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등학교 졸업률 제고를 위한 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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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최근, 무상교육 및 의무교육의 범위를 고등학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무상교육 및 의무교육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교육권의 보장과 확대를 의미하며, 이는 개인의 자아실현뿐만 아니라 국가의 사회 질서 유지 및 국가경쟁력 증진 등을 목표로 여러 국가에서 실시되고 있다. 이 제도는 국민 누구나 일정 기간 동안 교육을 받도록 지원하며, 사람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질과 국가관 및 민족관을 키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 의무교육 제도를 처음으로 헌법에 명시하고 실시하면서 점진적으로 무상교육 및 의무교육 연한을 늘려왔으며, 현재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총 9년간의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OECD 국가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의 추세에 맞추어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및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중등교육 전반에서 무상교육 및 의무교육을 실시해 온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이 정책의 전반적인 효과에 대해서 이해하고 향후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미국의 무상 및 의무교육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무상 및 의무교육을 실시해왔다. 1852년 매사추세츠주에서 처음 의무교육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주들 역시 점차적으로 의무교육법을 제정하였으며, 1918년 미시시피주를 마지막으로 미국의 모든 주가 의무교육법을 제정하였다. 의무교육 실시 초반에는 사회적인 인식 부족과 경제적인 요인으로 인해 제도 정착에 어려움이 있었다. 기존 사교육의 영역이었던 교육을 공교육화하는 것에 대해서 교육의 자유를 박탈당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으며, 교육비 재원 마련을 위한 조세 부담의 가중은 부자 및 토지소유계층의 반대를 야기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의무교육 제도는 미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되어 지난 100여 년 이상 남녀노소, 빈부격차에 관계없이 시민 모두에게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현재 미국 의무교육의 방침과 자금 결정에 대한 권한은 정부(연방, 주 그리고 지역 정부)에 있으며, 교과 과정 (curriculum), 교과서의 선택, 자금 운용, 학교 정책의 결정 등에 대한 권한은 정부 단위가 아닌 해당 관할 지역(School District)에 있다. 의무교육 기간 중 교육 자금의 경우, 많은 부분을 주 정부나 지역구가 부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부분이 전면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취학 전 1년에 해당하는 유치원 과정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의 OECD국가들처럼 고등학교 과정까지 공교육 무상교육의 기본 원칙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의무교육의 무상성의 범위에 대한 부분은 각 주의 의회가 법으로 정하기 때문에 그 세부 내용이 주마다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주는 수업료, 입학금, 교과서 대금, 학교운영지원비, 통학비에 대해서 학교가 무상지원하고 있다. 급식비의 경우 공립학교는 부모의 소득에 따라서 차등 보조가 된다. 그리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는 무상급식뿐만 아니라 방과 후 프로그램 등 다양한 무상교육의 혜택이 제공된다.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도 의무교육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이 경우 대부분의 교육 자금은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다. 의무교육의 연한 역시 각 주의 법률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일률적이지는 않다. 예를 들어 위스콘신 주의 경우 의무교육 연한이 6세에서 18세까지 해당되는 반면, 애리조나는 8세부터 16세까지가 의무교육 기간이다. 대부분의 주들은 6세 혹은 7세에서 16세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중도탈락률과 의무교육의 역할
미국은 초·중등교육의 과정을 의무교육화 하고 있지만, 높은 중도탈락률과 낮은 고등학교 졸업률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이다.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이 학교에서 중도탈락했을 경우, 실업 및 가난을 경험할 비율이 높을 뿐 아니라 사회 부적응 및 범죄의 가능성도 높아져서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교육환경이 낙후한 저소득층 지역이나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이 많은 지역에서 중도탈락률이 특히 높게 나타나고 있어서 중도탈락률을 낮추는 문제가 교육 문제를 넘어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즉 의무교육 실시로 제도적으로는 교육기회 균등을 이루고자 하지만, 여전히 지역, 계층, 인종 간의 교육 격차는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사회구성원들 간의 경제적 격차 및 계층 문제 등을 심화시켜 사회 양극화를 지속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중도탈락하는 학생들의 비율을 낮추고, 현재 약 75%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고등학교 졸업률을 향상시켜 궁극적으로 최대한 많은 학생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는 방안이 미국 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그 결과 각 주와 지역구마다 중도탈락 위험군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편성 및 운영하고 있다. 학교 내부 또는 지역 사회의 기관들과 협력하여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학업의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중도탈락을 방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학업 프로그램 제공 등 학생들의 학교 적응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중등교육의 의무교육 연한을 늘리는 것 역시 중도탈락을 줄이고 고등학교 졸업률을 향상하는데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기대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등교육의 의무교육 연한을 늘리는 것이 미국 고등학교 졸업률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인종 간 교육 기회 격차 역시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균 범죄율 하락과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미국 내에서도 학생들의 중도탈락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서 의무교육 연한을 늘리자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기존에 16~17세까지 의무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주에서는 18세까지 의무교육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사점
대학교육의 보편화가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육의 문턱을 더욱 더 낮추기 위한 반값등록금 논의가 활발한 이 시점에, 고등학교 과정의 무상교육을 법제화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교육 복지의 방향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을 포함한 OECD 선진국들의 예로 미루어보아 고등학교 과정까지를 무상교육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다. 하지만 이미 대다수의 학생이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졸업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상황을 고려했을 때, 현재 논의되고 있는 무상교육 확대가 우리 사회에 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우선 고등학교 교육을 무상교육으로 전환하게 되면 가계의 교육비가 절감되고, 가정에서는 기존에 교육비로 지출하던 비용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OECD 국가 기준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공교육비 민간부담율은 매우 높은 편인데, 이는 현재 가계의 교육비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정에서 절감된 교육비가 사교육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공교육의 경쟁력 강화 및 내실화를 위한 노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만일 무상교육의 결과로 사교육이 증가하게 된다면 결국 소득 차이에 따른 교육 기회의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무상교육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교육 기회균등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차터스쿨, 마그넷 스쿨, 바우처 제도 등의 실시를 통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교를 편성 및 운영하고, 학습자의 학교 선택권 강화를 통해 그들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홈스쿨 제도를 예외로 인정하여, 유연한 제도 운영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무상 및 의무교육 운영 사례는 우리나라가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교육 기회균등에 대한 부분과 함께 공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방안이 동시에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는 중도탈락의 요인으로 부모의 빈곤이 큰 부분을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중도탈락하는 비율보다는 학교생활 적응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나 학교가 학생의 교육적 요구와 맞지 않아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상교육 확대는 교육의 양적인 성장과 교육 기회균등의 목표를 넘어서, 학생들과 학부모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공교육 테두리 안에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과 학교 종류를 다양화함으로써 학생들이 학교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도 공교육을 통해 교육적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높은 수준의 교육 복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교육의 질 향상 및 학습자의 선택권에 대한 보장 없이 공교육이 일률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의무 및 무상교육 제도가 의도하는 교육권 확대의 목표 실현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재원 낭비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무상교육제도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재정 확보가 필수적이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무상교육의 재원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며, 무상교육의 범위가 확대될 경우 국민들의 조세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학생들에게 전면 무상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학생들의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부분적으로 차등 보조를 할 것인지 등과 같은 세부적인 무상성의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제도를 보다 더 정교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교육권 보장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실효성 있는 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할 때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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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승(2005). 의무교육의 무상성(無償性). 교육법학연구, 17(1), 23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