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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너무나 유명한 책이죠. 남성과 여성의 언어차이, 생각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어서, 추천의 추천을 거듭한 책입니다. 저도 이 책으로 토론회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이 책은 남녀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었어요. 토론회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마치 자신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그동안 답답했던 부분에 해답을 얻은 듯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게 정말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까? “그건 개인의 차이가 아닐까? 남자도 그래, 그런 건 여자도 그런 경우가 있어” 바로 이런 의문을 콕 짚어주는 뇌과학 책이 있습니다.
정말 남자 뇌와 여자 뇌가 다른 걸까?
<편견 없는 뇌>의 저자 지나 리폰은 '남성과 여성의 뇌의 차이란 파란 옷, 분홍옷처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강요받는 사회적 틀에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자유의지를 성차라는 것에 오염시키고 특정한 삶을 따르게 만든 원흉이 다름 아닌 ‘편견에 빠진 뇌과학’이었다‘고 폭로합니다.
몇 해 전 뇌과학 시리즈 영상에서, 저는 좌뇌와 우뇌를 잇는 교량역할을 하는 뇌량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도 당당하게 여성의 뇌량이 남성보다 더 두껍고 크다고 했어요. 또 평생 사용하는 어휘가 여성이 남성에 비해 훨씬 더 많다고도 했습니다. 결론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처럼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 우리 사회의 여려 편견과 편향을 소통으로 극복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의도는 좋았지만, 이런 이야기의 바탕에는 남자와 여자의 뇌가 서로 다르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단 말이죠. 왜?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여기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굴드의 말이 있습니다.
이 책은 과거에는 종교나 관습에 의해, 현대에는 과학에 의해 반복되고 있는 불공평한 인식, 특히 젠더 문제 즉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닌, 외부의 잘못된 편견으로 강요받고 있는 제약이나, 기회박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그렇게 배워왔고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틀을 깨고 우리 자신에 대해, 뇌에 대해 재학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책은 왜 필요할까?
21세기 이전까지 뇌는 마치 운명처럼 생물학적으로(즉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뇌가소성이란 개념처럼,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가 받는 교육, 업무, 취미, 운동에 의해서 뇌는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유전자에 의해서, 호르몬에 의해서 남자와 여자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다르고 확정되어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직업도 능력도 다르다고 하는 편견은 왜 여전히 반복되고 있을까? <편견 없는 뇌>는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끈질기게 올라오는 뇌의 성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젠더화된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결국 젠더화된 뇌를 가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젠더 문제는 단지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남성과 남자아이, 부모, 교사, 기업, 대학, 사회 전체에 너무나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 책의 원제 The Gendered Brain 젠더화된 뇌는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고요. 한국어 판 제목 『편견 없는 뇌』는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부각하는 제목입니다. 부제 <유전적 차이를 뛰어넘는 뇌 성장의 비밀>이란 문구는 우리 뇌가 유전적으로 확정되어서 고정된 것이라, 훨씬 더 변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 지나리폰은 영국 버밍엄에 있는 애스턴 대학 산하 애스턴 브레인센터에서 인지신경과학을 연구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연구자입니다.
■ 책의 구성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뇌과학분야의 발전과정에서 젠더화가 어떻게 반복되어 왔는지를 설명합니다. 18세기 초기 뇌연구가 시작될 때, 연구자들이 세운 가설이 ‘남녀의 유전적 차이처럼 뇌도 구조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를 찾고자 하는 연구의도는 다분히 차별적이었습니다.
“여자는 인간 진화에서 가장 하등한 형태를 대변하며... 문명화된 성인 남자보다는 어린이와 야만인에 더 가깝다.”- 귀스타브 르봉(1895년)
지금에서야 보면 충격이죠. 그러나 당시엔 ‘문명화된 서구 & 백인 & 남성’이 진화론적으로 더 앞서 있다고 하는 관점이 소위 지성인들을 관점이었습니다. 여성의 사회참여, 교육, 정치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면 너무 우스꽝스럽지만, 당시에는 인기를 끌었던 골상학처럼 두개골의 모양이나 뇌의 크기 차이가 발견되었을 때는 그것이 여성의 열등함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었던 거죠. 사실 상관관계 자체가 근거가 없고 의심스러운데도 말이죠. 21세기에 이르러 EEG와 PET 그리고 fMRI까지 뇌기능을 측정하는 도구가 발전되어 감에 따라, 이런 인식이 바뀌기도 하고 기존 연구가 재검토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뿌리내린 사회적 편견, 연구자들의 관점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서문에서 이를 ‘두저쥐잡기’에 비유했습니다. 뇌의 구조적인 차이가 없으니, 이젠 그 가설을 바꿔 호르몬의 차이가 뇌의 성차를 가져온다는 식으로 그 방식만 달라졌습니다. 이것을 뇌조직화 이론이라 합니다. 호르몬이 남자의 뇌, 여자의 뇌라는 식으로 뇌의 주요 구조와 기능을 결정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대개 이런 연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힘드니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합니다. 그런데 과연 생쥐처럼 사람도 같은 결과를 보일까요? 대중과학책 저자들은 심지어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했다는 것조차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독자들은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지요.
