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대 미국 - 1990년 Goodwill Game 결승전이었습니다.
굿일 게임은 80년과 84년 올림픽이 반쪽이 되는 바람에 동서냉전시대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화합모드로 바꾸고자 당시 TNT 방송사 사장이 테드 터너 씨에 의해 시작되어 86년, 90년, 94년, 연이어 상당히 성공적인 스포츠 대회로 자리매김을 했었죠.
덕분에 시애틀에서 열린 이 90년 대회를 통해 미국 스포츠 팬들도 소련과 유고 등, 동구권 강팀들의 경기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고요.
1990년 경기 결승전엔 유고슬라비아가 올라왔습니다. 이 유고 팀엔 이미 NBA에서 뛰고있었던 드라전 페트로비치와 블라디 디바치가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팀을 이끈 건 21세의 토니 쿠코치였습니다.
제대로 된 센터와 슈터가 없이, 89년까지 국가대표팀 선발 멤버조차 아니었던 선수에게 이 팀의 에이스 역할이 떨어진 것이죠.
이 쿠코치의 활약상을 GIF로 만들어봤습니다.
1. 경기 초반부터 자신의 존재감 알리는 쿠코치
드리블과 풀업점퍼로 첫 득점 올리는 쿠코치입니다.
팀원에게 손가락으로 픽 서라고 지시하고 슛 때리는... 저게 유럽에서의 쿠코치 플레이 스타일이었습니다.
2. 별명인 The Waiter 답게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간 쿠코치
경기 내내 쿠코치는 팀의 포인트 가드 역할을 맡았습니다.
6-11이란 큰 신장의 선수가 (심지어 양팀 주전 통틀어 키가 제일 큰 선수) 매직 존슨처럼 코트를 가로지으며 지공과 속공을 컨트롤했습니다.
이 모습 자체가 미국 홈관중들에겐 충격이었죠.
3. 자유자재 드리블과 유로 스텝
자신보다 빠르고 작은 미국팀 수비수들을 마음껏 농락하며 쿠코치는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했습니다.
이 플레이, 특히 골밑에서 유로스텝으로 돌파해 들어가는 모습이 나왔을 때 미국 홈관중들의 큰 탄성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농구를 볼 줄 아는 수준높은 관중들이어서 쿠코치의 작은 플레이 하나 하나에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4. 알론조 모닝 블락
경기 내내 매우 거칠게 몸싸움 하며 유고 선수들을 위협하던 모닝.
골밑에서 쿠코치에게 제대로 블락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5. 버드와 매직을 연상시키는 터치 패스
80년대 전체를 강타했던 버드와 매직이 커리어 후반기로 들어가던 시점에 이렇게 키가 크고 얼굴도 예쁘장한 백인 선수가 이런 플레이를 보여주자 미국 농구팬들은 한껏 들뜨기 시작했죠.
수비수의 타이밍을 빼앗는 저 패스.. 쿠코치의 전매특허 플레이죠.
6. 특이한 타이밍의 픽앤롤 플레이
디바치 대신 센터로 출전한 쿠르시치에게 아주 먹기에 좋은 패스를 공급하는 웨이터입니다.
7. 터치다운 패스
골을 먹은 직후, 단 한 번의 패스로 골을 만회하는 쿠코치의 플레이.
8. 인유어페이스 덩크 온 알론조 모닝
Play of the Game 이었죠.
골밑에서 블락을 노리고 있던 모닝에 제대로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먹이는 쿠코치입니다.
사실 이 덩크 직전에 쿠코치의 더블 클러치 레이업이 모닝의 손톱 끝에 걸리며 무위에 그쳤었습니다. 그 다음 공격에서 쿠코치가 모닝 위로 파워덩크를 꽂아버린 것이죠.
쿠코치의 배짱, 에이스로서의 자존심, 오기, 근성 등이 이 한 플레이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훌쭉한 몸매와 예쁘장한 얼굴의 선수가 이런 플레이로 팀의 사기를 올려주고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모습이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미국 관중들도 이런 플레이에 매료가 되었죠.
10. 올코트 프레싱 깨부수는 유고 가드진과 쿠코치
막판에 미국팀이 역전을 노리고 계속 올코트 프레싱을 걸자, 유고 팀은 두 명의 경험많은 포인트 가드 (소크, 오브라도비치)를 투입하며 압박수비를 벗겨내는 대응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쿠코치의 킬패스가 들어가며 점수차가 더 벌어지는 장면입니다.
결국 유고는 미국을 85 대 79로 꺾으며 굿윌 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집중수비를 한 몸에 받은 쿠코치의 스탯은 17점, 9리바운드, 11어시스트, 3스틸, 2블락샷에 불과(?)했으나, 경기 전체를 보면 유고의 모든 득점이 그의 손끝에서 시작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페트로비치와 디바치가 빠진 상태에서, 그리고 일찌감치 발목부상을 당해 경기를 못뛴 베테랑 포워드 파스팔도 없는 상태에서, 다른 유고 선수들 모두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며 팀을 승리로 이끈 쿠코치였습니다.
