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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풍광감상실 스크랩 동화의 나라 구채구, 인간요지 황룡 & 비림과 소안탑 1
돌산(12회 장순성) 추천 0 조회 1 08.10.22 12: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비석들이 춤을 추는 碑林,

아침엔 종소리가 저녁엔 북소리가 울리는 

小雁塔

 

Ⅰ. 뚜껑 열기

Ⓐ 때 : 2007.7.1 ~ 7.7(6박7일)

장소 : 西安 ▶ 九寨溝 ▶ 黃龍 ▶ 西安

함께 한 분들 : 10학년 남자 11, 여자 9, 그리고 김영춘, 김현진  & 나

Ⓓ 일정

제1일 - 16시 56분 T7 성도행 기차타고 서안으로 향함

제2일 오전 5시 9분에 서안역 도착 → 아침 식사후 서안 성벽 오름 → 12시경 종루에 모여서 점심과 종루 주변 산책 → 점심 먹고 대안탑 북광장으로 → 대안탑 주변 유람 후 공항으로 → 서안공항에서 지우황룡공항으로 향함

 제3일 새벽 1시 구채구 숙소에 안착 → 08시에 아침 먹고 11시30분에 구채구를 향하여 출발 → 오후 5시까지 구채구의 원시삼림과 진주탄, 진주탄폭포, 전죽해, 오화해 낙일랑폭포 등 관람후 숙소로 회귀 후 취침

 제4일 오전 7시 기상하여 아침 먹고 구채구로 향함 → 구채구의 장해, 수정군해, 수정군해폭포, 문화촌, 노호해, 마방, 분경탄 등 유람후 2시에 점심식사 → 천주사로 향함. 숙소 도착후 저녁 먹고 휴식

 제5일 6시 30분 기상 아침 먹고 체크아웃 → 버스타고 황룡으로 이동 → 12시 30분까지 황룡 유람 → 천주사로 돌아와 점심 먹고 휴식 → 6시에 지우자이황룡공항으로 이동 9시 20분 뱅기타고 서안으로 이동 → 서안 숙소에 투숙 후 휴식

 제6일 아침 8시 기상 후 숙소내에서 아침 → 개인별 자유활동 → 오후 6시 숙소에서 모여 서안역으로 이동 → 9시 15분 기차타고 북경으로 향함

제7일 오전 10시 30분 북경서역 도착 → 버스타고 학교로 이동 12시 40분에 해산

Ⓔ 여행비용 : 개인당 3,800원(북경-서안 왕복기차, 서안구-채구 왕복항공요금, 구채구, 황룡관람, 숙박비 등), 서안에서의 개인별 자유활동비용 불포함

Ⓕ 추가비용 : 자유활동 비용(서안에서 두나절)

Ⅱ.  여행병 속 들여다보기

 1. 들어가기

  테마학습은 해마다 실시하는 학사일정의 한 부분이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1학기말 무렵에 실시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1학기 마치는 시점에 실시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학생들 분위기상으로 좋을 것이라는 판단아래서이다. 7학년부터 실시되는 테마학습은 중등부와 고등부가 약간의 차이를 갖고 진행된다.

 7학년은 낙양과 정주로, 8학년은 백두산과 집안으로, 9학년은 황산과 남경으로 장소를 택하여 실시한다. 또한 이들 학년은 학년 전체가 움직이므로 여행사를 통하여 일정을 잡고 모든 진행방법과 상황을 결정하여 진행한다. 반면 고등부는 10학년과 11학년이 4곳의 행선지를 정하고 각자 선택하여 실시한다. 코스는 황하와 사막, 홍콩, 계림, 그리고 구채구이다. 고등부의 경우는 학생 스스로가 행선지를 선택하고 아울러 각종 일정과 비용 등을 산정하고 진행한다. 교사들은 인솔자로서 책임을 지고 함께한다. 물론 사전준비과정에서 많은 협의와 수고를 함께 한다. 나의 경우는 최초에 계림팀에 합류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사정이 생겨 구채구팀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계림이든 구채구이든 처음 가보는 것이라 설레이기도 하고 기대도 되었다. 어디를 가든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맘은 편한 상태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항상 긴장상태여야 하고 안전사고 예방에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때문에 다른 여행처럼 맘 편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학생들과 탐험 내지는 찾아가는 여행은 나름대로 어려움도 있지만 또 그 보람도 있다. 여행사를 통하여 따라다니는 여행도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낙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은 힘들면서도 또 다른 맛이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다른 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서안성벽 위

 

 대안탑을뒤로하고

 

서안고루

 

서안 고루

 

고루 주변 상가

 

 

2. 첫째 날(7월 1일 일)

  7월 1일 일요일이다. 날이 무척이나 좋다. 덥기도 하고. 오늘 몇 개 팀이 출발을 한다. 우리 구채구팀과 계림팀이 오후가 되어 학교에서 집합하여 각자의 출발지로 향한다. 그리고 나머지 홍콩팀과 황하 ․ 사막팀 역시 시간에 맞추어 출발한다.

 모두 모였다. 각자가 편한 차림새이다. 역시 학생들이라 다르군. 각자의 짐들은 또 많다. 나 역시 한 가방 챙겼다. 일정이 기니 대부분 옷가지이다. 날이 덥고 여름날이라 옷가지를 많이 챙기는 것이 편안하고 안락한 발걸음이 되리라 믿기에.

