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연말까지 공동연차라 시간이 생겼습니다. 운동도 하고, 목욕탕도 가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소일들 하는데, 그래도 핸드폰과 보내는 시간이 제일 많네요. ㅎㅎㅎ. 교우(동문)회 단톡방에 있던 글 한편 옮깁니다. 맛이 있네요. 단편 소설치고는 짧고, 카페글 치고는 깁니다. 시간되시는 분들만 천천히... 맛보세요.
자전거 신동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가 화두가 되는 이시대에 나는 자전거 이야기를 하려한다. 오늘 전기자전거 FLYER에서 체험용 전기 자전거가 배송되었고 그것을 인수한 자전거 전문가인 아들이 시승을 하며 내게 사진을 보내왔다. 호기심도 있었으나 처음 접하는 전기 자전거의 작동과 원리를 체험코자 나도 기대속에 조기퇴근을 하게 되었다. 페달을 밟아야만 충전된 전원이 작동하는 이 자전거는 정말 나무랄데 없는 문명의 이기였다. 이 더운 여름날, 가까운 시장출입이나 출퇴근용으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아들도 페달자전거는 이제 타기 힘들겠다는 말과 함께 정말 동경하고 감동 받은 것 같았다. 스위스의 할머니들도 마테호른을 타고 오를 수 있다는(?), 힘이 거의 들지 않는 최고의 이동 수단이 눈앞에 와 있었다.
둘째 큰집의 형규형은 이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싫었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형은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시골을 벗어난 도심에 나가 짐꾼이 되었다. 물론 그곳은 원주의 시장통, 중앙 시장과 자유시장에서 포목이나 쌀가마니 또는 생활잡화등을 짐자전거로 배달하거나 나르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짐자전거는 요즘으로 치면 택배오토바이 같은 역할을 했는데 그 부속 장치는 어마어마했다. 자전거 바퀴도 컸지만 짐칸에는 쇠막대가 가로 세로로 높게 설치되어 있고 검은 튜브를 오린 고무줄이 여러번 감겨 있었다. 형이 그 자전거에 짐을 가득 싣고 시장통을 누비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상상만으로도 당시 5학년이던 내겐 선망의 대상 이었다. 물론 짐꾼말고 자전거를 늠늠하게 탄다는것이....
어느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큰집 소외양간 옆에 짐자전거를 세워 놓고 형은 어딘지 가고 없었다. 큰집과는 담도 없이 같이 살던 때라 나는 조용히 그 자전거에 다가갔다. 둔탁한 받침대에 올라 있는 림에 굵은 살이 촘촘하게 원을 그리며 박혀있는 뒷바퀴를 돌려 보았다. 타타타타 어디엔가 닿는 소리를 내면서 돌아 갔다. 체인을 통해 페달로 부터 동력전달을 받는 자전거는 바퀴만 돌지 않고 페달도 돌았다. 이번엔 검은 고무조각이 박힌 페달을 쥐고 힘껏 돌렸다.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훨씬 빠른속도로 바퀴가 쉐엑거리며 돌았다. 일어나 핸들의 왼쪽에 있는 금속성 손잡이를 당겼다. 끼이익, 돌던 바퀴가 멈췄다. 아항~ 이제는 페달의 크랭크축을 밟고 자전거에 올랐다. 넓적한 안장은 높았지만 앉아 봤다. 물론 발이 페달에 닿지 않았다. 안장에서 핸들을 잡고 삼각 프레임을 가랭이 사이로 끼고 내리니 겨우 페달이 양발에 닿았다. 힘껏 페달을 밟았다. 바람을 가르며 내가 달려 나갔다. 산천초목이 쌩쌩 뒤로 지나갔다. 이마에 땀이 솟았지만 시원했다. 오픈 스포츠카에 탄 느낌이 그 보다는 덜했을 것이다. 좋았다. 신이 났다. 달려 달~려. 서당에서 배웠던 주마간산이란 사자성어가 생뚱맞게 머리에 떠올랐을 때 갑자기 끼익 자전거가 멈췄다. 어느새 형이 다가와 브레이크를 잡고 있었다.
미군부대에 다니시던 용수 아버지는 자상하셨다. 비록 우리집 옆방에 세들어 살았지만 일요일이면 동네아이들을 불러모아 손톱을 깍아주고 귀지를 파내주었다. 물론 손톱은 미제 가위로, 귀지는 여자들 머리에 꼿던 실핀을 이용했다.
