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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올레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허, 한라산이 들으면 섭섭한 말씀이다.
제주도는 지금 한라산 둘레를 한 바퀴 도는 한라산 둘레길 총 80㎞를 조성 중이다.
그중 1구간인 법정사에서 돈내코 계곡까지 9㎞가 지난 4월 말부터 열렸다.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한라산 둘레길을 걸었다. 걸으며 제주도의 지난 상처까지 다 보았다.
이제야 제주도와 친구가 된 것 같다.
지난 23일 오전 서귀포자연휴양림 인근에 있는 법정사로 향했다.
차 안에서 올해 들어 처음으로 한라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가을이 갈수록 짧아진다.
잘나가는 올레길이 있는데 둘레길은 또 왜 만든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한라산 국립공원으로 집중되는 탐방객의 분산을 유도하고, 역사·생태·산림문화를 체험하는
학습장을 제공하기 위해서란다. 둘레길을 걷고 나서 이 이야기에 백번 공감하게 되었다.
둘레길은 일제가 한라산의 울창한 산림은 물론 표고버섯까지 수탈하려고 해발 600∼800m에 만든
병참로(일명 '하치마키 도로')를 따라 조성되고 있다. '하치마키'는 일본어로 머리띠란 뜻.
이 도로가 한라산에 두른 머리띠처럼 보였단다.
한라산을 쥐어짰던 머리띠가 한라산을 살리는 생태학습로가 되었으니 다들 얼마나 기뻤을까.
출발지인 법정사에 도착했지만 절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것일까.
둘레길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지도나 자료가 별로 없는 점이 좀 아쉽다.
궁금증은 곧 이어 나타난 항일운동탑에서 풀렸다.
'무오(戊午)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8년 법정사의 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3·1운동보다 5개월
먼저 일어난 제주도 내 최초이자 최대의 항일운동이었다.
법정사는 이 일로 일본 순사들에 의해 불태워져 건물 흔적만 남아 있단다.
복원공사를 한다는 안내판만 쓸쓸하게 붙어 있다.
법정사가 이전 모습을 찾아 그 정신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본격적인 둘레길 순례에 접어들었다. 둘레길 1구간의 다른 이름은 동백길.
동백잎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보석 같다. 누가 저렇게 동백잎을 잘 닦아놓았는지 모르겠다.
동백길이라 붙여놓은 산행 안내리본이 동백꽃처럼 붉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백길은 주로 흙길이었다. 아스팔트길과는 완전히 다른 기분 좋은 감촉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화전민이 숯을 구웠던 숯가마 터를 지나 표고재배장(3.1㎞)에 다다랐다.
이날 가이드로 동행한 신라호텔 GAO(Guest Actvity Organizer) 조용한(30) 씨가 한라산의 식생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다. 버섯재배용 '골목'은 서어나무로 만든단다.
서어나무는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진 '근육맨'처럼 보인다.
공해에 대한 저항성이 약한 서어나무는 도심지 주변에서는 생육이 불가능해 '숲속의 보디빌더'라고도 불린다. 서어나무, 도시에서는 못 살고 제주도에서 평생 살아야겠다.
이름까지 재미있는 꽝꽝나무.
잎이 두꺼워 불 속에 던져 넣으면 '꽝꽝'하는 소리가 나서 꽝꽝나무라고 불리게 되었단다.
누리장나무는 구린내나무라고도 한다. 비비면 구린내가 난다고 이름이 붙었다.
비비지 말고 꼿꼿하게 살자. 약으로 쓰는 천남성도 보인다.
그냥 약이 아니라 사약의 원료로 썼다니 함부로 먹었다가는 큰일 나겠다.
그때였다. 앗! 노루다. 노루가 꽁무니를 보이며 부리나케 도망간다.
한라산은 정말 생태의 보고다. 제주도에만 있는 기생화산인 '오름'도 만났다.
제주도 한라산에는 370여 개의 오름이 있단다.
악근천 상류 계곡에서 바라보는 시오름은 이 구간의 백미였다.
시야가 탁 트이는 장관을 만나니 피로가 사라졌다.
시오름 주둔소에서는 역사의 상처가 아프게 느껴졌다.
시오름 주둔소는 4·3 사건 당시 효율적인 토벌을 위해 석성으로 만들어진 경찰초소.
1954년 토벌이 완료될 때까지 한라산 밀림지대 등에 25개소의 주둔소가 설치되었단다.
이제 돈내코까지 마지막 3㎞가 남았다. 예전부터 이 지역에 멧돼지가 많이 출몰해 '돗드르'라 불렀단다. '드르'는 들판을 가리키는 제주어.
돗드르에서 멧돼지들이 물을 먹었던 내의 입구라 하여 돈내코라 부른단다. 지명의 유래가 참 재밌다.
돈내코까지 가는 마지막 구간에서 만난 편백나무는 은근한 향기로 존재감을 알렸다.
편백나무는 일본이 원산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란 편백나무는 일본의 편백나무(히노키)보다 피톤치드 효능이 훨씬 뛰어나단다.우리 땅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우리 땅의 소중함을 알려준 한라산 둘레길, '환상의 길'을 잘 걸었다.
코스 소개
한라산 둘레길 1구간인 동백길을 걷는데는 2시간 30분~3시간가량 소요된다.
동백길 주변에는 졸참나무·서어나무·종가시나무·붉가시나무·동백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숲을 이룬다.
동백길은 너비를 최대 2m로 제한하고, 인공 자재 사용을 억제해 자연 지형과 생태환경을
최대한 살리도록 설계되었다. 오르막 내리막이 별로 없어 누구라도 쉽게 걸을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 쉼터나 화장실이 없어 다소 불편하다.
앞으로 2014년까지 한라산을 한 바퀴 도는 70㎞의 길이 더 만들어질 예정이다.
모두 완료되면 서귀포자연휴양림→거린사슴→노로오름→1100도로→제1산록도로→한라생태숲
→절물휴양림→사려니 숲길→수악교→돈내코 상류로 이어지게 된다.
법정사나 돈내코에서 돌아오는 길은 다른 대중교통편이 없어 택시를 예약해서 이용해야 한다.
렌터카 때문에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택시가 올레길·둘레길 덕분에 살아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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