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배터리 분사 추진… 친환경에 30조 투자할 것”
“정유 투자 중단, 친환경 기업으로 변신”… 중·장기 사업설명회 열어
이성훈 기자
‘스토리 데이’서 사업 설명하는 김준 총괄사장 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의 중·장기 사업계획 설명회 ‘SK이노베이션 스토리 데이’에서 김준 총괄사장이 친환경 사업 강화를 위한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 부문을 분사해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정유 부문에 대한 신규 투자를 중단하는 대신, 배터리와 폐(廢)플라스틱 재활용 등 친환경 사업에 향후 5년간 총 30조원을 투자해 친환경 사업 비율을 현재 30%에서 7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50년에는 탄소 순배출을 0으로 만드는 ‘넷 제로(net zero)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SK이노베이션 측은 1일 “1962년 대한석유공사(유공)로 출발한 회사가 60년 만에 친환경 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배터리 사업이 분사하면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1일 SK이노베이션 주가는 8.8% 급락했다.
◇정유 대신 친환경 기업으로 변신
SK이노베이션은 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김준 총괄사장, 김종훈 이사회 의장 등 최고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언론과 투자자를 상대로 회사 중·장기 사업계획 설명회 ‘SK이노베이션 스토리 데이(Story Day)’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총괄사장은 “현재 사업부 형태로 있는 배터리 사업과 석유 개발(E&P) 사업을 분할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를 담당하는 SK에너지와 석유화학인 SK종합화학, 윤활유 사업회사인 루브리컨츠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면서, 전기차용 배터리와 석유 광구 탐사·개발은 사업 부문 형태로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 두 부문까지 모두 분사해 중간지주회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 총괄사장은 “분할 방식은 아직 결정된 부분이 없고, 이사회의 논의와 결의가 필요하다”며 “기업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시점에 분사한 회사의 기업공개(IPO·상장)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배터리 사업 부문의 연내 분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증설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상장을 통해 투자 자금을 신속히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동섭 배터리사업 대표는 “최근 매년 2조~3조원씩 투자가 이뤄지는데 투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빨리 분사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사업 부문별 자산 비율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와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 친환경 사업에 대한 전략도 발표했다. 이 회사는 2025년 기준 연간 30GWh(전기차 약 43만대 분량)의 배터리를 재활용해 약 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창출하기로 했다. 또 전기차 외에 에너지저장장치(ESS), 플라잉 카(flying car), 로봇 등으로 배터리 적용 영역을 확장하기로 했다.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석유 대신 폐플라스틱을 주 원료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김 총괄사장은 “SK종합화학이 연간 생산하는 플라스틱(250만t)을 모두 회수해 재활용하는 모델을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전체 사업의 42%를 차지하는 정유 부문에 대해선 유지 보수를 제외한 신규 투자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플라스틱 재활용과 탄소 포집 기술 개발 및 적용을 통해 2050년엔 탄소 순배출을 0으로 만드는 ‘넷 제로’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분사 계획에 주가 급락
이날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 분사를 공식화하자 주가는 급락했다. 아직 사업 분할 방식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신설되는 배터리 회사를 SK이노베이션의 100% 자회사로 두는 물적 분할 방식이 유력하다. 배터리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해 LG화학에서 물적 분할한 후 현재 상장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물적 분할 후 상장이 되면, 일반 주주들도 새로 만들어지는 배터리 자회사의 지분을 소유하게 된다. 그만큼 미래 성장 여력이 큰 배터리 사업에 대한 SK이노베이션의 지배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은 이날 배터리 수주 잔고가 1테라와트시(TWh) 이상이라고 밝혔다. 현재 1테라와트시 이상의 수주 잔고를 가진 회사는 중국의 CATL과 LG에너지솔루션 정도밖에 없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SK이노베이션과 신설 배터리 회사의 가치는 결국 전기차 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확보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