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무는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궁궐에서 새해를 맞으며 악귀를 몰아내고
왕실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어느 모임에 갔다가 처용무를 추는 것을 보았다.
궁중 무용과는 전혀 달랐다.
악귀를 물리치는 춤인지도 조금은 의아스러웠다.
워래 5명이 춤을 추는 것으로 아는데
이날은 무대가 좁았던지 혼자 춤을 춘다.
탈을 덮어쓰고 춤을 추는데 그 탈의 형상이
우리네 모습과는 딴판이다.
마치 달마대사의 모습이 동양인이 아닌 서양인처럼 보여
조금은 생뚱맞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과 같다.
그동안 책에서 처용은 귀신이다 아니다
서양사람이다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분주해
머리에 크게 각인 시켜놓지는 않았지만
처용무를 보는 내내 그의 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험한 파도를 헤치고 신라에 도착한 이란인들은
먼저 그곳 관리를 통해 마친 왕의 편지를
신라 왕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신라 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란인들을 극진히 환영하고
그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페르시아의 구전 서사시 '쿠쉬나메'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 이란인들이 신라와 교역을 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서라벌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다.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래 내 것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처용가'내용이다.
처용은 879년 신라 헌강왕 때 귀화한 이방인이라는 설이 있다.
아내를 범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당시 불치병이던 천연두가 보고
천연두에 걸린 아내를 처용이 선진 의료기술로 물리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이 선진 의료 기술이 이슬람 문화에서 왔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처용은 인간이 아닌 용이다.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지금의 울산)에서 놀러 가서
동해 용왕을 위하여 절을 세우기로 약속하니
동해용의 아들 중 하나가 왕을 따라 나섰는데 그 이름이 처용이었다.
왕은 처용에게 미모의 여자와 혼인하도록 허락하고
그에게 급간(級干) 벼슬을 주어 왕의 정사를 돕게 하였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너무도 고왔기 때문에 역신이 탐을 내어
사람으로 변신하여 밤에 몰래 그 집으로 들어가 같이 지내게 되었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누운 것을 보고서
오히려 화를 내지 않고 노래를 지어 부르니
이때에 처용의 앞에 정체를 나타낸 역신은
처용의 도량에 크게 감복하여
그 뒤로는 처용의 얼굴만 보아도
그 문 안에는 들지 않겠다고 했다.
그 뒤로 신라 사람들이 처용의 형상을 문에 그려 붙여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의 기능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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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붙은 문배도를 보면서 제발 코로나가 없어지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