 애초 계획은 학교 앞 도로에서 827번 버스를 타고 북경서역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버스 이동 시간이 길고 먼 거리라 학교차량을 하나 임대를 했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짐이 있다 보니 좌석이 조금 부족하다. 끼어 앉고 가방에 앉고 하면서 차량 안에 모두 탑승하여 북경서역으로 향한다. 일요일인데 진입하는 도로마다 차량이 많다. 넉넉하게 출발한 것이라 다행이다. 땡볕 속을 한참을 달려 북경서역에 도착한다. 무슨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지. 바글바글 하다. 역시 북경이다. 우리는 대합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가방을 한쪽에 몰아놓고 그 주위에 둘러앉거나 서거나 하면서 개찰시간을 기다린다. 잠시 자리를 비우신 교장님께서 간이 의자 3개를 들고 오신다. 흔히 낚시할 때 사용하는 접이용 간이 의자이다. 참으로 유용하다. 많은 시간을 기다리는데 필요한 필수품이 된다. 대합실에 의자는 많지만, 사람이 더 많은지라 좌석이 부족하다. 어떤 이는 두 자리를 차지하면서 누워있기도 하고. 참 버릇없는 자인지라. 뭐라 야기도 못하고. 암튼 남의 생각하는 맘은 적은 인간들이라 보기 딱하다. 이렇게 간이 의자 신세를 지면서 군것질도 하고 물도 마셔가면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개찰을 시작하여 기어이 기차 안으로 입장한다. 개찰할 때도 문제다 가만 줄서있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많은 무리들이 끼어들기를 한다. 바로 의자에 편하게 앉아있던 무리들이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줄지어진 맨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줄 사이로 끼어든다. 그러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줄도 줄어들지도 않고. 암튼 질서는 어딜가나 망가져있는 이 나라다. 언제나 줄서기가 잘 이루어질지…. 내가 걱정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기차를 타고 자리를 배정하고 짐을 정리하고 휴식시간을 갖는다. 출발전에는 기차가 소란스럽다. 움직이는 사람과 짐 보따리가 왔다갔다하고. 우리는 일단 자리를 미리 배정한지라 큰 혼잡은 없다. 자기 자리에 짐을 놓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도하고 놀기도 한다. 저녁을 먹을 준비도 하고, 우린 간단하게 가져간 김밥으로 저녁을 대신한다. 이제 기차 안에서 쉬는 일이 남아있다. 책도 좀 보고 누워있기도 하다보면 어느새 아침이 오리라. 그러면 또 새로운 시작이 열리겠지.

 여름날이라 해가 길다. 8시가 넘어서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책을 읽다가 그만 잠을 청해본다. 학생들은 여전히 조금은 소란스럽다. 녀석들 잠을 잘 시간은 아직 인가보다.

 서안은 두 번째 발을 디뎌보는 곳이다. 지난 해 5월 병마용과 화산을 찾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철길은 낯설지가 않다. 한참 잠을 자다가 너무 조용해서 그만 깼다. 가만 보니 기차가 서 있는 것이다. 시간상으로 보면 서안 가까이 온 것인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옆 선로에도 우리 뒤편으로 가는 기차 역시 서 있다. 왜 일까. 마침 지나가는 역무원이 있어 물어보니 역시 대답은 뻔하다 “不知道” 라는 대답이 다가온다. 분명 앞 선로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 이렇게 오랜 시간 서 있을라고. 기차는 약 1시간 30분가량을 가만 서 있는다. 난 다 온줄 알고 아이들을 깨웠는데. 그러나 아직도 두 시간 가량을 가야 하는 것이다. 새벽이 밝아오는데. 이렇게 잠시 오도 가도 못하고 서 있다가 6시 45분이 되어서야 서안역에 도착하였다. 어쩌면 특별한 일정이 없었던 우리에게 기차 연착은 조금 시간을 버는 덕을 본 셈이다. 원래는 5시 9분에 도착예정이었다. 어둠이 가신 서안역에 우리는 안전하게 도착하여 발을 내디딘다.

 

 

서안 기념품 가게

 

서안 고루

 

고루에 걸린 편액

 

 

3. 둘째 날(7월 2일 월)

 서안에서는 가이드가 한 명 있다. 남자다. 이 친구도 기차가 연착되어서 많이 기다린 것 같다. 이 친구의 안내를 받아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제법 크다. 23명이 타기는 넉넉하다. 오늘 아침은 이 여행사에서 제공한단다. 그래서 일단 아침 식사를 할 식당으로 간다. 아침이라고 해야 뭐 기대되는 것은 없다. 빵, 달걀과 쌀죽 그리고 나물 종류 몇 가지. 아이들도 썩 내켜하지 않는 아침식사이다. 그러나 조금은 먹어두어야 또 하루를 거뜬하게 견디지. 식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이번엔 어딜 갈 것인지 정한다. 우선 서안성벽을 가기로 한다.

『서안城壁은 당나라 長安城 성벽을 토대로 명나라 때 세운 것이다. 명나라 때인 1370~1378년에 장장 8년에 걸쳐 보수공사를 실시했다. 현재의 성벽 규모는 당나라 때의 약 9분의 1 규모라고 한다. 그러니 최초의 성벽의 규모를 짐작할만하다. 현재 성벽의 높이는 약 12m이다. 지면에 닿은 부분의 너비가 약 15~18m정도 되며, 성벽 위의 도로 폭은 약 12m가 된다. 서안의 중심인 종루를 중심으로 해서 장방형으로 둘러싼 성벽둘레의 합계는 약 11.9km 나 된다. 동서남북의 성문 누각에는 각 이름이 있으며 서쪽의 현관격인 安定門 은 실크로드의 출발 지점이었다. 성벽 주위에는 공원이 정비되어 있는데, 동문 즉 長樂門에 입구가 있다.』

 서안 시내는 종루를 중심으로 해서 열십자의 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즉 종루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길게 뻗은 도로가 나 있다. 각 동서남북으로 성벽의 문이 있어 성문 안으로의 출입이 가능했던 것이다. 현재 이 성벽은 남문과 북문에서의 입장이 가능하다. 다른 지역은 문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 성벽의 입장료금은 성인이 40원 학생은 반값인 20원이다.

 우린 조금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성벽에 올라 서안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아직 9시가 되기 전이다. 서안 아침은 뿌옇다. 안개인지. 먼지인지. 암튼 환한 여름 아침이 아니다. 저 멀리 바라볼 수가 없다. 시야가 좋지 않은 반면 해가 나지 않아 걷기는 안성마춤이다. 성벽에 오르니 한가하다. 사람도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거의 없다. 한 두 사람이 눈에 띌 뿐이다. 가끔 노란머리를 한 외국인이 자전거를 타고 성벽 위를 달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우리는 성벽에 올라 11시까지 자유시간을 갖는다. 성벽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최소 2시간을 걸릴 것 같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개방된 성벽둘레가 약 7km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책자에 나와 있는 거리는 더 된다. 약 12km 정도이다. 이정도 거리면 부지런하게 걸으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어쩌면 더 걸릴지도 모른다. 실제 성벽 위는 크게 볼만한 것은 없다. 그저 성벽 아래 또는 멀리 보이는 시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날이 흐려 저 멀리 바라볼 수가 없다. 아쉬움이다.

