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
박지일
34세 라텍스 장갑 판매원 기상하다. 배꼽 긁다가 거기 싹 틔운 노란 우울 발견하다. 하품 후 출근하다. 저잣거리 나설 때마다 마주한 행인들 양팔 벌려 그를 껴안아 주다.
귀가하여 하품이 나오지 않다. 탁구공 닮은 알약 복용 시작하다.
나의 슈가 팝 얼른 잠들어야지, 저 옆집 아저씨 알지? 글쎄 끼니마다 가물치를 배급받는대. 그의 이불이 구겨지다. 침대가 요동하다. 그가 풀어놓은 오늘의 가물치가 어제의 침대로 도망하다. 멀미 잠깐 하다.
나의 상상이 그의 역사입니까? 그가 혼잣말하다. 딸꾹질이 멎지 않다.
저잣거리 배급 장면 석간신문 3면을 장식하다; 그를 향해 온화한 웃음 보여주는 행인들. ‘문명국의 일면을 보여줘…’
그의 가물치 둘 중 하나를 침대가 분실하다. 34세 라텍스 장갑 판매원 기상 후 출근하다. 특별할 것도 특별하지 않을 것도 없는 어느 날이 그의 뒤통수를 노크하다. 휘청이며 그가 출근하다.
09월 16일 14시경;
풀빵 냄새 풍기는 포장마차 지나며 별안간 그가 슬피 울다.
그가 삼켰던 알약 텅 빈 심장 영원 핑퐁하다.
가물치가 대가리를 좌우로 흔들다.
다시는 그가 일어서지 못하다. 완전에 가깝게 함락되다. 걷기 눕기 두 자세만을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반복하다. 그 많던 행인들 아무 데서도 그를 발견하지 못하다.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다. 해파리가 상공 1.6미터를 계속하여 헤엄하다. 행인들 집으로 도망하여 문 잠그고 창문 가리다.
그가 닷새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며 되새김질만 반복하다. 그가 혼잣말하다. 나의 역사가 그의 상상입니까? 나의 역사가 상상입니까? 딸꾹질이 완전히 멎다.
갯버들 단독으로 등장하다.
딱따구리 단독으로 등장하다. 닫힌 상점 옮겨 다니며 콘크리트 벽에 발톱 계속 갈다.
―월간 《현대시》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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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일 / 1992년 창원 출생.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