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읍 먹거리 ‘짬뽕’과 ‘짬빵’에 얽힌 사연들
(작성 중 : 국시시리즈 3)
우리들의 고향 외동읍(外東邑)에도 여느 고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짬뽕’이라는 먹거리가 있다. ‘짬뽕’은 해물(海物) 혹은 고기와 다양한 야채를 기름에 볶은 후 닭이나 돼지 뼈로 만든 육수를 넣어 끓인 후 삶은 국수를 넣어 먹는 음식이다.
‘짜장면’과 같이 20세기 초부터 일본인(日本人)이나, 일본에 거주하던 화교(華僑)들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된 대표적(代表的)인 외식요리(外食料理)의 한가지다.
짬뽕(보통 짬뽕)
‘짬뽕’의 유래는 일본 ‘나가사키 유래설(由來說)’과 우리나라의 ‘인천 유래설’이 있다.
일본 ‘나가사키 유래설’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19세기말에 나가사키 지방의 중국식당 시카이로(四海樓)의 중국인 창업자 천핑순(陳平順)이 만든 것이라 전해지며(1899년 추정), 지금도 나가사키의 향토요리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짬뽕’은 맵게 만든 우리나라 식 ‘짬뽕’과는 달리 진한 육수 맛을 내어 다른 국수 요리인 ‘라멘(우리나라의 라면)’과 비슷하다. ‘나가사끼 짬뽕’의 유래를 잠시 살펴본다.
나가사끼 짬뽕
지난 19세기말 중국의 청년들은 다투어 일본 유학에 나섰다. 유학생들의 처지가 거의 그렇기는 했지만, 당시 중국 ‘푸젠성’ 출신 유학생들은 너무들 가난해서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다.
이를 불쌍히 여긴 화상(華商) ‘천핑순’은 동족인 이들 유학생들을 위해 간단한 국수요리를 만들어 제공했었다.
자신이 경영하는 식당 주방(廚房)에서 요리하다 남은 여러가지 채소와 해산물(海産物)을 섞어 볶은 후 육수(肉水)에 넣고, 국수를 조금 넣어 끓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국수 요리가 예상치 않은 인기를 끌자 급기야 ‘나가사키’의 향토음식(鄕土飮食)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일본인들은 이를 ‘잔폰(ちゃんぽん)’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게 되었다.
잔 폰
‘잔폰’이라는 이름이 부여된 것은 중국 ‘푸젠성’ 출신 학생들이 ‘푸젠 사투리’인 인삿말로 ‘챵호(식사하셨습니까?)’라는 말을 썼는데, 일본인들이 ‘챵호’를 ‘천핑순’이 만든 음식을 일컫는 말로 오인(誤認)하여 발음이 비슷한 ‘잔폰’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이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때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짬뽕(잔폰 → 짠뽄 → 짬뽕)’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일설(一說)에서는 ‘푸젠’지방의 요리인 ‘탕육사면(湯肉絲麺)’을 변형시킨 것이라고도 하는데, 정설(定說)로 인정되지는 못하고 있다.
짬 뽕
그리고 우리나라의 ‘인천 유래설’은 산동성(山東省) 출신의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인천(仁川)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성(食性)에 맞도록 ‘짜장면’과 ‘짬뽕’에 각기 단맛과 매운맛을 더하여 발전시킨 데서 유래(由來)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짬뽕’의 원형(原形)이 되는 음식은 중국의 ‘차오마멘(炒碼麵)’으로 ‘짜장면’과 함께 화교(華僑)들에 의해서 우리나라 음식으로 변천(變遷)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천 유래설’은 확고(確固)한 지지를 받지 못하는 편이고, 일본의 ‘나가사끼 유래설’이 정설(定說)로 인정받고 있다.
인천 짬뽕(공화춘 짬뽕)
어쨌든 ‘짬뽕’의 경우 그때그때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양(多樣)한 재료를 섞어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짬뽕’이라는 말이 ‘여러 가지를 섞어 만들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짬뽕’이라는 단어의 용법은 일본어(日本語)인 ‘잔폰(ちゃんぽん)’에서도 거의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또 어떤 일설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중국의 ‘차오마멘(炒碼麵)’이 인천과 일본으로 이주한 화교들에 의해 동시적(同時的)으로 전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시기적(時期的)으로 볼 때도 일본의 ‘나가사키’ 지방과 우리나라의 제물포항(1883년 개항)은 같은 시기에 중국인(中國人)들의 집단 이주가 이루어졌고, 또한 두 항구는 부산(釜山)을 경유하는 뱃길이 함께 열려 있었다는 점도 그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인천의 화교들
두 항구의 새로운 중국인 이민자(移民者)들이 새로운 요리를 같이 선보인 것은 자연스러운 교류(交流)의 결과였고, 이후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를 거치면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짬뽕’이라는 말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가사끼 유래설(由來說)’을 지지할 경우 ‘짬뽕(ちゃんぽん)’은 일본어(日本語)가 맞고, 일본음식이 맞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留意)할 것은 일본에서 탄생한 토종 ‘짬뽕’은 우리가 아는 ‘짬뽕’처럼 뻘건 색이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나가사끼 짬뽕’이라고 하는 ‘짬뽕’은 ‘짜장면집’에서 먹는 ‘우동’처럼 멀건 ‘짬뽕’이 오리지널이다.
우 동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붉은 색 ‘짬뽕’은 일제 강점기(强占期) 때 우리나라에 건너오면서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게 고추기름이 추가되어 빨간색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짬뽕’이 처음부터 매운맛을 낸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짬뽕국물’은 멀겋고 뿌연 회색(灰色) 빛이었으나, 사람들이 점점 매운 것을 주문(注文)하면서 붉은 색 짬뽕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천(變遷) 때문에 일정기간 동안 중국집 메뉴에는 ‘짬뽕’과 ‘매운 짬뽕’이 공존(共存)하고 있었다. 또한 어느 시기부터는 ‘일반짬뽕’이 자취를 감추고 ‘매운짬뽕’이 ‘짬뽕’이라는 이름으로 호칭(呼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매운짬뽕
어쩌면 아래에서 설명하는 ‘굴짬뽕’이 ‘짬뽕’의 원형(元型)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짬뽕’에는 여러가지 해산물(海産物)과 각종 야채가 많이 들어가 푸짐하게 만들며, ‘면’은 일반적(一般的)으로 ‘짜장면’과 같은 것을 쓴다.