 우리가 오른 성벽문은 남문 즉 永寧門이다. 이 남문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小南門 즉 勿幕門이 있고 오른쪽으로 文昌門이 있다. 우리는 소남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돌 벽돌을 바닥에 깔아 놓아 걷는데 조금은 불편하다. 그리고 도로가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어 역시 걷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시계방향으로 걷는다. 걸으면서 잠시 사방을 둘러본다. 군데군데 망루가 있다. 각 큰 방향으로는 거대한 문이 있는 건물이 있다. 동서남북 각 네 곳에. 걷는데 간혹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또 멎기도 하고, 많이 올 비는 아닌 모양이다.

 한참을 걷는데, 앞에서 자전거를 탄 우리 일행들이 보인다. 몇몇 남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성벽 일주를 하는 것이다. 모두는 아니다. 아마 엉덩이가 좀 아플 것이다. 왜냐면 바닥이 고르지 않으니까. 그래도 어디 이런 경험이 있을까. 성벽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일주한다는 것이. 조금 더 걸으니 서안역 앞 광장이 나온다. 우리가 오늘 아침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곳인데, 역시 북적거린다. 서안 역 앞은 버스 터미널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인파가 더 많아 보인다. 조금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온다. 11시다. 부지런히 걸어야 도착할 것 같다. 결국 시간을 넘겼다. 우리는 약 10여분을 초과한 것이다. 이미 버스 안에는 우리 일행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에 급급할 것은 아니지만, 약속한 모임 시간에 우리 셋이 늦어진 것이다. 이런 민망할 때가.

 버스를 타고 다시 이르긴 하지만 점심을 하러 간다. 가이드와 이야기를 하여 鼓樓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곳에 그래도 나름대로 시장거리도 있고 기타 볼거리도 있어 보여,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주변을 살피기로 한다. 고루 앞에 차를 주차시키고 각자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만날 시간을 정하고 헤어진다. 고루 건물 뒤로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각종 식당도 많고 기념품 가게도 즐비하게 있다. 마침 비가 내린다. 우비와 우산을 받쳐 들고 그 시장골목을 누벼본다. 우선 점심을 해결해야 하니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선다. 사천식당이다. 뭐 일단 들어가 양고기 구이와 양고기 갈비, 냉채중의 하나와 凉皮 한 그릇을 시켜 점심을 먹는다. 처음 고기를 양고기 구이와 갈비를 한 근씩 주문을 하였다. 아니 차림표에 1근 단위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문을 받은 아가씨가 다시 와서는 1근은 양이 많다고 하면서 반근씩만 하라는 것이다. 우리도 동의 한다. 실제 나온 양을 보니 제법 된다. 한 근씩 원래대로 주문을 하였다면 많이 남길 뻔하였다. 이 식당의 두 학생 같은 종업원 아가씨는 우리 한국인을 보고는 상당히 신기하고 호기심있게 대해주었다. 싱글생글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다. 밥이 빠진 점심이라 허기를 채우는 것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끼니를 때우는 것으로는 적당한 것 같다. 아마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KFC나 맥도날드에 갔을 것이다. 이 아이들 역시 이런 중국음식에 길들여지지 않았으니까.

 점심을 가벼이 하고 주변을 정찰한다. 찻집도 있고, 매점도 있고 식당도 있고 다양한 점포들이 있다. 우리는 西羊市라고 씌여진 푯말이 있는 골목으로 접어든다. 이 골목 역시 먹거리부터 잡동사니 물건들을 파는 좌판도 있고 점포도 있다. 비가 내려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거리지는 않는다. 이렇게 골목을 한 바퀴 돈다. 가다보니 정육점 같은 점포가 있는데 온통 고깃덩어리만 있다. 다시 한 골목으로 접어드니 무슬림 간판이 보인다. 무슬림 관련 용품만 파는 시장이 있다. 물론 다른 상품들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대안탑

 

대안탑 북광장 화단내의 작은 물건-스피커입니다

 

북광장 분수대

 

대안탑

 

 

 

 

 

북광장 주변 

 

 대안탑 북광장 앞 조형물

 

 

 

이 청진대사의 입장료금은 25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원을 살펴보지 않고 그저 문밖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족했다.

 다시 걸어 버스로 돌아왔다.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대안탑 북광장으로 이동을 한다. 이 대안탑 북광장은 거대한 분수가 조성되어 있다. 오늘은 비가 와서 이 멋진 분수쇼를 볼 수가 없다. 또한 이 분수쇼는 야간에 더 그 빛을 발한단다. 다양한 빛의 조명을 받은 물빛이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지게 한단다. 그러나 오늘은 낮에도 밤에도 이를 볼 수가 없다. 우리의 팔자인가?

 우리 일행의 학생들은 대부분 초등시절에 서안을 방문한 적이 있단다. 그러니 대안탑에 대한 호기심도 없다. 대안탑이 있는 慈恩寺를 관람하는 것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보인다. 결국 자은사 입장을 포기하고 자은사 주변유람을 하면서 자유시간을 갖는다.

 이『자은사는 당나라 高宗황제가 돌아가신 어머니 文德皇后를 기리기 위해 648년에 창건한 절이다. 이 사원을 보고 감동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삼장법사다.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을 이곳에 보존하고 싶다고 청원하여 고종이 이를 수람함으로써 완성된 것이 바로 大雁塔이다. 그후 전란 때문에 자은사는 불타 없어졌고, 대안탑도 즉천무후 때 5층에서 10층으로 증축했지만, 역시 전란으로 7층 위로는 붕괴되었다. 이 대안탑은 기둥을 쓰지 않고 내부를 흙으로 고정했으며 외부를 기와로 만든 점이 큰 특징이다. 탑 내부의 중앙 큰 방의 돌비석에는 과거시험 합격자의 이름과 출신지가 새겨져 있다. 또한 자은사는 터가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대안탑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려면 입장해야만 한다. 또한 탑에 오르려면 25원이 입장요금을 다시 내야한다. 내부는 나선형 계단으로 되어 있으며, 꼭대기 층까지 오를 수 있다. 계단 수는 248개이며, 각 층에는 동서남북으로 난 창문을 통해 멋진 바깥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

 이 북광장 주변으로는 널찍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나무가 울창하고 잔디가 푸르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 아래의 벤취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공원의 여기저기에는 각기 다른 조각품들이 있다. 청동 조각품이 특히 많다. 자은사를 방문하지 않더라도 주위를 돌아보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 좋아 보인다.

