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누스주의
예언자, 은사주의, 열광주의, 금욕주의. (이들은 종교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은 다 갖추었다)
당시의 교회는 몬타누스주의에 의해 분리됨으로써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러한 분리주의는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위협적인 요소이다.
몬타누스는 156년에 프리지아(소아시아)에서 자신이 약속된 보혜사(요14:26)로 주장하며 등장했다. 그는 엑스터시에 빠져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나는 인간이 된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는 천사로서가 아니라 주(Kyrios)로서 왔다.“ 그는 나중 여자 막시밀라와 프리스킬라를 선지자로 세웠다.
그들은 새 예루살렘이 페푸자(Pepuza)에 곧 세워진다고 예언했다. 자신이 성령으로 왔으므로 계시의 마지막 단계가 이루어졌다. 말세가 곧 올 것이다. 신자들에게 결혼하지 말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라고 했다. 이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할 선교사를 위해 금과 돈을 모금했다.
이 가르침이 속히 로마에 퍼지고, 특히 북아프리카에 번성했다. 소아시아에서는 교회 자체가 몬타누스 교회로 바뀌는 교회가 있었다. 사람들이 정말로 Pepuza로 가서 종말을 기다렸으나 종말이 오지 않았다. 179에 막시밀라의 죽음으로 3명의 창시자가 모두 죽었다. 성령인 몬타누스는 그전에 죽었다. 그들의 가르침이 거짓임이 드러났음에도 교회는 계속 번창했다. (이단의 성장, 교회의 성장까지도 진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교회가 성장하고 신도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그들이 복음과 이웃사랑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도 예수님이 없는 교회가 많다).
일반교회의 이름으로 몬터나스 교회가 세워졌다. 사람들이 정통교회와 이단을 구분 못 했기 때문이다. 기존교회에 침투하여 교회 내의 교회가 되었다(경건주의도 교회 내의 교회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경건주의자들은 다른 교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영지주의, 마니교, 몬타누스는 자기 교리를 감추고 교회에 들어왔다. 신천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교회생활 중심에는 엑스터시 상태에서 설교하는 것이다[1]. 횃불을 들고 흰옷을 입은 자매들이 교회의 상징이 되었다.
이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금욕주의이다. 처음에는 기혼자에게 전부 이혼하라고 요구했으나 차차로 완화되었다. 재혼을 엄격하게 금지했다(배우자 사후에도). 금식 강화와 특정한 음식 금지(고기, 포도주, 수분이 많은 과일). 이것은 임박한 재림기대에서 온 것이다.
교회 징계의 강화: 200년경 코모두스 황제가 기독교를 핍박하지 않자 기독교인들이 해이해졌다. 이러한 이유로 몬타누스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다. 몬타누스 신자는 당국의 수배를 받으면 도망가지 않고 붙잡히는 용기와 확신을 보였다.
207년에 터툴리안이 몬타누스로 넘어가서, 죽기 얼마 전에(220) 다시 돌아왔다. 그가 몬타누스로 넘어간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가르침이 아니라, 교회가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당시의 가장 훌륭한 기독교학자가 이단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단은 정말로 매혹적이고, 인간의 힘으로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4세기에 국가가 몬타누스주의를 법적으로 금지했다.
* 평가와 의의:
몬타누스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엄격하고 열광적이고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은사주의.
이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나중에는 적극 항거했다. 새로운 형태의 이단이라서 사람들이 그들의 정체를 빨리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을 대항하기가 어려웠던 점:
성경(구약)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인정하고, 영지주의에 반대했다.
그들은 적지 않은 순교자를 냈다.
그들의 금욕적인 삶은 귀감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화장과 장신구 금지.
그들은 예언을 많이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교회에서도 예언이 있었다.
한마디로 정통교회보다 훨씬 큰 매력이 있었다: 금욕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 엘리트 의식, 엄격한 규율, 열성, 입신, 예언 등.
칼 호이시(Karl Heussi)의 평: 몬타누스주의는 열광주의적이고 금욕주의적인 초대 기독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이것을 더 강화하는 운동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 기대가 사그라졌고 교회가 세속화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이때 „예수님이 곧 재림하신다!“라는 메시지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교회는 예언자 직분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이레네우스(2세기 말): „우리가 듣는 바와 같이, 교회의 여러 형제가 예언 은사를 갖고 있고, 여러 가지 언어로 방언을 말한다. 그리고 형제들의 유익을 위해 감추어진 것을 밝혀내고 하나님의 비밀을 말한다“(adv. Haereses. V,6).
그 외에도 신비한 환상, 예언에 대한 기록이 여러 곳에 있다.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170), 사데의 멜리토(180), 키프리안(250) 등도 환상을 보고 예언을 했다.
200년까지만 해도 교회에 예언자의 직분이 있었다.