보통은 국물을 따로 만들어 두었다가 삶은 ‘면’에 부어 ‘짜장면’처럼 빠르게 내어 놓을 수도 있다. ‘볶음밥’ 같은 음식에는 작은 그릇에 국물만 내어 놓기도 한다.
이하에서는 ‘짬뽕’의 종류(種類)를 잠시 알아보기로 한다. ‘짬뽕’의 종류는 현재 중국집에서의 메뉴를 중심으로 보통짬뽕, 삼선짬뽕, 고추짬뽕, 백짬뽕 또는 옛날짬뽕, 볶음짬뽕 또는 쟁반짬뽕 메뉴가 대표적(代表的)이다.
짬뽕 메뉴
‘삼선짬뽕’은 제철의 해물을 듬뿍 넣고, 즉석에서 볶아 국물을 만들어 고급스럽게 요리한 ‘짬뽕’이다. ‘일반짬뽕’보다 고급재료와 신선한 맛을 더 느낄 수 있다.
‘삼선(三鮮)’은 죽순, 새우, 해삼을 의미하며, 오징어가 아닌 다른 두족류(頭足類) 연체동물이나 버섯류 등이 ‘일반짬뽕’에 비해 더 들어가기도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두족류(頭足類)란 연체동물의 한 무리로 몸은 좌우상칭(左右相稱)으로 머리·몸통·발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머리의 입 둘레에 8~10개의 발이 달려 있다. 낙지·오징어·앵무조개 따위가 이에 딸린다.
삼선짬뽕
그리고 ‘삼선짬뽕’은 비싼 재료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일단 가격(價格)이 비싸다는 것이 흠이다. 다른 ‘짬뽕’과는 다르게 비싼 해물(海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삼선짬뽕’에는 해삼(海蔘), 새우, 오징어, 쭈꾸미, 소라, 피조개, 복어살, 갈매기살 등 집마다 조금은 다르지만, 거의 이런 종류의 해물(海物)을 사용한다.
야채(野菜)도 당연히 다른데, 보통 배추, 얼가리, 호박, 청경채, 피망, 양파 등을 사용한다. 칼질은 일반적(一般的)으로 ‘편’으로 칼질 한다. 볶는 방법은 ‘보통짬뽕’과 같다.
해삼(海蔘)
다음은 ‘고추짬뽕’이다. 이 ‘짬뽕’은 원래는 ‘보통짬뽕’에 마른 고추와 ‘청양고추’를 추가하여 조리(調理)하는데, 요즘은 ‘삼선짬뽕’에 고추를 추가하여 조리하기도 한다.
다음은 ‘백짬뽕’ 또는 ‘옛날짬뽕’이다. ‘백짬뽕’은 ‘보통짬뽕’과 재료(材料)는 같다. 다만 조리(調理)할 때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간장을 조금 넣는다.
고추짬뽕
다음은 ‘볶음짬뽕’ 또는 ‘쟁반짬뽕’이다. 재료(材料)는 가게마다 다를 수도 있다. 조리법은 조리과정 중 마지막에 육수를 넣을 때 ‘보통짬뽕’과 달리 육수를 조금만 넣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면(국수)’을 넣고 자작하게 볶아 낸다.
다음은 ‘굴짬뽕’을 소개한다. 보통 우리나라의 ‘짬뽕’은 매운 맛이 많이 나는 ‘붉은 짬뽕’이지만, ‘굴짬뽕’은 ‘굴’의 담백하고 시원한 맛을 살리기 위해 고춧가루와 고추기름을 뺀 맑은 국물로 내어 놓는다.
그리고 일본의 ‘나가사키 짬뽕’은 국물이 맵지 않고, 닭과 돼지 뼈를 우린 육수에 숙주를 많이 넣으며, 마지막에 ‘면’을 같이 삶아 내어 모든 제조과정이 하나의 팬에서 이루어진다.
굴짬뽕
이것이 우리나라식 ‘짬뽕’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나가사키’지방의 ‘짬뽕’은 우리나라의 중국음식점(中國飮食店)에서 내어 놓는 ‘우동’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비빔짬뽕’은 ‘짬뽕’이긴 하지만 국물이 없다. 즉 ‘비빔면’의 형태를 지닌 ‘짬뽕’으로서 국물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보통의 ‘짬뽕’과 내용물(內容物)이 동일하다. 다른 종류의 ‘짬뽕’과는 달리 극히 일부의 중국집에서만 판매된다.
비빔짬뽕
‘짬뽕’에 ‘면’을 말지 않고 ‘당면(瞠眄)’을 추가하고, 밥을 함께 제공하는 국밥과 같은 형태의 ‘짬뽕밥’도 우리나라의 중국음식점(中國飮食店)에서 흔히 팔리고 있다. 이상의 ‘짬뽕’은 우리들이 흔히 먹는 ‘짬뽕’이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짬뽕’이 있다.
복어짬뽕, 김치짬뽕, 전복해물짬뽕, 국물 없는 짬뽕, 해물짬뽕, 얼큰이 해물짬뽕, 냉짬뽕, 사천백짬뽕, 삼선굴짬뽕, 불짬뽕, 삼선볶음짬뽕, 생굴짬뽕, 전복짬뽕, 홍합짬뽕, 매운홍합짬뽕, 억수로 매운 핵짬뽕, 콩나물짬뽕, 오징어짬뽕, 왕새우 짬뽕, 쇠갈비 짬뽕, 쇠갈비 전복짬뽕, 짬뽕곱배기, 짬뽕국밥, 모듬짬뽕탕, 인스턴트짬뽕 등이 있다.