 이렇게 우리는 오후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잠시 쉬었던 비가 다시 쏟아진다. 우리는 공항으로 향한다. 저녁도 모두들 알아서 해결하였기에 별도로 식당에 가는 일은 없다. 서안 공항은 시내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다. 공항에 도착하고서도 시간이 여유가 있다. 밤 10시에 뜨는 비행기라 공항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공항대합실내 작은 식당에서 컵라면을 포함하여 가벼운 식사를 한다. 오랜만에 밥알 구경을 한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쌀알을 먹어야 힘이 낼 수 있는 내 기계라서 먹긴 했지만 뭔가 허전하고 힘이 없는 것 같다. 내일부터는 조금 나아지겠지.

 비행기는 10시에 이륙한다. 대략 1시간정도 비행하면 구채황룡공항에 떨어진다. 날씨는 좋은 편인데 외부 기온이 8도란다. 이런 한 여름에 늦가을 날씨라니. 비행기에서 나와 공항대합실로 이동하는데 정말 추운가보다. 직원들 옷차림이 완전 겨울 차림새이다. 긴 겨울 오버코트이다. 여자고 남자고. 우리는 반팔에 반바지차림이고 게다가 슬리퍼 신은 친구들이 많은데. 허허 낭패일세.

 도착 창구로 나오는데,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어디가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나오자마자 오른쪽에 작은 매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겨울 잠바며 코트며 파카를 전시해놓고 파는 것이다. 이곳이 추운 지역인가보다. 저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 정말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다. 더러 그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현지 가이드를 만나 버스에 오른다. 가이드의 일장 연설이 시작된다. 구채구가 어떻고, 해발이 몇 미터이며 등등. 다들 피곤한지 조용하다. 주변도 고요하고 적막하다. 공항이라고 하지만 외딴곳에 있어 보인다. 주변에 불빛도 없다. 아마 시내하고는 많이 떨어져 있는 산속 같다. 11시가 넘어서 도착했는데 다시 버스를 타고 2시간을 가야한단다. 우리가 묵을 숙소에. 이런?

 다들 한 숨을 쉰다. 그래도 가야지 뭐 별 도리가 있나. 버스는 히터를 가동시킨다. 점점 온도가 올라가면서 숨이 막힌다. 멀미 증상도 있다. 아무래도 고도가 높아지면서 오는 증상이려나 보다. 해발 1,900여미터 된다고 했으니.

 버스는 꾸불꾸불 산길을 잘도 달린다. 더러 자욱한 안개가 앞길을 막고 서기도 한다. 또 한참을 가다보니 9개의 굽이길(九道拐)이 나온다. 하나의 굽이 돌때마다 이정표가 있다. 第一道拐, 第二道拐 식이다. 정말 그 커브 폭이 무척이나 급하다. 버스가 거의 서서 움직일 정도로 꺽어져 있는 도로다. 이 9개의 굽이를 통과하니 다시 부드러운 길이 나온다. 거의 다 왔나보다. 많은 주점들이 보이고 가로등도 보인다.

 새벽 1시이다. 우리가 묵을 숙소에 드디어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짐을 들고 로비에 들어선다. 방 카드를 받고 잠시 주춤한다. 가이들 曰 " 지금 더운 물이 나오지 않는단다. 아침 6시에서 8시까지 공급이 되니 오늘 밤은 씻을 수 없단다. 게다가 이 지역이 고도가 높은 지대라서 찬물로 씻는 경우는 건강상 이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샤워를 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뭐 같은 경우가 있는가? 늦게 온 것도 죽을 맛인데 게다가 씻지도 못한다니. 하루 종일 비 맞고 땀 흘리고 몸이 엉망이거늘, 개운하게 씻어야 내일 편안하게 움직일 것 아닌감? 에그그 암튼 기차서부터 늦어지기 시작하더니 하루 종일 좀 꼬이는 것 같다. 이제 초하루부터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이지만 좀 편안하게 잠을 자보자.

 

청진대사 현판

 

청진대사 입구 기념품 가게

 

 

 

 

 

청진대사 출입문 

 

청진대사 소개글

 

 4. 셋째 날(7월 3일 화)

 어제 늦은 휴식이어서 오늘 아침은 조금 여유 있게 시작한다. 오늘부터 많이 걸어야 하는 일정이라 새벽부터 서둘러 힘들게 할 필요가 없어 오늘 일정은 조금 느지막하게 시작하려고 한 것이다. 난 6시경에 깨진다. 아무래도 공기가 좋아 잠이 부족하지만 개운하다. 머리도 맑고. 그러나 고산지대라 그런지 가끔씩 평소에 느끼지 못한 불편한 점을 감지하게 된다. 나만 그런 것인가? 일어나자마자 어제 하지 못한 씻기를 한다. 물도 찔끔찔끔 나온다. 참 답답하다.

 밖을 나와 보니 한 여름이긴 하지만 시원하다. 어제 이곳도 비가 내린 모양이다. 산뜻함이 있다. 앞자락 산허리에는 흰 운무가 감싸고 있다. 그다지 높은 곳이 아닌데 말이다. 아 그렇지 이곳 자체가 해발이 높으니까. 지금 난 해발 2천미터가 되는 지역에 있는 것이다. 저 아래에서 지내던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으리라.

