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째 이런 일이 / 선우혜숙
남의 일인 줄 알았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고, 늘어나는 제약 때문에 생활이 엉망이 되었지만 곧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인내할 수 있었다. 머지않아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주춤하던 코로나가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으로 다시 확산되고 있다. 전파력이 강해 무서운 기세로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어 병원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에서는 위중증 환자를 제외하곤 재택 치료를 하도록 방침을 변경했다. 하루에 신규 확진자가 17만 명대로 치솟던 어느 날,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가 열이 나서 병원에 갔다. 신속 항원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음성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며느리가 기침을 하고 아들도 감기 증세가 나타났다. 불안한 마음에 자가 진단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했다고 한다. 한밤중에 카톡 메시지가 왔다. 세 명 모두 양성반응이 나와서 내일 병원에 가서 PCR 검사를 할 테니 우리도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요즘 손자가 방학을 해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 며칠째 남편과 아들네를 오가며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검사를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다음날 보건소에서 코로나 확진 통보 문자를 받았다. 곧이어 며느리에게서도 가족 모두 확진이라는 연락이 왔다. 온 가족이 코로나 환자가 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누구에게서 시작된 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름 규칙을 지키며 조심한다고 했는데 일이 난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일찌감치 3차까지 백신도 맞았고 좋아하는 여행도 참아가며 되도록 외출도 자제했건만 전 국민을 위협하는 전파력 강한 역병은 끝내 피하지 못했다. 창살 없는 감옥생활이 시작되었다. 집 밖에도 나갈 수 없고 생필품을 보급해 줄 사람조차 없는 상황에서 재택 격리치료를 하며 일주일을 버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으슬으슬 몸살 기운이 찾아왔다. 여기저기 증세가 나타났다. 비대면 진료로 약을 처방받았지만 약국에서 약 한 봉지 가져다줄 사람이 없었다. 가족 모두 확진이 되고 보니 가까이 살아도 소용이 없었다. 각자 집에서 문자로 안부를 물으며 서로를 걱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퀵 배달 서비스를 받으려고 여러 군데 전화를 했지만 연결마저 쉽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놓고 간 약봉지에서 진심 어린 걱정과 위로를 담은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아무 준비도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으로 생필품이 귀해 난리라는데 우리 집도 때아닌 전쟁통이다. 냉장고에 뭐가 남아있나 음식 재료를 확인하던 중 비닐봉지에 담겨 냉동실 구석에 숨어있던 뭉치들이 발등 앞으로 툭 떨어졌다. 꽁꽁 언 고기들이 이때를 위해 아껴둔 것 인양 반갑다. 하지만 감춰둔 욕심 덩이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평소에 쌓아놓고 먹지 않은 수납장 속의 컵라면과 통조림 개수까지 세어가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풍족할 땐 몰랐는데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
문득 작년 겨울 서울 관악구에서 선보인 ‘그린 냉장고’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에 눈에 쉽게 띌 수 있도록 초록색 냉장고를 설치해, 누구나 자유롭게 음식을 넣을 수 있고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 가져갈 수 있는 공유 냉장고가 생겼다는 훈훈한 소식이었다. 자칫 남아서 버려질 수 있는 음식이 이웃에게 요긴하게 쓰이고, 쓰레기도 줄여 환경을 살리자는 취지라고 한다. 나누며 사는 세상은 아름답다.
꽉 차 있어 숨쉬기조차 버거운 우리 집 냉장고가 새삼 부끄러워졌다. 마음도, 물건도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익숙함 속에서 고마움을 모른 채 당연한 듯 살았다. 생활에 제약을 받고 보니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소중하다. 어쨌거나 일주일을 견뎌내야 한다.
남편도 같이 확진이 되어서 서로 간에 감염 걱정은 덜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조심하기로 했다. 함께 음식을 먹거나 말하는 것도 줄이고 웬만하면 거리 두기를 하자고 했다. 평소에도 별 대화가 없는 부부니까 아무 불편이 없을 거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격리 속 격리’는 심리적 거리감으로 이어졌다. 단 며칠도 이렇게 힘든데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해 2년이 넘는 긴 시간을 얼마나 힘들게 보냈을까. 경로당이나 복지 회관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지내시던 어른들은 갈 곳이 없어지니 즐거운 일도 없고 우울증까지 생겼다며 답답해하신다. 세상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의미가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손자와 대화가 부족했다는 아들은 하루 종일 같이 지내다 보니 아이의 관심사나 친구 이름도 알게 되어 부자간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며 얻은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한 일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지인들과 통화할 때마다 “코로나 잘 피하고 곧 만납시다.” 하고 인사했는데 내가 피하지 못할 줄이야.
오미크론 변이의 위험성을 가벼운 독감 증세 정도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증상도 제각기 다르고 경중의 차이도 심하다.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폭증하고 있는데도 ‘한 번씩은 다 걸려야 끝날 거’라며 장기간 지속된 코로나로 인해 경각심마저 해이해지고 있다. 나를 지키는 것이 내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지키는 일이다. 일일 확진자가 62만 명대로 정점을 찍더니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긴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조금만 더 함께 힘을 내자.
‘나에게 우째 이런 일이? ’하고 속상했지만 그래도 가족 모두 힘들지 않게 이겨낸 것에 감사하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답답함 속에 일주일을 집안에서 꼭꼭 숨어 살았다. 재택 격리가 해제되던 날 밤 12시 정각,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고생하셨어요, 건강하세요.”
나도 기분 좋게 답장을 보냈다.
“그래, 모두 고생했다. 우리 건강하자.”
드디어 함께 사는 세상과의 만남을 허락받았다. 이제 자유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눈부시다. 봄이 오고 있다
첫댓글 고생하셨네요.
약 봉지라도 배달해 드렸어야 하는데.....
이제 봄 만끽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푸르름이 가득한 봄이네요.
선생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고생하셨습니다. 누구도 예외일 수없으니까요, 건강 잘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회장님, 고맙습니다.
피하려고 했는데 맘처럼되지 않았네요. 잘 이겨냈습니다.
회장님도 건강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