인스턴트짬뽕은 라면 생산업체에서 인스턴트식품으로 개발하여 판매하는 ‘봉지짬뽕’이라 할 수 있다.
인스턴트 짬뽕
‘짬뽕’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논란(論難)이 있었다. 국립국어원(國立國語院)에서는 ‘짬뽕’이 일본어 ‘잔폰(ちゃんぽん)’이 어원이기 때문에 이를 ‘짬뽕’으로 표기하고, ‘초마면(炒碼麵)’으로 순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비슷한 사례인 ‘자장면’과 ‘짜장면’의 사례에서는 앞 파일에서 말한 대로 그동안 중국 어원(語源)으로 해석하여 ‘짜장면’은 잘못이고 ‘자장면’이 맞다는 주장을 해 왔다.
그러나 2011년 8월 31일 현재 국립국어원(國立國語院)에서는 ‘짜장면’을 표준어로 고시하여 그동안의 논란에 종지부(終止符)를 찍었다.
짜장면
어쨌든 대중문화(大衆文化) 속의 ‘짬뽕’은 우리나라 서민들과 애환을 같이하는 대표적인 ‘먹거리’로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짬뽕’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이질적(異質的)인 것을 섞어 만든 새로운 것을 뜻하는 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짬뽕’이 연예작품(演藝作品)의 타이틀로까지 발전되어 있다. 1990년대 인디밴드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황신혜 밴드’는 데뷔 음반(音盤)에서 ‘짬뽕’이라는 제목(題目)을 가진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2004년에는 작가 윤정환이 연극(演劇) ‘짬뽕’을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었다. 여기에서 잠시 ‘황신혜 밴드’가 만든 ‘짬뽕’의 가사를 음미해 보고 넘어간다.
짬 뽕
황신혜 밴드
그대여 그대여 비가 내려 외로운 날에
그대여 짬봉을 먹자
그대는 삼선짬뽕 나는 나는 곱베기 짬뽕
바람불어 외로운 날에 우리 함께 짬뽕을 먹자
쫄깃한 먼발은 우리 사랑 엮어주고
얼큰한 국물은 우하하하하하 ~
짬뽕 짬뽕 짬뽕 짬뽕이 좋아
짬뽕 짬뽕 짬뽕 짬뽕이 좋아
햇살이 쏟아지는 5월 그 어느 날
우리의 사랑 깨져 버리고
쏟아지는 외로움에 난 너무 추웠어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짬뽕하나 갖다 주세요
짬뽕 짬뽕 짬뽕 짬뽕이 좋아
(일본사람 중국사람 미국사람 영국사람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짬뽕 짬뽕 짬뽕 짬뽕이 좋아
(남녀노소 신사숙녀 부모형제 일가친척
엑스세대 기성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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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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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는 ‘짬빵’이란 말도 있다. 일본어(日本語)인 ‘잔반(殘飯)’이 변한 말이다. 그리고 이 ‘짬빵’은 언젠가부터 다시 ‘짬밥’이란 말로 변형되어 군대용어(軍隊用語)로 쓰이기도 한다.
짬빵(잔반 ; 殘飯)
이들 비속어(卑俗語)의 진원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넘어간다. 우선 ‘잔반(殘飯)’이란 ‘먹고 남은 밥’이란 뜻의 일본(日本) 한자어(漢字語)에서 온 말인데, 순 우리말로는 ‘대궁’ 또는 ‘대궁밥’이라고 한다.
‘대궁’이나 ‘대궁밥’이란 ‘먹다가 남긴 밥’ 또는 ‘손위 어른이 남긴 밥을 아랫사람이나 머슴이 먹기 위해 ‘남긴 밥’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먹다가 남은 밥상’이나, ‘손위 어른이 남긴 밥을 아랫사람이나 머슴이 먹기 위해 다시 차린 밥상’은 ‘대궁상(床)이라고도 한다.
가난하던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시골 농가(農家)에서 ‘대궁밥’을 먹는 어린이들이나, 아낙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볼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
대궁밥
그러나 지금도 모내기철이나 바쁜 농사철에는 어른들과 일꾼들이 먼저 푸짐한 식사를 하고, 그 후에 비로소 아이들과 여인들이 논두렁 밭두렁에 앉아 ‘대궁밥’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들이 ‘대궁밥’을 먹는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대궁상(床)’의 경우, ‘물림상(床)’이라는 말을 대신 사용하기도 하나, 이 ‘물림상’이란 말은 관혼상제(冠婚喪祭) 때 어른이나 손님들이 먹다 남긴 밥상을 지칭하는 말로 ‘대궁상’과는 차이가 있다.
그건 그렇고, 이 ‘대궁’이란 순수(純粹)한 우리말이 이제는 강원도 오지(奧地)에서나 드문드문 사용되고 있고, 1920~30년대의 소설(小說)에서나 간혹 발견할 수 있을 뿐, 쓰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여간 아쉽지 않다.
대궁밥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대궁’이란 말 대신 ‘잔반(殘飯)’이란 일본식 한자어(漢字語)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 원인은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일본군(日本軍) 출신들이 주류가 되어 국군을 창군(創軍)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군대에서 일본군대에서 사용하던 군대용어나 군대숙어(軍隊俗語)를 한자어(漢字語) 글자는 그대로 둔 채 우리말로 발음하여 사용하면서, 민간인 사회에까지 파급되었기 때문이다.
전후(戰後) 50여년 동안 악착같이 병역기피를 한 사람을 제외하고, 웬만한 남성들은 대부분 군복무(軍服務)를 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제대하여 사회에 복귀(復歸)하면서 상당수의 이른바 ‘군댓말’이 우리 사회에 퍼진 것이다.
