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에 관한 시모음 1)
초겨울 날 아침 /정심 김덕성
갑자기 찾아온 추위
겨울 행세를 하는 동장군 오는 날
장롱 속에서 외투를
구겨진 그대로 꺼내어 입고
사람들 모두 떨며 콜록콜록
감기와 전쟁이 시작되고
거리의 낙엽도
모두 떠나간 한산한 거리
그 자리에 남아 지키는
초라하게 보이는 나목들
애처로운 마음이 들고
나목을 바라보는 나
지금 거리엔 이렇게 단 둘
추위와 외로운 길에 선 나그네
어디로 가야하나
환혼이 다가오는데
초겨울 연가 /은파 오애숙
가을날의 정취도
소슬바람사이에 풍성함도
사라져 버린지 이미 오래
가끔 비폐한 낙엽
정착지 못 찾아 이리저리
헤메이는 방랑자로 떠돌 때
공명되는 찬공기에
움츠려 들며 설레임 찾아든다
옛 추억 속 따사로운 손길
다시 느낄 수 없는
내 어머니의 다정스런 마음
가슴에 아련히 떠올라
내 아이 냉랭한 가슴에
파묻고 너를 사랑해, 속삭이며
따사롭고 고운 맘 전한다
초겨울의 냄새 /박종영
어느 하루 비어 있는 시간을 채우려
노오란 빛을 찾아 나서든 날,
길 모퉁이 담벼락을 타고 굴러내리는
굵은 낙엽들이 부둥켜 안고
낡은 허리 비비며 감싸고 있다
맨땅에서도 푸른 날의 그리움을
손잡아주는 동행의 길인 듯,
그 열기 데워지는 냄새로 사방이 달콤하다
마치 사랑채 가마솥 여물 끓이는
장작불처럼 따뜻함은 어떤 연유일까?
가던 길 멈추고 달디단 냄새 흠흠 거리니
뿌듯이 차오르는 이별이 눈가에서 시리다
그대는 아시는가?
이토록 배부른 초겨울의 냄새를.
초겨울 햇살 /未松 오보영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늘
곁에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특별히
변덕 심해 몰고 온
싸한 냉기류에
몸도 맘도 많이 시린
이즈음에
다정하게 다가와 보듬어주는
당신 따사한 숨결은
생기를 돋워주네요
새 힘을 갖게 하네요
초겨울 물가 /이명기
밀려와 출렁이는 건
다 흐르지 못한 마음들,
속의 물고기들, 눈감았다 뜨지 못하는 물고기들
온종일 서늘하게 일렁이는 산 그림자 속
상한 지느러미를 잎사귀처럼 흔들며
술렁술렁, 물밑 세상으로 돌아가는
물고기들의
수초 무성한 집
허리까지 잠긴 숲에서
비듬처럼 간혹 잎이 진다, 차츰 앙상해지는
가지 끝에서 새가 난다
무릎 시린 초겨울 물가에서
자꾸 물 건너가려는 마음 때문에
몸이 춥다
초겨울 풍경 /김종익
중리동 아파트 정문에서
시든 씀바귀가
백발 할머니를 팔고 있다
울타리콩 무더기들
곱게 늙어 가는 아주머니 사가라고
지나가는 행인들 붙잡고 귀찮게 한다
외투도 없이 아파트 촌에서
겨울 강을 건너야하는
푸른 소나무는
마음이 꽁꽁 얼어 온다
초겨울 바람 /김 내식
회색빛 하늘이 몹시 차가워
기러기도 어디론가
흔적이 없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대간줄기로 쫓기던 칼바람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 대숲에 내려온다
바람에 저항하는 파도는
피로의 거품 일으키나
전의를 잃지 않고
틈새의 갈매기
호수로 날아든다
호숫가를 걸어가며
내 나이같은 초겨울이
세월의 바람으로 떠밀어도
두 다리에 힘주고
천천히 걷는다
초겨울 연가 /홍대복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같이
공원 벤치에 내려앉은 초겨울
헐벗은 나목 잔가지로
살며시 걸터앉는 따스함에
그리움은 아슴아슴 사색에 젖는다
서서히 다가오는 땅거미처럼
고단한 여정 아쉬움 남긴 채
저녁연기 피어나는 향수에 저문다
초겨울 /양봉선
안간힘 쓰던
한줄기 바람
밀물처럼
끊임없이 다가오는
살강살강 했던
지난날 못 잊어
휑한 들녘 가르고 있다
초겨울 외출 /오보영
이미
겨울이 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햇살이 좀 비추길래 괜찮을 줄 알고
몸 감싸줄
외투도 걸치지 않고 길을 나섰더니
마음까지 시려오네
불어닥친 찬바람에 길 옆 가로수
그나마 붙어있던
몇 잎 남은 잎새마저 다 떨어져나가고
혼자서
앙상하게 떨고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렇기도 했지만
그새 밍크털로 온 몸 휘감고
기름기 낀 얼굴 땀닦으며 지나가는 행인에게
아무래도
남아있던 내 온기마저 다 빼앗긴 것 같아
순간
가슴이 더 얼어붙었었나보네
초겨울낙엽 /유일하
찌근거리던 만추도
살며시 꼬리 감춘 날
모가지 내민 초겨울바람
심장에 엄습하여
사랑싸움하고 있다.
보고픔의 혈관타고
그리움의 뇌혈관으로
깝죽거리다가 멈췄다.
정말 사랑의 바람이
시려오는 것일까
흰눈 툭툭 털고
다가올 사랑아!
사랑한다 말해다오.
가는 세월 때문에
보르르 떨려오는 청춘이
조락의 낙엽을 타고
산등성이를 휘감아
넘어가는 노을빛에
넋 없이 바라보다가
눈시울 붉어질라
그 해 초겨울은 /장수남
그 해 겨울은
내가. 왜 미친 겨울이었을까.
내가 너를 그리워 할 땐.
단풍잎. 한 잎 한 잎
이름 새긴 잎 새마다. 계절의
목마름을 너는
노래하고 있었다.
노을빛 먼 그리움 하나
잎 새. 하얗게 젖어
강변. 안개비의 겨울이야기는
너는. 왜 혼자 듣고 있는가.
갈색 이마에 깊은 숲
벤치위에 겨울장미. 혼자앉아
하얗게 꽃피우면
고독한 시간. 너는 누굴
기다리고 있었다.
첫눈내리는 길목엔
벌써부터 낯 선. 바람이
빈가지 깨물고
낙엽 떨어지는 마지막 몸부림
하얀 면사포 쓰고 너는
그해 겨울을…….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사계절, 24절기 시모음
초겨울에 관한 시모음 1)
와룡산
추천 0
조회 172
20.11.25 10:03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