그런데 내가 학교에 입학할 때 쯤인 어느날, 용수의 여동생 병애를 위해 세발자전거를 사오셨다. 우리동네 역사상 최초의 세발자전거 였다. 내가 타기엔 좀 작을 듯 했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바퀴가 세개나 달린 탈 것에 뜻모를 집착이 있었다. 한번 얻어 타 보려고 뙤약볕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밀어주기를 며칠, 도대체 한번 타보라고 일언반구도 않는 용수네가 야속하기만 했다. 남의 것은 절대로 손대지도 욕심 내지도 말라는 부모님의 훈육에 금이라도 갈까 절제하던 나의 어린 마음을 누가 알았을까. 어느날 용수네도 엄마 아버지도 안계시는 텅빈 집 안마당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세발자전거가 날 유혹 하고 있었다. 세심하게 주위를 살폈지만 고요함만 흐르고 있었고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완전범죄를 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과감하게 세발 자전거에 올랐다. 히야~ 호, 내가 흙을 딛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다니.. 엄마 등에 엎혀 다니던 것 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더구나 자력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안마당을 몇바퀴 돌다가 수동펌프가 있는 우물가로 위치이동을 했다. 물론 약간의 언덕길도 페달을 굴러 힘겹게 올랐다. 그리곤 큰집으로 연결된 언덕길 아래로 내달았다. 감당안된 속도에 제어 불능. 그 아래에 돼지우리에서 흘러나오는 오물을 모으는 작은 못이 있었다. 하필이면... 세발자전거는 오물로 뒤덮였다. 그 위에 타고 와서 함께 곤두박질친 나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전거를 꺼내어 우물가로 끌고 갔다. 진동하는 냄새를 물바가지로 씻어냈다. 수동펌프 주둥이를 돌려놓고 물을 퍼올렸다. 하지만 좀체로 그 썩은 돈변취는 가시지 않았다. 그때 용수네 식구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자상하시던 용수아버지도 인상을 쓰고 계셨다. 그리곤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난 눈을 꼭 감았다. 아저씨의 우왁스런 손이 내 멱살을 잡았다. 이것은 운명이다. 인생 각본에 쓰여진 그대로 받아 들일수 밖에. 이어서 내 웃옷이 훌러덩 벗겨졌다.
"너부터 씻어야지.. 똥독 오르면 큰일이다"
아들과 함께 전기자전거를 끌고 집에 들어 왔다. 집에는 아들의 자전거가 로드. 픽시. 엠티비로 구분되어 걸려 있다. 스위스 스캇 브랜드인 로드 자전거는 가격이 415만원대 이고 미국 엔진 일레븐 브랜드인 픽시자전거는 170만원, 한국 첼로 브랜드인 엠티비는 99만원짜리 이다. 거기에 스위스 플라이어 전기자전거가 546만원 짜리라니 대단한 자전거 수집가인 아들을 두었다. 커서 자전거 대리점을 하고 싶다고 하니 견문을 넓혀 주려고 이번에 체험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식탁에 앉아 막걸리 두잔을 마시니 아들보다 내가 더 전기자전거를 타보고 싶다. 타러 나가자고 하니 음주운전은 안된다고 안사람이 만류한다. ㅋㅋ. 오늘 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아들한테 작동법을 배워서 탔다. 언덕길이 대부분인 아파트에서 이용하기에 딱좋았다. 속도도 25키로이상 과속방지장치가 되어있어 안전했다. 문득 시골의 아버지께 사드리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접었다.
아버진 여전히 술을 많이 드셨다. 하지만 자전거를 사 시내 일산동 개인주택 공사현장에 출퇴근 하시면서 부터는 술을 드시지 않으셨던 거 같다. 성격은 꼼꼼 하시기에 흙길을 지나거나 흙탕물을 지난뒤엔 항상 자전거에 광이 나도록 씻고 닦았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 내 손목에 시계를 차게 해 주시려고 무던 애를 쓰셨던 어머니, 중2였던 그해 가을에야 겨우 꿈을 이루셨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따서 말린 태양초 고추 열근을 팔아 1만5천원을 마련 하신것. 아버지는 전혀 관여치 않으신 순전히 어머니의 노동력에 의해 현금이 만들어 졌다. 이제 어머니가 바라던 그 기쁨을 느끼실 차례였다. 그날 아침 어머니가 기세 좋게 아버지에게 멋진 손목시계를 사오라고 돈을 드렸고 아버지는 돈을 받아 고개를 끄덕이시고 자전거 출근을 하셨다. 내겐 말하지 않고 깜짝쇼를 하시려던 어머니는 아마도 하루종일 아버지를 기다리셨지 싶다. 신혼때도 하지않은 기다림 이었다. 어둠이 깔리고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조바심에 동네어귀 까지 나가 어둠속 신작로쪽을 목빠지게 바라보고 계셨다. 늦은 가을밤 귀뚜라미와 찌르레기 소리를 가르며 멀리 불빛 하나가 휘청이며 좁은 마을길로 들어서는게 보였다. 안도와 반가움에 눈물까지 나왔다. 뛰다시피 흔들리는 불빛에 다가갔다. 술냄새가 물씬 풍기며 익숙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왜 여까정 나왔누"
어머닌 대뜸
"왜긴 왜여. 시계는?"
