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제2장: <브레갈리아 3대 북벽Bregaglia:Three north faces>(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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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세상의 만물 가운데 언어 이전처럼 보인다. 산이 사람을 유혹하는 힘은 산이 지닌 인공언어 이전의 자연언어 덕분이다. 알피니스트가 명예로운 신분인 작가가 되는 조건 가운데 하나가 등반 이후 산에 관하여 글을 써야 하는 것인데, 이는 침묵하는 산에 관한 고유한 자음과 모음을 발견하고, 이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서술하는 일이다. 알피니스트가 글을 쓰는 순간, 그는 산과 최종적으로 맞닿아 있게 된다. 그리하여 알피니스트가 쓰는 글의 영광은 책 속에서 스스로가 산처럼 되는 침묵에 있다.
산에 고용된 존재인 알피니스트가 산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은 산을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라 산을 더 높은 곳으로, 저 낮은 곳으로 옮겨가서 지평을 확대하는, 산을 새롭게, 달리 의미화하는 일이다. 이른바 산의 덧보기이다. 산의 심연을 넓히고, 산의 옛날과 오늘을 가늠하는 것은 산을 다루는 산악문학의 힘이다. 산을 자주 오르지 않는 이들도 산에 관한 책을 더 많이, 더 자주 읽을 수 있다. 서재의 등산학처럼. 책 속의 산은 읽은 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산이 될 수 있다. 산서는 산을 소환하는 전언의 묶음이다. 부름받은 산은 산서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산서읽기가 산을 오르지 않는, 산의 결핍이 아닌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산이 언어의 상류에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책읽고, 글쓰고, 강의하는 일이 삶의 직업이었다. 책을 곁에 두고 읽었고, 이런저런 글들을 쓰고 책을 출간하면서 살아왔고, 그 사이사이, 켜켜이 내 삶은 산으로 많이 기울었다. 책은 문자로 쓰여지고, 내용을 가두지만, 책은 산이라는 주체뿐만 아니라 삶의 지평을 확대하고, 깊이를 더욱 깊게하는 놀라운 기능을 발휘한다. 산에 관한 책이 쓰여지고, 그 책을 번역하고, 읽히는 바는 산에 오르는 일처럼 일반적인 일이기도 하고, 전문성이 강조되는 독특한, 특별한 일이기도 하다. 그 최대값을 산악문학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나라에도 한국 산서회라는 단체가 있어, 산에 관한 책, 이른바 산악문학 동호인들이 모여,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의견을 나눈지 꽤 되었다. 산서회 카페에 글을 쓰는 바는, 세상에 나와 있지만 숨어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더 늙기 전에 책을 출간하고 싶기 때문이다. 산에 관한 책 출간이 흔하지 않고, 제한적인 환경에서, 산서를 황홀경으로 혹은 단말마의 대상으로 보고, 읽고, 경험하는 일은 산악문학 읽기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산악문학이 산을 보호하고, 산을 오르는 욕망을 더욱 키워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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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티는 젊은 시절부터 산에 올랐고, 내려와서는 부는 바람과 같은 산에 관하여 글을 썼다. “알프스를 자신의 집으로, 몽블랑을 자신의 아버지로 여긴 보나티에게 있어서He considered the Alps his home and Mont Blanc his father”(https://explorersweb.com/the-outsiders-bonatti-kurtyka-and-twight/) 산을 오르고, 산에서 내려와 글을 쓰는 일은, 그가 말했든 정직하고자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보나티는 “거짓말은 산악인이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이고, 산을 오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이라고 했다Bonatti has always said that lying was the worst thing a mountaineer could do. Honesty was crucial to mountaineering.” (https://explorersweb.com/the-outsiders-bonatti-kurtyka-and-twight/)
『내 생애의 산들』 제2장 「브레갈리아 3대 북벽Bregaglia:Three north faces」(1949)은 이탈리아 원본을 비롯해서, 독어 번역본, 불어번역본, 일어 번역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글이다. 영어 번역본에만 있는 글인데, 김영도는 역자 후기에서, 이 글이 “독어판에 없는 것이 영어판에 있는데 ‘브레갈리아 3대 북벽’이 그것이다.”(한351)라고만 썼고, “일어판이 있다면 거기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했서 알아보았더니 마침 일본의 <산과 계곡사>에 원명 그대로 『내 생애의 산들』이 있어 바로 주문해서 입수했다. 그런데 거기에는 ‘나의 마지막 모험 파타고니아’가 빠져 있었다”(한351-2)라고 썼을 뿐, 의문을 지닌 제2장에 대한 서지적 정보는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일어판을 구해서 참조했다고 하지만, 일어판에 제2장, 이 글이 있는지, 없는지는 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문 텍스트를 번역했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김영도가 역자후기에 쓴 글의 앞뒤 정황으로 보면, 일어판에도, 그가 번역의 저본 즉 중심 텍스트라고 여긴 독어판에서처럼, 제2장, 이 글이 없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다음에는 영어판의 서지적 정보와 함께 영어판에 들어있는 글을 번역했다든지, 번역할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에 관해서도 말해야 했다. 아니면, 영어판에만 들어있는 이 글을 번역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영도 선생이 타계하신 터라, 알 수 있는 바는 없고,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그 당시 이 책을 출간했던 <조선 매거진>의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제2장 번역 과정을 알아보고자 했으나, 기록이 남아있지않아 알 수가 없었다.
