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 7 - 오가온천을 다녀와 시민시장을 구경한 후에 이자카야에서 저녁을 들다!
10월 30일 아키타역 秋田駅 에서 오가(男鹿) 로 가는 왕복 기차표를 1540엔에 구입하는데 기차 시간
이 많이 남은지라..... 역 서구로 나가 두 블록을 걸어서 시민 무용(율동) 경진대회 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아키타역에서 12시 10분 기차를 타고 서북쪽으로 달려 13시에 종점인 오가(男鹿)역 한정거장
전인 하다테(羽立)역 에 내려서 13시 08분에 수족관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오가온천 에 도착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휴폐업한 온천이 많은지라.... 족욕 만 하고는 돌아오니 16시 36분 아키타역에 내립니다.
인포메이션센타 에 들러 주변에 이자카야 가 없는지 물으니 아가씨는 시내 지도에서 2곳 을
표시해 주는지라 역 서구로 나와서는 보행자전용 도로인 주오도리를 지나 계속 걷습니다.
우리 부부는 오른쪽으로 구보다성의 해자였던 연못 을 끼고 두어 블록을 걷는데
연못에는 예전에 구경한 니가타현 다카다성 처럼..... 온통 "연꽃" 입니다.
해자 중간에 분수 가 오르는 것은 보는 사람들이 시원하라는 뜻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여기 해자의 물은 고인지라 산소를 빨아들여 녹조를 방지 하기 위함인가 봅니다?
千秋久保田町 (천추구보다정) 나카도바시 도오리를 따라 다리를 건너면 센슈코엔 구보타성
으로 들어가는데 성 입구에 보이는 건물은 오른쪽은 도서관이고 왼쪽은 현민회관 입니다.
구보다성은 내일 보기로 하고 반대편에 현립 미술관 에 가서는 입구에서 물어보니 입장
마감시간도 다 됐지만.... 내부의 그림들은 사진 촬영 금지 라기에 그만 돌아섭니다.
다시 되돌아오다가 시내 지도를 보고 우회전을 해서 300여미터를 걸어서 시민시장 부터 찾아가는데 여긴
예전에 아키타시에 왔을 때 한번 들른 곳인데..... 오늘은 급히 발걸음을 옮겼지만 벌써 문을 닫았습니다.
해서 옛날에 한번 찾아 구경했던 일을 떠올려 보는데.... 아키타 시민시장에는 정면에 게와
복어 모형 이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는 여자 사진 뒤에 왠 통영 오광대 냐?
자세히 보니 그럼 이건 아키타 간토축제 (秋田竿燈まつり) 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뒤집어 쓰는 탈인가 보네요? 울 마눌은 세계 어디로 가도 재래시장 을
좋아하는 것이 말이 통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자기 전공분야 라 그런걸까요?
시장에는 생선 이 위주이지만 그밖에도 과일과 꽃 등이 많이 진열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차이점이라면 반드시 가격표 가 붙어 있다는 것이며 그리고 상인들이 몸에 밴 친절 로 손님을
정성스레 맞이하니 이런 진정성이 현대화된 대형 마트의 물격속에서도 살아남는 비결인가 보네요?
엣날 중국 소주에서 비단 스카프 를 사는데 주인이 부른 가격에 절반 으로 불렀더니 여자는
손으로 가게 바닥을 치고..... 남자는 손을 칼처럼 써서 목을 긋는 시늉 을 하는게 아닌가요?
그러니까 자기들이 부른 가격은 바닥 이요, 그 이하로 팔면 손해라 굶어 죽는다 는 뜻
이라? 해서 중국이든 한국이든 재래상점이나 작은 가게에서 가격표를
붙이지 않는 것은 손님을 보아가며 다른 가격 을 제시해 조금 깍아주겠다는 뜻 이지요?
중국인들은 물건은 원래 가격이 없고 손님이 낼수 있는 상한선 이 가격 이라고 믿지만
일본의 상점에서는 반드시 가격표 를 붙이니 이는 가격은 하나 밖에 없다는 뜻이라?