아버진 비틀비틀 자전거에서 내려 걸으셨다.
"내 놓으라구. 어딨어?"
이미 아버진 어디에서 딩구셨는지 왼쪽 무릎을 절고 계셨지만 오직 시계에만 관심있는 어머니셨다. 집에 당도하여 등불에 비춰본 아버지는 무릎쪽 바지가 해져 있고 우측 팔과 손바닥도 까져서 피가 맺혀 있었다. 분명히 찰과상으로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신 것이다. 어머닌 안달 하셨다.
"그돈으로 술 펐군. 내가 못살아"
술기운에 고개를 떨구고 마루에 앉으신 아버지는 어머니의 추궁에도 여유가 있으셨다. 그리곤 느긋하게 나를 부르셨다.
"이거 비싼거니 잘 쓰고 공부 잘하그라."
아버진 잠바 안주머니에서 비닐에 싸여진 물건을 내 놓으셨다. 반짝거리는 은색 시계줄이 눈에 들어 왔다. 나는 너무 좋아 펄쩍 뛰고 싶었다. 어머닌 감동에 젖으신 듯 말없이 지켜보고 계셨다.
개봉박두. 그런데 그런데 돌고 있는 시계바늘이 갈라져 보였다. 유리에 금이가 있었다. 넘어지실 때 압박으로 깨진 것이다. 어머니는 실망을, 아버지는 당황 하셨지만 나는 시계바늘이 여전히 돌고 있는 한 이것이 나의 보물 1호 였다. 그때부터 수년간 나의 손목엔 언제나 그 보물이 수갑처럼 채여져 있었다. .
형규형은 꾸준히 배달일을 하였다. 동네 어른들은 신통하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동네의 말썽쟁이로 수박밭에 말뚝박고 참외밭에 서리하곤 도망가며 약올렸다. 뚝방길에 결초하여 꼴베어 오는 어른들이 넘어지면 숨어 있다간 나와서 엉덩이를 까고 두드리며 놀려대던 그 형이었다.
나는 한번 맛본 자전거의 묘미에 빠져 이제나 저제나 형의 짐자전거를 기다렸지만 좀체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날은 형이 일찍 퇴근한 날이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몰려올 때 나는 말없이 그 짐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너무나 무거워서 끌기만 하는데도 힘이 들었다. 게다가 중심잡기도 어려워 몇번인가 땅바닥에 넘어뜨릴뻔 하였다. 아무튼 천신만고 끝에 언덕진 동네어귀 방송국입구까지 와서 돌려 세웠다. 그리고 시도했다. 이른바 자전거 옆타기, 자전거의 왼쪽에서 핸들을 잡고 오른발만 왼쪽 페달에 올리곤 왼발로 힘껏 땅을 밀어주어 균형잡아 언덕길을 내려 오는것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몇번을 넘어지고 몇번을 메쳤는지 모른다. 내려와선 다시 끌고 올라가 옆타기를 시도했다. 그 밤 달빛아래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는 결국 해 냈다. 옆타기에 성공하자 자신감에 더 멀리 신작로까지 끌고 나갔다. 그리고 삼각프레임 사이로 발을 넣어 페달을 밟는 그 방법도 개발했다. 왼쪽페달을 밟아 진행하고 오른쪽페달은 원위치 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가위타기라고 이름 붙였다. 하루밤만에 자전거 타기를 터득 했으니 이분야의 신동이 아닐까?.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 왔는데 형네 집안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자전거를 도둑 맞았다고. 아차 싶어 얼른 자전거를 끌어다 놓자 눈뻘겋게 찾아 헤매던 형규형이 다가와 소리질렀다.
"말하고 끌고 가면 어디 덧나냐? 자전거도 못타는 주제에.."
이제 탈수 있거든~. ㅎㅎ 내가 이래봬도 요나이에 자전거 운전수로 등장한 신동이라구. 하지만 고마워 형. 종종 이용할께.
혼나면서도 미소가 머금어지는 내 얼굴에 달빛 그림자가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옛날에 고향에서 그자전거를 짐빠리라고 했지요 친구가 막걸리 배달할때 타고 다니던 생각이나네요
자전거 배우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다친 아버지는 안중에도 없이 시계만 찾는 어머니에게 팍팍한 생활이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