한글번역본에 들어있는 제2장은 영어판을 제외하고, 이탈리아 원본, 독어, 불어, 일어 번역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한글번역본은 영어판에 있는 글을 번역한 것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서술은 없다. “이렇게 되어 결국 독어판을 중심으로, 영.일 두 번역서를 부분적으로 참고했다”(한352)라고 역자 후기에 썼지만, 이것은 이 책의 일반적 번역에 관한 정보이지, 제2장에 대한 언급은 아닌 터라, 제2장을 어떻게 번역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동안 틈틈이 읽어오던 그의 독일어책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뒤에 영어판이 있는 것을 알고 대조하게 됐다.”(한351)라고 이어 썼지만, 이탈리아판, 독일어판, 일어판, 불어판에 없는 제2장에 대한 언급은 아예 하지 않았다. 가능성 하나는, 김영도가 번역한 제2장은 영어판의 것을 번역한 것에 있다. 이 책의 나머지를 번역한 글과 제2장, 영문을 번역한 글은 사뭇 다르게 보여 진다. 문장 구성, 단어 선택에 있어서 차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2장 번역은 용어 선택, 구문의 생략과 오역 등 여러 가지를 의논할 바를 지니고 있다. 제2장 영어본 번역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이 책 전체, 그러니까 한글 번역본의 출간은 놀랍게도 김영도의 나이 89세 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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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갈리아Bregaglia 산맥은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경계에 있고, 베르가모 알프스 위에 있는 “산악인들이 가장 좋아하는”(한21) 아름다운 ‘화강암봉’이다. 계곡이 있고, 빙하도 있다. 브레갈리아 지역은 스위스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어를 쓰는 곳이기도 하다. 보나티가 제2장에서 썼듯, 브레갈리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은 ‘발 본다스카Val Bondasca’이다. 이곳에는 알프스의 화가 조바니 세간티니의 그림 「삶」(1896-99)의 오른쪽에 보이는 빙하가 있다. 브레갈리아 엥가딘 국립공원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고향으로, 그가 1922년 파리로 이주한 후에도 매년 여름이면 이곳을 방문, 그림을 그렸던 곳이기도 하다.
제2장의 제목은 브레갈리아 3개 북벽Bregaglia:Three North faces이다. 한글본에 있는 ‘북벽’이라는 영어본 용어는 north face, piz, spur라는 용어의 번역어이다. 정확하게 적으면, ‘바딜레 산Piz Badile 서북벽’(3308미터), ‘첸갈로 산 북서벽Piz Cengalo’(3369미터), ‘푼타 산타 아나 산Punta Santa Anna 북벽’(3171미터), 이 세 북벽을 김영도는 3대 북벽이라고 번역했다. 3개 북벽이라고 하지 않고, 3대 북벽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브레갈리아 산맥에는 이 세 개의 산보다 더 높은 봉우리들이 있다.(https://www.summitpost.org/punta-s-anna/351745) 아마 큰 북벽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하여 북벽 앞에 ’대’라는 접두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알피니즘에 관한 책에는, 에베레스트 14좌처럼, 이런 용어들이 성찰없이 쓰이고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피츠 바딜(Piz Badil)의 첫 등정은 1867년 7월 27일 영국등반가들에 의해서 남쪽 능선에서부터 이루어졌다. 1860년대 프레시필드가 남긴 글을 보면, 그는 바딜레 산Piz Badil과 첸갈로 북벽Piz Cengaro에 "회색 쌍둥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1866년에 첸갈로 북벽Piz Cengaro를 처음으로 등정했다. 바딜레 산Piz Badil을 오르는 고전적인 루트는 북능North Ridge과 북동쪽 벽의 캐신Kashin 루트이다. 북동쪽 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로는 캐신이 이름지은 캐신 루트이다. 이는 최초의 등반가인 리카르도 캐신Riccardo Caci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37년 7월 14일부터 16일까지 캐신과 그의 일행은 등반을 했고, 이 과정에서 몰테니Molteni는 정상에서 피로와 노출로 사망했고, 발세키Valsecchi는 오두막에 도달하기 직전에 남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망했다.