짬 빵
그런데, ‘잔반(殘飯)’의 경우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잔반’이라 발음하지 않고, 일본식 발음 그대로 ‘짬빵’이라 하였으며,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다시 음운변화(音韻變化)를 일으켜 근래에는 완전한 우리말로 착각할 정도로 ‘짬밥’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런데 문제는 군대에서나 사회에서나 ‘잔반’의 어원(語源)이 일본어인 줄 뻔히 알면서도 우리말로 대치(代置)할만한 단어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 공식적(公式的)으로는 ‘잔반(殘飯)’으로 발음하고, 실제(實際) 비공식적 통용어(通用語)로는 ‘짬밥’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잔 반
‘먹다 남긴 밥’이 ‘대궁’이란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차라리 ‘남긴 밥’이나 ‘남은 밥’ 또는 ‘남은 음식’이라고 하면 될 텐데 말이다.
‘국민의 정부’ 집권 이래 학교 급식(給食)을 실시하면서부터는 초중고교(初中高校) 학생들까지 일본어 한자인 ‘잔반(殘飯)’이란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각급학교의 식당(食堂)을 방문하면, 사방의 벽이나 게시판에 ‘잔반(殘飯)을 줄이자!’라는 표어(標語)나 ‘잔반 줄이기 우수학급 표창’이란 포스터를 볼 수 있다.
학교 급식
차라리 ‘음식을 남기지 말자!’나, ‘음식 적게 남긴 학급표창’이라고 하면 될 것을 말이다. 이 경우는 그 게시물을 작성한 교사(敎師)가 군대를 다녀온 남자 선생일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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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먹고 남은 음식’이란 뜻의 ‘잔반(殘飯)’이란 단어는 오늘날 군대(軍隊)에서 ‘짬빵’이란 일본어로 발음하거나, 우리말 화(化)된 ‘짬밥’이란 말로 발음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의미는 단순히 ‘먹고 남은 음식’이 아닌, ‘군대(軍隊)에서 먹는 밥’ 자체를 뜻하거나, 군복무기간(軍服務期間)이 오래 된 정도, 즉 ‘군대경력(軍隊經歷)에 따른 관록과 권위’를 대유(代喩)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짬방(짬빵)이 지겹구나(군대에서 주는 밥이 이제는 먹기 싫다)”라는 용례와 “나는 우리 내무반에서 ‘짬빱(짬빵)’ 서열 최고참이다(나는 우리 내무반에서 군경력 1위다)”라는 용례가 있다.
군댓밥
‘짬밥’이 ‘먹고 남은 음식’이란 뜻에서 그 의미가 확대되어 ‘군댓밥’ ‘군대 서열(序列)’의 뜻으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 사례(事例)다.
다시 말해 ‘잔반(殘飯)’으로 발음할 때는 원래 의미로 사용하면서, 일본식 발음에 가까운 ‘짬밥’으로 사용할 때는 ‘군댓밥’ 또는 ‘군대 서열(序列)’의 뜻으로 전용(轉用)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잔반(殘飯)’은 일반 사회에서까지 사용하는 단순한 일본식 한자어(漢字語)에 지나지 않지만, ‘짬밥’은 오늘날도 군대생활에 대한 권태(倦怠)의 의미를 내포한 군인들만의 자조적(自嘲的)인 속어(俗語)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잔반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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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빵’은 또 ‘꿀꿀이죽’의 대명사(代名詞)로도 쓰인 시절이 있었다. 6.25 때와 그 이후 얼마동안은 ‘꿀꿀이죽’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서울시 변두리 영세민(零細民)들은 모두 이 ‘꿀꿀이죽’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꿀꿀이죽
그 당시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사람들에게는 미군부대(美軍部隊) 주변에서 흘러나온 음식 쓰레기가 고마운 먹을 거리였다. 그 음식쓰레기들을 모아서 푹 삶으면, 다시 먹을거리 비슷한 것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군(美軍)이 서울에 진주한 것은 1945년 9월 부터였는데, 비록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서민들이 배부르게 먹고 살지는 못했지만, 군부대(軍部隊)에서 흘러나온 음식찌꺼기로 만든 ‘꿀꿀이죽’까지 먹던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잔인한 6.25전쟁은 그나마 없던 살림이 전쟁(戰爭)의 불길에 다 타버리고, 먹을 것조차 바닥이 나자 ‘꿀꿀이죽’은 굶어 죽어가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은혜(恩惠)로운 음식이 되었다.
물론 조금 더 예민(銳敏)한 성정을 지녔던 사람들은 그 은혜로운 음식을 먹으며 수모(受侮)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을 것이다.
전쟁 후에도 경제(經濟)는 빠르게 재건되지 않았다. 한강(漢江)다리를 끊고 남하했던 자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정권(政權)을 잡았고, 가난한 시민들의 삶은 다시 예전처럼 이어졌다.
1960년의 남대문시장, ‘꿀꿀이죽’으로 한 끼를 때우는 사람들
시장 뒷골목, 낡은 천막(天幕)조각들을 주워 모아 구접지근하게 다닥다닥 늘어 붙인 노점(露店) 음식점, 땟국에 절은 가마 속에서는 종일 부글부글 먹음직스럽게 순댓국이 끓고 있었다.
철철 넘게 퍼 담은 커다란 막걸리 왕대포 한 잔에 30환, 사발 그릇 밑보다도 더 큰 밥그릇이었지만, 50환짜리 주화(鑄貨) 하나만 내놓으면 국물까지 얻어먹을 수 있었다.
순댓국, 빈대떡, 떡볶이 등 없는 것이 없었으나, 그래도 이것들을 이 지대(地帶)에서는 최고급(最高級)으로 대우를 받던 편이라 돈벌이가 좋은 날이라야 사먹을 수 있었다.
UN 탕
때문에 돈벌이가 안되는 날은 언제나 ‘꿀꿀이죽’이었다. 미군부대(美軍部隊) 취사반에서 미군들이 먹다 버린 찌꺼기들을 주워 모아 우리나라 종업원(從業員)이 내다판 것을 끓여낸 ‘잡탕죽’이 ‘꿀꿀이죽’이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유엔탕(UN湯)’이라고도 했었다. 미군(美軍)을 포함한 유엔군이 먹다 버린 음식찌꺼기로 만든 탕(湯)이라는 뜻이었다.
