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백과 - 통영중앙시장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2.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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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장백과
통영중앙시장
요약 통영중앙시장은 한려수도의 관문인 통영에 위치한 전통시장이다. 동피랑벽화마을과 강구안 문화마당 등 유명 관광 명소와 가까이 있어 관광객들과 지역 주민을 상대로 활어를 비롯해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1. 통영중앙시장 개요
통영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통제영을 설치한 이후이다. 통영이라는 이름도 통제영에서 유래했다. 통영은 1900년까지 고성에 속해 있었고, 인접한 거제와 함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름이 바뀌었다. 한때는 이순신의 시호를 따서 충무가 되기도 했고, 오늘날의 통영시가 된 것은 1995년의 일이다.
통영의 시장은 통제영의 관리를 받으며 개설되었고, 매월 2, 7일에 장이 섰다. 통영의 시장은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는데 특산물로는 쏨뱅이와 쌀, 해산물 등이 있었다. 또한 통제영의 영향으로 전복이나 소라, 조개껍데기 등으로 만드는 나전칠기가 대표 특산물이 되어 오늘날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통영시장을 비롯해서 아침시장, 가축시장이 있었고, 이에 더해 일제가 운영하는 부산수산주식회사 통영지점, 통영수산주식회사, 통영식량품판매조합 등이 개설되어 있었다.
통영의 중심 시장인 통영중앙시장은 2000년대에 들어서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 주변에 형성된 동피랑벽화마을, 강구만 문화마당 등이 관광지로 부각되면서 시장도 활력을 되찾았다. 또한 서호시장은 과거 뱃사람과 부두 노동자들을 위해 새벽에 열리는 시장으로, 2009년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에 선정될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통영중앙시장에 노점들이 자리 잡은 모습
2. 통영중앙시장의 어원
통영이라는 말은 임진왜란 때인 1593년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한산도에 통제영(統制營)을 설치한 것과 관련 있다. 임진왜란 이후인 1604년에 두령포로 통제영을 옮기고, 이 지역의 이름을 통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통영(統營)이라는 말은 통제영에서 왔다. 통영중앙시장은 지역의 이름과 중심 시장이라는 중앙이 더해져서 생긴 이름이다.
3. 통영 지역의 특색과 시장 형성 과정
통영 지역은 역사적으로는 전쟁, 지리적으로는 평화라는 상반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통영의 역사가 임진왜란 때 군영에서 비롯되었고, 오랫동안 군사도시로 성장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때에도 매립에 의해 건설된 통영항은 군함이 드나드는 군항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통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의 하나로 손꼽힌다. 한산도에서 여수를 잇는 국립해상공원인 한려수도의 동쪽 관문에 위치해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와 점처럼 떠 있는 섬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통영은 고성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해 오랫동안 통영과 인접해 있는 도시인 고성과 거제에 속해 있었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군사도시로 발달하고, 남해안 해운의 중심지로 부각되었지만 행정구역은 시대에 따라서 고성과 거제에 번갈아 속했다. 300년 가까이 존속했던 통제영이 폐지된 것은 1895년의 일이었다.
1900년에는 통영 지역과 고성군, 거제군의 일부가 통합되어 진남군이 되었다가 1914년 거제군을 통합하면서 처음으로 통영군이 되었다. 그러나 1953년에 거제군이 분리되고, 통영은 1955년 이순신의 시호를 딴 충무시로 승격된다. 그렇게 충무시와 통영군으로 나뉘었다가 1995년 현재의 통영시가 되었다.
따라서 통영 지역의 시장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과거 같은 행정구역이던 고성과 거제의 시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통영 지역은 지리적으로 고성과 거제 사이에 위치해 있어 두 상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고성과 거제에는 모두 5곳에서 시장이 개설되어 있었다. 《동국문헌비고》(1770)에 따르면 고성 읍내장(1, 6일)을 비롯해서 배둔장(4, 9일), 거제 읍내장(4, 9일), 하청장(1, 6일), 아주장(2, 7일)이 개설되어 있었다.
즉, 당시 고성 지역에 2곳에서 시장이 개설되어 있었고, 거제에는 3곳에 시장이 개설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가운데 고성 읍내장과 배둔장은 고성시장과 배둔5일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동국문헌비고》에는 나오지 않지만 오늘날의 통영 지역에 시장이 개설된 것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3년의 상황을 기록한 것에 따르면 통제영이 설치되면서 성내 장대(將坮)에 있던 시장을 옮겨서 통제사가 관리했고, 1895년에 통제영이 폐지된 이후 1908년에 재무서(財務署)에서 관리했다고 나온다.
