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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
장코뱅 추천 3 조회 333 24.06.08 07:40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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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6.08 11:30

    첫댓글 <IVP 성경주석: 서신서>, "에베소서"

    6:21-24 후기

    21-22절. 이 두 절은 골로새서 4:7-8 과 거의 똑같다(해당 주석을 보라). 마지막 말은 에베소서의 전체 주제에 다시 초점을 맞추는 기도다. 즉, 모든 공동체를 포용하는 메시아의 '평안'이 사랑과 믿음 가운데 표현되며, 은혜 안에서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맥스 터너(Max Turner)

  • 24.06.08 11:29

    -의외로 내용이 간단하고요. 골4:7-8을 보아야 하겠군요,

  • 작성자 24.06.08 08:00

    <IVP 성경주석: 서신서>, "골로새서 4장"

    7절, '두기고'는 회중에게 사도의 개인 사정을 알려 줄 것이다(엡 6:21-22에 나오는비슷한 말에 유의하라). 그는 특별히 바울에게 '사랑받는 형제' 귀한 동역자로서 그와 골로새 교인과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섬겼다(1:7에서 에바브라에 대한 내용을 보라). '주 안에서'는 '주의 사역에서'를 의미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가 '주 안에' 있는 자로서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직무를 수행한 사실에 대한 언급일 수 있다.

    8절.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자신의 모든 소식을 전하고 회중에게 그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위하여'(개역개정판에는 '특별히'로 되어있다-역주) 두기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2:2의 주석을 보라).

  • 24.06.08 11:43

    포스팅 본문과 이 주석을 통해서 두기고를 다시 조명해 봅니다.

  • 작성자 24.06.08 08:14

    야고보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마귀들도 그만큼은 믿기 때문이다. 사탄의 군대들도 완전히 정통적이며 온전히 그 진리를 믿는다. 실제로 복음서들에서 사탄의 군대들은 사도들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해 훨씬 더 온전한 고백을 하고 있다(예를 들어, 막 1:24; 5:7).
    ------------------------

    <IVP 성경주석: 서신서>, “야고보서”

    <2:18-19 신학적인 주장.> 이 같은 강렬한 예는 변호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야고보는 이제1 예에 대한 변호를 한다. 그는 자기와 논쟁을 벌이는 가공의 인물을 끌어들인다. 이 논적은 믿음과 행위를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리된 선물인 것처럼 취급한다. "너는 믿음이라는 선물)이 있고, 나는 행함(이라는 선물)이 있다.' 야고보는 행위를 통해서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없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답변한다. 그 믿음은 볼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다. 그 믿음은 순전히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 대신에, 야고보는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그의 믿음인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입증할 것이라고 말한다.

  • 작성자 24.06.08 08:15

    그러자 그 논적은 '나는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는다'고 항변하는 것으로 상상된다. 이것은 모든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하루에 두 차례씩 암송하였던 신명기 6:4-5에서 온 유대교의 기본 신조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발견했다고 하는 믿음이다. 그리고 또한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기초이기도 하다(막 12:28-34; 롬 3:30; 또한 행 17:22-31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도 함축되어 있다). 분명 이와 같은 정통적인 신앙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야고보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마귀들도 그만큼은 믿기 때문이다. 사탄의 군대들도 완전히 정통적이며 온전히 그 진리를 믿는다. 실제로 복음서들에서 사탄의 군대들은 사도들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해 훨씬 더 온전한 고백을 하고 있다(예를 들어, 막 1:24; 5:7). 그리고 아무런 외적인 행위들을 보여 주지 않으면서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과는 달리, 그 귀신들은 일관되게 자기들의 믿음에 따라서 행동한다. 즉 그들은 떤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항해서 반역을 저지르고 있어서 지옥에 갈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귀신들은 떤다.

  • 작성자 24.06.08 08:15

    아마도 야고보는 행위 없이 믿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떨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

  • 24.06.08 11:47

    @장코뱅 귀신이 갖는 정도의 허탄한 믿음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성도의 믿음을 가지고자 기도합니다.

  • 24.06.08 15:18

    @노베 아멘!

  • 작성자 24.06.08 08:23

    <IVP 성경주석: 서신서>, “디모데후서”

    4:1-5 마지막으로 명함

    생을 마감할 때가 된 것을 알고 바울은 아주 엄숙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 한다. 그 명령은 세 가지 사실과 관계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의 심판의 실재성,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 그분의 나라의 확립이다.

    그 명령의 내용은 2절에 상세히 나오는데, 다섯 가지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모든 명령은 디모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복음 사역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바울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기본임을 알기 때문에 말씀을 전파하라는 말로 시작한다(참고, 롬 10:14).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근무 중이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른 세 가지 명령('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은 상호보완적이다. 여기에는 엄격함과 부드러움의 조화가 있다. 그 전체 일은 오래 참음과 주의를 요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독교 사역에 필요한 사항을 분명히 이해시키려 하고 있다. 5절에서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시키는데, 거기에는 네 가지 다른 명령이 있다. 디모데는 모든 일에 침착함을 보여 주고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기독교 사역은 결코 안락한 것이 아니다.