 8시경에 아침을 먹는다. 뭐 특이한 것은 없다. 허연 쌀 죽, 밀가루만 있는 텁텁한 빵, 달걀보다 조금 작은 삶은 달걀, 마장두부 두 쪽, 땅콩, 양배추김치, 장아치 이것이 다다. 찬도 다른 지역에 갔을 때는 몇 가지 되었는데, 이곳은 달랑 4개뿐이다. 아침에 왠 땅콩, 아침부터 맥주 마시라는 것인지? 허긴 이곳이 고산지대라 가이드가 채소가 귀하다고 어제 밤에 한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렇게 상차림이 빈약한 것인지. 아이들도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난 그래도 아침마다 빵이 있어 딸기잼을 준비해 갔다. 이 잼을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아침을 먹고 다시 휴식을 취한다. 11시 30분에 움직이기로 했다. 우린 주변을 산책한다. 숙소 뒤로 이동하니 개천이 하나 나온다. 산자락을 옆으로 하여 폭이 약 15m는 되겠다. 물살이 제법 거칠다. 물빛도 완전 흙탕물색이다. 어제 비가 내린 탓인가 보다. 이 개천 옆으로는 邊邊街라는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촌락이라기보다는 상가이다. 주점도 있고 숙박시설도 있고, 디스코 바도 있다. 또 후꿔집도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일종의 유흥거리인 셈이다. 앞으로 개천이 흐르고 있어 나름대로 경치도 좀 있어 보인다. 이 개천에서 오늘은 물살이 제법 거치니 래프팅을 했으면 딱 좋을 것 같다. 우린 소화도 할 겸해서 한참을 걷는다. 아침이라 별 볼거리는 없다. 그다지 사람들도 많이 보이지 않는다. 텅 비어있는 것 같다. 간혹 직원들만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띈다.

 개천가를 따라 내려가니 작은 도로 공원이 하나 나온다. 이 공원 전에 상서로운 동물을 표시한 瑞獸라는 돌 표지석과 함께 특이한 형상을 한 4개의 동물 석상이 나온다. 『이 서수라고 하는 것은 相生相克이라고 하며, 고대 종교인 번파교에 나타나며, 자연계서 상극을 가르키는 유일한 종류라고 한다. 두 개가 합쳐서 하나를 이루며 서로를 포용하고 서로를 이롭게 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번파교의 신앙 중심교리에는 이 서수가 있으며, 이는 구채구의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데 있어 중심역할을 했다고 한다.』

 도로공원에는 우리의 장승처럼 12개의 장승이 6개씩 서로 맞보고 서 있다. 이 장승은 12간지를 나타내는 동물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이곳을 끝으로 해서 아침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 올라간다. 그 도로 옆에 분명 민가인데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어 잠시 올라가본다.   이 집의 담장에는 聖地藏家라고 큼지막하게 써져 있다. 집 입구에는 커다란 돌탑이 하나 있다. 그 돌탑주변으로는 형형색색의 천 조각으로 둘러쳐져 있고 또 그 옆으로는 작은 기둥에 줄이 쳐져 있고 그 줄에 작은 종이들이 매달려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암튼 특이한 형태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곳곳에 천으로 높은데서 아래로 내려쳐져있기도 하고 또 작은 천 조각이나 작은 종이규격에 티벳 글씨가 써져 있는 각장을 볼 수 있었다.

 이 집은 개인집이다. 그러나 그 구조는 특이하다. 문마다 동물그림 또 알 수 없는 이상한 형태의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곳곳에 뿔이 달린 들소 머리가 걸려 있다. 이들 티벳족들은 들소를 무척이나 숭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들소를 고기로 먹기도 하고 뼈는 또 다양한 장식품을 만들기도 하고 하나도 버릴 곳이 없는 유용한 동물인 모양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티벳족에 대한 사전 공부를 충분히 하고 왔어야 하는데, 너무도 준비 없이 이곳을 오게 된 것 같다. 티벳족에 대한 지식이 너무도 부족하다. 이들의 집 구조나 생활방식, 종교 등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다. 실물을 보니까.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전통 민속차림을 한 아가씨들을 몇몇 본다. 아마 출근을 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또 오른편에는 큰 주차장이 있다. 엄청난 수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하나 둘씩 사람을 태우고 출발하기도 한다. 태우는 사람은 차장아가씨 또는 남자다. 기사 한사람에 차장 한 명이다. 뒤에 알고 보니 이 버스는 구채구내에서 운행되는 환경보존차였다. 이곳이 그 주차장이었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구채구로 진입하여 셔틀버스로 이용하는 것 이었다 .우리 숙소에서 구채구 입구까지는 약 2km정도 된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나들이 갈 준비를 한다. 복장을 가벼이하고 간단한 용품을 챙긴다. 11시 30분에 로비에 모였다. 점심 문제가 대두된다. 구채구 내에서는 1인당 40위앤정도 한단다. 한 끼 식사로 좀 부담스러운 가격대이다. 가이드 말로는 구채구 밖에서도 보통 30원 정도는 한단다. 점심이 갑작스레 문제가 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으니 이곳 숙소에서 컵라면으로 해결하고 가자고 한다. 다시 출발시간을 조금 늦춘다. 점심을 각자 해결하고 출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컵라면을 사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 물을 끓여 해결하고, 우리 셋은 바로 옆의 작은 식당으로 들어가 감자편 볶음과 나물 도 콩나물 등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밥을 공짜다. 한 두가지 찬을 시키면 공기밥을 거저 주는 것이다. 북경에 비해 값이 저렴하다. 50원 미만으로 세 사람이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으니.

 저녁에는 이곳 근처에서 장족들의 민속춤과 노래 가무 등이 공연되는 晩會가 있단다. 이를 보고자 하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단다. 일인당 186원이란다. 아이들은 하나도 관심이 없다. 예약건이 제로이다. 우리는 출발한다. 버스 타자마자 내린다. 걸어와도 될 만한 거리다. 버스를 타고 앉고 좀 자리 잡을만하니까 도착한 것이다. 우리가 내린 곳은 구채구 입구와는 떨어져 있다. 걸어서 약 10여분 가야한다. 그 버스 주차장이 특색이 있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그 냇가 옆으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상가라곤 하지만 여러 가지 기념품만 파는 곳이다. 조금은 어눌하다. 완전하게 형성된 상가는 아니다. 그저 임시로 진행되는 상가다. 점포도 많지 않다. 시간되면 철수하고 다시 문 여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면 반드시 이 임시상가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채구 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길이 외길이다. 버스도 아예 조금 더 올라가서 내려주면 구채구입구인데 꼭 이곳에서 내려준다. 상점을 거쳐서 올라가란 이야기다. 사든 안사든 반드시 거쳐 가야 햐는 코스이다. 중국 어느 관광지를 가나 들어가고 나올 때 대부분 의도적이든 아니든 구조가 상점 또는 기념품 가게를 통과하게 되어 있다. 아마 이들이 계산된 상술이겠지.