그러고는 기차역으로 돌아오다가 조금 전에 인포 아가씨가 표시해준 지도를 들고
저녁겸 맥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이자카야 를 찾는데..... 울 마눌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데다가 피곤하니 그냥 우동이나 한그릇 먹고 호텔로 돌아가잡니다.
그러자 예전에 아키타에 왔을 때 이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서는 우동을 시키니 주인 아주머니가 야키 우동
도 괜찮느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더니.... 나보다 늦게 들어온 이웃 테이블에는 먼저 음식 을 갖다
주면서 나에게는 음식을 내올 생각조차 없으니.... 외국인이라고 차별 하는가 싶어 은근히 부아가 치밉니다.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에 보면 특파원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마눌 과 함께
서양 레스토랑 을 찾았더니 종업원이 좋은 자리를 놔두고는
하필이면 바깥 흐름한 자리 로 안내하기에 마뜩치 않아 다른 자리를 달라고 했더니...
흑인 종업원이 구석 청소용구가 세워져 있는 자리 로 데려 가기에 마눌이 설움에 받쳐
눈물 을 흘렸다는데.... 한국인들은 동양인은 백인과 흑인 중간 이며 그중 우린
백인에 가깝다고 여기는데..... 하지만 미국에서 인종은 백인과 유색인종 둘 뿐 이라?
부아가 치미는 가운데 마침내 우동 이 나왔기로 보니 국물 우동이야 간편하고 빠르게 내올수
있겠지만 "볶음 우동" 은 갖가지 재료를 준비 해서는 다시 오랫동안 볶은 것이니
시간이 오래 걸리기로..... 내가 사람 치별한다며 오해 한게 무안해서 그만 우스워 집니다?
일본에서 현대회된 큰 이자카야 체인은 시로키야와 어민에 와라와라 등이 있는데 오늘은
현대적인 체인 이자카야 인 시로키야 白木屋(백목옥) 로 들어가니, 몇년전 처음에
이 술집을 보았을 때는 “일본옥” 으로 잘못 읽었던 적이 있어 그만 쓴 웃음 을 짓습니다.
그런데 저 “白木 백목” 은 “시로키” 라고 읽지만 “시라키” 라고도 읽습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 후에 일본 군국주의하에서 일본에서 백제와 신라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하는데 신라(新羅) 는 일본에서는 시라기(しらぎ) 라고 읽으니 음이 유사
한지라..... “新羅” 를 "白木" 으로 바꾸고는 “시라키” 라고 발음했던 것이지요?
또 규슈 북쪽에 조선과 중국으로 가는 배가 충항하던 무역항을 현재 唐津(당진) 이라 쓰고
“가라쓰” 라고 발음하는데 옛날에는 “韓津(한진)” 이라고 썼을 것이라고 짐작하니,
옛날 한국과 일본은 자기 고유 문자를 발명하지 못했으니 청동기시대가 도래해
소규모 읍락 군장 국가가 성립하고도 천년간 문자가 없으니 책이나 서류 라는게 없었습니다.
말로만 이어지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후 적대국으로 원수놈들인 중국 한나라에서 문자가
전해지니 漢字(한자) 로 조선과 왜국은 자기 고유의 말을 한자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가야 를 뜻하는 말만 해도.... 가야(加耶· 伽耶· 伽倻)· 가라(加羅)· 가량(加良)·
가락(駕洛)· 구야(狗邪· 拘邪)· 임나(任那), 한(韓) 등 인데..... 모두 같은 뜻 입니다?
이 집은 기계에서 주문 을 하는데.... 한국식 닭도리탕과, 라멘사리, 치즈에 소고기 등
과 생맥주 나마비루 2잔 에다가 안주겸 저녁으로 피자와 군만두 를 시킵니다.