엉터리 뇌과학, 가짜 심리학은 자기개발서 류의 책에서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고, 저 또한 의도와 상관없이 그것을 퍼지게 한 사람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지난 영상을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은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 에피소드 1
1881년 보스턴 외곽 매사추세츠 브루클라인에 사는 캐럴라인 케너드는 한 여성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다윈의 저서를 근거로 ‘과거와 현재, 미래에 걸쳐 여성이 열등하다는 사실은 과학적 원리에 기초한다.’는 주장을 들었습니다. 설마 다윈이?
그래서 케너드는 다윈에게 편지를 써요. 당시는 다윈이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가 출간된 지 한참 지난 시기였습니다. “만약 이런 주장에 오류가 있다면 영향력 있는 당신의 견해와 권위로 바로 잡아주세요.”라고요.
그런데 한 달 뒤 다윈은 이런 답장을 했습니다.
“저는 여성이 도덕적 자질의 면에서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분명히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유전의 법칙에 따라 여성이 남성과 지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라고요.
이런 생물학적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성처럼 생계를 책임져야 하지만 어린 자녀와 가정의 행복에 해가 되기 때문에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여성은 육아와 가정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니까 진화론적으로 볼 때, 남성은 암컷의 선택을 받거나 유혹하기 위해 경쟁자를 물리치고, 환경에 맞서 먹이를 구하고, 지성과 신체조건을 발달시켜야 했지만, 여성은 그저 앉아서 상대를 고르기만 하면 되니 진화가 덜 된 존재라는 생각이었어요. 위대한 과학자 다윈은, 한 편으로는 그가 살았던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 진화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역할 차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역할 차이를 성별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연구자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할 때, 어떤 의도, 편견, 결과에 대한 예상과 기대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결과가 기대한 바와 다를 때 그 실험은 서랍 속에 묻히는 경우도 있죠. 연구자들이 원했던 결과만 발표하고 기대에 못 미친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것을 출간편향이라고 해요. 서랍에 묻힌다고 해서 ‘서랍문제‘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에 통계분석에서 P값 자라내기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연구자의 가설이 유의미한지 아닌지 통계적으로 가늠하는 P값이란 게 있는데, 이 P값을 산출할 때, 유리한 데이터만 넣고 불리한 데이터를 빼는 관행을 말해요. 저자는 심리학, 뇌과학 분야의 연구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있었고, 성차에 대한 연구를 재연을 했을 때, 그 결과가 달랐다고 지적합니다.
요즘 TV에서도 실험 다큐 프로그램들이 많은데요. 밝은 감정의 단어나, 음악에 노출되었을 때 발걸음이 빨라진다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그만큼 실험설계가 간단하지 않다는 건데, 기존의 연구들이 뇌가 주변 환경, 상황에 얼마나 얽혀 있고 또 변하는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해요.
이 책이 네이처 편집자가 뽑은 2019년 최고의 책이었다고 해요. 네이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저명하다고 평가받는 영국의 과학 학술지예요. 네이처도 연구윤리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질 거예요. 그 권위는 신뢰에서 비롯되니까요. 그동안 과학계의 오랜 젠더 문제, 윤리 문제를 해체해 가며 ‘편향과 편견’을 걷어내려 한 이 책의 가치를 네이처에서 인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거예요.