 이렇게 그 간이 상가를 통과하여 개천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다리가 하나 있고 이 다리를 건너니 바로 구채구 溝口이다. 입구에는 숙소 뒤로 흐르는 개천물이 흐른다. 또 구채구에서 내려오는 물과 만난다. 그런데 다른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은 흙탕물이고 구채구에서 내려오는 물은 맑은 물이다. 이 두 물이 한 곳에서 만나는데 만나면서 섞여지지가 않아 물빛이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한참을 흘러가면서 서로 혼합이 되어 한색인 흙탕물이 되어버린다. 어찌 이렇게 다르단 말인가. 분명 같은 곳에 비가 내렸고, 또 비가 내렸으면 그 물의 색이 같아야 하는건데. 참 알 수 없는 곡절일세.

 

 

구채구 입구의 서로 다른 물의 색

 

 

 

 

 

파란 하늘 

 

구채구 전시관

 

구채구 안내소의 전시실

 

 

 

 

 

 

 

 

 

 

 

 

 

장족의 전통 돌무더기 

 

서수라고 하는 동물

 

 

 

공원의 의자 돌과 나무의 조화

 

邊邊街 표지

 

12간지로 된 조각 장승

 

 

 

 

 

 

 

 

 

장족 민가 

 

장족의 백탑

 

표지석

 

개인 집 표지석

 

돌무더기

 

개인집 장식

 

법륜이 개인집에도 이렇게 많이

 

 

 

 

 

원시삼림

 

 

 

 

 

이미 그 삶을 다한 나무 

 

 

 

 

 

 

이곳을 살펴보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유람지의 정해진 정차장에서는 아무 때나 탈 수 있다. 수시로 오고가는 버스라 내리는 사람, 타는 사람들로 붐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箭竹海이다.

 이『전죽해는 해발 2,618m이고 면적은 17만평방미터나 된다. 전죽이 많아서 전죽해라고 하고, 이 전죽의 잎은 판다의 주요 먹이가 된다. 또한 전죽해에는 삼나무가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아름답고 물결은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이 있다.』

 원시삼림에서 전죽해로 내려오면서 도로 왼쪽으로는 天鵝海(백조호수)가 있고 그 바로 아래로 草海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호수를 우리는 직접 내려 보지 못하고 버스 창밖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물빛만이 오래도록 눈가에 남아 있다. 전죽해와 바로 닿아 았는 호수가 팬더호수이다. 이 팬더호수 아래는 팬더폭포가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전죽해서부터 계속 걸어 팬도호수, 팬더폭포, 오화해까지 걸으면서 살펴본다.

 이 전죽해의 물속은 너무도 투명하다. 물 아래 지면이 다 들여다보인다. 물속이 수초들의 살랑살랑 움직임도, 또 물속에 빠져있는 고목의 앙상한 형상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누군가 일부러 빠트려 놓은 듯한 모습니다. 그런 고목가지들이 물 속 여기저기 흐트려져 있다. 물이끼가 끼어있고 물때가 잔뜩 묻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 물은 너무도 투명하여 마치 만들어 놓은 인공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이 구채구에 오르기 전 개울가의 흙탕물을 보았다. 그 물은 어제 내린 비로 그 색깔을 보여주는데, 이곳 구채구에도 분명 비는 내렸는데 왜 물색은 변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참 신기하고 알 수 없는 일이다. 전혀 비가 오지 않은 것 같은 모습니다. 호수에 고여 있는 물도 가벼이 흐르는 도랑물도 전혀 변함이 없다. 물 한가운데 열십자로 누어있는 나무기둥 또 그 기둥 위에 자리 잡은 한포기의 나무와 흙더미. 분명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을 것 같은 모습이다. 저렇게 자연적으로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할텐데, 저렇게 위태로운 모습으로 있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내 생각일 뿐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의아심을 품을까? 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걸까? 너무도 때 묻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지.

  물속과 물 밖 그리고 주변 환경과 어울어지는 모습은 참으로 자연 그대로이다. 양쪽의 산줄기 사이로 호수가 자리 잡고 그 맑고 푸른 하늘의 흰구름이 맑은 물속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산이 거꾸로 한 모습으로 호수 속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아이들도 나도 그저 감탄만 한다.

 이어 도달한 곳이 팬더바다이다. 팬더호수이지. 역시 생긴 것은 비슷하다. 맑은 물에 고기떼도 가장자리에 몰려든다. 사람들이 떨구어 주는 모이를 받아먹는다. 군데군데 어른 손바닥만한 어류도 보인다. 물이 깨끗하니 이 어류도 상급어종이리라 생각이 된다. 푸른빛을 띠는 물빛 그리고 물속에 잠긴 고목뿌리와 기둥들 그 사이로 유유히 유영하는 크고 작은 어류떼들, 무엇이 부럽고 무엇이 아쉬울 것인가. 그저 저들은 그곳이 무릉도원이겠지. 참으로 시원하고 좋고 아름답다. 이 팬더호수 끝자락에는 팬더폭포가 자리 잡고 있다. 팬더호수 물이 제법 큰 낙차를 보이면서 폭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전죽해

 

 

 

 

 

 

 

 

 

 

 

 

 

 

 

 

 

 

 

 

 

 

 

『팬더 호수는 해발 2,587m이고 길이가 570m, 폭은 가장 넓은 곳이 160m이고 평균폭도 160m나 된다. 깊이는 최고가 22.3m이고 평균 깊이는 14.21m이다. 면적은 9만천평방미터이다. 이 팬더해는 구채구의 일즉구풍경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팬더해 양쪽으로는 석회암 산세가 날카롭게 위치하고 있고, 이 호수는 용암이 침전되어 형성된 곳이다. 또한 겨울에는 결빙이 되기도 하며, 호수의 수위는 연간 약 5m 내외로 변화가 있고 물이 많이 차는 경우는 5m 높이의 폭포를 만들어 내 그 장관을 이룬다.』