술을 못 마시는 울마눌은 주먹밥 “오니기리” 한 개를 시켜 저녁을 떼우며 오늘 하루 빡빡했던
일정에 피로를 푸는데... 문득 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인 이즈미 씨가 동아일보
이즈미 지하루의 한국 블로그에 쓴 “한국과 일본의 달라진 음주 문화”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회의 후에 회식 자리에 원장님은 일본의 사케와 한국의 막걸리 를 가져왔는데 걸쭉하지만 생크림
처럼 부드러웠고, 곡식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입안에 은은한 단맛이 돌아 어릴적
먹어본 ‘조선 엿’ 이 생각났다. 알고 보니, 특히 18도짜리는 막걸리 중에서도 고가의 고급
막걸리로 발효나 숙성기간이 길어 명절이나 연말 등 특수 시즌에만 구할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이 막걸리를 준비한 원장님은 외교관이면서 일본 전통주 사케 소믈리에 자격을 가진 술 전문가로,
그날 식사 자리를 위해 전남 해남의 양조장 에 연락해 직접 구해 오셨다. 그는 서민적 한국
막걸리가 최근 양질의 국산 재료와 자연 숙성으로 고급화된 예로 이 막걸리를 소개해 주었다.
이날은 한국의 막걸리 한 병과 일본의 사케 한 병 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야기를 꽃피웠다.
일본에 ‘노미니케이션’ 이란 말이 있다. ‘마시다’ 란 뜻의 ‘노무(飮む)’ 와 ‘커뮤니케이션’ 의 합성어
로 ‘술을 마시고 대화하면서 친분을 쌓는다’ 라는 긍정적인 뜻이다. 그래서 퇴근 후의
술자리는 ‘일단 맥주(とりあえずビ―ル)’ 라는 건배로 시작해 공동체 의식을 재확인
해 주는 업무의 연장 으로 여기며 사회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고, 한국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처음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것은 한국 사람들이 술이 너무 세다는 거다. 일본에서는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도수가
높은 술은 물을 타거나 얼음을 넣어 희석해 마시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대로 마시거나 술끼리 섞어 마신다.
또 일본은 ‘건배’ 를 처음에 한 번만 하지만 한국은 연달아 ‘건배’ 를 외치며 술을 마셨다. 또 일본에서는
손윗사람의 잔이 어느 정도 비면 다 마시지 않아도 채우는 ‘첨잔’ 문화가 있는데 이것도 한국과 조금 다르다.
대학생들도 개인 차이가 있으나 일본에서는 사와(サワ―·과즙이나 소다수 등에 술을 섞은
음료)나 ‘주하이(チュ―ハイ)’ 등 도수가 약한 알코올 음료 를 마시는데 한국에서는
소주를 주로 마셨던 것 같고 술맛을 음미하기 보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 처럼 느껴졌다.
요즘 음주문화는 MZ세대들이 성인이 되면서, 예전처럼 강요하는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면 회식 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그럴 때 옛 스타일을 고수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며 즐기면 좋겠다. 대면도 좋고 비대면도 좋고, 메타버스도 좋겠다.
또 마셔도 좋고, 안마셔도 좋고, 무알코올 음료 를 마셔도 좋겠다. 자유롭게 모두가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두사람의 저녁과 술값으로 4,100엔을 지불하고는 이자카야를 나와 아키타역으로 들어
가서는 동구로 나가 도요코인 고베 산노미야 2 호텔 東橫 inn 神戸 三ノ宮 Hotel
로 돌아와서는...... 방에서 텔레비전을 트니 국제 피겨 스케이팅 대회 가 열리나 봅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싱글에서 한국 유연 이라는 선수가 3위를 한 모양인데..... 요즘 선수
들은 잘 모르겠고 옛날에 은퇴한 라이벌인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가 떠오릅니다.
아사다와 김연아 는 모두 1990년생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니....
아사다는 “주니어 때는 김연아라는 라이벌에 지지 않을려고 열심히 했었지만
20대가 되서는 김연아가 없었다면 나는 발전하지 못했을 것 이다” 라고 말했고
김연아는 “아사다와는 참 징한 인연 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는데 경쟁자이자 친구 라!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의 경쟁과 우정을 생각하자니 문득 평창 올림픽에 참가한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 가
떠오르는데, 이상화가 올림픽에서 연거푸 금메달 을 딸 때 절치부심했던 고다이라는 평창 올림픽에서
금메달 을 목에 겁니다. 은메달에 실망한 이상화에 다가가 “요쿠얏타요” 가 아닌 “잘했어” 라며 위로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