단돈 10환이면 철철 넘게 한 그릇을 준다. 잘 걸리면 듬직한 고깃덩어리도 얻어걸리는 수가 있지만, 때로는 담배꽁초들이 마구 기어 나오는 수도 있었다.
대개 ‘꿀꿀이죽’은 아침이 한창이다. 가마솥에 한 가마 끓여도 삽시간에 팔리고 만다. ‘양키’들이 먹다 남은 찌꺼기지만, 영양가치(營養價値)는 무척 높았다.
그 시절 양담배 꽁초
‘꿀꿀이죽’처럼 이 사회(社會)에서 버림받은 채 찌꺼기로 살아가는 군상(群像)들이 먹고 살던 주식(主食)이었다.
‘꿀꿀이죽’의 재료(材料)인 ‘짬빵’의 내용물(內容物)은 대개 빵, 스튜, 고기, 햄, 치킨스튜, 크림스프, 분유, 커피, 감자튀김, 케찹, 베이크 빈, 파스타, 버터 등이었다.
필자가 무작정(無酌定) 상경하여 공장과 야간학교(夜間學校)를 다니던 1960년대 초, 서울 변두리 달동네에는 커다란 드럼통들을 실은 트럭이 요란한 요령소리와 함께 나타나곤 했었다.
5원짜리 ‘꿀꿀이죽’으로 연명하던 서울시민들
그리고 그 종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은 하던 일들을 멈추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차 옆으로 모여 들었다. ‘꿀꿀이죽’ 장사가 나타난 것이다.
모여드는 사람들의 손에는 찌그러진 항고(군용 반합)나 냄비, 바가지나 주전자 등속을 들고 있었다. 차에 싣고 온 ‘꿀꿀이죽’을 사서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당시 서울시 변두리 지역의 ‘꿀꿀이죽’은 한 바가지에 그 때 돈으로 5환이었다. 시내 중심지(中心地)에서는 10환 정도였으나, 변두리에서는 5환 정도로 저렴(低廉)하였다. 대신 물을 많이 부어 시내에서 파는 것보다 건더기가 적었다.
꿀꿀이죽
차 밑쪽에서 남편이 돈을 받고 줄을 세워주면, 무표정(無表情)한 아주머니가 차(車) 위에서 커다란 바가지로 무언가를 퍼서 사려는 사람들이 가져온 그릇에 쏟아 부어 주곤 했었다.
시큼털털한 냄새가 주위 사람들의 코를 간질이며 사방에 퍼진다. 먼저 받으려고 서로 신경전(神經戰)을 벌이기도 한다. “식기 전에 먹어야 제 맛이 난다”며 뒤에 서있던 노인이 한마디 한다.
앞줄에 서 있던 아이가 잽싸게 무엇을 건네받는다. 주전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무엇인가를 연신 바라보며 신난다는 듯 으쓱대며 걸어간다.
꿀꿀이죽 배급
불그스레한 색에 닝닝한 냄새가 나는 ‘잡탕죽’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짬빵’이라고도 하고 ‘꿀꿀이죽’이라고도 불렀다.
여기에서 말하는 ‘꿀꿀이’란 ‘돼지’의 어린이 말이다. 따라서 ‘꿀꿀이죽’이라면 ‘돼지가 먹는 죽’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6.25 당시 우리들이 ‘꿀꿀이죽’으로 연명(延命)했다면, 돼지죽으로 생계(生計)를 이어왔다는 얘기가 된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식당(美軍食堂)에서 미군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들이 잔반통(짬빵통)에 모아지면, 우리나라 업자들이 가축 사료용(飼料用)으로 사다가 가축이 아닌 사람의 ‘먹거리’로 시중에 팔아먹은 것이 ‘꿀꿀이죽’이다.
군부대 잔반통(짬빵통)
배고픈 서민(庶民)들은 이것을 싸고, 기름지다는 이유 때문에 날마다 사 먹었다. 죽 속에는 가끔 운 좋게도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이쑤시개, 담배꽁초, 한 입 베어 먹다 버린 배나 사과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도 양이 적어 뒷줄에 선 사람들은 돈을 주고도 사지 못했다. “다음에 종소리나면 맨 앞줄에 서야지”하면서도 열 번이면 아홉 번은 빈 그릇을 두드리며 돌아서야 했고, 그때마다 온가족이 굶어야 했다.
바로 몇 십년 전, 이 나라의 민초(民草)들이 배고픔에 허덕이며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그리 낯설지 않은 장면들을 이 나라 수도(首都) 서울 어디에서든 어렵잖게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꿀꿀이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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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는 갑자기 전쟁(戰爭)이 일어나 허둥지둥 나선 피난(避難) 길이라 대부분의 피난민(避難民)들은 쌀이나 옷가지를 지게에 지고, 여자들은 이불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정처 없는 길을 나섰다.
이 피난길에 먹던 음식은 불과 1~2주 양식(糧食)에 불과했지만, 쌀에 물을 부어 처음 씻은 뜨물에다 물에 뜬 지푸라기나 잡티를 건저내고, 소금 한 가지만 넣고 끓인 ‘뜨물국’에다 밥을 말아 먹었다.
고통스러운 피난길
말이 ‘국’이지 밥에 소금만 넣어 먹는 꼴이었다. 당시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굶주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實際)로 굶어 죽기도 했었다. 때문에 누구든지 하루하루의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위해 웬만큼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을 때였다.
그 때는 또 전쟁에 참전(參戰)한 유엔군의 주부식은 거의 전량을 일본에서 공수(空輸)해 와서 급식되었다. 우리나라는 화학비료(化學肥料)가 귀한 때라 인분(人糞)으로 채소를 가꾸던 때라 유엔군들에게는 기피대상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먼 훗날까지 채소 한포기 유엔군에 납품(納品)하지 못하는 불운(不運)을 겪기도 했었다.
