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인생살이가 물을 만난 고기처럼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울고 웃는 험난한 삶이 생의 파장을 일으키며 사회도 혼란스럽다고 비관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기 일에 만족하며 물을 만난 고기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이스라엘에 유학 가 있는 막내에게서 E-mail편지가 왔다.
"엄마! 나는 이제 물을 만난 고기야."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보하는 막내,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하루는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현관에 들어서는 막내가
"엄마! 애들이 나보고 돼지래......"
"음, 돼지란 말, 참 좋은 거야! 돼지는 아무거나 잘 먹고 건강하단 말이야! 옛날에는 진짜 돼지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들도 있었어. 너도 이제는 '돼지'라고 부르면 좋아해야 돼 알았지?"
삼수 초등학교에는 현악 합주 반이 있어서 제 누나 둘 과 함께 바이올린을 할 때, 막내는 주산 반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고 앉은 막내는
"엄마! 나 피아노 배우게 해 주세요 내 소질이 주산이 아니고 피아노예요."
이렇게 시작한 막내의 간절한 애원이 날마다 계속 된다. 지금은 피아노 반주할 사람이 많지만 그때는 교회에 반주자가 귀했기 때문에 장래를 생각해서 누나들은 가정 피아노교습소에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막내의 떼는 점점 강도를 높여 절정에 달했다.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막내는 콩알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엄마! 나 피아노 배우게 해 주세요 그러면 내가 나중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될게요. 네? 엄마! 제발 허락해주세요."
이렇게 졸라대지만 쉽게 허락을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다. 그러나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할 수 없이 막내의 뜻을 받아들여 피아노를 배우게 했더니 권태기도 없이 일사천리로 누나를 앞지르며 나가는 것이다. 음 감이 좋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다.
청주고 2학년 때 정치 외교과를 가겠다던 막내가 주말이 되어 집에 와 하는 말이 음대를 가겠다는 것이다. 이유를 알아보니 음악선생님이 작곡 숙제를 줘서 작곡을 해 갔는데
"이거 네가 했니?
"예"
"누가 해줬지?"
"아니에요 제가 했어요"
"그래? 그러면 너 음대를 가라"
이 말을 듣고 온 막내는 음대를 가겠다고 중고 피아노라도 하나 사 달라는 것이다. 밤에 자다가 곡이 떠오르면 즉시 일어나 작곡을 하고 피아노를 처 봐야되는데 피아노가 없어서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졸라 댈 건수가 8년만에 또 하나 발생했다. 할 수 없이 아버지는 학교를 찾아가 담임선생님과 음악선생님 막내 4자 대면으로 상담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공부가 중간 즘 되면 몰라도 이렇게 우수한 성적을 가지고 음대 가기는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음악 선생님은 그렇게 공부를 잘 하는지 몰랐다며 담임선생님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한바탕 술렁이던 막내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안치고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불어 불문과에 입학을 했다. 이때는 민주화운동 시위가 극렬할 때라. 대학생을 둔 부모들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날마다 TV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전화로 안부를 물어야 했다. 어떤 때는 경찰에게 쫓겨 도망하다가 구두 한 짝이 벗겨져 친구신발을 빌려 신고있다고 하고 어떤 때는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벗겨진 경찰 모자를 주어다 제 방문 뒤에 몰래 걸어 놓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엄마의 마음은 너무 겁이 나서 아찔하기까지 했다.
잡히기만 하면 감옥에 가야되고 혹은 쥐도 새도 모르게 행방이 묘연해지는 무서운 독재정권시대였다.
학원강사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는 중 연극공연아카데미 연출과에 입학을 해 제 소질을 발휘하기 시작을 했다.
96년도에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인으로 등단, '식탁 위에 얼굴'이란 시집을 문 지에서 출간해 주었다.
그후 3개월 동안 중국 배낭여행을 한 후 http://www.imfree.co.kr홈페이지에 중국 기행산문 '긴 수염 사슴코끼리'란 제목으로 연재 글을 올리면서 생활한 것이 어느덧 오륙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소질과 취미가 같은 세 살 아래인 같은 학교 불문과생 아가씨와 사귀다가 2000년 6월 32세의 나이로 결혼을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서울 신림동에서 하숙을 할 때 집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봉산 탈춤을 2년을 배웠다고 한다. 연극공연 아카데미에 다닐 때 교수의 조언을 늘 생각하며 프랑스에 유학 할 꿈을 키워오던 중 막상 유학을 가려니 프랑스에 있는 세계적인 '시각연극학교'는 3년 졸업이 끝나는 2002년에나 모집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막내는 이스라엘에 있는 제2학교를 가려고 준비를 해 놓고, 색시는 프랑스로 가려고 수속을 하고 기다리는 중에 결혼을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며칠 살아본 색시는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뜻을 바꾸고 다시 수속을 해서 함께 이스라엘로 가기로 결심을 했다. 다행히 취미 소질이 같아서 실기에 합격을 하고 육로로 여러 나라를 거쳐 무사히 이스라엘에 도착, 열심히 공부를 하며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들의 중점적인 걱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이다. 월드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철렁 하는 때가 있다.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을 알고 막내에게서 이 메일 편지가 왔다.
여기 예루살렘은 한 구역을 빼고는 평온한 상태예요. 우리가 사는 동네는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단지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는 전투기 소리와 구급차 소리 외에는, 우리가 사는 거리 이름이 뭔지 아세요? 베들레헴 거리예요. 이 길이 베들레헴까지 뻗어 있거든요.
학교생활은 아주 만족스러워요. 매일매일 많은 수업 때문에 바쁘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해서인지 힘들지는 않아요. 여기 학교는 정식이름이 '시각연극학교'이고 연출, 연기, 극작 외에 조각, 드로잉, 비디오 아트, 인형극, 발성, 조명 등 연극에 사용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가르쳐요. 말하자면 여기 학교는 미술과 연극과 영화를 같이 배울 수 있는 학교예요 한국의 연극 학교들은 연출, 연기, 극작을 가르치는 게 고작이죠.
저는 여기 학생들과는 달리 나이도 많고, 경력도 있기 때문에 단지 배우기만 하기보다는 학교 다니면서 계속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졸업할 무렵에는 몇 개의 작품들을 완성해 놓을 예정이에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 공연도 하고 기회가 되면 해외에서 공연도 하고요.
막내는 피아노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안다. 이런 다양한 소질과 취미를 갖고있는 막내는 현재 시간을 쪼개면서 창작을 하고 유학공부를 하는 시간들이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만족스럽고 즐겁기만 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