, 전 차이나에 거주하지만 살던 서울집은 진작에 월세주고 차이나해변집 구입해서 살면서 대전에 사시는 노모의 건강때문에 왔다갔다 하고 있네요~

  • 16.05.23 03:09

    저보다 약간은 빠른 시기에 태어나셨나 봅니다..그리고 기억력도 대단히 출중하십니다!! 제가 이미 잊고 있었던 모든 지난 추억들을 새록새록 기억이 나도록 만들어 주셨네요..덕분에, 읽어가면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아주 좋은 시간이 되었답니다.. 감사드려요..^^

  • 작성자 16.05.23 17:28

    감사드립니다, 전 이 글을 쓰면서도 사실 모든게 정확하다는 자신은 없었네요~그래서 은근히 그 누군가가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태클을 걸어 주길 바랬는데~ 줗은 시간 되세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6.05.23 06:16

    쪽지 보냅니다.

  • 16.05.23 06:44

    정말 어릴적 기억이 글중에서 많이 납니다.
    동년배를 산 사람들은 어릴때 추억이 주마등 처럼 지나가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 16.05.23 09:16

    잘보았습니다.
    60년대에 저는 배고프고 가난한 기억이 더 많군요
    그래서 그런지 다시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더군요

  • 16.05.23 11:35

    올려주신 '동년의 기록들'속에서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초등시절의 추억거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네요.

    한가지 저의 초등시절 '강냉이빵'은 가정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급식품이였지요.
    각반 임원들이 양동이를 들고 교무실에 내려가서 타오곤 했는데,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들 몫으로 타오는 노란 강냉이빵이
    그 당시에는 제 코끝을 간질거려서 속으로 얼마나 먹고 싶던지요?ㅎㅎㅎ






  • 작성자 16.05.23 12:37

    ㅎ정답을 말씀해 주셨네요, 옥수수빵 뿐만 아니라 우유가루를 타서 끓인 물을 교실의 큰 주전자가지고 가서 받아 온 기억도 있네요, 모든게 가난한 국가를 위한 해외원조식량이었겠죠, 지금의 아프리카처럼~우린 모두 공감의 시공이 같으니 긴말 필요 없겠죠~저역시 소수의 어려운 어린이에게 제공되던 옥수수죽이 넘 먹고 싶어 모친을 통해 담임선생님께 부탁하여 한 그릇 참 맛있게 먹은 소중한 기억이 있네요^^멋진 코멘트에 감사드립니다~

  • 16.05.23 13:33

    제때는 밀가루빵,
    제가 빵당번였어요,
    대나무 바구니에 빵을 타오는데요,
    홀수날은 홀수번호,
    짝수날은 짝수번호가 타갔지요,
    빵당번에게 주는 특혜,
    매일 제 몫으로 3개를 더 받어다가,
    3명의 급우들에게 제 몫으로 받은빵을 줬네요,

  • 16.05.25 10:34

    저희는 서울에서 한시간 떨어진 당시는 "촌(?)"이라서 그랬는 지.. 반 인원 모두 다 나눠줬더랬습니다.. 저학년 시절엔 옥수수빵.. 몇년후에는 밀가루빵으로 바뀌었는데, 별 맛이 없었지요..그래서인 지.. 저는 지금도 옥수수빵을 굽는 빵집은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답니다..어린시절 그 추억의빵이 기억나서 말이지요.. 그땐 왜 그렇게도 맛이 있었는 지..차마 혼자 먹지 못하고 동생들 생각에 집으로 싸가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말린 우유도 기억나구요..^^

  • 작성자 16.05.25 14:03

    @tndud 저역시 같은 생각으로 살고 있네요^^ 옥수수기루가 들어간 빵은 많이 접해 받지만 그시절 아주 가끔씩 반개씩 놔누어준 그 빵맛 만한것 아직도 찾지 못혔네요^^ 오늘도 잠시 과거로의 타임머신을 타게되어 즐겁습니다~

  • 16.05.23 18:44

    많은 부분에 공감하지만, 저는 괴외인지 뭔지는 모르고 살았네요.
    타임 머씬을 탄 기분입니다.

  • 16.05.23 19:57

    치매는 절대 안걸리실듯 하군요
    어찌 ...???
    허나 근래것은 기억 몾하고 예전것만 기억하는 치매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ㅎㅎ(농담 입니다)
    뭐 이리보아도 저리보아도 너무 정정한 기억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전 몇아래인데도 가물거려요

  • 16.05.23 20:13

    성심당은 안가셨나봐요..^^
    아님 당시 성심당은 별로였었나요.
    60년전통 튀김소보로..
    이거 먹으려면 지금은 줄서서 사먹어야 하는데요..^^

  • 작성자 16.05.23 22:57

    성심당은 고교 시절의 아지트(?)였네요, 특별한 곳은 아니 었구요, 팔십년대 부터는 부추빵 참치빵등의 타업소에서 없는게 나와 가끔 귀향 할 때 마다 사먹은 기억이 납니다. 튀김소보로라는 것이 언제부터 뜨기 시작했는지 아마도 팔십년대 이후가 아닐까 생각 되네요~

  • 16.05.24 01:50

    정말 대단한 기억력이십니다.
    저도 오래전거는 잘 기억하는 편인데도 이정도는 아닌데.
    저보다는 5-6년 윗 분이신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도 가죽 책가방을 메셨으면 부잣집이었나 봅니다.
    우리 시골에서는 다 책보라는 거에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다녔는데.

  • 16.05.24 02:14

    이시절 한국의 10년은 무척 많이 달라요
    초등학교 가셧을때 엄마 뱃속에 있었나?
    역시 70년대후 기억밖에 거의없네요
    사각형 란도셀은 초등가면서 메고 다녔던 기억이 나요.
    과외는 필수였던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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