유엔군의 식사
대신 2차 대전에서 패전(敗戰)한 침략자 일본(日本)은 미국의 일방적인 도움으로 경제대국(經濟大國)이 되는 발판을 만들었다.
미국의 도움으로 우리나라를 상대로 모든 것을 공급하는 전쟁물자(戰爭物資) 장사를 톡톡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의 유엔군에게는 항상 푸짐하고 다양(多樣)한 음식이 배식되었고, 식사를 마친 식탁(食卓)에는 많은 음식찌꺼기가 남았다.
커다란 칠면조(七面鳥) 조각이 있었고 카스테라, 햄, 소시지, 콩통조림 등 그 종류도 다양했었다.
꿀꿀이죽 배급타기
이 음식찌꺼기에 각종 이물질(異物質)이 섞여 ‘짬빵통’에 들어가는데, 이것이야말로 돼지 밖에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음식찌꺼기를 유엔군부대에서 청소(淸掃) 등 잡일을 하는 우리나라 작업부(作業夫)를 통해 싼값에 구입한 장삿꾼들이 이를 손수레에 싣고 집으로 옮긴 후 선별(選別) 작업을 한다. ‘꿀꿀이죽’을 끓이기 위해서였다.
꿀꿀이죽 먹기
넓은 그릇에다 그 음식찌꺼기를 펴놓고 이물질(異物質)을 골라내는데, 입 닦은 휴지조각, 포장지, 담배꽁초(당시는 씹는담배도 흔했음), 성냥, 이쑤시개 등을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운 좋게 낀 고깃덩어리는 별도로 주인 몫으로 수입 잡아 제쳐놓고, 나머지를 큰솥에 넣고 오직 소금 하나로만 간을 맞추고 장시간(長時間) 푹푹 끓인다.
빵조각에다 콩통조림, 햄, 소시지, 우유, 버터, 토마토케첩, 치즈, 칠면조(七面鳥), 돼지고기 등이 어우러진 이 ‘짬빵’을 끓이면 달짝지근하면서 기름이 둥둥 뜨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 한 수저만 입에 넣어도 찰싹 달라붙는 천하일미(天下一味)가 된다.
꿀꿀이죽 먹기
그리고 당시로서는 가장 고칼로리의 음식이기도 했었다. 이 ‘꿀꿀이죽’을 드럼통이나 큰 그릇에 담아 시장터로 싣고 가면, 기름 끼 빠진 굶주린 군상(群像)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 과자 값 정도를 주고 한 사발을 받아 훅훅 불면서 그릇 바닥을 핥듯이 바닥을 싹 비우는데, 그 맛이란 어떤 산해진미(山海珍味)와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굶주리던 서민(庶民)들의 경우였다.
꿀꿀이죽 사먹기
그러나 지금은 어느 누구가 그 ‘꿀꿀이죽’을 똑 같이 재현(再現)한다 해도 그때의 허기진 군상(群像)들이 없는 터라 당시의 그 맛만큼은 두 번 다시 재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의 꿀꿀이죽은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었다. “입 닦은 휴지조각, 포장지, 담배꽁초, 성냥, 이쑤시개 등이 섞여 그 ‘꿀꿀이죽’을 사먹는 이들의 생명까지 위협(威脅)한다”는 기사가 실린 1953년 1월 7일 자 ‘평화신문’ 기사를 잠시 소개한다.
평화신문
1953년 1월 7일
시민의 식생활의 극도로 곤궁함을 기화로 시장에는 가지가지의 불결한 음식물이 범람하여 불의의 희생자가 발생한 지난날의 기억도 새롭거니와 요즈음 시내 각처의 UN군부대 군인들의 먹고 남아 쓰레기통에 버린 것을 내다파는 소위 ‘꿀꿀이죽’이 시장 도처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이 죽 속에는 담배꽁초가 있는가 하면, 성냥가지 등이 섞여 하는 수 없이 호구지책으로 사먹는 빈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뜻있는 사람으로서는 민족적인 치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 ‘꿀꿀이죽’은 일부 청소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각 처의 부대청소를 할 때에 쓸어내다 파는데, 작년 1년간에 있어서의 이득만도 약 30만 원(화폐개혁 전에는 3억환)에 달한다는 바, 이렇듯 내오기만 하면 수지가 맞는 때문에 먹을 것, 못 먹을 것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쓸어내 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尹서울시 경찰국장은 5일 기자단과의 회견석상에서 위생상으로나, 민족적인 체면을 고려하여서라도 관계당국과 절충 협의하여 판매금지 또는 혹종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언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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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 시절에는 대도시(大都市) 서민들의 경우 거의가 밥을 먹어 볼 수가 없었다. 한해에 몇 십 조 원 어치의 하얀 쌀밥을 버리고 있는 지금과는 달리 그렇게 먹고 싶은 밥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었다.
버리는 쌀밥
쌀이 남아 가축사료(家畜飼料)로 쓰는가 하면, 언제나 도발(挑發)을 일삼는 북한(北韓)에 산더미같이 실어다 준 그 쌀이 당시의 서민들에게는 화중지병(畵中之餠)에 불과했던 것이다.
말미에 게재하는 밥의 종류(種類)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그 시절에도 수 십 가지의 밥이 있었지만, 그 숱한 밥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기가 나온 김에 그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었던 밥의 종류를 잠시 일별해 보기로 한다.
북한에 공짜로 주던 쌀
밥의 종류(種類)에는 아래쪽 표에서와 같이 당시에도 너무나 많은 종류가 있었다. 아이를 낳은 산모(産母)가 처음으로 먹는 미역국과 흰쌀밥을 ‘첫국밥’이라고 하고, 식은 밥에 물을 조금 치고 다시 무르게 끓인 밥을 ‘중둥밥’이라고 한다.
하나도 손대지 않고 솥에서 처음 그릇에 담은 그대로의 밥을 ‘숫밥’이라고 하며, 찹쌀이나 멥쌀을 물에 불려서 시루에 찐 밥을 ‘지에밥’이라고 한다. ‘지에밥’은 보통 인절미를 만들거나 술을 만들 때 쓴다.