 팬더호수 뚝방 아래로는 바로 팬더해폭포가 위치하고 있다. 크게는 약 4갈래의 물줄기가 시원스레 내려뿌려진다. 한 줄기의 폭포가 그중 높이 내리 쏟아지고 나머지 3갈래는 흩어져 뿌려진다. 팬더해 뚝방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서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가 얼굴가에 닿으면서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희뿌연 물안개가 펴지면서 폭포아래는 시원함의 절정을 이룬다. 이곳에 있으면 한여름 40도의 더위라도 뭐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다. 정말 시원타.   이『팬더해폭포는 해발 2,587m상에 있으며, 높이는 7.8m, 폭포너비는 50m에 이른다. 이 폭포가 구채구 폭포 중에서 낙차가 가장 큰 폭포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5만3천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며, 이 호수의 수량이 풍부해지면 많은 양의 물이 지표 아래로 스며든다고 한다. 수량이 풍부해지면 이 폭포의 높이도 덩달아 높아진다. 겨울에 물이 적어지면서 폭포의 물줄기가 작아지면서 얼어 천연의 조각을 만들어 내는데 이 모습이 또한 장관이다.』

 이 팬더해를 지나 숲길을 한참을 내려온다. 숲길 옆으로는 팬더해 폭포물이 흘러내리는데 그 물소리가 녹음과 어울어져 하나의 음악소리로 다가오며, 그 정취는 실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무 계단을 내려오면서 잠시나마 저 물에 발을 담가봤으면 하는 아니 되는 상상을 해본다. 참으로 시원하고 좋을 것 같다. 등줄기의 땀이 그대로 날아가버릴텐데. 걷다보니 앞에 제법 큰 호수가 나타난다. 이름하여 五花海이다.

 

 

팬더호수

 

 

 

 

 

 

팬더폭포

 

 

 

 

 

 

 

 

 

 

 

『오화해는 해발 2,472m에 위치하고 있으며 깊이가 5m, 면적은 9만평방미터나 된다. 흙과 산채가 무너져 내린 돌로 막혀 이루어진 호수이다. 호수 속에는 칼슘, 마그네슘, 동이온 등 많은 광물질이 있고 또 수조류, 이끼 등이 있어 햇빛 아래에서는 녹색, 파란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채를 발하고 있다. 그 모습이 이채롭고 아름다워 마치 공작을 방불케 한다. 그래서 일명 공작호수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오화해 주변을 걷는 길은 산길이다. 왼쪽으로 넓지 않은 들판이 펼쳐지고 이어서 산세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들판에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있다. 잠시 그 꽃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겠다고 잠시 산책로를 벗어났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어이 들어가지 마소”하는 소리가 들린다. 주변에 앉아 계시는 보호원이 나를 제지한다. 내가 규칙을 어긴 것이다. 길을 벗어나서는 아니 되는데 말이다. 이렇게 주어진 길 이외에는 아예 들어서지도 못하게 여기저기 보이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감시의 눈을 뜨고 있었다. 오화해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포즈를 잡은 채 호수를 뒷배경으로 해서 사진을 박고 있다.

 물이 맑아 물속에 내 모습이 비친다. 그냥 한움큼 잡아보았으면 싶다. 그러나 어디 물이 한움큼 잡히겠는가. 물속의 나를 바라보고 그 옆에 오른쪽 산과 왼쪽 산이 나를 지켜준다. 저 물속에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맑고 푸르게 비추어주는 것인지?  암튼 대단한 자연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이렇게 오화해를 보고 그 표지석 입구 휴식처에서 잠시 앉아 기다린다. 내가 가장 선두에서 내려온 것 같다. 우리일행들은 조금 후에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많은 이들을 본다. 이 구채구 직원들이겠지. 곳곳에서 휴지나 쓰레기를 줍는 분들도 있고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 사진사도 있다.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큰길로 나서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고 잠시 내려가서 이번엔 진주탄이라는 호수에 다다른다. 이곳은 다른 호수처럼 물이 고여 있는 곳은 아니다. 널찍한 냇물이다. 제법 그 폭이 넓다. 그 넓은 폭속에 물이 졸졸졸 흐른다. 조금은 넘치기도 하고. 그 냇물 곳곳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한포기 두포기 무리를 지어서, 또한 군데군데 솟아난 돌 위로 솟구쳐 물보라는 만들어 내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오화해

 

 

 

 

 

 

 

 

 

『진주탄은 해발 2,450m, 폭이 112.3m, 길이가 1,189m, 면적이 21,224.7평방미터, 평균경사도가 20°, 상대높이의 차이는 15.65m, 물의 량이 가장 많은 경우에는 3㎡/S 이상이다. 이 진주탄은 부근의 산의 대량으로 무너진 물질들이 기복이 평탄하지 않은 얼음물에 쌓아져 진주탄의 지형의 골격이 형성된 것이다. 흐르는 물은 이 기복이 평탄치 않은 바닥에 분산되면서 물층이 얇아지고 CaCo2의 퇴적에 유리해져 장기작용의 결과 대규모의 칼슘광체가 쌓아져서 형성된 것이다. 灘面에 많은 해조류와 물을 좋아하는 풀숲이 성장하고 있어 생물카르스트 작용과 흐르는 물의 화학퇴적작용 때문에 탄면에 비늘모양의 파문이 일어나 투명한 평형 물의 흐름을 탄면에서 진주와 같이 물살을 깨트리는 물결을 일으켜 흔들거리고 소용돌이쳐 햇빛의 반사로 아주 눈이 부실정도의 표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진주탄은 말 그대로 널찍한 개울이다. 그 폭이 제법 넓다. 내라고 보기에는 그냥 나무가 있고 돌도 있고 울퉁불퉁한 지면에 물이 흐르는 형색이다. 그 사이로 나무다리는 놓아 건너간다. 물론 이 다리는 지면에 거의 밀착되어 있다. 높지가 않다. 그 나무판자 아래로 물보라를 일으키는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군데군데 여기저기 나무들이 물가에 있다. 또한 우뚝 솟은 돌무더기 위로 물이 흘러내리면서 하얀 물보라를 만들어낸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걷는 나무다리 아래로 점점 경사지가 생긴다. 그 바로 아래가 진주탄폭포이다. 진주탄 폭포가 어디 있나 궁금해 했는데, 바로 그 아래인 것이다. 진주탄을 가로 질러 걸어 반대편 산자락 가장자리에 이르니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다. 이 자리에서 폭포가 보이기 시작한다. 넓게 펼쳐진 진주탄 폭포는 정말 장관이다. 바위계단을 타고 흐르다 다시 한바탕 아래로 쏟아진다. 그 사이로 나무도 자라고 있고 이끼에 온통 쌓여 있는 바위도 서있다. 정말 멋진 풍경이다  한폭의 산수화 같다고 해야겠지. 돌 위를 흐르던 물이 경사지를 만나서 다시 바위너머로 떨어진다. 그 아래는 작은 웅덩이가 있고 다시 그 물은 한바탕 돌고 흘러내린다.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만들어 내는 물보라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그 물보라 잔해가 이마에 닿는다. 카메라 렌즈를 흐리게 만들긴 하지만, 얼굴가로 쏟아지는 물보라의 시원함은 여기선 다른 어느 것에 비할 것이 없다. 그저 저 물속에 퐁당 빠져들고 싶다. 있는 그대로 말이다.

