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743 - 늙는다는 것
젊어서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던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거짓말 같다. 거짓말같이 늙은 친구를 보는 일은 낯설고 미열처럼 쓸쓸함이 밀려온다. 늙는다는 것은 아름답다고 전에 필자는 억지를 부린 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떠들곤 한다. 하지만 점점 눈이 어두워져서 돋보기를 써야 글이 보이고 그마저 곧 눈이 피로해져 얼마 읽지 못하니 나이가 들면 책이나 보며 노년을 보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던가! 책은 젊어서 읽어야 한다는 걸 몸으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 말은 세상 일에 꼬박꼬박 객기를 부리다 많이 아팠던 필자가 이제야 겨우 덮을 건 덮어주라고 일러주는 몸의 길을 저항 없이 걷겠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쑥부쟁이밭에 놀러가는 거위같이 / 송찬호
오늘도 거위는 쑥부쟁이밭에 놀러간다야
거위 흰빛과
쑥부쟁이 연보랏빛,
그건 내외지간도 아닌 분명 남남인데
거위는 곧잘 쑥부쟁이 흉내를 낸다야
쑥부쟁이 어깨에 기대어 주둥이를
비비거나 엉덩이로 깔아뭉개기도 하면서
흰빛에서 연보랏빛으로 건너가는 가을의 서정같이!
아니나 다를까, 거위를 찾으러 나온 주인한테
거위 그 긴 목이 다시
고무호스처럼 질질 끌려가기도 하면서
그래도 거위는 간다야
흰빛에서
더욱 흰빛으로
한 백 년쯤 간다야
모닥불 / 송찬호
내가 자작나무 아버지를 찾아
그 숲에 갔을 때, 아버지는 벌써
후조를 따라 북방으로 떠나고 없었다
나는 그때 보았다 막 어두어지기 시작한 숲 속
굴처럼 아늑한
아름드리 그루터기 아래
일렁이는 모닥불 속 눈을 뜨고 있는 여우를
나는 연신 나뭇가지를 깎아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불꽃같은 여우가 사라지기 않게 하기 위하여
어쩌면, 불 속에서 자작나무 아버지가 걸어 나올 것만 같아서
후조를 따라 흰 자작나무 숲이 하늘로 날아가는 밤이었다
불한당 같은 추위가
등 뒤에서 끊임없이 배회하는 밤이었다
코밑이 거뭇거뭇해지는 아이도 아버지처럼
불꽃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밤이었다