이 경기가 끝나고 일주일 후에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세계 농구선수권에서도 유고는 준결승에서 미국을 잡으며 우승을 거머쥡니다. 이 경기에서도 쿠코치의 활약은 독보적이었습니다. 득점은 31점을 한 페트로비치가 더 많았지만, 경기 전체 조율과 클러치 플레이 담당은 모두 쿠코치(19점, 8리바운드, 12어시스트)의 몫이었죠.
미국 드림팀이 탄생하기 전까지 쿠코치의 미국팀 상대전적은 4전 4승이었습니다.
1987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에서 조별 리그와 결승전에서 만난 미국을 모두 이겼고,
1990년 굿윌 게임 결승전에서 또 다시 미국을 이겼으며,
1990년 세계 농구선수권 준결승에서 미국을 다시 한 번 꺾었습니다.
이 세 대회 모두 유고가 우승을 했고, 세 대회 모두 쿠코치가 토너먼트 MVP로 선정이 됐습니다.
이 외에도 소속팀 유고플라스티카를 NBA 쓰리핏보다도 어렵다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3연패로 (89년~91년) 이끌었죠.
1991년 유럽선수권에서도 페트로비치 없이 유고슬라비아를 우승시키며 토너먼트 MVP가 됐습니다.
시카고 불스의 제리 크라우스가 이 선수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첫댓글 느바 진출 전이라 그런지 엄청 슬림해보이네요 불스에선 뭔가 창조적인 플레이는 많이는 못본것 같은데 많이 억눌렸었나봐요 ㅠㅠ
많이 억눌리기도 했었고, 수비와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강조하는 팀에 쿠코치의 스타일이 전혀 안 맞기도 했고요. 90년대만 해도 유럽 선수들에겐 텃세와 차별의 벽이 너무 컸었죠.
@Doctor J 저도 유럽의 매직존슨이라는 얘기를 듣고 엄청 기대했었는데 불스 경기에서 처음 봤을때 기대치보다 떨어져서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올려주신 짤을 보니 불스 같은 하프코트 오펜스 팀보다 런앤건 팀에 갔다면 어떤 활약을 했을지 궁금해지네요 ㅎㅎ
@(CHI)불타는개고기 런앤건 팀이 좋았겠지만, 그러면 우승은 못했을 것이고... 3번 선수가 플레이메이킹을 전담하는 그런 팀 시스템이었다면 좋았겠죠. 90년대 당시 인디애나 페이서스도 괜찮았을 겁니다. 마크 잭슨이 1번 보고, 2번에 레지 밀러, 4, 5번에 사이즈 되고 받아먹기 잘하는 터프한 빅맨들, 이런 팀에서 플레이메이커와 슈터 역할을 같이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죠. 아니면 지금 시대에 뛰면서 돈치치처럼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이거나요.
@Doctor J 아 인디는 생각 못했는데 진짜 괜춘할듯하네요 쿠코치가 인디 갔다면 불스도 장담하기 힘들었겠는데요
@(CHI)불타는개고기 쿠코치가 데뷔할 시점엔 마크 잭슨도 없었죠. 쿠코치가 3번에서 리딩하고, 레지 밀러가 페트로비치 역할을 하는 거죠. 인디애나 골밑(릭 스미츠, 데일 데이비스, 안토니오 데이비스)은 매우 탄탄했고요. 볼 운반해주고 3점 때려주는 슈터들로 1번 자리를 채워놓으면, 바로 이런 환경이 쿠코치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거죠.
이때까지 미국 아마대 타국 프로 포함 경기 아니었던가요?
그래도 미국이 늘 우승권 언저리에 있었던거구요
그렇죠. 86년 세계선수권에서 미국이 간신히 한 골차로 소련을 꺾고 우승한 후 미국도 프로를 내보내야 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88년 올림픽 준결승에서 소련에게 패배한 다음 적극적으로 NBA 선수들을 내보내야된다는 여론이 조성됐으며, 이듬해인 1989에 NBA 선수들도 국제대회 출전이 가능하다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1990년에 이 굿윌게임과 세계선수권에서 쿠코치의 유고에 연달아 패배한 다음 NBA 드림팀이 출범했죠.
요즘 트렌드에 딱이네요 멀티풀 시카고이후 팀에서는 어땠나요 박사님
불행히도 여건이 더 안좋은 식서스로 트레이드 됐죠. 래리 브라운 감독은 수비만 엄청 강조하던 분이어서 쿠코치가 제대로 뛸 만한 팀이 아니었습니다. 공격은 아이버슨-고였고, 나머지 포지션은 모두 수비 스페셜리스트 --;
그 이후 애틀란타에서 뛸 때 쿠코치가 처음으로 자기 스타일의 농구를 잠깐이나마 했었죠. 스탯도 20-6-6 으로 준수했고요. 하지만 이 때는 쿠코치도 이미 30대 중반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90년대엔 80년대 셀틱스나 00년대 킹스 같은 패싱팀이 없군요.
패싱팀에서 뛰었으면 센스를 더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생각보다 더 대단했네요~
웨이터란 별명도 처음 알았네요~
상당한 재능인데 너무 몰랐네요;;
프로가 아니여도 미국을 4번이나 이기다니요!!
그냥 시대를... 물을 잘 못 만난 물고기.
와 진짜 지금 이 시대에 데뷔했다면.. 샌안의 미래는 유럽에 있다!고 제 맘대로 생각해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