(https://www.glenmorelodge.org.uk/six-north-faces-of-the-alps-piz-badile/)
1949년 7월, 열 아홉 살의 보나티는 돈이 없고, 여권도 없어, 친구 한명과 함께 살던 곳에서 걸어서 스위스 브레갈리아까지 갔다. 7월 23일, 바딜레 서북벽 기슭에 이르러, “20미터 가량 되는 수직벽”(한23)을 오르기 시작했다. 빙벽을 오르는데 아이젠, 피톤(하켄)과 같은 것을 사용했고, 이를 이용해서 ‘팬듈럼 스윙’, ’뒬퍼식 레이백 기술’ 등을 구사하면서 올랐다.(한25) ’세락’과 같은 큰 낙석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위 단락에 ‘ ’안에 쓴 용어들은 한글번역본에 있는 것으로, 영어를 그대로 옮긴 부분이다.
보나티는 1950년 6월에도, 친구와 함께 ‘발 본다스카’를 지나 ‘시오라 산장’에서 출발해서 두 번째 북벽인 ‘센갈로 북벽’(첸갈로)에 올랐다.(한27) 1937년 두 독일인이 오른 후, 두 번째 등정이었다.(한28) 김영도는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보나티가 이 등반을 통해서 ‘’정일’ ‘정일감’(한27, 28)과 같은 것을 경험했다고, 낯선 용어로 번역했다. 한 달 후, 1950년 7월에 세 번째 북벽인 ‘푼타 산타 아나 북벽’을 올랐다.(한28) 8월에도 보나티는 친구와 함께 다시 이 북벽을 올랐다. 빙하지대와 주상을 이룬 벽 그리고 오버행이 있는 암릉이었다. 보나티에게는 거푸 오른 등정인 터라, “정상이란 때론 기만당한 느낌을 주”(한29)는 곳이라는 경험을 써놓았다. 오르는 도중 빙하지대에서 보나티와 같이 간 친구는 영양 두 마리와 부딪치기도 했다.(한29). 보나티는 이 장면을, “영양은 우리의 돌연한 출연에 놀랐다. 그때 거리는 5미터에 불과했다. 우리 넷은 어떡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서있었다.”(한29)라고 썼다. 두 번 오른 푼타 산타 아나 정상에서 보나티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다.”(한29)라고 썼다. 열아홉 살의 보나티에게, 이즈음 브레갈리아 암릉은 자연과 만나서 경외감을 느끼고, 젊은 열정을 내세워 오르고 싶은 대상이었다. 정상, 승리, 극한적 등반 등과 같은 과감한 용어들이 문구에 나오는 것을 보면, 산은 그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한”(한29) 대상이었고, 스스로 “한 번 붙으면 에누리없이 그대로 달려들어야 할”(한 29), 자세로 등반했던 시절이었다. 위에 있는, 한글번역본에서 인용해서 적어놓은, 번역된 문장과 용어들은 뒤에서 다시금 살펴볼 예정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본 브레갈리아 지역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제2장에 나오는 지명뿐만 아니라, 산 아래에 있는, 돌과 나무로 지은 집들이 있는 마을과 바위 암릉은 산에 오르는 이들이라면 누구든지 당장에 배낭을 메고 가고 싶은 곳일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곳은 보나티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에서 아주 먼 곳은 아니다. 눈만 들어 올리면 볼 수 있고, 의욕만 있다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었다. 1949년 7월 23일, 바딜레 서북벽 기슭에 이르러, “20미터 가량 되는 수직벽”(한23)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정상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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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에서 중요한 문제는 번역에 관한 것이다. 제2장의 한글 번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출처가 영어본이다. 영어본과 한글번역본을 대조하는 일은 번역의 차이, 번역의 태도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글번역본은 몇 개의 문장을 빼놓은 것을 떼어놓고 보면, 영어본의 순서대로 번역했다. 2장에서 두드러진 것은 번역 용어의 선택이다. 등반 용어에 관한 것이 그 중심을 이루는데, 어떤 것은 영어본 그대로, 어떤 것은 영어를 독일어 용어로 옮겨놓았다. 그 대표적인 예는, 영어본에서 쓰인 모든 ‘피톤piton’을 한글 번역본에서는 모조리 ‘하켄’으로 옮겨놓았고, ‘a belay piton’(영13)은 ‘확보용 하켄(한26)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리고 영어본에서 ‘ropemate’(영10)는 “파트너”로(한24), ‘a long pendulum swing’(영12)는 펜듈럼 스윙 그대로, ‘Stone-falling, falling’(영13)은 ‘세락serac’(한26))이라고 번역했다. 세락은 빙하가 급경사를 내려올 때 갈라진 틈과 틈이 교차해 생긴 거대한 얼음덩어리인데, 여기서는 낙석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얼음물에 덮인 쿨와르”(한23)는 ‘the ice couloir’(영9) 즉 얼음으로 된 협곡으로, “암벽을 찾아서”(한23)는 ‘the rock face’(영9) 즉 바위 앞면으로, “초크 스톤으로 차있는 좁은 침니”(한27)는 돌의 쐐기인 ‘full of chock-stones’(영14)을 그대로 옮겼다. “당시 센갈로서벽에서 체험한 마음의 평화와 정일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한27, 영15)은 “authentic peace and serenity”(영15)의 번역으로, 마음의 평화와 고요함이란 뜻인데, 한글번역본에서는 ‘serenity’를 첫 번째는 ‘정일’,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정일감’(한27,28)으로 번역했고, 27쪽 ‘정일’ 다음에는 괄호 열고 (靜筵, 정연)이라는 잘못된 한자어를 병기하고 있다. 한글 번역본은 pillar를 주상柱狀(영18, 한29)으로, north spur(영18, 한29)을 북벽으로, patch(영18, 한28)는 루트로 번역했다.