Functional MRI, 줄여서 fMRI라고 부르는 이미지입니다. 뇌에서 어떤 특정 활동을 할 때, 그 부위에 산소의 소비량이 많아질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혈류량도 늘어날 것이란 개념이에요. 그것을 MRI 위에, 이렇게 컬러풀한 색을 얹어 만든 이미지입니다. 저도 처음 이 이미지를 처음 봤을 때 너무나 아름답고 강력했어요. 이제 살아있는 사람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었어요. 뇌인지과학, 신경심리학에서 특히 fMRI의 활용도가 높은데요. 고려대 심리학과 남기춘 교수님 팀의 연구에 피실험자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MRI 장비 안에 누워있는 것은 같지만, 그 안에서 단어나 이미지와 같은 특정 과제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뇌혈류량을 측정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데이터를 얻는 것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은 순간적이지만, 혈류량의 변화는 대개 4~6초의 지연기를 갖고 있고 그 변화가 완만합니다. 때문에 과제마다 간격도 중요하고, 저도 그랬지만, 피실험자가 실험 동안에 과제에만 집중하기에 상당히 힘든 환경입니다. 이런 잡음을 통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이 아름다운 이미지가 주는 효과가 너무 강력했던 것 때문일까요. 뇌 영상 기술의 혁신은 너무 부풀려지기도 했습니다.
2부는 뇌가소성처럼 우리가 뇌에 대해 더 폭넓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개념과 우리 사회의 젠더문제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뇌’를 다룹니다. 초기 뇌 영상술은 뇌 속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찾는 지도 탐사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은 뇌가 어떻게 네트워크를 형성해 과제를 해결하느냐를 추적합니다.
지난 30년여 년간 뇌과학의 가장 중요한 혁신은 뇌가소성입니다. 영유아기가 지나면 뇌의 노선이 거의 확정적이어서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뇌가 변한다는 개념입니다. 그만큼 양육, 교육, 환경, 경험이 우리 뇌와 얽혀 있는 거죠. 동시에 우리 사회가 젠더화되어 있고, 태어날 때부터 분홍색과 파란색으로 대표되는 다른 두 환경에 제한을 받고 기회를 박탈당한다면 우리의 뇌도 그렇게 젠더화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요즘 챗GTP가 화제죠. 글도 쓰고 코딩도 하고, 저도 몇몇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면서 장점도 단점도 느끼고 있는데요. 한쪽에서는 빙과 챗GTP가 테이 논란을 재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어요. 무슨 이야기냐하면,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야심 차게 소개한 ‘테이’라는 챗봇이 있었는데, 사용자의 욕설과 인종차별적인 혐오발언을 학습하는 바람에 16시간 만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그림은 미드저니로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국인’이란 내용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금방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이 정도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수정을 거듭해야 했습니다. 처음 중년 남성이라 입력했을 때, 미드저니는 '백인남성'을 그려냈습니다. 즉 딥러닝이든 확률이든 결국 알고리즘도 편견을 가진다는 것은 인공지능의 원천적 데이터 소스를 제공하고 있는 우리 인간사회가 편견과 혐오가 산재해 있다는 말입니다. 챗기반이든 이미지 기반이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인공지능이 생산한 결과물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면, 이 점은 깊이 고려해 보야할 문제가 아닐까요?
저자는 우리 뇌가 마치 위성항법장치와 비슷한다고 비유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추론해서 대처하는 데 있어 ‘사전확률’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정보가 편견으로 가득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네. 제대로 길을 못 찾겠지요.
3부는 아이들의 뇌에 대해 기존의 연구를 비판합니다. 뇌의 크기나 기능이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거나, 어렸을 때 뇌가 평생 고정된다거나, 등등의 연구에 대해서 말이죠. ‘발달’-Development란 용어가 붙은 발달심리학, 언어발달, 발달인지신경과학 등의 분야의 연구자들이 대중매체에 많이 출연하고 있어서, 용어가 조금 낯설긴 하지만 재밌게, 또 많은 인사이트를 얻으며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아이들은 아주 초기부터 사회에 참여해 규칙을 찾고 모방하고 학습해 나갑니다. 절대로 반응만 하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란 거죠. 전 사실 태어나기 전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태교가 중요하다고 보기도 하고요.