지에밥
‘지에밥’을 흔히 ‘고두밥’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술을 만들기 위한 밥은 ‘지에밥’이 정확(正確)한 말이고, ‘고두밥’은 그냥 되게 지어 고들고들한 밥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에밥’은 찹쌀이나 멥쌀을 물에 불려서 시루에 찐 밥으로 약밥이나 ‘인절미’를 만들거나 ‘술밑’으로 쓴다.
‘감주(甘酒)’를 만들려고 막 쪄서 내놓은 ‘지에밥’을 슬쩍 집어서 손바닥을 호호 불어 가며 뭉쳐서 동생들과 나누어 먹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인절미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술밑’이란 집에서 직접 막걸리를 담글 때 ‘누룩’가루와 ‘지에밥’을 버무려 술 항아리 바닥에 까는 재료(材料)를 말한다.
이 ‘술밑’을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발효(醱酵)시키면 술이 만들어진다. ‘술밑’ 대신 ‘술덧’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유의(留意)할 것은 ‘술밑’과 ‘밑술’은 전혀 다른 말이라는 것이다. ‘술밑’은 앞서 소개한 대로 ‘지에밥’과 ‘누룩’을 섞어 버무려 만든 것이다.
반면 ‘밑술’은 ‘술을 빚을 때에 빨리 발효(醱酵)되도록 누룩가루에 버무린 ‘지에밥’과 함께 조금 넣는 묵은 술’ 또는 ‘약주(藥酒)를 거르고 남은 찌끼 술’을 이르는 말이다.
고두밥
밥 얘기로 돌아간다. 찬밥을 더운밥 위에 얹어 찌거나 데운 밥, 또는 찬밥에 물을 부어서 다시 지은 밥을 ‘되지기’라고 하며, 모를 내거나 김을 맬 때 논둑에서 먹는 밥은 ‘기승밥’이라고 한다.
밥은 지어진 상태와 담긴 모양에 따라 구분(區分)하기도 한다. 가마솥에 지은 밥은 ‘가맛밥’이고, 쌀을 물에 불려서 시루에 찐 밥은 ‘지에밥’이라 한다.
‘지에밥’은 앞서 소개한 대로 그냥 먹기 위한 밥이 아니라 다른 먹을거리를 만드는 데 ‘밑’이 되는 밥이다. ‘술밑’을 만들기 위한 밥이 ‘지에밥’이고, ‘찹쌀’로 만든 ‘지에밥’을 떡메로 쳐서 늘여 썰면 ‘인절미’가 된다.
가마솥밥
지어진 상태(狀態)에 따라 밥을 부르는 말도 다르다. 물기가 많아서 질게 된 밥은 ‘진밥’이다. 반면 되게 지어져 고들고들한 밥은 ‘된밥’이다. 된밥 중에서도 아주 꼬들꼬들한 밥은 ‘고두밥’이다.
회원님들께서는 옛적에 나이 많은 시부모(媤父母)에게 ‘고두밥’을 지어 올려 소박맞았다는 어느 며느리의 눈물겨운 사연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한편 솥바닥에 눌어붙은 밥을 그대로 긁어낸 것은 ‘누룽지’라고 한다.
누룽지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유의(留意)할 것은 가마솥에 물을 부어 불린 다음에 긁은 것은 ‘누룽지’가 아니고, ‘눌은밥’이라는 것이다.
그릇에 밥이 담긴 모양에 따른 이름도 있다. 먼저 그릇 위로 소복하게 올라오도록 담은 밥은 ‘감투밥’이라고 한다. ‘감투밥’은 ‘고봉(高捧)’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감투밥’은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때도 있다. 이렇듯 먹다가 남긴 밥은 ‘대궁밥’이라 한다. 쌀이 모자라던 옛적에 남의 집에 가서 쌀밥을 대접받은 손님은 그 집안의 배고픈 누군가를 위해서 일부러 ‘대궁밥’을 남기는 게 예의(禮儀)였다고 한다.
눌은 밥
밥을 어디에서, 또 어떤 상황에서 먹느냐에 따라서도 그 이름이 달라진다. 감옥(監獄)에서 먹는 밥은 ‘구메밥’이다. ‘구메’는 옛말로 ‘구멍’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구메밥’은 감옥의 좁은 ‘구멍’으로 넣어주는 밥이라는 뜻이다.
또 집안이 기울어 남의 집에 곁들어 ‘드난살이’를 하면서 먹는 밥은 ‘드난밥’이라 한다. ‘눈칫밥’과 같은 ‘드난밥’은 한마디로 눈물에 젖은 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드난살이’란 남의 집에서 ‘드난’으로 지내는 생활(生活)을 말하고, ‘드난’은 임시로 남의 집 행랑(行廊)에 붙어살면서 그 집의 일을 도와주는 고용살이를 말하는데, 주로 여자에게 쓰인다.
대궁밥
지금은 남아도는 게 쌀이어서 ‘대궁밥’을 놓고 다툴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기후변화(氣候變化)가 무쌍한 시대에 단 한 번의 흉작(凶作)으로 쌀 생산에 큰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위에서 소개한 밥의 종류(種類)와 그 개요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하여 일별해 보기로 한다.
