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앞바다 섬, 섬, 섬
채 찬 석< 교육수필가·경기도 중학교 교장> -
한산신문
승인 2014.02.28 09:11
통영 앞바다는 산봉우리가 곳곳에 솟아난 호수다. 아니, 하얀 구름 위로 산봉우리가 고개를 내민 것 같고, 수많은 산들이 검푸른 치마폭을 펴고 물 위에 앉은 모습이다. 미륵산 정상에서 남쪽 바다를 바라보거나 달아공원에서 좌우를 내려다보면 바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산들이 커다란 호수에 떠있는 모습이다.
한산도에서 여수까지의 남해를 한려수도라 한다는데, 이 한려수도를 오래 전부터 다도해라 부르며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했다. 나폴리를 가보지 못해 그곳이 통영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운 도시인지 모르지만 통영이 거느린 섬보다 더 아기자기할 것 같진 않다.
이번 겨울 여행은 어디로 가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겨울에는 남쪽이 덜 추울 것이라는 짐작으로 남해를 생각했고, 남해를 굽어볼 수 있는 도시인 통영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해의 섬에 다녀오고 싶어 친구들과 일정을 맞추어 동행하게 되었다.
2013. 1. 6. 새벽 5시. 일어나 여장을 갖추고 집을 나와 어둠이 가시기 전인 아침 7시에 신도림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의 승용차를 타고 곧장 통영시의 여객선 터미널로 달렸다. 13시에 출발하는 욕지도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아침 식사와 점심까지 빵과 떡으로 대신하며 서둘렀다.
욕지도는 몇 년 전에도 가본 곳이다. 딸이 얼마 살지 못할 거라 하여 딸의 요양을 위해 모녀가 이 섬에 왔다가 지금의 동산을 만들었는데, 십 수년을 더 살아, 그 기적을 이룬 사실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장비도 없고, 연장도 변변치 않은데도 모녀가 맨손으로 샘을 파고 집을 지었다는 이 에덴동산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승용차를 배를 싣고 와, 욕지도를 한 바퀴 돌기 위해 우측으로 1Km 쯤 갔을 때 포장마차가 있어 고등어회를 주문했다. 욕지도에 가면 고등어회와 고구마를 먹어보라는 말이 있어 고등어를 주문했더니 준비하려면 30분은 걸릴 거라 하여 돈을 주고, 다시 차를 타고 섬을 돌아본 후 나중에 고등어를 찾아왔다.
한적한 둘레길을 돌다 에덴동산으로 갔다. 새로 길을 내고 건물을 짓느라 포크레인으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모녀가 십 몇 년 전, 머리와 손톱이 다 닳도록 고생을 하며 집을 짓고 샘을 만들었다 하여 놀라운 경외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와보니 돔형 건물이 두세 개 더 지어졌고, 산비탈에 축대를 쌓고 길을 내고 있었다. 두 번째 방문이라선지 신비감이나 경외감이 처음 같지 않았다. 에덴동산을 나와 둘레길로 접어드니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한 장면을 촬영한 건물 세트가 산 중턱에서 남해를 향해 썰렁하게 서 있다.
욕지도행 여객선을 탈 때부터 친절한 안내를 해 주던 승무원이 욕지도를 보고 연화도까지 돌아보라며 여객선 승선 시간을 자세히 알려 주었기 때문에, 신에덴동산에서 서둘러 나와 욕지도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포장마차에 가 고등어회를 찾아들고 연화도행 여객선에 올랐다.
2층 갑판 위에는 7~8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원탁이 있었다. 고등어회를 꺼내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남해바다의 정취를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갑판 위의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했지만 영상 10도 이상으로 느껴지는 포근한 겨울 날씨. 날씨가 특별히 좋은 날이기도 하겠지만 이곳은 서울보다는 훨씬 남쪽이기 때문에 더 따뜻한 것 같았다.
연화도에 내려 차를 타고 산으로 올라, 단청이 산뜻한 연화사의 경내에 들어서니 선홍빛 동백꽃이 환하다. 땅바닥에는 민들레꽃과 비슷한 꽃이 피어 있다. 빤질빤질하게 윤기가 나는 동백나무 잎의 푸르름과 그 외의 상록수들 때문에 겨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연화사 경내를 둘러보고 샛문으로 나왔다. 우리들의 말소리를 들었는지 80대 중반쯤 돼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비닐포대에 시금치와 나물, 마늘 등을 들고 와 펼쳐 놓으셨다.
전부 팔아봐야 삼천 원. 한 푼이 새로울 할머니의 소득을 위해 사고 싶었지만 여행 다니다 며칠 지나면 시들어 버릴 거라 하여 사지 않고 오니 오랫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연화사를 지나 산등성이에 오르니 남쪽 바다로 뻗어 내려간 바위가 보였다. 바위가 우람하고 해안선이 아름답다. 남해의 섬에서는 수없이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광경이다.
산을 돌아 내려가니 용머리 바위로 갈 수 있는 출렁다리가 나와, 건너 정상에 서니 용머리바위가 우람하게 서 있다. 햇살이 밝으니 바닷물이 청남빛, 참으로 아름다운 날씨다.
