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 크루즈 (Tom Cruise,1962년생)
'톰 크루즈' 는 1962년 뉴욕 시러큐스(Syracuse)에서 태생으로,
14세 때 '프란치스코 신학교'에 다녔는데, 그의 장래 꿈은 '사제(司祭)'가 되는 것
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개런티가 높은
배우 중 한명이 됐다.
'톰 크루즈' 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연기에 관심을 갖고, 18세 때 뉴욕으로 가서
연기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가 'Franco Zeffirelli' 감독이 연출을 맡은
<Endless Love, 1981>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데뷔를 했으며, 1981년 아직
신인일 때 <Taps>라는 사관생도 들의 분규를 다룬 영화에서 과격파 학생지도자의
역할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그 후 <Risk Business, 1983>이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흥행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
받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미 해군 항공대 조종사
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Tony Scott' 감독의 <탑 건>(Top Gun, 1986) 이 빅히트를
치면서부터였다. 이를 계기로 항공대에 입대하려는 젊은이들의 지원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어쨌든 영화의 제목처럼 그는 이후 스타 시스템의 제1인자(top gun)가 되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톰 크루즈' 의 인기는 주로 그의 수려한 외모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도 ‘미남 청춘스타(pretty boy)’ 라는 것이 전부였다.
말하자면 그는 여성 팬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탑 건>의 대성공 이후 톰 크루즈의 연기력이 인정을 받게 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Colour of money>라는 당구 영화와 <Cocktail>에 출연하여 명실공히 헐리우드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한때 16살 연상의 '셰어'와 연인 사이였지만, 6살 연상의 '미미 로저스'와 1987년 결혼
했다. 이때 '로저스'는 '톰 셀렉'과 약혼한 상태였다. 그는 <컬러 오브 머니>에서 만난
'폴 뉴먼'과는 각별한 사이로, 두 사람 모두 자동차 레이싱에 취미를 갖고 있다.
'더스틴 호프만' 과 공연하여 호평을 받은 '배리 레빈슨' 감독의 <Rain Man, 1988>과
'올리버 스톤' 감독의 반전영화 <7월 4일생>(Born on the Fourth of July, 1989) 등과
같은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그는 출중한 외모에 탁월한 연기력까지
갖춘 더할 나위 없는 스타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톰 크루즈' 의 물오른 연기력은 '롭 라이너 감독'의 <A Few Good Man, 1992>이라는
영화에서 절정에 달한다. 해병대 병영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맡아 끈질기게 진실을 추적
하는 해군 법무관 다니엘 캐피 중위 역을 맡은 '톰 크루즈' 의 존재는 정의의 화신 그 자체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그가 갖고 있다고 여겨진 이지적(理智的)인 이미지가
극중 배역과 너무나도 적절하게 융합한 결과였다.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아이를 원하는 그는 와이프인 '미미 로저스' 가 나이로 인해 출산이 어렵게
되면서 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 '폴 뉴먼'의 권유로 카레이싱에
흥미를 보이고 있던 그는 <폭풍의 질주>에서 출연하게 되고, 여기서 함께 공연한
'니콜 키드먼' 과 스캔들을 일으키더니 결국 1990년 4월 '미미 로저스'와 이혼함과
동시에 ''니콜 키드먼' 과 동거를 시작했다.
1993년 '시드니 폴락' 감독의 <야망의 함정>에 출연했으며, '폴 와그너'와 함께 Cruise
/Wagner 프로덕션을 설립, 배우 뿐만 아니라, 제작자로서도 활동 영역을 넓혔고, 1997년
첫 작품인 <Mission Impossible>을 탄생시켜 Nova Award의 '최고의 제작자 상'을
받았다.
'톰 크루즈' 는 <Mission: Impossible, 1996> 1편을 필두로 2000년에 시리즈 2편,
2006년 시리즈 3편, 그리고 2011년 시리즈 4편과 2015년에 시리즈 5편을 잇달아 제작
하고 주연으로 출연함으로써,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미남 배우가 위력을 발휘
할 수 있음을 입증해보였다.
이 시리즈도 역시 여느 액션영화 못지않은 현란한 '스펙터클'들로 넘쳐나지만, 주인공
'이단 헌트(톰 크루즈)' 의 고도의 두뇌플레이가 사건해결의 핵심요소 였다는 점에서
차별화에 성공을 거두었다. 관객의 지적 호기심까지 충족시켰으니까 말이다.
참고로 8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미션 임파서블> 1편은 미국에서만 1억8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 들였다. 제작비 1억5천만 달러를 들인 최근작 <미션 임파서블 5: 로그 네이션>
도 역시 미국에서만 1억9천5백만 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다른 시리즈들도 거의
비슷한 성과를 올렸다. 이는 제작자로서 '톰 크루즈' 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그 중간에 '톰 크루즈' 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야심작인 <Minority Report, 2002>
에서 범죄 사전차단 시스템의 팀장인 '존 앤더튼' 역을 맡아 장차 발생할 범죄와의 전쟁을
펼치는데, 여기서도 그의 이지적(理智的) 이미지가 극의 개연성을 높이는데 한몫을 했다.
요컨대 이들 작품에서도 '톰 크루즈'는 그 특유의 퍼스낼리티를 십분 활용하여 극중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켰던 것이다.
1996년, 수수께기 같은 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톰 크루즈 부부' 를 성적(性的) 강박을 다룬
자신의 새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두 사람은 <Eyes Wide Shut>에서
공연하게 된다. 이 영화는 가장 오래 촬영한 영화로 기네스북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 영화의
긴 제작 과정에서 두 사람은 언론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2월 5일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결별을 발표한다. 두 사람의 공식 성명은 "직업상 산재한 많은 어려움이 원인이었다",
"결별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였다.
'톰 크루즈' 는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Lions for Lambs, 2007>에서 대권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젊은 상원의원 '재스퍼 어빙' 역을 맡았는데, 이는 그가 현실 정치에 지대한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영화 자체가 정치와 전쟁(이라크전쟁)의 역학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매우 논쟁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톰 크루즈' 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부 내의 히틀러 암살기도 사건을 다룬
역사영화 <Valkyrie, 2008>에서 당시 반란을 주도했던 실존인물 'Claus Von Stauffenberg'
대령 역을 맡아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 소화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톰 크루즈' 는 헐리웃에서 전례없이 20년간 계속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배우이다.
전세계적으로 40억불이 넘는 흥행작품을 남겼으며, 3번씩이나 아카데미 후보로 올랐다.
흥행작품 뿐만 아니라, 예술성 강한 작품에도 출연하였다. 그러한 자신의 성공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응용하여 교육과 건강 분야의 박애주의자로서도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톰 크루즈' 는 2006년 영화배우 'Katie Holmes' 와 세번째 결혼식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