  • 작성자 24.06.08 08:23

    복음 전도자의 일은 본질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더욱이 결론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직무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3절과 4절에서 바울의 생각은 곁가지로 나갔다. 그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마지막 경고를 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만-그래서'귀가 가렵다'-들으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이 퍼뜨릴 허탄한 이야기(myths)를 한 번 더 언급한다.

  • 24.06.08 11:55

    @장코뱅 IVP 성경에 참여한 분들이 여럿이지만 위 내용을 쓴 분은 보수적인 복음주의 쪽은 아닌 갓 같습니다.

  • 작성자 24.06.08 09:25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그 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고 요구하실까 봐 겁이 나서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그 선을 행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

    <IVP 성경주석: 서신서>, “야고보서”

    4:13-17 부자들에게 오는 시험

    말을 건네고 있는 첫 번째 부류는 부유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개 그렇듯이 야고보는 그들을 부자라고 부르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한다. 그러나 그들이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외국과 무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계획은 정상적인 계획이다. 어떤 도시에 가서 자기들이 가져간 상품들을 팔고 어쩌면 다른 상품들을 구매하고, 그렇게 해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사업이란 것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야고보의 비판은 그들이 사실상 다른 모든 상인이 하는 방식 그대로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들은 장래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 장래를 누가 통제하고 있는지를 잘 의식하고 있어야 했다. 인생의 짧음에 대한 묘사는 구약에서 끌어 온 것이지만(예를 들어, 욥 7:7, 9;

  • 작성자 24.06.08 09:22

    시 39:5-6), 하나님의 가치들을 계산에 넣지 않고 계획하는 일의 어리석음은 누가복음 12:16-21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야고보의 지적은 단순히 그들이 그들의 모든 계획을 '(만일 이것이) 주의 뜻이면'이라는 말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은 하나님에게 대한 말뿐인 인정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대신, 야고보는 그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추구하고 돈을 사용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한다. 이것은 그들이 '허탄한 자랑을 한다'는 야고보의 논평에 나타나 있다. 더 나은 번역은 '자기들의 우월의식 가운데 으스댄다'이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자부심인가? 요한일서 2:16은 '이생의 자랑'(한 사람이 가지고 있고 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랑, 자부심)을 말하면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신 계획을 제시하면서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삶에 대한 통제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자기들이 하게 될 굵직한 거래에 대해서 자랑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 작성자 24.06.08 09:41

    한 줄짜리 잠언이 정곡을 찌른다. 이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며 분명히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돈을 가지고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어째서 하나님에게 문의하지 않고 요청하지 않는가?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그 돈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고 요구하실까 봐 겁이 나서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그 선을 행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손을 더럽히는 도둑질이나 부도덕이나 다른 범죄가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들은 정직한 사업가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행할 수 있는 선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마치 실제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의 가르침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 24.06.08 12:04

    @장코뱅 장코뱅님의 논점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넓은 시야로 참고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석 첨부 감사합니다.

  • 작성자 24.06.08 09:20

    요일4장 20절. 자기의 '형제'(형제 그리스도인 혹은 형제 된 인간)를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노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거짓말쟁이'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만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그러한 것이다. 요한은 심지어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든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눈에 보이는 형제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이를 구별한다. 보이는 이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이를 사랑한다고 자신하는 것은 공상에 빠지는 것이다.

    <IVP 성경주석: 서신서>, “요한일서 4장”

  • 24.06.08 12:11

    거짓말쟁이와 공상의 믿음이 허탄한 믿음 같습니다.

  • 24.06.08 15:25

    @노베 공감합니다.

  • 24.06.08 12:06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참된 신자들에게 있어야 함을 잘 알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며,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며,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것 등의 이 모든 것들이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임을 경고하였네요.
    이 모든 말씀들이 사실 지도자급의 크리스천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라고 이해합니다. 디모데서, 디도서, 야고보서의 수신자가 교회 리더급들이죠.
    허탄하다는 것- 거짓이 많아서 미덥지 않다는 설명이 이번 묵상 전체 내용 이해를 선명하게 해주네요. 야고보가 탄식했듯이 허탄한 사람, 신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겠습니다.
    거짓된 것, 욕심이 앞서서 진리에서 돌아서게 되는 것, 위선적인 목회자와 신자, 전도자로서 고난을 감당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이생의 자랑에 현혹되는 것 등등의 허탄한 믿음을 경계하라는 메시지에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 24.06.08 12:16

    잘 추린 요약과 풍성한 내용의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 24.06.08 12:13

    김일성 가계를 예로 들어서 거짓되고 위선적인 믿음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는데요. 열매를 보고 평가하라는 성경 말씀대로 확실히 그 집안은 못된 열매를 맺고 말았군요.
    이런 문제가 한국 교회에 아주 많은 것이 씁쓸합니다.

  • 24.06.08 12:58

    믿는 듯 하지만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변절이 더 격화되어 믿는 자를 핍박하는 자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 24.06.08 12:26

    좋은 묵상에 깊이 공감합니다. 특히 아래 내용의 반향이 큽니다.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자매에게 입에 발린 말만 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행태에 대해서 성경은 인색하다는 정도로 표현하지 않고 더 세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성도를 만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24.06.08 15:30

    네, 공감하고 저를 성찰해 봅니다.

  • 작성자 24.06.10 16:47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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