선착장으로 돌아와 통영행 여객선에 올랐다. 해가 수평선 쪽으로 기울고 노을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해가 서서히 기울어, 하루가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 장엄한 일몰이다.
다음날, 7시의 한산도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새벽 5시 기상. 선착장 앞에 있는 서호 시장으로 가서 국밥집에 들어갔다.
4,500원 짜리 국밥에도 예닐곱 종의 반찬을 뷔페식으로 덜어먹는 시스템. 그런 식사에 익숙치 못해 반찬을 접시에 많이 덜었다가 남겨 주인아주머니에게 한소리 들었다.
한산도에 도착한 것은 8시. 제승당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어서 차로 한산도를 돌아보고자 승용차로 출발했다. 어느 마을 앞을 지나는데, 뻘에 가리비 껍질같은 조개껍질을 줄에 꿰어 묶어 놓은 것이 보였다. 무얼 하는 것인지 우리 일행들은 아무도 몰라 매우 궁금했다.
이어서 가두리 양식장 옆을 지나가는데 너덧 마리의 독수리가 가두리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덩치가 매우 크고 우람하다. 살아있는 독수리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다.
한산도에 이어진 섬 추봉도로 건너갔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추봉도 끝까지 가고 싶었으나, 다음 일정 때문에 서둘러 선착장으로 돌아와 통영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한산도의 명승지인 제승당과 수루, 한산대첩비에 가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한산도 선착장을 빠져 나오며 배에서 수루를 보고 제승당 쪽을 보고, 한산대첩비를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한산도의 선착장에서 포구를 빠져나오는데 양쪽으로 산이 있어 적을 방어하기에 매우 좋은 지형이었겠다 싶었다. 그래서 충무공이 한산도를 중시했을 것이다.
풍전등화 같은 조선의 운명을 용기와 지혜로 지켜낸 충무공, 충무공의 유적이 많고, 유서 깊은 한산도를 한 시간 반 만에 주마간산 격으로 돌아보고 나오니 매우 아쉬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이 아마 충무공일 것이다,
통영으로 돌아와 미륵도로 갔다.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타려고 예전에 두 번이나 갔지만 운행을 하지 않아 타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탈 수 있었다. 미륵산에 케이블로 올라 통영시와 남해의 섬들을 조망했다.
미륵산 정상에 문화해설가가 있어 해설을 부탁했더니 마이크를 들고 몇 마디 하던 중 스피커의 고장으로 해설사는 해설을 중단했다. 육성으로라도 좀 해주면 좋으련만 산바람이 매서운지, 육성으로 말하기가 힘들었는지, 스피커를 고쳐볼 요량인지, 의자에 앉아 메가폰만 만지작거렸다.
미륵산에서 내려와 충무공의 사당으로서 충무공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는 충렬사에 갔다. 문화해설사가 아주 친절하고 정감 있게 해설을 잘 해주어 시간은 좀 걸렸지만 유익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오래된 느티나무와 큰 나무들이 많아 충렬사의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산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충무공의 영정 앞에 분향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충렬사에서 나와 골목길의 벽화가 유명한 동피랑마을에 갔다. 단순하지만 평화롭고, 담장에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그림과 문구들이 재미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기 때문인지 곳곳에 찻집과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좁은 공간에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 일행도 작은 찻집에서 커피와 식혜를 시켜 놓고 잠시 앉아 휴식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장사도 해상공원을 가는 배를 타려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 안 돼, 유명한 충무김밥을 사서 배에서 먹기로 했다. 그러나, 장사도행 유람선은 갑판이 없는 조그만 배였다. 할 수 없이 우리는 한쪽 좌석에 자리잡아 배 안에서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서 김밥을 먹었다.
충무김밥이 유명하다 하여 내용물에 기대를 하였는데, 약 10Cm의 길이와 약 3Cm 의 두께로 밥만 김에 말아 주먹밥 같았다. 아무 양념이 없기 때문에 김밥을 씹어 삼키기 위한 반찬으로 삶은 문어를 무김치에 버무린 걸 주어 함께 먹었다.
뱃일을 나가는 어부들이 쉽게 먹을 수 있고, 쉽게 변질되지 않도록 고안된 김밥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충무 김밥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섰는데, 장사도에는 음식과 술을 가져 갈 수 없다는 문구가 있어 검표를 할 때 걱정했는데 검사는 하지 않았다. 김밥을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배에 탄 후,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먹었다. 김밥 안에 양념은 없었지만 맛은 있었다.
배에서 내려 10여 분 오르니 산등성이가 나왔다. 옆으로 누워있는 대리석 여인상에서 많은 이들이 기념 촬영을 하였다. 그 옆에는 조그만 안내실이 있었는데, 관광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과거에는 죽도초등학교의 장사분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교가 되어, 학교 앞마당에는 소사나무, 모과나무, 소나무 등이 몇 십년 자란 분재들이 100여 점 전시되어 있었다.
