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해 고뇌를 많이 하셨나요?”
‘길위에서’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미국 유학파이자 박사학위를 가졌고 교수 자리가 보장된 여자가
갑자기 중이 되겠다고 머리를 깎았다.
부모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스님이 되어 한 여승에게 묻는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스님이 쳐다 본다.
그 스님은 절에 버려져 절에서 키워진 스님, 즉 ‘동진스님’이었기에
그런 선택이랑 거리가 멀었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연출한 감독의 기지에 놀랐고
그 장면에서 나에 행동은 그냥 피식 웃음이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 하나의 장면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영화에는 또 한 스님이 나온다.
인터넷 뒤지다가 어린 나이에 머리 깎은 행자 스님이다.
다른 종교가 신을 섬기는 종교라면,
불교는 자기 자신을 찾는 종교 같아서, 그래서 선택했단다.
긴 머리 찰랑이며 천진난만하게 놀다 머리 깎은 후
그녀의 진지한 모습에 어린 소녀가 아닌 한 성직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냥 놀랐다.
이창재 감독이 만든 이 영화가 2012년에 만들어졌으니
딱 10년 전에 본 영화이다.
영운 큰스님이 나오고 동진 스님인 선우 스님, 그리고 박사인 상욱 스님
지금은 스님이 되었을 신세대 민재 행자.
'여기서 무엇을 보고 싶은가’
감독이 촬영 허가를 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그 동안의 불교 영화나 기록물을 많이 보았지만 이런 영화는 처음이었다.
너무도 인간적인 영화였다.
이 절의 배경이 영천 은해사 암자인 백흥암이다.
일 년에 부처님 오신 날과 백중 이틀만 문을 개방하는 절이다.
영운 스님에게 ‘커피 한잔’ 얻어 마신 영광을 기억하는지라
백흥암이 나에겐 또 다른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절이다.
법사님께서 설 쉬고 군위 법주사에 가자신다.
군위 법주사에 다녀온지도 꽤나 세월이 흘렀다.
백흥암을 일으키신 영운 스님과 함께 육문 스님이 계신다.
육문스님이 백흥사를 일으키신 뒤 이곳 군위 법주사에 오셔서
엄청난 불사를 일으키신 절이다.
그래서 갑자기 백흥암 생각과 ‘길위에서’라는 영화 생각이 났다.
“머리 밀고 싶나?”
자주 절에 가는 나를 보고 친구가 웃으면서 묻는다.
스님이 되려면 그냥 머리 밀고 승복 입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2년 동안 '행자' 생활을 해야 한다.
굉장히 힘든 과정이라 대부분 이 행자 생활을 못 견뎌 포기한다.
새벽 3시부터 일어나 매일 열두 시간 이상 노동과 수행을 같이 하기에
대충 생각하다간 큰코 다친다.
3년 간 좁은 독방에 들어앉아 화두를 붙잡고 오직 깨치기 위해
홀로 씨름하는 수행인 무관수행같은 건 상상조차 못한다.
자유인이 되고 싶어 늘 여행길에 올라 맛난 음식 즐기면서
자고 싶으면 자고 글 쓰고 싶으면 쓰고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리다가
머리 깎고 고행길로 접어들겠느냐고 하면 아마 삽십육계
줄행랑을 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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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용한 절 법당 툇마루에 앉아 멍 때리면서 있는 게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