종 류 |
개 요 |
1. 먹는 신분에 따른
밥이름 |
수 라 |
임금이 먹는 밥 |
진 지 |
윗사람이나 양반이 먹는 밥 |
입 시 |
하인이 먹는 밥 |
메 |
조상신(祖上神)이나 귀신이 먹는 밥(놋쇠나 구리로 만든 작은 솥에 지은 밥) |
드난밥 |
남의 집을 옮겨다니며 일을 해주고 얻어먹는 밥 |
기승밥 |
모내기나 김맬 때 논․밭두렁에서 먹는 밥 |
사잇밥 |
새참 |
밤 밥 |
야식 |
구메밥 |
구멍으로 죄수에게 몰래 넣어주는 밥 |
소나기밥 |
갑자기 먹는 밥 |
강다짐 |
국물 없이 먹는 밥 |
소금엣밥 |
소금 반찬으로 먹는 밥 |
대궁밥 |
남긴 밥 |
매나니 |
반찬 없는 밥 |
곱 삶 |
두 번 삶아 짓는 꽁보리밥 |
첫국밥 |
산모가 해산 후 처음 먹는 국과 밥 |
2. 어떻
게 지어
졌는지
에 따른
밥이름 |
진 밥 |
질게 지은 밥 또는 그렇게 지어진 밥 |
된 밥 |
되게 지은 밥 |
선 밥 |
설게 지은 밥 |
탄 밥 |
태운 밥 |
삼층밥 |
맨 위는 설거나 질고, 가운데는 제대로 되고, 맨 밑은 탄 밥을 농으로 일컫는 말 |
언덕밥 |
한쪽은 질게 한쪽은 되게 지은 밥 |
고두밥 |
된밥 |
지에밥 |
시루에 쪄서 지은 밥 |
술 밥 |
술 만들 때 지은 지에밥 |
되지기 |
찬밥에 물을 부어 다시 지은 밥, 또는 갓 지은 뜨거운 밥 위에 찬밥을 올려 데운 밥 |
누룽지 |
밥이 솥 바닥에 눌어붙은 것 |
눌은밥 |
솥에 물을 부어 불린 누룽지 |
솥훑이 |
누룽지 |
솥울치 |
누룽지 |
가마치 |
누룽지 |
원밥수기 |
떡국에 밥을 넣어 끓인 것 |
3. 밥을 그릇에 어떻게 담았는
지에
따른
밥이름 |
감투밥 |
그릇 위까지 수북이 담은 밥, ‘고봉’이라고도 함 |
고깔밥 |
밑에는 다른 밥을 담고 그 위에 쌀밥을 수북하게 담은 밥 |
뚜껑밥 |
잡곡밥을 먼저 담고, 그 위에 밥을 담아 겉으로 많아 보이게 담은 밥 |
곽 밥 |
북한의 도시락 |
겉보리밥 |
혼분식 장려시 쌀밥위에 보리밥을 살짝 덮은 밥 |
고봉밥 |
그릇 위까지 고봉(高峰)으로 수북하게 담은 밥 |
높은밥 |
고봉밥 |
‘짬뽕’과 ‘짬빵’ 얘기를 하다가 ‘밥’ 얘기가 되고 말았다. 회원님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그런데 문제는 또 글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때는 가차 없이 글을 자르는 것이 현명(賢明)한 방법일 것이다. 배경음악(背景音樂) 한 가지를 고르고 파일을 덮는다.
배경음악은 앞에서 소개한 ‘황신혜 밴드’가 만든 ‘짬뽕’이라는 노래가 있기는 한데,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다른 것을 골라본다.
차이나타운
우리나라건, 미국(美國)이건 ‘차이나타운’에 가면, ‘짬뽕’도 있고, ‘짜장면’도 있다. 그래서 조금 생뚱맞기는 하지만, 백설희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을 게재하여 음미하기로 한다. 가사는 다들 아시는 것으로 보고, 오늘은 경음악(輕音樂)으로 들어본다.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노래 : 백설희
작사 : 손로원
작곡 : 박시춘
아메리카 타국 땅에 차이나거리
란탄등불 밤은 깊어 아 바람에 깜박깜박
라이라이 호궁이 운다.
아 라이라이 호궁이 운다.
검푸른 실눈썹에 고향 꿈이 그리워
태평양 바라보면 꽃구름도 바람에
깜박깜박 ~ 깜박깜박 ~
깜박깜박 ~ 깜박깜박 ~
아 ~ 애달픈 차이나 거리.
아메리카 타국땅에 차이나거리
귀고리에 정은 깊어 아 노래에 깜박깜박
라이라이 꾸냥이 운다.
아 라이라이 꾸냥이 운다.
목단 꽃 옷소매에 고향 꿈이 그리워
저 하늘 빌딩위에 초생달도 노래에
깜박깜박 ~ 깜박깜박 ~
깜박깜박 ~ 깜박깜박 ~
아 ~ 애달픈 차이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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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짬밥이든 잔밥이든 새로 알게되었네요...밥도 종류가 참 많으네요...아무 밥이라도 배만 부르면 되었지요..ㅎㅎ 지에밥은 처음 들어 보는거 같습니다 그냥 꼬두밥이라고 했던거 같네요..
밥도 많고 요오님 글도 많네! 언제 이런 글을 쉬지 않고 올려요!
이번 9.9(금) 1830경 용산근처 어느식당(우회장 권고)에서 만나지요... 몇분 같이 갈려고 희망자 모집할렵니다...
요오님 근처 잘아는 식당 추천 좀해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선배님께서 9일경에 홍콩에 있을지 모른다 해서 연락조차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9일 날 오후 6시30분경 용산 삼각지 ‘배호길’에 소재한 ‘돌아가는 삼각지(한식집 ; 790-9953-5)’에 모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삼겹살로 소주 한 잔 하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물론 전번에 말씀 드린 대로 제가 선배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을 모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장소 약도는 향우회 카페 공지사항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약은 '외동향우회'로 해 놓겠습니다.
그러면 그날 뵙도록 하겠습니다.
ㅎㅎ이번 소모임은 정야님 성화로 이뤄진것이라..ㅎㅎㅎ 요오님은....온라인 하기도 바쁘고...삿갓은 돌아다니기에 정신이 없고...ㅎㅎ 정야님은 정적이라....바빠도 봐야 맛이 난다하고....용태님은 비지니스에 바쁘실터....아시면은 그냥 못있을낀데...ㅎㅎ..상철님도 그러실듯...ㅎㅎ.다른 분들은 끼이기도 겁이 날듯..ㅎㅎ...기라성 같은 분들이라...ㅎㅎㅎ베짱이 좋던가 향기가 찐하신분들....나서도 반겨 줄것 같은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