장사도에는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는지, 동백나무와 상록수, 아열대 식물들이 많았다. 특히 알로에 같은 용설란은 양지바른 곳에서 무려 1 m 정도나 자라 있었다.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공연했다는 공연장, 그 위에 철제로 사람의 머리를 형상화한 동상이 여러 개 있고, 아주 작은 초미니 교회도 있다.
온실도 있어 열대성 화훼류와 잉꼬새 등 조류도 있어 청랑한 새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너와집을 지나가는데 동요 '섬 집 아기'가 잔잔하게 흘러 나왔다.
두 시간 정도 공원을 돌아보며 산책하고 다시 통영으로 돌아와 차를 타고 달아공원으로 일몰을 보러 갔다. 가는 동안 하늘에는 희끄무레한 옅은 구름이 끼어 햇빛을 볼 수 없었다.
맑은 날이면 일몰을 볼 수 있는 시각이었지만 하늘에 구름이 끼어 구름사이로 햇빛이 조금 보였을 뿐 아름다운 일몰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서해 바다에 듬성듬성 솟은 섬들을 조망하며 사진 촬영을 하다 보니, 해를 가렸던 구름과 수평선 사이로 붉은 해가 손톱처럼 들어나, 수평선과 맞닿아 멋진 장면을 보여주었다. 특별한 일몰, 가슴이 설레었다. 달아공원에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통영시로 들어와 중앙시장에 가서 광어 우럭, 방어, 도미 등의 활어를 5만원어치 샀다. 참 많이 주었다. 초간장과 매운탕 양념, 햇반을 사서 리조트로 돌아와 5명이 먹었다.
고기의 양이 많아 싱싱한 생선회를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햇반 밥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참 맛있다. 정말 기술도 좋다.
다음날도 역시 새벽 5시에 일어나 여장을 갖추고 선착장으로 나갔다. 비가 내렸다. 우비를 사 입고 비진도행 여객선에 올랐다. 30여 분 달려 비진도 외항에서 내려 해수욕장 길을 지나 마을 옆, 산기슭 둘레길을 걸어 내항마을로 갔다.
학생이 없어 작년에 폐교했다는 비진분교를 돌아보았다. 하필 교문 앞에 오줌 싸는 소년과 그걸 보며 웃는 소녀의 동상이 우습다. 운동장가에 축구공이 하나 있다.
통영시 대부분의 섬에 인구가 줄고 학생이 없어 많은 초등학교가 폐교했단다. 마을회관에서 잠시 비를 피하다 통영 가는 배가 와서 배에 오르는데, 섬 할머니 몇 분이 비닐포대를 들고 배에 올랐다. 시금치가 포대 안에 30 여 다발이 있는데, 매우 깨끗하게 묶여 있었다.
육지에서 보는 시금치와는 다르게 잎이 크지 않고 나물 밑이 붉은, 자잘한 시금치였다. 3만원에 팔 거란다. 값도 싸다. 사서 나누면 좋겠다 싶었는데 양이 너무 많고 운반하기가 여의치 않아, 사지 않았다. 섬 바람 맞고 자란 시금치라 맛이 있다는데, 귀경하는 동안 사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다.
연화도에서 사지 못한 나물, 통영 시장에서 사지 않은 생굴, 비진도에서 못 산 시금치, 사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으면 참 좋았을 것을…. 매우 아쉽다.
비진도에서 통영으로 돌아와 청마 문학관에 들렀다. 유치환의 대표적인 시, 깃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이란 역설법이 인상적이다. 김영권 문화해설사는 청마의 생애를 설명하고 백석과 비교하며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다. 친절과 성의가 고마웠다.
다음으로는 이순신 장군 공원으로 갔다. 바다와 만나는 해안선이 역시 아름답다. 통영에는 충무공의 유적이 많고, 충무공을 기리는 것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통영시의 특색이다.
우리나라에는 섬이 무려 3천여 개가 있고, 남해에만 1,000여 개가 있다 한다. 앞으로 그 섬들 중에 아름다운 섬들을 점점 더 좋은 관광명소로 개발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한려수도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통영은 머지않아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떠오를 것 같다. 통영은 관광 명소로 발전할 잠재력이 많은 도시다. 아니 지금도, 여러 곳에서 감동을 만날 수 있는 충분히 아름다운 미항이다.
한산신문 hannews@chol.
첫댓글 동양의 나폴리, 호수같은 바다 통영!
이번에 직접 가보니 허언이 아님을 알수 있었어요. 버스에서 제옆자리에 앉으셨던 김윤옥선생님왈, 나폴리에 가봤는데 그곳보다 더아름답다운 곳이라고 하더군요. 웅장하고 위압적이어서 부담스러운 이국적 자연보다는 아기자기하면서 인간친화적인 우리자연이 더 와닿더라는거죠. 저도 그런것 같아요. 잘읽었어요^^
작년에는 연화도
목요일 새벽에는 욕지도에 갑니다
그외의 여러섬에 가보았는데
늘 갈 때마다 새롭고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한 여행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