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대할망
설문대할망은 탐라를 창조한 신이다. 할망의 이야기는 제주도의 동서남북 섬과 바다와 바위와 산과 오름과 못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하지만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할망도 없다. 마고와 같은 여신이지만 오롯이 바다에서 태어났던 제주의 여신. 제주에 가면 할망이 세상을 가득 안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설문대할망 그림책은 제주섬에 누워 자는 설문대할망의 모습이 4~5쪽에 걸쳐 있어 펼쳐놓으면 장관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의 왜곡 때문일까 알 수 없다. 제주 여행을 하며 오름에 올라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제주는 한라산을 기준으로 따사롭고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여신이 누워 자는 모습 그대로다. 설문대할망은 아마도 샤먼큰할망일 것이다. 샤먼은 사만이나 살만으로도 불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할망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면 할망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누구는 제주 오름이 할망의 한라산을 쌓을 때 떨군 치마 구멍으로 떨어진 흙덩이라고 하고, 누구는 할망이 한판 내지른 설사라고도 한다. 누구는 할망이 물장오리에 빠져죽었다고 하고, 누구는 오백 아들의 죽을 끓이다가 그만 죽솥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또 누구는 할망이 먼 바다로 떠났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여신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할망이 오줌을 내질러 소섬이 생겼고, 소섬 앞에 깊고 거친 바당이 생겼다고 한다. 성산에 불을 밝히고 빨래를 열심히 하는가 하면, 한라산을 배고 누워 바다에 닿은 발로 물장구를 쳐 하얀 파도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탐라사람들이 면화 100통의 거대한 속곳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육지까지 다리를 놓다가 면화 한통이 부족해 탐라는 끝내 섬으로 놔뒀다고도 한다.
할망을 생각하면 돌아가신 할망 생각도 나고 어멍 생각도 난다. 내가 설문대할망죽을 떠먹은 오백아들 중 막내인 것같아 서럽기도 하다. 실로 나는 조상의 뼈를 쪽쪽 잘도 발라먹고 산 것이 아닌가? 설물대할망을 생각하면 돌도 물도 바람도 유심하지 않은 게 없다.
허황된 권력자들이 등장하기 전 옛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자기가 살고 있는 산과 들과 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낳고 품고 길러주는 샤먼큰할망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