장날은 매달 2, 7일이었고, 백중과 연말에는 장날이 아니어도 임시로 장이 섰다. 그 기록에 따르면 시장은 오랫동안 번성했는데 쏨뱅이, 쌀, 해산물 등이 특산물이었다. 그러나 통제영이 폐지된 이후에 시장의 장세에 변화가 생겼다.
쏨뱅이의 경우 과거 장날마다 1,500~1,600원 정도의 거래가 있었지만 1913년에는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쌀 또한 과거에 50~60석이 거래되었는데 10석으로 그 양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해산물의 거래는 나날이 늘어서 장날마다 1,000원 안팎의 거래를 기록했다.
통영의 정기시장의 경우 시장에 나오는 상인은 조합원이 되어야 했다. 그것은 과거 통제영의 관리를 받았기 때문에 생긴 관행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이나 어패류를 판매하는 소규모 상인들은 조합에 가입하지 않아도 판매가 가능했다. 1913년 당시 시장의 유지와 보수를 위해 한국인 상인은 매달 5원, 일본인 상인들은 매달 2원씩 시장세를 내야 했다.
당시 통영시장에 나온 상인들은 많은 때는 1,500명, 평균 1,000명이었고, 고객은 많은 때는 5,000명, 평균 3,000명으로 시장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장을 찾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고성과 거제의 일부 지역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해의 연 거래액은 공식적으로는 14만 7,366원이었지만 실제로는 21만 8,478원을 기록했다.
위의 기록에서 일본인 상인들이 시장에 출장했다는 것은 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라 인근의 부산이 개항된 이후 일본인이 밀려들었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본격적으로 이주가 진행되면서 고성과 거제, 통영 등 부산과 가까운 해안가에 자리를 잡은 것과 관련이 있다.
1924년의 기록에 따르면 통영시장은 통영면에 위치해 있었고, 장이 서는 면적은 약 3,620m2 정도였다. 통영시장은 과거 통제영의 통제를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공설시장이었다. 장터는 당시 명칭으로 통영면 부도정(敷島町)이었다.
조사 당시인 1923년에 통영시장에는 장옥이 있었고, 장날은 변함없이 매달 2, 7일이었다. 장날 주로 거래된 품목은 해산물과 공산물, 농산물이었고, 하루 거래액은 평균 1만 5,000원 정도로 연 거래액은 99만 1,997원을 기록했다.
장옥의 사용료는 한 번에 1칸 당 10전이었고, 노점은 한 번에 2전씩 징수를 했다. 또한 시장 상인은 거간이 12명, 중간도매상이 5명, 소매상인이 100여 명이었다. 시장을 찾는 고객은 하루 평균 1,000여 명이었다.
또한 그때 통영 지역에는 통영시장 외에도 아침시장과 가축시장, 부산수산주식회사 통영지점, 통영수산주식회사, 통영식량품판매조합 등이 개설되어 있었다. 이들 가운데 부산수산주식회사는 부산에 본점을 두고 어시장을 운영했던 회사이며, 통영식량품판매조합은 채소나 과일 등을 주로 판매하는 시장으로 이들 모두 일본인들이 수산물과 곡물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세운 시장이었다.
아침시장의 유형은 역시 공설이었고, 당시의 지명으로 매립해서 형성된 통영군 신정(新町)에 위치해 있었다. 장옥은 따로 없었으며, 장이 개설되는 시간은 매일 오전 4시부터 6시까지였다. 아침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시장이 새벽에 열렸기 때문이다.
아침시장에서 주로 취급한 물품은 해산물과 공산물, 농산물이었고, 하루 평균 거래액은 100원 정도였다. 시장에 나오는 상인은 소매상인으로 약 65명 정도였다. 아침시장을 이용한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과 고성군 인접 지역의 주민들이었다.
가축시장 또한 공설시장이었고, 당시 지명으로 통영면 정량리(貞梁里)에 위치해 있었다. 시장의 면적은 약 367m2였고, 목책과 계류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통영가축시장에서 주로 취급한 것은 소였다. 장날은 2, 7일이었고, 하루 평균 1,000원 정도의 매상을 기록했다.
시장에 나오는 상인은 100여 명이었고, 통영군 축산동업조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