브레갈리아를 등반을 했을 때, 보나티는 19살이었다. 그 때, “그의 근육은 단단했고, 야먕은 불타올랐다.” 그 다음 문장은 이렇게 번역되었다. “우리가 가는 길을 막을 산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한22) 그러나 이 번역은, “그 나이에는 어떤 산의 장애물도 우리의 성공을 막을 수 없다고 믿기 쉬웠다At that age, with strong muscles and burning ambition, it was easy to believe no mountain obstacle could prevent us from succeeding”(영8)로 해야 그 뜻이 온전하게 전달된다. 그 즈음 “돈이 없고, 여권이 없던”(영8, 한22). 열 아홉살 보나티는 스위스로 걸어가서 등반할 때 겸손했고, 자신을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등반의 과정을 묘사하는 글도 비교적 분명했다. “친구를 베르그슈른트 속으로 깊이 내린 다음”(한23)에서, 여기서 베르그슈른트bergschrund는 빙하와 다른 빙하가 만나는 부분에 생긴 크레바스를 뜻하는데, 한글 번역본에서는 그대로 베르그슈른트(한23)으로 적어 놓았다. “하늘은 아직 어두워 별들이 있었다. 밤새도록 날씨는 참아 주었다the sky was still dark and the stars seemed misted over. At full light, the weather seemed more reassuring.”는 (영13, 한26)“...별들이 흐릿해 보였다. 빛이 환하게 비출 무렵, 날씨는 더욱 안심이 되었다.”가 더 적절해 보인다.
브레갈리아 북벽 등반을 기록하면서, 보나티는 1949년 8월, 푼타 산타 아나 북벽을 등정할 때, 새벽에 동행했던 친구와 함께 트루비나스카 빙하를 건너 가야 했다.(한글 번역본28쪽에 있는 푼타 트루비나는 푼타 트루비나스카Trubinasca로 표기해야 맞다.) 그 때 “영양 두 놈과 부딪쳤다. 영양은 우리의 돌연한 출현에 놀랐다. 그 때 거리는 5미터에 불과했다.”(한29)는 “우리들 넷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우리들 중, 한 사람이 조금 움직였을 것이다. 우리의 두 친구(영양)는 샘물처럼 솟아올라, 세락들 사이로 사라졌다...completely immobile...but one of us must have then moved a little because, bounding like springs, our two friends disappeared among the seracs.”(영17)가 원본이 내용이다. 보니티와 산에 사는 영양과의 우연한 만남인데, 그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등정을 앞둔 비박들은 모두 조용한 밤이었고 별하늘이었다”(영18, 한29)로 번역한 문장의 원본은 “As in all bivouacs that precede a sure victory, the night passed serenely, both in our spirits and in the starry sky”로, ‘정상에 오르기 전에 했던 모든 비박처럼 밤은 조용히 지나갔다. 우리들 영혼과 별이 빛나는 하늘에서’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붙으면 에누리없이 그대로 달려들어야 할 것이다.”(영18 한29)는 그 원문이 “All in all, it would have been better if we’d attacked the pillar at once, without going to look for less foreshortened views”인데, “전체적으로 축소된 시야로 보는 것보다, 한꺼번(단번)에 기둥(주상)을 공격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 글의 맨 끝부분에 있는, “정상이란 때로는 기만당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전날 밤 이미 승리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다.”(영18. 한29)는 그 뜻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원문은 “A summit often gives this feeling of delusion, but there is an explanation:we had already achieved the sense of victory the previous evening...”으로, “설명하자면, 우리가 이미 정상 등정의 기쁨을 누렸기 때문에”로, 그 다음 문장, “설사 그것이 의미없고, 정서가 결여되었다 하더라도”(한29)는 “이 등정이 물질적이고, 거의 쓸모없는 결론에 불과해 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Even if a priori we had believed it was pointless...”로 하면 뜻이 보다 분명해진다.(20234.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