 이『진주탄 폭포는 해발 2,433m에 위치하고 있고 너비가 163m, 높이는 21m, 낙차는 40m로 이 구채구에서 가장 아름답고 물살이 가장 센 폭포이며, 폭포와 진주빛이 서로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반달모양을 하고 있어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 진주탄폭포의 물보라의 시원함을 뒤로 하면서 우리는 이곳을 벗어난다. 조금 더 걸어 정류장에 이른다. 어느새 시간이 제법 되었다. 오늘 일정은 오후 5시정도에 마감하기로 했다. 이제 한 곳을 지나가면 된다. 마지막으로 볼 곳은 낙일랑폭포이다. 이 낙일랑폭포는 구채구의 형상이 Y자 형태인데 두 갈래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러니 꼭 중간지점인 것이다. 이 낙일랑폭포를 중심으로해서 오른쪽으로 원시삼림방향 즉 오늘 우리가 지나간 구역이고 왼쪽은 장해풍경구이다. 이곳은 우리가 내일 지나갈 곳이다. 또 이 낙일랑폭포 근처는 낙일랑음료접대중심이 있다. 이름하여 휴게소이다. 이구채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잘되어 있는 휴게소이다. 파출소도 있고 관광안내소와 식당 및 각종 시설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다.

 

<진주탄폭포와 진주탄>

진주탄

 

 

 

 

 

 

낙일랑폭포에 내린다. 도로 오른쪽에 작은 전망대가 있다. 그다지 높은 위치는 아니다. 이곳에서는 낙일랑폭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조금 멀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올라 먼저 폭포전경을 사진기에 담아본다. 에그그 밧데리가 다 되었네, 다시 밧데리를 교환한다. 일행들은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 폭포로 진입했다. 이 낙일랑폭포는 보통 구채구 안내 사진에 가장 많이 나오는 모습이기도 하다. 폭포 물줄기가 많다. 폭도 넓고. 일단 폭포를 뒷배경으로 해서 우리의 단체사진을 하나 박는다. 오랜만에.

 이『낙일랑 폭포는 해발 2,365M, 높이가 24.5M, 폭이 320m로 구채구에서 가장 폭이 넓은 폭포이다. 또 구채구에서 최대의 칼슘 광채를 내는 폭포이기도 하다. 위치는 북서방향으로 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 탓에 단층벼랑(가파른 구덩이)을 형성하고 있다. 이 단층벼랑에 제4기 빙하의 퇴적물이 하류의 진흙과 모래가 함께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일즉구에 모인 지하수와 지표수(풍부한 기간에는 유량이 14.85㎥/s)는 이곳으로 흘러들어 많은 CaC03 퇴적물을 가지고 와서 폭포를 더 깊게 또 떠 높게 한다. 이로 인해 구채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멋진 장관을 보여주는 칼슘의 광채가 빛나는 폭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여름과 가을에는 폭포의 물은 흘러내려 폭포의 제방 주변의 풀과 나무숲에 많은 물줄기를 뿌려 마치 비단 수건을 펼친 것처럼 관람객을 환영하여 맞이하고, 겨울철에는 폭포가 얼어서 옥같은 얼음조각품을 만들어 멋진 장관을 이루게 한다.』

 낙일랑폭포를 바라보는 곳은 폭포의 물줄기를 직접 느낄 수 없다. 다른 폭포는 물이 떨어지는 바로 아래서 바라볼 수 있었건만. 이곳은 조금 떨어져 있다. 물이 떨어지는 곳과 바라보는 곳과는 공간이 있다. 그렇지만 바람을 타고 날라 오는 물보라는 여전히 우리를 시원하게 맞이한다. 쉼 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더위를 가시게 한다. 바닥에 떨어져 한데 어울어진 물은 다시금 하나의 물이 되어 구채구입구로 흘러내려간다. 그 중간 중간에 수정해도 만나고 분경탄도 만나고 코뿔소 해도 만나고 화화해도 만난다. 그리곤 구채구 밖으로 벗어난다.

 우리는 오늘 이 낙일랑폭포를 마지막으로 구채구를 벗어난다. 버스를 타고 다시 입구로 내려온다. 어느새 해는 기울었지만 아직은 대낮이다. 5시를 조금 넘었다. 그래도 많이 본 것 같다. 늦게 시작하여 구채구의 한 자락을 다 둘러본 셈이다. 내일은 나머지 한 자락을 둘러보게 된다. 기대가 된다.

 다시 입구에서부터 주차장까지 걸어서 나온다. 하루 종일 걸은 셈이다. 다리도 무겁다. 약간의 피로가 다가온다. 아무래도 해발이 높은 지역이어서 그런지 가끔씩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저녁을 먹는다. 저녁도 같은 숙소에서 먹는다. 뭐 이렇다 할 식단의 변화는 없다. 그저 밥을 좀 넉넉하게 먹는다. 아무래도 곡기가 들어가야 좀 먹는듯 하니까. 식사 후 김현진 샘과 학생 몇이 옆 시장으로 나가서 수박과 자두 등 과일장을 봐가지고 오셨다. 좀 느지막하게 과일 맛을 본 것이다.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할 시간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겠지. 이렇게 구채구의 푸른 자연과 맑은 공기를 흠뻑 마신 하루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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