자, 그리고 청소년기에 다시 한번 아주 역동적으로 뇌연결이 재배선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평생에 걸쳐 변화하는 뇌이지만, 가장 큰 변화는 이 두 번의 시기에 일어나니까요.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통제하는 능력, 내 생각에 편향이 없는지 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새롭게 생겨난 자아상과 사유의 경험이 중요한 거겠지요. 그래서 이 시기에 사회적 규칙과 영향력 있는 주변인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스펀지처럼 주변 정보를 습득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환경이 그만큼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세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편향되고 억압된 환경을 주지 않도록 말이죠. 누군가가 너는 여자라서 잘 못할 거야. 너는 남자라서라고 할 때 그것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 말인지,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정편향이 반복될 때 자아상뿐만 아니라 실제 뇌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말이죠.
4부는 과학계의 젠더 문제와 그간 논의된 성차의 쟁점들을 다룹니다.
얼마 전 SBS 집사부일체에서 정재승 교수님이 퀴즈를 하나 냈어요. 이 사진들 속에 누가 물리학자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여러 답변과 그 답변을 도출해 낸 재밌는 이유가 오갔는데요. 이혜성 아나운서는 여성을 골랐어요. 그 이유가 물리학, 과학자라면 언 듯 중년 백인 남성을 떠올릴 수 있는데,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유일한 여성이 답이 아닐까라는 논리였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고르셨나요?
사실 모두가 물리학자였습니다. 사실 다 물리학자가 아니라고 한데도 할 말이 없죠. 제한된 정보밖에 없는 상황-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 선택과 판단을 내려야 하는 대부분의 상황이 그렇습니다만, 이때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사고 틀, 편견, 추론에 의지하고 그것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보여주는 퀴즈였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논의하는 주요 쟁점은 19세기 이후 전개된 뇌과학 연구의 이념이 생물학적 성별로 구분되는 두 집단,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밝히려는 연구가 주도했다는 점을 비판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차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순한 분류로 평균값만을 따지는 연구는 실제 연구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잡음으로 취급하고 배재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 차이는 성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성과 단단히 연결된 요소도 있지만, 성과는 무관한 요소도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서도 아주 미비한 차이를 ‘유의미한’, ‘지대한’, ‘근본적’이란 말장난으로 부풀려서도 안 된다고요.
저자는 이제 뇌과학의 기술은 지문처럼 고유한 개별 뇌를 연구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뇌는 성 이외에 다양한 변인에 영향을 받는 유연한 뇌이고, 또 세상은 이런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이죠. 때문에 뇌과학의 선두에 서서 대중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지신경과학자들의 연구윤리, 책임감을 깊이 생각하라고 강조합니다. 우리 독자들, 대중의 한 사람은 신문이나 광고를 볼 때 뇌과학, 뉴로 혹은 신경으로 시작하는 헤드라인에 유혹되지 않아야겠지요.
저는 딸이 없고 아들만 둘인데, 무심결에 이런 이야기 많이 해왔어요.
“사내자식이 그러면 안 돼”, “남자라면 이래야지.”
제게 딸이 있었다면, 아마 ‘여자애가’라는 말로 시작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예요. 반면에 제가 남자라서 그런지 아들을 대할 때는 ‘남자가 남자에게 이야기하는 학습된 버릇’ 같은 게 있나 봐요. 같은 말이라도, 젠더 딱지를 떼고 이야기할 걸 그랬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바라보고, 자신을 관리하는데 젠더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지나 리폰은 이 책의 마무리하면서 재밌는 비유를 들려줍니다.
물고기 1, 2가 헤엄을 치다가 물고기 3을 만났어요. 물고기 1이 3에게 물이 어때요?라고 물었더니 3이 아! 물이 좋네요라고 답해요. 1, 2가 다시 한참 헤엄을 치다가, 2가 물어요. 야, 물이 뭐야?
우린 이런 젠더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고정관념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도 있다는 비유예요. 저자는 이런 고정관념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자고 부탁해요. 그래서 마지막 챕터의 제목은 “그냥 넘기지 마라 – 우리는 젠더화된 물에서 헤엄친다”입니다.
요즘 다방면에서 ‘탈학습’이란 용어가 등장하고 있어요. 시대의 전환점에는 그 이전 시대에 통용되었던 관념이 무너지고 새로운 관념이 등장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사실 전 제 인생에서 요즘 몇 해가 제일 빠르게, 가장 크게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도 저 자신도요. 지나리폰의 [편견 없는 뇌]를 읽으시면서, 뇌과학 분야의 이해도 새롭게 하고, 또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나의 생각들, 혹 그것이 편견이 아니었는지, 비춰보며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오후의 책방이었습니다.
p.s. 과학자 scientist란 말이 언제 처음 쓰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