아돌프 하르낙: 몬타누스주의는 초대교회의 예언자 관례를 강화하고, 또한 이로 말미암아 그것의 종말을 가져왔다. 이것은 몬타누스에 의해 예언이 교회에 넘쳐나게 되자 교회가 경각심을 갖게 되어 예언이 결국 교회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무라토리(Muratori)정경(약200)에서는 예언자의 시대는 지나갔음을 선포했다. 무질서한 예언의 관례로 말미암아 정경형성이 촉진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성령을 말하지만, 실상은 자기들이 만든 율법의 노예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수많은 율법을 갖고 있었다. 예수님이 해방시킨 바리새인의 율법이 다른 모습으로(금욕과 많은 규율) 교회에 들어왔다. 그들은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계명은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죄 사함을 받게 한다. 이렇게 해서 중생된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본래 의미대로 살게 된다. 즉,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진정한 거룩함과 사랑에 거닌다. 은사주의, 열광주의는 인간의 정신에 함몰되어 그리스도를 버린다.
* 왜 예언의 시대는 지나갔는가?
예언이란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이다. 또한 예언은 오늘날에도 교회에 유익이 되는(교회를 세우는) 범위에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신약이 성경으로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았던 시대에서는 예언이 분명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예언을 권장하면서도 그 위험성을 고려하여 사용의 한계를 정했다. 예언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데에 사용되기 때문에,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제삼자가 그의 진위를 판단할 수가 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예언을 항상 판단할 것을 가르쳤다. 즉 예언은 말씀의 판단을 받는다.
문제는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에서 예언, 입신과 같은 것이 공교회보다 훨씬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교회는 성령이 아닌 다른 영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예언을 판단하라는 성경의 경고가 지켜지지 않는다. 따라서 예언의 실습 문제가 몬타누스에 의해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교회에서 경각심을 갖게 되어 성경 말씀에 더 치중하게 되었다. 당시에 신약 성경이 있었지만, 범위(27권)가 확정되지 않았다. 후에 정경이 확정되면서 예언자가 필요 없게 되어 교회로부터 예언이 사라짐. 신자들이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의지했다.
* 은사주의
은사주의는 은사(charisma)란 말을 오해해서 나온 말이다. 은사란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각 교인들에게 나누어주는 선물(고전14)이므로, 은사가 없는 교인은 문제가 있고, 은사가 없는 교회에는 성령이 안 계신다.
은사란 무엇인가? 교회를 섬기기 위한 도구로서, 다스리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섬기는 은사, 사랑의 은사 등이 있다. 그 외에 방언, 예언, 신유와 같은 초월적 은사가 초대교회에 있있다.
은사주의란 방언과 예언을 특별히 강조하고 우대하여 다른 은사가 퇴색되거나 무시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성경 말씀이 뒤로 밀린다. 은사주의가 이단인 이유는, 죄 사함을 통한 구원의 충분함을 무시하고, 구원의 표징으로서 방언을 받아야 한다는 것, 즉 기독교의 근본교리인 이신칭의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방언과 예언을 성경에 규정한 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방언을 해석자 없이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비신자가 있는 곳에서 방언을 한다는 것이다. 방언을 하면 반드시 두 명의 해석자에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해석자가 방언을 동시에 듣고 격리된 곳에서 해석해서 의미가 일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방언은 교회를 교란하는 사단의 언어이다.
* 은사주의의 문제점: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의 중심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초점이다. 우리의 모든 관심사가 여기에 집중되어야 한다.
예언을 하나님 말씀 위에 둔다. 주의 종의 예언은 판단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여과 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예언은 항상 하나님 말씀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교회에서는 실제로 많은 더러운 영들이 역사하고 있다. 교회에 말씀의 지배를 받지 않는 무엇이 있고 이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면, 그곳은 이미 주님의 교회가 아니다.
„오직 예수“가 거부된다. 그들에게는 예수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회의 토착화: 교회가 문화와 재래종교를 이기지 못하고 그것들과 혼합된다. 서양에도 occultism, esoterism의 전통이 상당히 강했다. 이것은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가장 분명한 예언인 성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예언을 구한다면 이것은 큰 문제이다.
* 생각해 볼 점
몬타누스주의는 제도화되고, 도덕적으로 느슨해지고 열심이 식은 당시 교회에 대한 개혁운동이다.
이러한 개혁운동의 선구자격인 몬타누스는 자신이 보혜사로 선언함으로써 몬타누스주의는 개혁운동으로 간주되지 않고 이단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당시에 개혁을 지향한 많은 교회들이 몬타누스주의로 분류되어 정통 교회와 분리가 된 것은 애석한 일이다.
이들은 제도화되어가는 교회에 성령님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교회에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몬타누스주의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 운동이 지나치게 되어 환상과, 예언, 입신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현상이 이방 종교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구분을 할 수 없게 되어 정죄를 받게 되었다. 은사가 올바로 사용되지 못했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이 후에 교회로 다시 들어왔다. 이단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경계와 계몽이 필요하고 이단을 회개시켜 교회로 데려오도록 힘써야 한다.
[1] 설교는 맑은 정신으로 하는 것이다. 신구약에서 입신 상태에서 설교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구약의 선지자중에 어떤 이는 혹은 사도 요한이 예외적으로 입신과 비슷한 상태에서 예언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상태에서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이 받은 말씀은 단순한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계시)이다.
(한마음개혁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